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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로 천수를 하신 백선엽 장군의 운명 소식과, 서부전선 1사단 방문기 회고 !

글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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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로 天壽를 하신 백선엽 장군의 운명 소식과,

장군께서 창설한 서부전선 1사단 방문기 회고 !

제1사단 방문(2012.11.21)

제1사단 방문(2012.11.21)
제1사단 방문(2012.11.21)
제1사단 방문(2012.11.21)
제1사단 방문(2012.11.21)
제1사단 방문(2012.11.21)
제1사단 방문(2012.11.21)
제1사단 방문(2012.11.21)

 

휴전선 철조망에 목숨을 걸어놓고, DMZ를 지키는 오늘의 最前方 聖人 勇士들을 보니,,,!

 
지금부터 꼭 50년 전, 1963년 9월, 필자는 월급 150원을 받는 일등병으로, 육군본부 본부사령실 서무계로 근무하고 있었다. 종종 전국 예하 부대에서 업무 연락차 육본을 방문한 병사들 중에,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에서 왔다고 하면, 우리 육본 사병들은 그들을 다시 한번 더 쳐다보며, 무척 부러워하였다. 당시 1사단은 군기가 가장 엄하고, 군대생활답다는 소문이 있어서, 행정 사무원처럼, 후방에 근무하는 우리 젊은 사병들에겐 전근 선망의 대상이 되는 부대였다. 
   
 
100년 박해 중에 천주교 신자들의 피로 물든 9월, 이번 殉敎者 聖月에, 며칠 전 필자는 처음으로 임진강을 건너가서, 최전방 전진부대를 방문, 휴전선의 철조망을 밤낮으로 지키고 있는 병사들을 만나보는 영광의 기회가 있었다. TV 뉴스 때나 가끔씩 보던 저 철조망을 따라, 불안과 긴장의 산비탈을 오르내리는 부대원 병사들의 거처를 방문하며, 오전 두차례와 오후 한차례, 軍과 信仰을 이야기하다보니,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70이 넘은 나이도 잊은 채, 어느새 필자역시 최전방에 근무하는 20대 청년 兵士라도 된듯하였다.
 
 
임진강을 건너 최전방DMZ를 지키는 勇士들에게 무슨 말을 하랴? 우선 고맙고, 장하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이 장병들이 여기 없다면, 우리가 서울서 신나게 차를 몰고 다니며, 편히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으랴?! 그런데, 포동포동하며 부옇게 살찐 병사들의 얼굴과 싱싱한 피부색이며, 모두가 신수가 좋아서 기백이 넘치는 一當百의 청년 용사들이다. 알아보니, 매일 식사 메뉴가 아주 좋고, 또 음식도 매일 고기, 생선, 달걀, 우유, 등을 양껏 먹고도 많이 남을 정도로 풍요로워서, 입대하기 전 집에서보다 더 잘 먹고 있다고 한다. 50년 전 우리는 군복무 기간에 배고푼 적이 많았었는데, 우리나라가 벌써 이처럼 富國强兵의 大國이 된 현장을 체험하였다.   
 
 
육군 제1사단은 대한민국 정부수립보다 1년 앞서서, 1947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창설된 사단이다. 아니, 1사단의 군사력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가능하였다. 옛날에는 늘 무력을 지닌 장수가 건국의 始祖였으나, 현대의 민주국가는 先行하는 군사력이 뒷받침해야 한다. 입만 가지고 떠드는, 특히, 심지어, 군복무도 하지 않고 기피하던 이들까지 나타나서, 萬告의 애국자라도 된양, 야단법석을 하는, 소위 政治家然 하는 기회주의자들의 무대에 출연하는 이들은 建國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며,亡國이나 앞당기기 쉽다.  
 
