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非核化 運動

Denuclearization Movement

8월 15일, 聖母 마리아 昇天大祝日은 大韓民國 建國記念日 ! For denuclearization ! [서울, 불바다]는 [평양, 잿 터미]의 길인데 !

글 : Msgr. Byon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 스크랩
한반도를 무대로, 인류 문명사의 최대 위험 악재가 되는 핵무기 사용 전쟁 발발 먹구름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For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all the human beings, specially, the people of Korean penisula, we have to pray in preparing the Holy Assumption Feast of Our Lady this year ! Particularily, the Korean Catholic people's preparation prayers must be concenterated into the Denuclearization Movement now ! And, much honest and sincere thanksgiving to our Mother of God, Mother of the Church, Mother of the Christ, Mother of the faithfuls,and Mother of the poor Korean People, Holy Mary !!! -
서울을 불바다로 !? 평양은 잿터미로 ?! 폭탄으로 통일해서 무엇하나 !? -Writer : 천진암 Date : 2011-07-26 14:59 Hit. 1881
8월 15일, 천주교회의 성모승천대축일 민족 해방기념일이고,  

우리 대한의 조국 광복절이며,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건국기념일이다.

너무나 많은 국민들이 너무나 교만하고 배은망덕하여, 하느님께, 성모님께,일본을 항복시킨 미국과 목숨을 바쳐 일본과 싸우다가 전사한 수많은 미군들과 그 가족들에게 감사할 줄 모르고 있다. 반성하자 !

8월 15일은 천주교회의 聖母 마리아 昇天大祝日이었다,

지금 한반도를 무대로, 인류  문명사의 최대 위험 악재가 되는 핵무기 사용 전쟁 발발의 먹구름이 사라지지 않고 더욱 짙어지고 있다. 대화와 회담이 진솔하지 못하고, 허위조작이 더욱 심해질수록, 무서운 전란은 더욱더 임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말로 타일러서 듣지 않는 아이에게는 회초리 밖에 다른 약이 없다. 대화와 회담의 테이블이 상대방을 속이고 요술을 꾸며 보이는 꼼수와 재주의 놀이마당이나 가설극장의 무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For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all the human beings, specially, the people of Korean penisula, we have to pray in preparing the Holy Assumption Feast of Our Lady this year ! Particularily, the Korean Catholic people's preparation prayers must be concenterated into the Denuclearization Movement now !   And, much honest and sincere thanksgiving to our Mother of God, Mother of the Church, Mother of the Christ, Mother of the faithfuls,and Mother of the poor Korean People, Holy Mary, before the coming August of this year !!!

본문 이미지

      Nagasaki, after bombardment of atomic bomb by B-29 fighter-bomber, A.M. 11:00 hours of the 11th, August 1945! There was only 1 country, United States, that could use the atomic bombs 70 years ago, when the world war II was terminated by only 2 atomic bombs.

    <1945년 8월 9일 오전11시, 미 공군 B-29 폭격기가 일본 히로시마에 이어, 2번째로,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후에 항공촬영한 폐허의 나가사키 시가지 모습! 이 때 원자폭탄은 지상 500 m 상공에서 폭발케 하였다. 暴心地 지역은 2천도 이상의 고열과 시속 1천 Km의 火風으로 거대한 버섯 구름이 순식간에 일었고, 10만 여명이 순식간에 재터미와 불고기처럼 되었으며, 방사능 오염으로 도시 주변 마을의 모든 우물물, 도랑물, 개울물은 마실 수 없게 되었으나, 原子 火風에 온 몸이 火傷을 입어 불에 구어진 몸에 겨우 목숨만 붙어있는사람들은, "물 좀 줘 !"를 반복하며, 물 달라고, "미스 모떼 고이" 하며, 논물과 도랑물을 찾아,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기어가 아무 물이나 마셨으며, 모두 바로 죽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나가사키의 거리마다 공원마다 도로마다 종이로 평화의 동물인 두루미,학을 접어서 실에 꿰어 나무마다 무수히 걸어놓았고, 수많은 분수대를 매우 자주 거리마다 도로마다 마당마다 수없이 설치하였는데, 원폭 때 조상들이 불에 탄 몸으로 물을 찾던 원혼들의 목을 추기게 하기 위함이란다. 평화와 선조들을 생각하는 후대 시민들의 마음과 정성을 대하며 마음이 숙연해 졌다. 서울과 평양이 저렇게 되기 전에 기도하자!>.

