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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회 창립사

Church history in Korea

오는 8월 5일 화요일은 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文度公 若望 丁若鏞 承旨 ) 기념일 ! 낮 12시 기념미사 봉헌 !

글 :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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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프란치스꼬 교황께서 한국에 오시어,
아시아 각국에서 모이는 청소년들을 만나십니다!
 
 
한국천주교회는 10대 후반, 20세 전후의 청소년들이 세웠으니,
1770년 경 15세로 천진암에 입산한 이벽 성조께서는 7년 후
1777년 경 시작한 교리강학을 점차 발전시켜,
1779년 경에는 저명한 학자 권철신도 참석하는 신앙수련회로 승화시켰으며,
당시 이벽 성조 23세, 이승훈 21세, 정약용 15세, 정약종 17세, 등.,,,!
앞으로 로마 교회는 20세 전후의 한국 천주교회 창립성조들을
세계 청소년들의 주보와 모범으로, 교과서로 선언하게 될 것입니다. !!!
 
1801년 참혹한 신유년 박해로 교회 창립선조들이 대부분 순교하거나 유배되고,
가산이 몰수된 후 교회 재건을 위하여서도 역시 10대 후반, 20세 전후의 자녀들이
창립선조들의 뒤를 이어 조선교구 설정 때까지 한국교회를 이끌어나갔으니,
16세 전후의 정하상 소년은 정약종 성현의 둘째 아들로서, 전국 박해의 난민촌에 숨은 교우들을 탐방하며, 백두산 너머 무산 땅까지 가서 조동섬 유스띠노(아버지 정약종 성현의 친구) 유배지까지 탐방하고, 20여세에 들어서면서, 조선교구 설정을 위하여 북경 교회를 왕래하였고,
15세의 김대건, 15세의 최양업, 14세의 최과출은 정하상 회장의 제자들로서, 사제가 되기 위하여 마카오 2만리 길을, 1836년 12월 6일부터 1837년 6월 6일까지 6개월 동안 걸어갔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사제성소가 끊이지 않고, 대신학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뿌리없는 나무와 가지가 어떻게 무성한 잎을 내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으랴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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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월 5일 화요일은 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文度公 若望 丁若鏞 承旨 ) 기념일입니다! 문도공의 모교와 다름없는 천진암 성지에서는 낮12시 기념미사를 올립니다.<강론이 있으며, 간소하게 다과를 함께 합니다.>
8월 5일은 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 기념일 (文度公 若望 丁若鏞 承旨 紀念日)입니다 !!!
금년 8월 5일 화요일은, 문도공의 탄생 25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요한 정약용 승지의 母校와 다름없는 천진암 성지에서는 예년과 같이 낮 12시에 미사와 강론이 있고, 미사 후, 간소한 다과회가 있읍니다.
어린시절부터(昔我童時遊) 이벽 성조를 사사(師事)하며, 약 10여년 이상(1776~1784) 修學하던 문도공 丁承旨의 母校, 천진암 성지에는, 문도공이 천진암 현장에 와서 지은 수많은 詩文 제목과 저작 연도를 알리는 紀念碑가 박물관 마당에 세워져 있습니다.
 
천진암 현장에서 지은 문도공의 여러 詩文은 최초 10세 이전의 어린 시절과 특히 少年으로 성장한 후 1776년 경부터 마지막 老年으로 1827년에 와서 3일간 머물던 때까지 , 모두 50 여년간에 걸쳐, 종종 천진암을 찾아와 머물며 현장에서 저작한 추억과 감회를 내용으로 하는, 90 여수, 7,000餘字에 이르는데, 처음부터 저 방대한 시문들 모두를 단 번에 비석에 옮겨 새기기는 어려우므로, 이번에는 시문 제목과 저작 연대와 일부 주요 내용만이 비문에 새겨졌지만, 이렇게라도 시작하면, 저 방대한 시문들 하나 하나 모두가 앞으로는 저작 현장인 천진암 성지에 詩碑로 남아서, 우리의 스승이 되고, 거울이 되며, 우리 겨레의 정신문화를 온 세계에 알리는 얼굴이 될 것입니다.
 