정부수립 후 겨우 한 살이 되어, 일어서지도 못하고, 무기도 없이 빈 손으로, 알몸으로 기어다니던 갖난 아기같은 우리 軍은,  1950년 6.25 동난으로, 북한 공산당 괴뢰군이 3일만에 서울을 함락, 1주일만에 수원을 점령, 20일만에 대전 점령, 등 파죽지세로 대구와 부산 지역까지 후퇴를 거듭하였었으나,피를 뿌리며, 목숨을 바치면서 살아남은  전진부대 1사단 병사들이 전면에서 싸우던 낙동강 다부동 전투를 승리의 피로 짙게 물들여가던, 전진부대 생존한 1사단 장병들이 부르던 노래는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당시 초등학교 4학년생이었던 우리 어린이들이 골목마다 마을에서 부르던 애창곡이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 우리는 전진한다 !
원한이여,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잠자는 전우야!”   
 
前進 밖에 모르는 1사단 전진부대는, 鮮血로 붉게 물들어 흘러가는 낙동강을 뒤로하고, 대구, 왜관 지역에서 서울까지, 도주하며 도망하는 북한 공산군을 추격하며, 용감한 해병대 용사들을 비롯한 불타는 애국용사들과 함께, 영등포, 관악산, 삼각지, 한남동, 남산, 세종로, 등 서울중심부로 진격하며, 수도 서울을 재탈환하여 수복한 주력부대였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首都 서울 收復 이었던가? 서울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시골의 우리 어린이들도 뛸 듯이 기뻐하던 [서울 수복]이었다. 숨 돌리며앉아서 쉴 사이도 없이, 전진부대는  목이 터져라고  노래를 부르며 전진하였다.  
 
“터지는 폭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느냐? 우리는 돌아왔다!
들국화도 송이 송이 피어나 반기어 주던, 노들강변 언덕 위에 쓰러진 전우야!”
   
전진부대 1사단은 성난 파도처럼 北進을 계속하여, 38선을 넘으며 진격을 거듭하고, 마침내 [평양을 탈환]하고, 나아가, 앞록강에 이르러, [압록강 물과 백두산 天池의 물]을 떠서,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게 갖다 바쳤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38선아 잘 있거라! 우리는 북진한다!
흙에 묻힌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   
 
원시시대의 人海戰術 밖에 모르던 중공군의 대거 남침 100만 대군만 아니었다면, 그 때 남북한은 통일이 되었고, 지금은 전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된 대한민국이 통일 대한민국으로서 세계에서 5위 내외의 경제 대국이 되어, 북한 동포들도 오늘처럼 저렇게 굶주리며 고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당시 중공군과 싸우다가 휴가 나온 젊은이들이 다시 귀대하여 며칠 후 중공군과 싸우다가 戰死하여 火葬한, 한 줌의 재가 되어 고향 마을에 돌아오면, 가족들뿐 아니라 모두가 이 젊은 용사들의 주검 앞에서, 1951년 초등학교 4학년생 우리들도, 假裝行列 때도, 목이 터져라고 외치며, 한맺힌 목소리로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 大韓 男兒 가는 길엔 초개로구나 !   <*草芥는 풀끝의 이슬이다>
나아가자, 나아가 ! 승리의 길로 ! 나아가자, 나아가 ! 승리의 길로 !”   
 
국방의 의무는 神聖하다고 흔히 말한다. [神이 내려 준, 거룩한 본분]이란 뜻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첫 아들을 낳으면, 聖殿에 안고 가서 하느님께 바쳤다. 우리 아들이 아니고, 우리 민족의 아들임며. 우리 조국의 아들이고, 우리 마을을 지키는 나라의 아들이고, 우리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여겼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거룩한 기회가 군복무 기간이다. 우리 일생에 이러한 행운의 거룩한 기회가 언제 또 있으랴? 나이가 젊다면, 이 늙은 이도 다시 군에 다시 입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누구나 사람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이다. 자신이 죽는 것 못지 않게 남을 죽이는 것도 가장 힘든 일이다. 십자가에 처형되신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이 선택한 인류 구원의 거룩한 방법이었다. 최 전방에서 적군이 겨누고 있는 총구 앞을 거닐면서, 휴전선의 철조망에 목숨을 걸어놓고, 오늘밤도 내일 낮도,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거룩한 죽음의 산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聖戰의 우리 聖人 勇士들은 십자가의 죽음보다 한가지 더 적군을 죽여야 하던, 다윗 소년이나 모세와 같이, 天命을 실천하는  殉國勇士들이며 殉敎聖者들이다.! 주님의 天使들이여 우리 이 용사들과 항상 함께하여 주소서.!  
 