    <나가사키 純心修녀會 理社長 수녀(한국의 총장수녀와 같은 용어)가 1984년 12월, 본부 수녀원에서, 우리에게(金南洙 主敎와 卞基榮 神父, 筆者), 저녁식사(스끼야끼) 대접을 하면서, 원폭 당일(8월 11일), 당시 수련수녀로서 나가사키에서 12 Km 떨어진 미쯔야마(삼봉산)에, 죽은 소나무가지 따러, 동료들 9명과 함께 벤또(도시락)를 가지고 나무하러 아침 일찍 가는 바람에 원폭투하시간에 나가사키 수련원에 없었기에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필자에게는 원자탄 투하 당일 생존자의 유일한 체험담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Msgr. Byon- 이제 오늘날 우리에게 남의 나라 옛날 이야기로만 들을 수 없는 현실이 임박해오고 있는 느낌을 부정할 수 없다.!?

**********************************************

서울을 불바다로 !? 평양은 잿터미로 ?!
폭탄으로 잿터미가 되어서 통일은 해서 무엇하나 !? 
 
삼천리 강산에 [새마을 운동]으로 건설한 문화를 [헌마을 운동]으로 재터미를 만드는 사상은 무엇인가 !!? 서울을 불바다로? 평양은 잿터미로? 폭탄으로는 상호자멸이지 통일이 아니며, 그런 통일해서 무엇하나 !? 정복이나 점령으로는 파괴나 합병이나 합방(合邦)이지, 통일이 아니다. 진정한 통일은 합리적윤리적 가치관의 일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서울을 불바다로 !? 그럼, 평양도 잿더미로 ?! [서울이 불바다]가 되면, [평양도 잿더미]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데! 미국만 믿고, 중국에도 기대보며,,,! 나름대로 이해와 협력과 인내로 남북한의 신뢰를 구축하려 했지만 ! 이는 서로가 어불성설(語不成說)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서, 마이동풍(馬耳東風)이고,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니, 하루라도 신앙으로 살면서 한마디 나라 위한 기도라도 바치기를 어찌 소홀할 수 있읍니까?!! <對面共話, 心隔一千山 - 明心寶鑑 !>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한테 속지 말고, 일본은 일어난다. 조선아 조심해라!" 이 말은 1945년 해방 후, 親中容共 사상이 있던 당시 申不出(?)이라는 만담가가 하던 소리로, 서울의 동대문과 남대문에 대자보까지 써붙였던 말로 전해지고 있읍니다. 1950년 6.25 사변 발발 불과 몇일 전까지, 요사이처럼 북한은 남북 평화협상을 계속 제기하였었는데, 당시 표현으로, 대구 10월 폭동과 여수순천 반란사건, 제주 4.3 폭동에 연이어, 1950년 들어오면서, 38선 도처에서는 북한 공산군의 크고 작은 기습이 그치지 않던 시절, 전쟁보다 회담을 더 중요시하며, 상대방의 말을 잘 믿는 미군 3만여명이 철수하고나서 불과 두달도 안되어, 6.25 사변이 일어났읍니다. 공산주의자들이 平和協定이나 終戰協定을 강력히 주장할 때는 반드시 그 반대로 알아들어야 한다. 즉, 宣戰布告나 開戰宣布를 위한 준비완료로 인식해야 한다.
 
남한은 미국만을 너무 믿었었고, 북한은 소련이 계속 함께 싸우며 도와주리라는 말에 속았었으며, 2차대전 후 극빈상태의 일본은  3년간의 한국전쟁 동안 주한미군을 위한 군수산업으로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였읍니다. 이제는 중국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읍니다. 그것은 中國大人들을 못믿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단체나 조직이나 조직원의 말이나 주장은 믿을 것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거짓말과 집단 인명살상을 죄악시하는 윤리의식이 전혀 없고, 오로지 선동과 투쟁 뿐이 생존양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지난 반세기 동안, 위대한 大韓民國을 貧村에서 이만큼 再建한, 건설의 훌륭한 [새마을 運動家들]을 하나 하나 모두, 없는 흠집이라도 만들어 내서라도, 묻어버리고 잊혀지게 하고자, 광난의 혁명으로 대도시 파괴 뿐인 [헌마을 運動人들]을, 심지어 貧者와 弱者로까지 僞裝시켜서 내세워, 각계 각층에 끼어들어, 철면피하게 발광하며 동분서주하게 하는 이 시대에, 민족 수치의 이 시대의 역사 현장과 시국을, 우리는 더 이상 언제까지 수수방관만 해야 한단말인가 ? ! 국가의 존망과 국민들의 생사가 일시에 갈리고, 유구한 역사민족 大韓民族의 자멸을 초래할 수도 있는 가공할 핵전쟁 대재앙의 먹구름 아래서, 우리는 통회하는 마음으로 성모님께 매달려야 하겠읍니다. 

