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05월 03일 목 제22면 -
Korean reunification without freedom and pertent peace without 自由가 없는 統一과 正義가 없는 平和는 ?
사실, 自由가 없는 統一은 집단 감금(監禁)이고, 正義가 없는 平和는 단체 연금(軟禁)이다.!
justice ?! 사실, 自由가 없는 統一은 집단 감금(監禁)이고, 正義가 없는 平和는 단체 연금(軟禁)이다.!
글 : Msgr. Byon
Korean Reunification without freedom and pertinent peace without justice ?! 자유가 없는 통일이나 정의가 사라진 영구적 평화를 ? !
변기영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년 05월 02일 20:47 발행일 2018년 05월 03일 목요일 제22면-경기일보-
自由가 없는 統一과 正義가 없는 平和는 ?
自由가 없는 統一은 집단 감금(監禁)이고, 正義가 없는 平和는 단체 연금(軟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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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자유와 정의가 없는 평화나 통일만은?-
경기일보,05월 03일 목 제22면 - Korean reunification without freedom and pertent peace without justice ?!
글 : Msgr. Byon
변기영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년 05월 02일 20:47 발행일 2018년 05월 03일 목요일 제22면-경기일보-
우리는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국가나 조직체들과의 허구 많은 정치적 대화나 국제적 평화회담의 가치와 의미와 교훈을 되돌아볼 때, 대부분이 약속 불이행으로 무효화 결과를 지난 1세기 동안 비일비재하게 보아왔다. 남북 지도자들의 이번 판문점 회담 선언으로 많은 국민들의 마음이 들떠 있는 지금 온 국민은 냉엄하고 진솔하게 오늘의 우리 인류가 나아가는 길을 이탈하지 말아야 하겠다.
만일 북한이 남한처럼 자유와 정의와 진실이 살아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였다면, 지금 남한보다 훨씬 더 잘 살 것이며, 패전국 일본 수준을 넘는 경제발전을 쉽게 이룩하여, 대만이나 싱가포르와 어깨를 나란히 할 뿐 아니라, 1950년 10월에서야 정부수립을 선포한 오늘의 중국이 아직 약체를 면치 못하던 시절, 동명고강(東明故疆)의 동북 3성 회복, 관리도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마치, 승전국에 들어있는 남한이 패전국 일본이 자위대 3만여 명의 비무장 호기에 대마도 회복 관리를 소홀히 한 것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만시지탄이 있으나, 지금의 몽골처럼, 자유부재 사회제도를 신속히 탈피하는 철저한 탈공산주의화(脫共産主義化) 정책 실천만이 시급한 경제발전은 물론, 북한 현대화의 연착륙이 가능할 것이다.
북한이 지금이라도 인민들의 경제활동 자유를 보장한다면, 2~3년 안에 국민소득과 국가 경제 지수가 200%~300% 발전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을 것이며, 살벌한 사회 분위기도 사라지고, 훈훈한 인간 대동체(大洞)의 본 모습이 살아나, 남한과의 통일이나 세계와의 대화나 회담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서울 불바다니, 평양 잿더미니, 핵실험이니, 대륙 간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니, 북폭이니, 하는 무력 폭언의 홍수가 일시 겨우 멈춘 지금, 우리뿐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가 이번 판문점 회담 선언의 비핵화나 평화통일 거론을 불신하는 것은 당연하며, 의심을 못 버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니, 이 불신을 불식시켜야 하는 지금의 북한 지도자들의 고충과 노력에 우리는 이해와 동정의 협력까지 포기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1953년 3월 초, 소련 스탈린이 죽자, 소련의 16개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에는 민주화의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였지만, 프라하에서는 포성과 화염 속에서, 겨우 너더댓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아이들이, 부모님들의 손에 등이 떠밀려서, 울면서 서로서로 고사리 같은 어린 손들을 맞잡고 집을 나서고 있었다.