침략과 약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침략하는 약탈자들을 막고 물리치기 위하여, 내 부모 형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침략자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피를 뿌리며 목숨을 바치는 전쟁이 우리에게는 聖戰이다. 聖戰의 용사들은 모두가 殉國烈士들이며, 殉敎聖者들이다. 우리가 한 평생 살아가는 동안, 이런 聖戰의 勇士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것은 神이 주시는 행운의 특은이다. 감사를 드리자. 후방의 우리 국민 모두는 절대다수가 자유 대한민국의 反共愛國 국민들이며, 온 국민이 국군 장병들을 하루도 잊지 않고 감사하며, 존경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음을 알고, 믿고, 기뻐해야 하겠다.   
 
대한민국 만세 ! 전진부대, 1사단 만세 ! 만만세 ! 다시 한번 더 만세!” 를 부르고 돌아와서, 하루속히 남북이 전쟁을 피하고, 평화통일을 이루도록, 천진암 성지의 [세계평화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바쳤다. Msgr. Byon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사단장 하창호 장군의 초청과 안내로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한 줌 흙이 되어,,,우리의 오늘을 마련한 용사의 넋이여!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주님, 이 용사의 영혼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옵소서!(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대한민국 만세 ! 전진부대, 1사단 만세 ! 만만세 ! 다시 한번 더 만세!” 를 부르고 돌아와서, 하루속히 남북이 전쟁을 피하고, 평화통일을 이루도록, 천진암 성지의 [세계평화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바쳤다.(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수원교구, 신학생회 도보성지순례, 교구 성소국장 지철현 신부 외 170명(2013.07.09), "사제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이 신학생들이 훌륭하고, 위대하고, 유명한 성직자들이 되는 것도 좋지만, 이보다는, 소박하고 진솔하고 거룩한 사제들이 되게 하여주소서! "世界 平和의 聖母 마리아님, 이 땅에서 전쟁의 먹구름이 겉이고, 무신론 극복의 남북 평화통일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소서!"  

입력 : 2013.09.17 오전 11:01:13

 
 
 
중장 계급 스스로 버리고, 중령 계급을 자청하여, 
한국전에 참전한, 프랑스 Monclar 대대장 전적지 순례 !
Msgr. Byon   / 등록일 : 2017-06-15    (조회 : 1743)

변기영 몬시뇰, 하창호 장군 지평전투 전적지 순례(2017.06.14).
1950년 11월, 800명의 프랑스군인 전투 대대를 이끌고, 한국전에 참가하여, 용문, 지평 전투에서, 남하하는 중공군을 격파한 Raoul Monclar 중령(1892~1964)은 본래 헝가리 이민 출신으로, 1,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프랑스와 현대 세계 전쟁사의 영웅으로 전설적인 명장이다.  
변기영 몬시뇰, 하창호 장군 지평전투 전적지 순례(2017.06.14)


변기영 몬시뇰, 하창호 장군 지평전투 전적지 순례(2017.06.14)

변기영 몬시뇰, 하창호 장군 지평전투 전적지 순례(2017.06.14)

변기영 몬시뇰, 하창호 장군 지평전투 전적지 순례(2017.06.14)


변기영 몬시뇰, 하창호 장군 지평전투 전적지 순례(2017.06.14)


변기영 몬시뇰, 하창호 장군 지평전투 전적지 순례(2017.06.14)


