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 2018 / 5 / 31, [삶과 종교]난 게시용 원고 이해를 돕기 위한 한문 혼용 문>
국제외교나 남북관계도 正道 위에서 ! - 自由가 없는 사회와의 통일을 외치며, 正義가 죽은 세상과의 평화를 선전하는 소리는 正道로 들리지 않는다. 自由가 숨쉬지 않는 사회와의 통일은 민족의 집단 감금(監禁)이고, 正義가 살지 못하는 세상의 평화로 간다는 길은 국민들의 단체연금(軟禁)을 위한 自由不在 사회주의자들의 新作路일 따름이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국제외교나 남북관계도 正道 위에서 ! - 自由가 없는 사회와의 통일을 외치며, 正義가 죽은 세상과의 평화를 선전하는 소리는 正道로 들리지 않는다. 自由가 숨쉬지 않는 사회와의 통일은 민족의 집단 감금(監禁)이고, 正義가 살지 못하는 세상의 평화로 간다는 길은 국민들의 단체연금(軟禁)을 위한 自由不在 사회주의자들의 新作路일 따름이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삶과 종교] 국제외교와 남북관계도 正道 위에서! - 2018년 05월 30일 20:45-경기일보, 제22면
[삶과 종교] 국제외교와 남북관계도 正道 위에서!
세계 도처의 지진과 화산 폭발로 인류는 불안과 공포를 잊을 날이 없다. 북한핵은 차원 다른 위험을 전 인류에게 확대시키고 있다. 남북 당국자 대화나 회담이 통일의 희망도 키우지만, 일부 국민들 마음을 들뜨게도 하며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2년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 7.4 남북 공동성명 이후 종종 파도처럼 분단벽이 내는 파열음이다.
북한핵은 인류자멸의 핵대전으로 확대될 수도 없지 않으나, 남북통일이나 체제유지에 백해무익한 핵보유 주장은 오히려 더 큰 핵의 결집을 강요하는 전쟁의 위험만 부를 뿐이니, 구 소련 공산당 정권이 핵무기가 없어서 무너지지 않았고, 구 동서독에 핵무기가 있어서 통일이 되지도 않았다. 따라서 북핵문제 앞에서는 南北이나 與野나, 中日이나 美蘇 역시 어떤 논리로라도 다른 소리를 낼 수가 없으니 세계 인류의 공동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진보니 자주니 종북이니 보수니 하는 이름으로 찢어진 깃발들을 올리고 내리며, 특히 義理에 얽혀서 道理를 망각하고 國民 道義를 사장(死藏)시키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정계도 걸핏하면 창당이니 탈당이니 하는 분파로 국민을 실망시킨다. 진보든 보수든 中道든 그 과정에서 義理도 지켜야 하지만, 道理에 어긋나지는 말아야 한다.
공산주의 사상과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美中의 영향으로 격돌하는 현장, 한반도가 保守와 進步와 中道 같은 말로 위장되고 포장된 큰 마당처럼 망나니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정치계나 사법계, 특히 언론계나 종교계도 아니, 노동계와 기업계도 正道를 지키며 정도를 걸어야 국가사회가 바르게 되고 국제관계가 정당하게 된다.
“일찍이 대국 진나라 사람들은 늘 명분이나 논리로, 난세정화를 외쳤으나 덕조, 그대는 늘 상하 좌우 선후와 두루 상의하며 正道를 걸었는데도, 어찌 이렇듯 일찍 이승을 떠난단 말인가? 소리 없이 통곡하는 백성들과 上께서도 함께하시니, 하늘과 땅도 한쌍이 되어 속으로 눈물지며 한없이 울고 있네!” -박제가의 이벽 만사-
진보가 正道를 버리면 모험과 위험에 빠지고, 보수가 正道를 어기면 퇴보와 부패로 망국을 부른다. 양심과 상식이 알려주는 만인의 正道는 國民 良識이다. 애국심과 신앙심과 함께 국가와 민족과 가정의 생존바탕이 되는 힘이다. 국력이란 무력이나 경제력에 앞서, 正道를 걷는 국민들의 역량과 의식수준이 전제된 저력이다. 그 수위가 장개석 군대나 월남 공무원들 세계처럼 바닥까지 내려가면 나라도 망할 수밖에 없다.
흔히 中道는 타협과 거래의 산물로서 책임을 모면하려는 자들의 술수이며 지도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결코 아니다. 中道를 버리고, 正道의 외롭고 괴로운 길을 걷다가 생을 마친 우리 聖賢 義人들 중에 일찍이 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의 말년의 詩文을 보자. 1827년 늦봄, 65세의 노구를 이끌고, 어려서 형들과 10여 년 간이나 종종 찾아가 天學과 서양학문을 듣던 母校, 天眞菴을 최후로 방문하여, 자신이 걸어온 고달픈 일생을 회고하며 남긴 서글픈 추억의 시에서 “그때나 이때나 한평생 나는 항상 괴로운 바다에 외롭게 떠있는 조각 배 한척의 신세로다(猶然苦海一孤舟 - 정약용의 遊天眞菴記)”하고 있다.
힘들어도 다같이 正道를 걸어야 한다. 특히 自由가 없는 사회와의 통일을 외치며, 正義가 죽은 세상과의 평화를 선전하는 소리는 正道로 들리지 않는다. 自由가 숨쉬지 않는 사회와의 통일은 민족의 집단 감금(監禁)이고, 正義가 살지 못하는 세상의 평화로 간다는 길은 국민들의 단체연금(軟禁)을 위한 自由不在 사회주의자들의 新作路일 따름이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저작권자 ⓒ 경기일보 (http://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입력 : 2018.05.31 오전 1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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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18 / 5 / 31, [삶과 종교]난 게시용 원고 이해를 돕기 위한 한문 혼용 문>
국제외교나 남북관계도 正道 위에서 !