이 어린 아이들 앞가슴 옷자락에 붙인 헝겊 조각에 적힌 글들이 어렵게도 바깥세상, 로마에까지 전해지자, 자유 세계인들은 슬픔과 눈물을 금치 못하였다. 당시, 한국 시골에서 국민학교를 갓 졸업한 14세 전후의 가난한 우리들에게까지도 알려지던 그 헝겊 조각 통신이 전하는 눈물겨운 소식은 다음과 같았다.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들을 만나거든, 우선 눈물을 닦아주시고, 너무 울지 않도록 울음을 그치게 달래주십시오! 허기진 배를 채우게 먹을 것을 주십시오! 제발, 부탁합니다! 이 아이들의 부모는 지금 우리 국민들의 자유와 정의와 진리를 위해서 소련 공산당원들과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총에 맞아 피 흘리며 죽어가는 부모들이 싸움터에서 알리는 유일한 최후의 부탁입니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바람은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소련의 무자비한 바르샤바 조약 공산군 20여만 명에 의하여, 피바다를 이루며 끝을 맺었으나, 1978년 10월 폴란드 공산권 출신의 보이티야(Karol Wojtyła) 추기경이, ‘로마 교황 요한바오로 2세’로 즉위하면서, 폴란드를 시작으로 무신론 공산주의 소련이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전 유럽이 민주화의 물결로 경제번영의 길에 매진하고 있다.
1970년대 초, 월남과 월맹의 동남아 10년 전쟁 말기에, 거듭 반복되던 대화와 회담에 모두가 지쳐 있을 때, ‘파리 평화 협정’ 발표는 전 세계를 환영과 기쁨으로 열광케 하였었으나, 美蘇英中佛, 5개 강대국의 입회보증도 아무 소용이 없이, 월남은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나라가 되었다. 우리가 반드시 참고할 역사적 교훈을 주고 있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경기일보, 2018년 5월 3일(木) 자, [삶과 종교] 난, 게재 용 원고> 해설판 원고 추가 소개
自由가 없는 統一과 正義가 없는 平和는 ?
사실, 自由가 없는 統一은 집단 감금(監禁)이고, 正義가 없는 平和는 단체 연금(軟禁)이다.!
기름과 물은 같은 한 그릇에 쏟아 부어도 하나로 융합되지 않는다. 남북통일의 근본적인 장애물은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며 적대시하는 유물론 공산주의 사상이다. 우리는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국가나 조직체들과의 허구많은 정치적 대화나 국제적 평화회담의 가치와 의미와 교훈을 되살펴볼 때, 대부분이 약속 불이행으로 무효화 결과를 낸 것을, 지난 1세기 동안 비일비재하게 겪어왔다. 남북 지도자들의 이번 판문점 회담 선언으로 많은 국민들의 마음이 들떠있는 지금, 온 국민은 냉엄하고 진솔하게 오늘의 우리 인류가 나아가는 정상적인 길에서 이탈하지 말아야 하겠다.
만일 북한이 남한처럼 自由와 正義와 眞實이 얼마만큼이라도 살아있는 自由民主主義 사회였다면, 지금 남한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는 여건들이 적지 않으며, 특히, 패전국 일본 수준을 넘는 경제발전을 쉽게 이룩하여, 대만이나 싱가포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1950년 10월에서야 정부수립을 선포한 오늘의 中共이 아직 弱體를 면치 못하던 시절, 東明故疆의 동북 3성 회복, 관리도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이는 마치, 美國 덕택으로 勝戰國에 들어있는 남한이 패전국 일본의 비무장 자위대 3만 여명 뿐이었던 好機에, 승전국 대한민국이 대마도 회복 관리를 소홀히 한 것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만시지탄이 있으나, 지금의 몽고처럼, 북한은 自由不在社會 제도를 신속히 탈피하는 철저한 脫共産主義化 정책 실천만이 시급한 경제발전은 물론, 북한 현대화의 연착륙이 가능케 할 것이다.
북한이 지금이라도 인민들의 경제활동 자유를 완전보장한다면, 2,3년 안에, 국민소득과 국가경제 지수가 200%~300% 발전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을 것이며, 살벌한 사회 분위기도 사라지고, 훈훈한 人間 대동체(大洞体)의 본 모습이 살아나, 남한과의 통일이나, 세계와의 대화나 회담이 모두 결과가 풍성한 할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서울 불바다니, 평양 잿더미니, 핵실험이니,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니, 북폭이니, 하는 연일 장화하던 무력폭언의 홍수가 일시 겨우 멈춘 지금, 우리뿐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가 이번 판문점 회담 선언의 비핵화나 평화통일 거론을 얼른 믿으려 하지 않고, 불신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당연하며, 의심을 못 버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니, 이 불신을 불식시켜야 하는 지금의 북한 지도자들의 고충과 노력에 우리는 이해와 동정의 협력까지 포기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1953년 3월 초, 소련 스탈린이 죽자, 소련의 소수민족 16개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에는 민주화의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였지만, 프라하에서는 포성과 화염 속에서, 겨우 너더댓 살 밖에 안 되는 어린 아이들이, 전투현장으로 뛰어나가는 부모님들의 손에 등이 떠밀려서, 울면서 서로서로 고사리 같은 어린 손들을 맞잡고 집을 나서고 있었다.
