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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주일은 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文度公 若望 丁若鏞 承旨 ) 탄생 기념일입니다.

글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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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昔我童時遊; 200 여년 전 국어와 당시 한자어 語文 문화, 특히, 요한 문도공의 적지 않은 文章들 중에서, 더우기, 천진암에서의 작은 모임이나 행사 같은 南人係 청소년들의 회합이나, 詩會 같은 모임을 문도공은, [遊]라는 글자로 대부분 표현하였음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심지어, 문도공의 아들이 쓴 친지들의 모임을 알리는 서한에서도, '天眞 山之遊'라고 함으로써, [遊]라는 글자로 아주 많이 표현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현대 漢字語의 [戱]라는 글자와 유사어 의미로만 알면 안될 것이다. 詩會나 등산회, 강학회, 같은 모임들을 표현했던 글자가 바로 [遊]이었기 때문이다.
2018년 금년 85일 주일은 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 탄생기념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주일 미사 봉헌<변기영 몬시뇰 사랑방 참조, 2014-07-23 ~2018-08-01>
 
2018년 금년, 오는 85일 주일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文度公 若望 丁若鏞 承旨) 탄생 기념일 입니다!
 
문도공의 모교와 다름없는 천진암 성지에서는, 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를 기억하며, 하느님의 종 순교자 권철신, 권일신, 한국천주교회 창립성조들을 기념하는 곡수리 공소(양평 본당 소속)에서는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주일 미사를 드립니다. 오전 10시에는 공소 주위 부대 병사들과 순례객들을 위한 주일 미사를 드리고(변기영 몬시뇰 집전), 오후 2시에는 양평본당 신부님의 공소 월례미사가 있습니다(노성호 신부님 집전).
 
85일은 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 탄생 기념일 (文度公 若望 丁若鏞 承旨 紀念日)입니다 !
1762년 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의 탄생일은 그 해 음력과 양력에 따라 다른데, 천진암 성지위원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그 해 양력 85일을 고정적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알게 된 일이지만, 북한에서 발행된 책자들을 보니, 북한 학계에서도 양력 85일을 문도공의 탄생일로 기념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금년 85일 주일은, 문도공의 탄생 256주년(1762~2018)이 되는 날입니다. 요한 정약용 승지의 母校와 다름없는 천진암 성지에서는 평소 주일처럼 낮 12시에 미사와 강론이 있을 것입니다.
 
어린시절부터(昔我童時遊) 이벽 성조를 사사(師事)하며, 10여년 이상(1776~1784) 修學하던 문도공 丁承旨母校, 천진암 성지에는, 문도공이 천진암 현장에 와서 지은 수많은 詩文 제목과 저작 연도를 알리는 紀念碑가 박물관 마당에 세워져 있습니다.
 
천진암 현장에서 지은 문도공의 여러 詩文들은 최초 10세 이전의 어린 시절과 특히 少年으로 성장한 후 1776년 경부터 마지막 老年으로 1827년에 와서 3일간 머물던 때까지 , 모두 50여년 간에 걸쳐, 종종 천진암을 찾아와 머물며 현장에서 저작한 추억과 감회를 내용으로 하는, 90여 수, 7,000餘字에 이르는데, 처음부터 저 방대한 詩文들 모두를 단 번에 비석에 옮겨 새기기는 어려우므로, 이번에는 시문 제목과 저작 연대와 일부 주요 내용만이 비문에 새겨졌지만, 이렇게라도 시작하면, 저 방대한 시문들 하나하나 모두가 앞으로는 저작 현장인 천진암 성지에 詩碑로 남아서, 우리의 스승이 되고, 거울이 되며, 우리 겨레의 정신문화를 온 세계에 알리는 얼굴이 될 것입니다.
 