세계 도처의 지진과 화산 폭발로 인류는 불안과 공포를 잊을 날이 없다. 그런데 北韓核은 차원 다른 인위적인 인간들의 집단자살 위험을 전 인류에게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남북 당국자 대화나 회담이 통일의 희망도 키우지만, 일부 국민들 마음을 들뜨게도 하며,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2년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 7.4 남북 공동성명 이후 종종 파도처럼 分斷壁이 내는 破裂音이다.
북한핵은 인류자멸의 核大戰으로 확대될 수도 없지 않으나, 남북통일이나 체제유지에 백해무익한 核保有 주장은 오히려 더 큰 핵의 집결을 강요하여 전쟁의 위험만 부를 뿐이니, 舊 소련 공산당 정권이 핵무기가 없어서 무너진 것이 아니고, 舊 東西獨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통일이 되지도 않았다. 따라서 북핵문제 앞에서는 南北이나 與野나, 中日이나 美蘇역시 어떤 논리로라도 다른 소리를 낼 수가 없으니, 세계 인류의 공동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진보니, 자주니, 종북이니, 보수니, 하는 이름으로 찢어진 깃발들을 올리고 내리며, 특히, 義理에 얽혀서, 道理를 망각하고, 國民 道義를 사장(死藏)시키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政界도 걸핏하면, 창당이니, 탈당이니, 복당이니, 분당이니, 합당이니, 하는 분파로 국민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고 실망시킨다. 進步든, 保守든, 中道든, 그 과정에서, 義理도 지켜야 하지만, 道理에 어긋나지는 말아야 한다. 道理는 義理보다 더 중요하여 더 위에 있는 것으로, 道와 義를 지키며 正道를 걸어가는 온 인류 앞에서 개인이나 단체나 국제관계나, 특히 남북관계나 회담에 있어서도 正道는 더욱 엄수할 天命이며 鐵則이다.
공산주의 사상과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美․中의 영향으로 격돌하는 현장, 한반도가 [保守]와 [進步]와 [中道], 같은 낱말로 위장되고 포장된 큰 마당처럼, 망나니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정치계나, 사법계, 특히 언론계나, 종교계도, 아니, 노동계와 기업계도, 正道를 지키며, 正道를 걸어야 국가사회가 바르게 되고, 국제관계가 정당하게 된다.
“일찍이 大國으로 불리던 진나라 사람들은 늘 명분이나 논리로, 亂世淨化를 외쳤으나(진인상명리, 청담난궐세(晉人尙名理, 淸譚亂厥世), 덕조, 그대는 늘 상하 좌우 선후와 두루 상의하며 正道를 걸었는데도, 어찌 이렇듯 일찍 이승을 떠난단 말인가(덕조의육합,하상이실제,,,(德祖議六合, 何嘗離實際)? 소리 없이 통곡하는 백성들과 上께서도 함께하시니, 하늘과 땅도 한쌍이 되어 속으로 눈물지며 한없이 울고 있네(건곤암쌍체-乾坤暗雙涕)!”-초정 박제가 이덕조 벽 애도시(楚亭 朴齊家, 李德祖 檗 輓詞(哀悼詩)-
진보가 正道를 버리면, 모험과 위험에 빠지고, 보수가 正道를 어기면, 퇴보와 부패로 망국을 부른다. 양심과 상식이 알려주는 만인의 正道는 國民 良識이며, 애국심과 신앙심과 함께 국가와 민족과 가정의 생존바탕이 되는 힘이다. 國力이란 武力이나 경제력에 앞서, 正道를 걷는 국민들의 역량과 意識 수준이 전제된 底力이다. 그 수위가 장개석 군대나 월남 공무원들 세계처럼 바닥까지 내려가면 나라도 망할 수밖에 없다.
흔히 中道는 타협과 거래의 산물로서, 책임을 모면하려는 자들의 술수이며, 흔히 반대와 방해를 피하면서, 존경과 영광과 추앙과 인기를 탐하는 자들이 양편에서 던지는 돌을 피하려는 방편이므로, 信念과 意志가 굳세어야 하는 지도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결코 아니다.
中道를 버리고, 正道의 외롭고, 괴로운 길을 걷다가 생을 마친 우리 聖賢 義人들 중에 일찍이 文度公 若翰 丁若鏞 承旨가 末에 남긴 詩文을 보자. 1827년 늦봄, 65세의 老軀를 이끌고, 어려서 형들과 함께 10여 년 간이나 종종 찾아가 天學과 서양학문을 듣던 母校, 天眞菴을 최후로 방문하여, 자신이 걸어온 고달픈 일생을 회고하면서 읊은 추억의 서글픈 詩에서,“그때나 이때나 한평생 나는 항상 괴로운 바다에 외롭게 떠있는 조각 배 한척의 신세로다(猶然苦海一孤舟 - 정약용의 遊天眞菴記).”하고 있다.
힘들어도 다같이 正道를 걸어야 한다. 특히, 自由가 없는 사회와의 통일을 외치며, 正義가 죽은 세상과의 평화를 선전하는 소리는 正道로 들리지 않는다. 自由가 숨 쉬지 않는 사회와의 통일은 민족의 집단 監禁이고, 正義가 살지 못하는 세상의 평화로 간다는 길은 국민들의 단체 軟禁을 위한 自由不在 사회주의자들의 新作路일 따름이다.
- 천주교회 몬시뇰 卞基榮 -
입력 : 2018.05.31 오전 1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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