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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회 창립사

Church history in Korea

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유골 수습과 묘역 안치에 관한 진실

글 :  김학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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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진암성지에는 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성인의 아버지 정약종 아오스딩 순교자의 묘도, 고모부인 이승훈 베드로와, 큰어머니의 바로 아래 남동생 이벽 세례자 요한 순교자, 성인의 어머니 유조이 세실리아 성녀(父 柳恒命)의 외가쪽으로 연결되는 권철신, 권일신 등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들 5분의 묘를 모두 이장하여 모시고 있다 (달레 중 90 - 정하상의 친척으로 북경여행을 도운 권데레사와 조숙 베드로 동정부부; 달레 중 88 -정하상이 조동섬을 찾아 무산까지 가서 공부하게 된 이유도 바로 친척관계였기 때문이다). 정하상 성인의 삼촌 정약전 바오로의 묘도 천진암에 이장하여 모셔져 있고, 할아버지 정재원, 증조할아버지 정지해의 묘도, 큰어머니이면서 이벽성조의 누님이며 황사영의 장모가 되는 경주이씨의 묘도 충주 하담에서 이장하여 모시고 있어, 정하상 성인의 가족들 대부분의 묘가 천진암성지에 모셔져 있다. 그러므로 한국천주교회가 시작되고,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들의 정신이 그대로 살아 있고, 이분들의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 바로 천진암성지다.

 

2. 성 정하상 바오로의 어머니인 성녀 유조이 세실리아 쪽의 집안도 훌륭한 신앙의 계보를 갖고 있으니, 세실리아 성녀의 외가쪽 6촌 오라버니가 바로 조동섬 유스티노이다. 조동섬은 권일신과 함께, 초기박해로 이벽 세례자 요한이 1785년에 순교함으로써 움추려든 교회를 추스르기 위하여, 용문산 절에 들어가 일주일 동안 피정을 하면서,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연고로 정하상은 조동섬의 귀양지인 함경도 무산을 찾아 학문을 연마하였던 것이고, 이런 학문적 기초가 上宰相書라는 호교론을 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동정부부로 15년 이상을 산 조숙 베드로와 권천례 데레사도 조동섬 집안이기에, 친척인 정하상의 북경왕래를 도우며 열심히 보필을 하게 된 것이다.

 

3. 1981년 10월 18일(일)에, 여의도에서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행사가 있었다. 무서운 인내와 신앙의 열정으로 북경을 수차례 왕래하던, 정하상 성인의 노력으로 1831년 9월 9일에 조선교구가 설립되었던 것이다. 조선교구설립 후 8년, 기해박해로 1839년에 순교하신 정하상 성인은 마재 건너 팔당댐 옆에, 아버지 정약종 아오스딩 곁에 묻혀계셨다.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을 맞아, 수원교구와 천진암성지에서는 이분들의 무덤을 확인하였고, 이내 천진암성지 구내로 창립선조들과 함께 이장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천진암성지를 반대하는 교회 안팎의 훼방으로 이장을 하지 못하고 있던 중, 모 변호사의 별장 내에 있던 무덤이 훼손, 소각되는 변고가 10월 26일에 일어나고 말았다. 후에 이를 인지한 천진암성지 측에서 11월 9일에 흩어진 치아, 발가락뼈와 관조각 등을 수습하여, 천진암 성지로 옮겨, 조선교구 설립자 묘역에 1981. 12. 31.에 정중히 안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회내의 훼방꾼들은 성 정하상 바오로의 무덤을 그 후에도 한 번도 참배하러 오지 않았다. (월보천진암 부록, 1982. 1. 15. 참조)

입력 : 2013.11.26 오후 4: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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