365, 24시간, 항상 주야로 흘러나오는 天眞菴 氷泉水처럼, , 天眞山 메아리처럼, 오늘의 우리와 내일의 후대들에게 순수하고 진솔하며 소박한 詩文碑가 건립된 것은, 화려한 각종 행사가 범람하고 있는 이 시대에 역사성을 띤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 아래 詩文을 읽을 때, 漢文에서 童時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10세 이하를 뜻하며, 11세부터는 少年이라 하고, 장가를 들기 시작합니다. 정약용 승지는 15세에 결혼을 하였는데, 그것은 형들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좀 늦은 편입니다. 조선시대 말, 왕궁에서도, 고종황제의 아들 순종은 세손으로서 9살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보면, 문도공 정약용 승지는 1770년 경, 8세 전후부터 천진암에 자주 놀러 왔거나, 젊은 이벽 성조께서 가르치는 天學堂前身이 되는, 천진암의 산골 書堂에서 공부하였음을 알 수 있으니, 이를 회고하며 추억하는 詩文, 늘그막 65세 때(1827) 옛날 동료 학우들과 1827년 늦봄, 천진암에 와서 3일을 머물며 지은, 天眞消搖集의 여러 대목에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가 1827년 늦봄에 천진암 현장에 와서 지은 天眞消搖集 詩文들 중에 몇 줄만 뽑아서, 현대인들이 알기 쉽게 의역(譯述)해봅니다.
 
[……]
 
천진암 오르는, 바윗돌 사이로 난 이 오솔길은,
<石徑細如線>
 
내가 어린 아이 때 오르내리고 까불며 놀던 길이지 !
<昔我童時遊> 註 1.
 
일찍이 여기서는 호걸스러운 선비들이 講學하며 讀經하였지!
<豪士昔講讀>
 
그 옛날 그 생활 추억, 아련하여 다시는 해볼 수 없으니 서글프구나!
<前躅凄迷不可求>
 
그 옛날 참선하는 방에서 <같이 기도하던 이벽, 이승훈 등, 옛 친구들 모두 세상을 떠났으니> 이 세상 어디를 간들 그런 영특한 벗들을 다시는 구해올 수는 없네 그려 !
<禪房無處舊人求>
 
저녁죽 먹으라고 스님이 치던 북소리와 해질녘에 같이 놀던 옛 동무 생각 나네 !
<粥鼓斜陽念舊游>
 
천진암에 다시  와서 아주 살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我欲來此住>
 
아무도 나에게 왔다 가는 방도와 머물 곳 마련해 줄 사람 보이지 않네. 천진암은 모두 폐허가 되었으니 !  <無人示方便>
 
이제 나역시 30여 년(1797, 丁巳年 ~ 1827, 丁亥年)만에 나그네가 되어 다시 와서 보니,
<三十來重到客>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아직도 괴로운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조각 배 한척의 신세로다 !
<猶然苦海一孤舟> .
 

       註 1. 昔我童時遊; 200 여년 전 국어와 당시 한자어 語文 문화, 특히, 요한 문도공의 적지 않은 文章들 중에서, 더우기, 천진암에서의 작은 모임이나 행사 같은 南人係 청소년들의 회합이나, 詩會 같은 모임을 문도공은, [遊]라는 글자로 대부분 표현하였음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심지어, 문도공의 아들이 쓴 친지들의 모임을 알리는 서한에서도, '天眞 山之遊'라고 함으로써, [遊]라는 글자로 아주 많이 표현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현대 漢字語의 [戱]라는 글자와 유사어 의미로만 알면 안될 것이다. 詩會나 등산회, 강학회, 같은 모임들을 표현했던 글자가 바로 [遊]이었기 때문이다.

    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의 탄생일을 잊지 않고 기념하게 된 것은 국가나 사회단체들의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각계 각층에서의 자발적인 성격이 더 짙다고 볼 수 있으니, 문도공의 업적과 학덕 때문이다. 그런데, 기념하는 탄생일이 음력과 양력과 또한 윤달 때문에도 가문의 친지들이나 학계에 따라 다르지만, 기념 예절을 유교 선비들의 전통 예법을 따라 하는 후손과 가문의 관례와, 우리 사회의 현대적인 국가적 각종 기념일 식순을 따르거나, 일부 종교단체에서의 예배를 드리는 종교예식 등에 따라 각기 상이할 수 밖에 없다.

    천주교회에서는 시복시성되지 않은 분들에 대한 교회의 공식 공경예절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절대다수 많은 국민들이 존경하는 애국자나 위인들에 대하여, 예컨대, 안중근 의사, 세종대왕, 윤봉길 의사, 정약용 승지, 같은 분들에 대하여, 무관심과 무례는 하지 말아야 한다.