이 어린 아이들 앞가슴 옷자락에 붙인 헝겊 조각에 적힌 글들이 어렵게도 바깥세상 로마에까지 기자들의 손에 전해지자, 자유 세계인들은 슬픔과 눈물을 금치 못하였다. 당시, 한국 시골에서 국민학교를 갓 졸업한 14세 전후의 가난한 우리들에게까지도 알려지던 그 어린이들 가슴에 달린, ‘헝겊 조각 통신문’이 전하는 눈물겨운 소식은 다음과 같았다.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들을 만나거든, 우선 눈물을 닦아주시고, 너무 울지 않도록 울음을 그치게 달래주십시오 ! 허기진 배를 채우게 먹을 것을 주십시오 ! 제발, 부탁합니다 ! 이 아이들의 부모는 지금 우리 국민들의 자유와 정의와 진리를 위해서 소련 공산당원들과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부모들이 싸움터에서 알리는 유일한 최후의 부탁입니다 !”
그러나 프라하의 봄바람은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소련의 무자비한 바르샤바 조약 공산군 20 여만 명에 의하여, 피바다를 이루며 끝을 맺었으나, 1978년 10월 폴란드 공산권 출신의 보이티야(Karol Wojtyła) 추기경이, [로마 교황 요한바오로 2세]로 즉위하면서, 폴란드를 시작으로 무신론 공산주의 소련이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전 유럽이 민주화의 물결로 경제번영의 길에 매진하고 있다.
교황 聖 요한바오로 2세는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에서 교회역사상 최초로, 103위 諡聖式을 집전하여 한국 순교복자 103위를 모두 聖人으로 선포하시고, 1984년 10월 14일에는 103위 한국순교성인 첫 축일미사를, 그 해에 한하여, 9월 20일 축일을, 10월 14일, 교황 성하의 교황 등극 기념일에 이동하여, 로마에서 한국의 모든 주교들과 함께 거행하고, 하루를 준비한 후, 바로 다음 날, 1984년 10월 16일, 그 옛날, 순교현장을 향하여 걸어나가던 103위 한국 순교성인들을 본받아, 죽음을 각오하고, 3번째 모국방문을 강행하였다.
바웬사를 비롯한 폴랜드의 自由勞組 위원들은 노조활동을 위하여, 후에 대통령 추대를 사양하던 순수하고 진솔한 노동운동의 신앙인들이었다. 이들은 교황의 가르침을 따라, 소련의 무신론 사회주의를 무너트리는데 신명을 다 바쳤다.
1970년대 초, 월남과 월맹의 동남아 10년 전쟁 말기에, 거듭 반복되던 대화와 회담에 모두가 지쳐 있을 때, ‘파리 평화 협정’ 발표는 전 세계를 환영과 기쁨으로 열광케 하였었으나, 이는 며칠 못 가서, 월남 전역에서, 포성이 일어났고, 美․蘇․英․中․佛, 5개 强大國들의 終戰 立會保證 署名도 아무 소용이 없이, 월남은 人類歷史에 Boat people 悲劇을 남기고,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나라가 되었다. 우리가 반드시 참고해야 할 역사적 교훈을 주고 있다. 2018. 4. 30. 天主敎會 몬시뇰 卞基榮/
PAPA FRANCESCO
Papa Francesco
santa marta
messa
Papa a S. Marta: non dialogare con il diavolo, è il grande bugiardo
Nella Messa a Casa Santa Marta, stamani il Papa si sofferma sul modo di agire del demonio che seduce e inganna, è sconfitto ma ancora pericoloso. Francesco spiega anche come lottare e vincere le sue tentazioni
Debora Donnini-Città del Vaticano
Non dobbiamo avvicinarci al diavolo, né dialogare con lui: è “uno sconfitto” ma pericoloso perché seduce e, come un cane rabbioso incatenato, morde se gli fai una carezza. E’ il monito di Papa Francesco nell’omelia della Messa mattutina a Casa Santa Marta. Tutta la sua riflessione ruota attorno alla figura del diavolo che non è morto, ma “è già stato condannato” come dice il Vangelo della Liturgia di oggi, tratto da Giovanni (Gv 16,5-11).