   
  프랑스 몽클라르 장군과 당시 미8군사령관 미국 릿치웨이 장군
 
 오늘 (2017.06.14), 변기영 몬시뇰, 하창호 장군 지평전투 전적지 순례

한국전에 참가하여, 1951년 2월, 600명의 프랑스군인 전투 대대를 이끌고,  용문,지평 전투에서, 남하하는 중공군을 격파한 Lieutenant Colonel Ralph Monclar 중령(1892~1964)은 본래 헝가리 이민 출신으로, 프랑스 현대 전쟁사의 영웅이며, 전설적인 명장이다. 20세 중반까지 세계 1차대전에 참전하여 명성을 떨쳤고,계속 군생활에 몸담아 2차 대전에서는 프랑스와 연합국의 승리를 위하여, 독일 히틀러 군과 싸우며, 빛나는 무공을 세워, 2차 세계 대전 후, 프랑스 육군 중장으로 전화 복구사업에도 많은 공헌을 하고 있던 현역 3성 장군이였다.
   1950년 한국 6. 25 전쟁 때, 한국전에 파견된 프랑스군 대대는, 남하하는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1.4 후퇴 때, 비극의 함흥철수 작전 이후였고, 프랑스 군 1개 전투부대 600명을 거느린 부대는 본국에서 부대가 창설될 때, 대대장 후보를 찾는 과정에서, 3성 장군의 몽클라라 중장은 남들이 대부분 기피하는 한국전 파견을 자청하였으나, 대대장 후보는 중령급이라야 하므로, 국방성의 반대로 불가능해지자, 중장 계급을 포기하고, 중령계급 인준을 자청하였으며, 프랑스 전국에서 한국전 파견병 지원자를 모집, 대대장으로 참전하여, 용문, 지평, 임진강, 등지에서 남하하는 중공군 수 개 사단 부대들과 첫 전투를 하였고, 중공군을 가평전투, 임진강 전투, 등에서, 계속 격파하였다.사실 중공군의 전의를 꺾고, 휴전 제안으로 방향을 돌리게 한 것도, 프랑스군 몽클라라 장군 대대의 역할이 컸다. 
  
    몽클라르 중령은 본래 현역 3성 장군으로서, 프랑스 국방성 한국전 참전 관계 담당관 회의에서, 스스로 별 셋의 계급장을 떼어내고, 중령 계급장을 붙이게 강요하여, 신설부대의 정식 대대장으로 한국전에 참전할 수가 있었다. 당시 59세였던 몽클라르 중장은 부인이 아기를 가져, 남편의 한국전 참전을 강력히 반대하였으나, [세계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싸우는 용사]의 길을 택하였다.
    오늘 (2017.06.14), 마침, 평소 필자가 잘 아는 이 시대 우리 국군의 자랑스러운 하창호 장군(육군 소장)이 곡수리 성당을 방문하여, 지평 전투 전적지 곡수리의 기념 성지를 순례하면서, 몽클라라 장군의 빛나는 일생과 한국전에서의 큰 업적을 필자에게 소상히 알려주었다. 실로, 감명 깊게 들었고, 오늘날 감투병 중환자들이 난무하며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지금, 혼자서 듣기에는 아까운 이야기였다. 하장군 같은 서북부 전선의 현장과 여기에 깃들어있는 전쟁사와 전투정신을 겸한 智將이 국방을 지키는 한,우리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
<Msgr.Byon>
1951년 2월 13일~16일까지 있었던, 양평군 지평 전투에서, 프랑스 Monclar 중령 대대가 중공군 3개사단의 공격을 막아내고, 후퇴시키기 시작하게 만든 승전지.- 2016 년 12월 5일 지평전투 전적지 순례
  
1951년 2월 13일~16일까지 있었던, 프랑스 Monclar 중령 대대가 중공군 3개사단의 공격을 막아내고,
후퇴시키기 시작하게 만든 승전지.<2016년 12월 5일 지평전투 전적지 순례-Msgr. Byon>