이번에는 장난이나 연습만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적대적 국가들의 찬성을 받아 국방시설을 하는 나라가 어디 있으며, 군사시설을 세계 만민에게 공개하는 나라들도  있는지?! 미국과 중국과 북한과 소련과 일본은 우리나라의 동의와 찬성을 얻어, 무력을 개발, 증강하고 있는지?! 일부 언론인들은 언론자유의 이름으로 조국의 국방을 흔들어도 되는지? 무기를 잡고 있는 군부와 병사들은 국방을 파괴하고 무력화시키려는 보면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국방이 약하고, 국방없는 나라가 국가를 수호할 수 있는지!? 더욱이 국민들의 국가관과 국가정신이 없는 일부 사이비 언론이 우리 사회를 광란의 놀이터로 만들고 있는데도,,,! 보도의 자유는 그 결과에 대한 공익의무가 전제된 권리가 아닌가? 오늘의 현실이 기가 막힙니다!

이러한 시국에 신도들은 촛불 들고 모여서 교회의 천상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함께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천주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북한의 수소폭탄 개발 실험과 대륙간 유도탄 실험발사로, 미국의 최신 핵무기 탑재 항공기들과 군함들이 한반도로 집결하고 있는 현상이 연일 tv 화면을 장식하여, 전 세계가 놀라며 걱정하고 있읍니다. 몇해 전, [서울 불바다] 방송이 거듭되던 시절, 발표했던 내용을 간추려서 수정하여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서울이 불바다]가 되면, [평양도 잿더미]가 된다는데! 참으로 해서는 안 될 말들이 함부로 쉽게 연일 계속되고 있었읍니다 !
 
도대체 서울에는 누가 살고 있길래 ?! 어느 민족이 그렇게 많이 살고 있길래,! 걸핏하면 [서울 불바다化]를 거론하며, 실로 소름이 끼치도록 끔찍하게 목청을 돋구며 야단인가?! 천이백만이 넘는 서울 시민 중에 미운 외국인들이 서울에 몇 명이나 된다고 그러는지 ? 우리민족끼리 서로 대량학살을 하자는 것인지!?
 
일찍이 지난 1950년 6. 25.사변 때는, 소련과 중공이 미공군한테 제공권을 빼앗겨서 평양이 서울보다 몇 배 훨씬 더 잿더미가 되었었다는 역사를 남북은 모두 잊었는지? 불행히도 또 다시 남북전쟁이 난다면, 이 번에도, 현재도, 북한과 중국은 미공군의 제공권을 빼앗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희생을 지불하더라도, 북한과 중국은 미국과의 전쟁만은 피해야만 할 것입니다. 미국과 싸워서 이긴 나라가 없읍니다. 惡談이나 詛呪나 暴言은 言語暴力으로, 개인들 간에도 형사범죄인데 ! 더구나 국가들간에야,,,!
 
더욱이 사랑을 말하고 실천하려는 종교인들도 자기네 나라와 마을과 가정을 침략하는 자들이 타민족이든 동족이든간에, 적들의 총구 앞에 우리 모두가 비무장으로 나란히 서서 죽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지!? 그것은 종교적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어느나라나 아무리 동족이라도 강도와 절도는 처벌하며, 살인자들은 엄벌합니다.
 
[불바다]니. [잿더미]니, 하고 싸우며 난투극을 벌여도, 그래 봐야, 삼천리 강산을 강대국들의 [신무기 시험장]으로 만들 뿐이고, 강대국들의 초현대적 [신무기 대목장]이 열리는 [신무기 장마당]이 되게 하는 것뿐이 아닐까? 그래도, 무력에 의한 남북 점령통일은 마음먹은대로 그리 쉽지 않고,  이조차도 더욱 멀어지고, 또다시 동족상잔의 유혈사태 홍수가 그치고나면, [휴전선의 이동]으로 끝나는, [제2의 6.25 사변 再版]이 될 뿐일 텐데 !
 
핵무기 보유에 대한 북한의 고집은 남한과 일본과 대만 등의 핵무장을 강요하는 빌미를 주며, 북한동포들의 가난을 더욱 장기적으로 심화시켜, 북한을 극동의 제2 큐바처럼 만드는 길이 될 뿐이니, 사실 핵무기 보유는 권력과 체제유지나 통일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百害無益한 것입니다. 핵무기 보유 덕택으로 국가경제가 발전한 나라는 없읍니다! 