Attenzione alla seduzione del diavolo
“Possiamo dire che è moribondo”- spiega il Papa – ma è comunque “uno sconfitto”. Non è facile però convincercene perché “il diavolo è un seduttore”, “sa quali parole dirci”, e “a noi piace essere sedotti”, spiega Francesco:
E lui ha questa capacità; questa capacità di sedurre. Per questo è tanto difficile capire che è uno sconfitto, perché lui si presenta con grande potere, ti promette tante cose, ti porta dei regali – belli, ben incartati – “Oh, che bello!” – ma tu non sai cosa c’è dentro – “Ma, la carta fuori è bella”. Ci fa seduce con il pacchetto senza farci vedere cosa c’è dentro. Sa presentare alla nostra vanità, alla nostra curiosità, le sue proposte.
La sua luce è folgorante ma svanisce
I cacciatori, infatti, dicono di non avvicinarsi al coccodrillo che sta per morire perché con un colpo di coda può ancora uccidere. Così il diavolo che “è pericolosissimo”: si presenta con tutto il suo potere, “le sue proposte sono tutte bugie” “e noi, scemi, crediamo”, afferma Francesco. Il diavolo, infatti, “è il grande bugiardo, il padre della menzogna”. “Sa parlare bene”, “è capace di cantare per ingannare”: “è uno sconfitto ma si muove come vincitore”. La sua luce è folgorante “come il fuoco d’artificio” ma non dura, svanisce, mentre quella del Signore è “mite ma permanente”.
Pregare, vigilare e digiunare
Il diavolo - ribadisce Francesco – “ci seduce, sa toccare la nostra vanità, la curiosità e noi compriamo tutto”, cioè “cadiamo nella tentazione”. E’, dunque, “uno sconfitto pericoloso”. “Dobbiamo essere attenti al diavolo”, esorta quindi il Papa invitando, come dice Gesù, a vigilare, pregare e digiunare. Così si vince la tentazi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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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a: con il diavolo non si dialoga, perché lui ci vince, è più intelligente di noi 08/05/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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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a: con il diavolo non si dialoga, perché lui ci vince, è più intelligente di noi
Non avvicinarsi al diavolo, cane rabbioso incatenato
E’ poi fondamentale “non avvicinarci a lui” perché, come diceva un Padre della Chiesa, è come un cane “arrabbiato, “rabbioso, incatenato a cui però non si deve fare una carezza perché morde:
Se io so che spiritualmente se mi avvicino a quel pensiero, se mi avvicino a quella voglia, se io ci vado da quella parte o dall’altra, mi sto avvicinando al cane arrabbiato e incatenato. Per favore, non farlo. “Ho una ferita grossa ..” – “Chi te l’ha fatta?” – “Il cane” – “Ma era incatenato?” – “Eh, sì, io sono andato a dargli una carezza” – “Ma te la sei cercata”. È così: non avvicinarsi mai, perché è incatenato. Lasciamolo lì incatenato.
Non dialogare con il demonio
Infine, dobbiamo stare attenti a non dialogare con il diavolo come fece, invece, Eva: “si è creduta la grande teologa ed è caduta”. Gesù non lo fa: nel deserto, risponde con la Parola di Dio. Caccia i demoni, alcune volte gli chiede il nome ma non fa un dialogo con loro. L’esortazione del Papa è quindi, molto netta: “Con il diavolo non si dialoga, perché lui ci vince, è più intelligente di noi”.
Cercare rifugio nella Madre di Dio
Si traveste da angelo di luce, ma è “un angelo di ombra, un angelo di morte”:
Maria ci custodisce:
È un condannato, è uno sconfitto, è un incatenato che sta per morire, ma è capace di fare delle stragi. E noi dobbiamo pregare, fare penitenza, non avvicinarci, non dialogare con lui. E alla fine, andare dalla madre, come i bambini. Quando i bambini hanno paura, vanno dalla mamma: “Mamma, mamma… ho paura!”, quando fanno dei sogni … vanno dalla mamma. Andare dalla Madonna; lei ci custodisce. E i Padri della Chiesa, soprattutto i mistici russi, dicono: nel tempo dei turbamenti spirituali, rifugiarsi sotto il manto delle grande Madre di Dio. Andare dalla Madre. Che lei ci aiuti in questa lotta contro lo sconfitto, contro il cane incatenato per vincer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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