 
1951년 2월 13일~16일까지 있었던, 프랑스 Monclar 중령 대대가 중공군 3개사단의 공격을 막아내고,
후퇴시키기 시작하게 만든 승전지.<2016년 12월 5일 지평전투 전적지 순례-Msgr. Byon>지평면 사무소 옆에는, 국방부에서 건립한 기념관이 있다. -
   장군의 본래 이름은, Raoul Charles Magrin-Vernerey, 이었는데, 2차 세계대전 중에 주로 해외파병 부대의 지휘관으로서 부르기 쉽게 이름을 짧게 줄인 것이,Ralph Monclar였다. monclar는,  mont + clara (빛나는 東山, 明山,白山, 華山, 등의 의미를 지니는데), 아직 근거 문헌은 못 보았으나, 필자의 짐작에, 헝가리에서 프랑스로 이민올 때, 프랑스 동북 지방, Lyon 위의 Claire Monts (明山,) 읍내에서 소년시절을 보냈던 연유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Claire Monts 읍내는 16세기부터 새로 창립된 수도회로서 예수회의 초기 명강사 교수 신부들이 강의하는 학원이 있었을 만큼, 교육에 일찍 개명된 곳이어서, 명석한 자녀들 교육을 위하여, 그리로 이주하거나, 기숙사를 찾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예컨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이미 4백여년 전에 언급하며 서술하였음을, 교황 Pius XII 세가 격찬한, 저명한 성인 주교 학자인 Saint Francoise de Salles도 부유한 가정출신으로, 고향 Annesy에서 바로 Paris로 유학가지 않고, Claire Monts에서 고등과 교육을 마쳤었다.  
Msgr. Byon- 
<이하는 퍼온글.  hkjri의 블로그, 한국전쟁당시 프랑스대대장 랄프 몽클라르중령,작성일 2013.07.14 20:36작성자  이대성.->

France’s Impact on the Korean War

After the North Koreans invaded South Korea in June of 1950 an emergency session of the United Nations was convened to gather military support for the Republic of Korea. 16 countries from the United Nations offered military aid that fell under United States command. The total international force of all 16 countries combined only equaled one tenth of the US military’s contribution to the defense of Korea with many of the international soldiers being rear echelon types. So the actual amount of combat soldiers was much lower.
However, countries that did offer combat soldiers usually sent their best. England, Australia, New Zeland, and Canada all sent units that went on to fight heroically in great battles such as The Battle of Kapyong and The Battle of the Imjim. Sword wielding Turkish and Thai soldiers were also highly respected for their combat skills. However, out of all the international soldiers sent to fight in the Korean War, one battalion to me sticks out more than all the others. This is due partly to their combat record and also to the reputation and personality of their commander. That unit is the French Battalion de Coree under the command of the then Lieutenant Colonel Ralph Monclar.
The French Battalion consisted of 39 officers, 172 non-commissioned officers and more than 800 enlisted personnel, the battalion arrived at Pusan on November 30, 1950. During the war 3,421 French soldiers would fight in Korea.
One battalion of soldiers may seem like a small contribution from a country as large and wealthy as France, but you need to look at the historical context of those times. France was deeply involved in heavy combat in Indochine against communists insurgents there, then they had a insurgency in Algeria to combat, plus military commitments to secure their colonies in Africa. Obviously France was spread very thin and could only afford the one battalion. However, the one battalion they did send was an all volunteer battalion composed of some of their top soldiers led by France’s best commander Ralph Monclar.

Legendary French Foreign Legionaire Ralph Monclar

Now why would their best soldiers volunteer to go fight in Korea? First of all, many French soldiers were still embarrassed by the performance of the French military during World War II. This was an opportunity on an international stage to show that World War II was just a fluke and that the French were back. You had others that simply hated communists. Some fought simply for the glory, others were in it for the money since the battalion’s volunteers were payed quite well. Then you had some that volunteered because they had already been to the hot steamy jungles of Indochine and the cold winters of France and figured that Korea would be a nice year around temperate Mediterranean climate since the 38th parrallel runs through the Mediterranean Sea. How wrong those guys were.
The commander of the battalion, Raoul Charles Magrin-Vernerey, who in World War II shortened his name to Ralph Monclar to be more understandable to Allied forces, was actually a 3 star general before the war and voluntarily took a demotion to Lieutenant Colonel to lead the battalion. He was a veteran of World War I where he was wounded seven times and received eleven awards for valor. After World War I, he was left 90% disabled from his wounds. He was sent to Syria to heal and up and lead soldiers there. By 1924 he was fully recovered and was selected for the French Foreign Legion and led soldiers in Morrocco, the Middle East, and Vietnam. During World War II Monclar and 500 French soldiers joined the Free French forces in England. They went on and fought and defeated the Italian Axis forces in Eritrea. He was on the verge of retirement in 1950 when he volunteered to lead the French battalion in Korea.,,,. 