   천주교 신도 가정에서 돌아가신 자신들의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등 조상님들이 아직 시복시성되지 않았다고 하여, 기일이나 탄신일을 망각하는 가정은 매우 드문 무례한 상민들 집안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니, 자손들에게 매우 나쁜 본보기가 될 것이다. 적어도 기일이나 탄신일을 잊지 않고, 先人들의 학덕과 위업을 기리며 감사하면서, 존경하는 언급조차 없이 지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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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일은
大韓民國 '建國 記念日'이며,
天主敎會 '聖母 마리아 昇天 大祝日'이고,
天眞菴 聖地韓民族 國花 無窮花 紀念日입니다 ! 12시에 미사가 봉헌됩니다.
 
815일은 대한민국 건국기념일이며, 천주교회 성모 승천 대축일이고,
천진암 성지에서는 韓民族國花, 무궁화 기념일로 경축하기도 합니다.
천진암 성지에서는 낮 12시에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미사를 봉헌합니다.
금년에는 때마침, 로마 교황 프란치스꼬 성하께서 방한하시어,
대전에서 아시아 각국 청소년들과 함께, 아시아의 평화를 위하여 미사를 봉헌하시니,
오늘의 우리나라가 받은 큰 은총입니다.
차제에 815, 대한민국 건국에 관련된 천주교회의 잊혀져가는 대한민국 건국활동사와,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天主信仰을 되새겨 보며, 國花 무궁화의 내력을 살펴보자.
 
<보다 자세한 설명은 천진산 메아리 시사 자료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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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한국에 오시어,
아시아 각국에서 모이는 청소년들을 만나십니다!
 
한국천주교회는 10대 후반, 20세 전후의 청소년들이 세웠으니,
1770 15세로 천진암에 입산한 이벽 성조께서는 7년 후
1777 경 시작한 교리강학을 점차 발전시켜,
1779경에는 저명한 학자 권철신도 참석하는 신앙수련회로 승화시켰으며,
당시 이벽 성조 23, 이승훈 21, 정약용 15, 정약종 17, ,
앞으로 로마 교회는 20세 전후의 한국 천주교회 창립성조들을
전 세계 청소년들의 주보와 모범으로, 교과서로 선언하게 될 것입니다!!!
 
1801년 참혹한 신유년 박해로 교회 창립선조들이 대부분 순교하거나 유배되고,
가산이 몰수된 후 교회 재건을 위하여서도 역시 10대 후반, 20세 전후의 자녀들이
창립선조들의 뒤를 이어 조선교구 설정 때까지 한국교회를 이끌어나갔으니,
 
16세 전후의 정하상 소년은 정약종 성현의 둘째 아들로서, 전국 박해의 난민촌에 숨은 교우들을 탐방하며, 백두산 너머 무산 땅까지 가서 조동섬 유스띠노(아버지 정약종 성현의 친구) 유배지까지 탐방하고, 20여세에 들어서면서, 조선교구 설정을 위하여 북경 교회를 왕래하였고,
15세의 김대건, 15세의 최양업, 14세의 최과출은 정하상 회장의 제자들로서, 사제가 되기 위하여 마카오 2만리 길을, 1836126일부터 183766일까지 6개월 동안 걸어갔다.
 
오늘날 유럽과 달리, 한국 교회에 사제성소가 많고, 끊이지 않아, 대신학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뿌리 없는 나무와 가지가 어떻게 무성한 잎을 내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으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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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한국에 오시어,
아시아 각국에서 모이는 청소년들을 만나십니다!
 
한국천주교회는 10대 후반, 20세 전후의 청소년들이 세웠으니,
1770년 경 15세로 천진암에 입산한 이벽 성조께서는 7년 후
1777년경 시작한 교리강학을 점차 발전시켜,
1779년경에는 저명한 학자 권철신도 참석하는 신앙수련회로 승화시켰으며,
당시 이벽 성조 23, 이승훈 21, 정약용 15, 정약종 17, .,,,!
앞으로 로마 교회는 20세 전후의 한국 천주교회 창립성조들을
전 세계 청소년들의 주보와 모범으로, 교과서로 선언하게 될 것입니다!!!
 
Msgr. Byon
입력 : 2018.08.01 오후 6: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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