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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WIND BELL

성녀 베르나뎃다의 고통을 줄이던 코담배 쌈지와 성주간 고통의 신비 묵상

글 :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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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베르나뎃다의 고통을 줄이던 코담배 쌈지와 성주간 고통의 신비 묵상 

1858년 루르드 성지에서 무염시태의 성모 마리아 발현을 18회에 걸쳐 목격하며, 성모님과 말씀을 나누던 14세의 베르나뎃다 소녀는 성모님께서 가리켜 주시는 기적의 샘물로 많은 순례자들의 질병이 완쾌되는 기적이 나게 하였다. 의학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60 여명의 기적적 치유로 순례자들이 구름처럼 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막상 베르나뎃다 자신은, 성모님께서 그에게 미리 말씀하셨던 대로, 혹심한 고통을 받으며, 온 몸에 퍼진 관절염과 신경통 합병으로 고생하였다.  

빚쟁이한테 오두막집도 빼앗겨서, 가족들이 루르드  산골 임시의 간이 구치소나 방아간에 달린 헛간 방 같은 2칸 방에 살면서, 10여세부터 땔 나뭇가지를 주우러 다녔다. 몇 년 후 베르나뎃다가 , 허약한 몸으로 Gilda 수녀원에 들어가 수녀생활을 하면서는, 지원기와  수련기 때, 가난한 집 출신의 문맹수준의 무식하여, 실로 혹심한 단련을 받으며, 온 몸의 뼈마디 마디마다 혹심한 관절염이 퍼지고 악화되어,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하였으며, 이를 차마 보다 못한, 그 지역 산골의 가난한 수녀원 원장수녀는, 당시 별다른 치료도, 약도 별로 없어서, 베르나뎃다가 악성 관절염의 신경통으로 온 몸이 쑤시기 시작할 때면, 잠시 동안만이라도 고통을 조금씩 덜어주게 하기 위하여, 민간 진통제 요법용으로도 쓰던, 코담배라도 조금씩 코 입구 안쪽에 바르게 하였다.  

베르나뎃다 수녀는 빈도가 더욱 자주 짧아지는 그 혹독한 고통을 겪다가, 그 병으로 마침내 30 여세에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사후에도 시신이 생시처럼, 지금도 썩지 않고 있으며, 1933년에 와서 시성되었다. 성녀 베르나뎃다 기념관의 초라한 유물실에는 성녀가 지니고 다니던 작은 그 [코담배 쌈지]가 전시되어 있다.  

우리 구세주 천주 성자께서는 빵 다섯 개로 5천여 명을 먹이셨으나, 그렇다고 무상 급식용 공짜 빵 공장을 차리러 오신 분은 아니셨고, 소경이 눈을 뜨게 하시고, 나병환자도 깨끗이 고쳐주셨지만, 그렇다고, 구세주 우리 주님께서 무료 안과병원이나, 무료 피부병 치료 쎈타를 차리러 오신 분은 아니셨다. 우리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는데, 우리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벌을 우리를 대신하여 고통을 당하시고, 마침내는 십자가상에서 처형되시는 죽음으로, 주님은 사명을 완수하셨다.  

주님의  강론 청취 참가비도 받지 않고, 그나마 공짜로 기적의 빵까지 [거저 공짜로 먹게 해준] 동족들이, 선동꾼들을 따라 떼로 몰려와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하며, 고래고래 지르는 시위꾼들 함성의 위력(?)에 못이기는 척하고, 군중들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권력에 의해서 주님께서는 죽음을 당하셨다. !

결국, 진리와 정의는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 종종 우리 성직자들도 책임회피를 위하여, 신도들의 사목자가 아닌, 신도들 회합을 진행하는, 사회자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는지 ! ? 다수 군중들의 고함소리는 정파적 주장으로 종교적 진리를 거부하는 불의였기 때문이다. "Vox populi vox Dei est !"라는 말은, 常識이 남아있고, 良心이 살아 있는,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는 군중들의 수준이 전제된 상태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義理를 지키려고, 떼로 몰려 와서 道理를 저버리고, 私理를 얻고자 眞理를 공격하여도, 승리는 진리에게 있다는 것이 正義의 철칙이 아닌가 !? 공산주의 사상과 권위주의가 만연하기 시작하던 그 시절, 가난과 천대와 질병과 고통의 짧은 인생을 살고간, 성모 마리아의 소녀, 베르나뎃다의 손때묻은 꾀죄죄한 [코담배 쌈지]라도 되어보자 !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은 작은 고통이나 불편도 참기 힘들어 한다. 스페인 Mansera de Abajo의 봉쇄관상 생활을 하는 엄격 보수적인 수녀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아주 드넓은 허허벌판에 상수도가 없는 지역이라서, 수녀들이 지하 10m 내외의 물을 수동 펌프로 손으로 퍼 올려서 식수와 세탁수로 쓰며 살고 있기에, "이렇게 불편해서 어떻게 공동체가 수도생활을 하며 살 수 있읍니까?"하고 물으니, 그 원장수녀가 내게 하는 대답이, " 이러한 이정도의 불편도 없 어떻게 수도생활을 하면서 살 수 있읍니까?" 하였다. 성주간에 우리도 자처하지는 못할망정, 당하는 불편과 고통을 감지덕지하며, 감사하며 살아보자!

-Msgr. Byon

입력 : 2015.03.31 오전 4: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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