 ㅡ 몽 클라르  중령(본래의 계급은 3성의 육군 중장) 대대의  전적지 순례-

1951년 2월 13일~16일까지 있었던, 양평군 지평 전투에서, 프랑스 Monclar 중령 대대가 중공군 3개사단의 공격을 막아내고, 후퇴시키기 시작하게 만든 승전지.- 2016 년 12월 5일 지평전투 전적지 순례 <Msgr.Byon>
 
1951년 2월 13일~16일까지 있었던, 프랑스 Monclar 중령 대대가 중공군 3개사단의 공격을 막아내고,
후퇴시키기 시작하게 만든 승전지.<2016년 12월 5일 지평전투 전적지 순례-Msgr. Byon>

 
1951년 2월 13일~16일까지 있었던, 프랑스 Monclar 중령 대대가 중공군 3개사단의 공격을 막아내고,
후퇴시키기 시작하게 만든 승전지.<2016년 12월 5일 지평전투 전적지 순례-Msgr. Byon>

HEROES OF THE KOREAN WAR: LIEUTENANT COLONEL RALPH MONCLAR
+DECEMBER 21, 2006GIKOREA  22 COMMENTS

France’s Impact on the Korean War

After the North Koreans invaded South Korea in June of 1950 an emergency session of the United Nations was convened to gather military support for the Republic of Korea. 16 countries from the United Nations offered military aid that fell under United States command. The total international force of all 16 countries combined only equaled one tenth of the US military’s contribution to the defense of Korea with many of the international soldiers being rear echelon types. So the actual amount of combat soldiers was much lower.
However, countries that did offer combat soldiers usually sent their best. England, Australia, New Zeland, and Canada all sent units that went on to fight heroically in great battles such as The Battle of Kapyong and The Battle of the Imjim. Sword wielding Turkish and Thai soldiers were also highly respected for their combat skills. However, out of all the international soldiers sent to fight in the Korean War, one battalion to me sticks out more than all the others. This is due partly to their combat record and also to the reputation and personality of their commander. That unit is the French Battalion de Coree under the command of the then Lieutenant Colonel Ralph Monclar.
The French Battalion consisted of 39 officers, 172 non-commissioned officers and more than 800 enlisted personnel, the battalion arrived at Pusan on November 30, 1950. During the war 3,421 French soldiers would fight in Korea.

One battalion of soldiers may seem like a small contribution from a country as large and wealthy as France, but you need to look at the historical context of those times. France was deeply involved in heavy combat in Indochine against communists insurgents there, then they had a insurgency in Algeria to combat, plus military commitments to secure their colonies in Africa. Obviously France was spread very thin and could only afford the one battalion. However, the one battalion they did send was an all volunteer battalion composed of some of their top soldiers led by France’s best commander Ralph Monclar.

Legendary French Foreign Legionaire Ralph Monclar
Now why would their best soldiers volunteer to go fight in Korea? First of all, many French soldiers were still embarrassed by the performance of the French military during World War II. This was an opportunity on an international stage to show that World War II was just a fluke and that the French were back. You had others that simply hated communists. Some fought simply for the glory, others were in it for the money since the battalion’s volunteers were payed quite well. Then you had some that volunteered because they had already been to the hot steamy jungles of Indochine and the cold winters of France and figured that Korea would be a nice year around temperate Mediterranean climate since the 38th parrallel runs through the Mediterranean Sea. How wrong those guys were.

The commander of the battalion, Raoul Charles Magrin-Vernerey, who in World War II shortened his name to Ralph Monclar to be more understandable to Allied forces, was actually a 3 star general before the war and voluntarily took a demotion to Lieutenant Colonel to lead the battalion. He was a veteran of World War I where he was wounded seven times and received eleven awards for valor. After World War I, he was left 90% disabled from his wounds. He was sent to Syria to heal and up and lead soldiers there. By 1924 he was fully recovered and was selected for the French Foreign Legion and led soldiers in Morrocco, the Middle East, and Vietnam. During World War II Monclar and 500 French soldiers joined the Free French forces in England. They went on and fought and defeated the Italian Axis forces in Eritrea. He was on the verge of retirement in 1950 when he volunteered to lead the French battalion in Korea.

 

입력 : 2020.07.11 오후 6: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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