365일, 24시간, 항상 주야로 흘러나오는 天眞菴 氷泉水처럼, 또, 天眞山 메아리 처럼, 오늘의 우리와 내일의 후대들에게 순수하고 진솔하며 소박한 詩文碑가 건립된 것은, 화려한 각종 행사가 범람하고 있는 이 시대에 역사성을 띤 매우 의미있는 일입니다.
* 아래 詩文을 읽을 때, 漢文에서 童時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10세 이하를 뜻하며, 11세부터는 少年이라 하고, 장가를 들기 시작합니다. 정약용 승지는 15세에 결혼을 하였는데, 그것은 형들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좀 늦은 편입니다.
그렇게 보면, 문도공 정약용 승지는 1770년 경, 8세 전후부터 천진암에 자주 놀러 왔거나, 젊은 이벽 성조께서 가르치는 天學堂의 前身이 되는, 천진암의 산골書堂에서 공부하였음을 알 수 있으니, 이를 회고하며 추억하는 詩文이, 늙으막 65세 때(1827년) 옛날 동료 학우들과 1827년 늦봄, 천진암에 와서 3일을 머물며 지은, 天眞消搖集의 여러 대목에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文度公 若望 丁若鏞 承旨가 1827년 늦봄에 천진암 현장에 와서 지은 天眞消搖集 詩文들 중에서 몇 줄만 뽑아서, 현대인들이 알기 쉽게 의역(譯述)해봅니다, 같은 시기에 같은 심정으로 쓴 蔓川遺稿의 跋文에서도 한 줄을 옮겨 섞어서 음미해봅니다.
 
 
문도공은 1797년 丁巳年에 천진암을 다녀간 후 30년만에 丁亥年(1827년)에 친구들과 아들과 친구 아들들과 함께마지막으로 천진암을 찾아와, 절은 폐허가 되어, 바로 아래 마을 절막 伊蒲의 집에서 3일을 머물면서 天眞消搖集을 지었다.<이하 일부 발췌 의역>
 
 
천진암 오르는 바윗돌 사이로 난 이 오솔길은,<石徑細如線.>
내가 어린 아이 때 오르내리며 놀던 길이지 !<昔我童時遊.>
호걸스러운 선비들은 일찌기 여기서 講學하며 讀經하였었지!<豪士昔講讀.>
少時的 그 생활 하도 아련하여, 다시는 해볼 수 없으니 서글프고나!<前躅凄迷不可求.>
 
그 시절 참선하던 저 방에서 함께 기도하던 이벽, 이승훈, 옛 친구들 이미 모두 세상을 떠났으니, 이 세상 어디를 간들 그런 옛 벗들을 다시는 구해올 수 없네 !<禪房無處舊人求.>
 
저녁 죽 먹으라고 치던 북소리, 해질렼에 같이 놀던 옛 동무 생각나네!<粥鼓斜陽念舊游.>
천진암에 아주 와서 살고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我欲來此住.>
아무도 나에게 왔다가 돌아갈 방도와 머물 곳 마련해 줄 사람 보이지 않네.<無人示方便.>
이제 나역시 30여년만에 나그네가 되어 다시 와서 보니,<三十년來重到客.>
그때나 지금이나 아직도 나는 괴로운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조각 배 한척의 신세로다!
<猶然苦海一孤舟.>
 
 
-이하는 1830년 경에 문도공 정약용 승지가 쓴 蔓川遺稿 跋文에서 拔萃 意譯-
 
30여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三十餘星霜>
강산은 예전과 다름이 없고<江山依舊>
푸른 하늘에 힌 구름 지나며 떠도는 그림자도 변함이 없건만<靑空白雲不變影>
선배 성현들과 옛 친구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갔나 ?<先賢知舊何處去哉>
나 혼자만 아무데도 連接되지 못한 외톨이 신세가 되어 <不接木石之身勢>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거꾸러지고 쳐박히고 하는 동안<轉轉倒處中>
슬프도다 ! 모두가 불의에 세상을 떠났구료 ! <憶 不意移世>
 
,,,,, Msgr. Byon
 
입력 : 2014.07.24 오후 12: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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