舊 소련 공산당 정권이 핵무기가 없어서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이태리를 비롯한 유롭의 여러작은 나라들이 핵무기가 없다고 망하지는 않고 있읍니다. 미국을 유지시키는 것도 군사력이나 경제력이나 특히 핵무기 보유 덕택은 아니고, 미국의 國民意識, 國民精神, 특히 自由와 正義와 眞理와 良心이 상식과 愛國心과 함께 아직은 어느 정도 그래도 살아있는 미국사회의 국민의식 수준과 합리적인, [국민정신 자세 紀綱덕택이라고 봅니다. 체제유지는 자유가 보장된 愛國心이 있는 자발적인 국민들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전 세계 인류는 自由와 正義와 眞理의 사회 안에서만 살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自由가 없는 곳에는 正義도 있을 수 없고, 眞實도 없으며, 진정한 종교도, 자유로운 신앙도 있을 수 없읍니다. 中東의 민주화 熱風은 사실상, 極東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東風입니다. 불행이도 아직도 잔존하는 無神論 共産主義 思想으로 인하여 북한도, 중국도, 이제는 現代化한 人類의 자유문화 차원에서 뒷북치는 100여년 전의 꼴찌 자리에 머물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미래사회는, 아니, 지금도, 세계 인류는 결코 피할 수 없는 [自由化 時代]로 들어가고 있읍니다. 종교와 신앙의 자유는 그 나라 사회 인권신장의 척도다!

우리 모두는 전쟁이나 유혈사태라도 일어나서 북한이 갑자기 망하는 통일을 원치 않고, 한시 바삐 북한사회가 빨리 달라지기를 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의 북한이 달라지기 전에는 항복이 아닌 통일노력은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무력이나 경제력 때문이 아니라 思想 때문입니다. 북한사회의 現代化는 경제적인 건설면 보다도, 精神的이며 思想的이며 意識的인 [自由化]차원에서 먼저 이루어져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북한사회가 전 세계에서 가장 뒤떨어진, 가장 부끄러운 20 여만명에 달한다는 탈북자 소식이나, 수준이하의 대부분 동포들의 비참한 가난과, 너무나 不自由스러운 억압사회로 머물러 있지 않도록, 북한 동포들도 自由民主主義로 自力, 自立, 自治 精神으로, 굳세고, 바르고, 용감하게 살아나가도록, 우리는 힘껏 正直하고 眞率하게, 또 용감하게 윤리적으로 도와야 할 것입니다. 남한의 일부 지성인들과 종교인들까지 잘못된 유물주의 고대사상에 물이 들어, 우리 신앙인들까지도 정직하지 못하고, 진솔하지 못하게 말해서는 않됩니다.

그리하여 북한사회도 近代化를 향한 개혁을 위하여, 무혈혁명으로 現代化를 위한 연착륙이 가능하도록, 마치 모든 분야에서, 이른 바, 소련의 고르바쵸푸가 외치던, “페테스트로이카(改革)”운동을 부르짖던 양심과 애국심을 본받아, 월남의 뒤늦은, 그러나 유일한 국가재건의 [도이모이(改革)] 운동을 본받아, 비록 꼴찌로라도, 우리 북한 지성인들도 한시바삐 개방과 개혁의 [
국민 자유의 길]로 첫 발을 내딛도록, 우리는 힘껏 바르고 참된 말을 거듭하여 지원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물질적인 면보다는 정신적으로, 특히, 윤리적으로 정직하고 진솔하게 말하며 후원해야 합니다.! 북한 동포들의 거주지 선택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학문의 자유,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선거의 자유 보장을 위하여, 남북한 지성인들은 모두가, [자유를 위한 순교자], [정의를 위한 용사], [진리의 선포자] 역활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시국에 성당마다 신도들이 촛불 들고 모여서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다면,,, !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남한의 정치인, 언론인, 교육가, 종교인, 법조인, 예술인, 등, 知性人들이 북한사회 현실에 대한 言行에 있어서, 보다 正直하고 眞率하게 말해야 합니다. 不當한 제도와 非人間的 참혹한 人權 現實에 대하여, 분명하고 용감하게 알려야만 합니다. 
We, all must be Martyrs of freedom,  Warriors of justice, and,  Speakers of truth ! 
 
우리 교우들은 북한 현실에 대하여 침묵할 의무가 없고, 침묵할 권리가 없음니다. 우리에게 침묵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 우리는 비겁한 하수인이거나, 침묵할 권리가  있다면, 우리도 잘못된 같은 길 위에서 함께 거닐고 있는 동료들이나 공범자들입니다. 침묵은 묵인이고, 동조이므로, 공범의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도 북한에는 천주교 교구장 주교의 사목지침을 따르는 진정한 성당이 하나도 없고, 사제도 없으며, 수녀도 없고, 성직자들의 거주나 입국이 불가능합니다. 54개소의 천주교 성당들과 5만여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있던 북한 지역이었읍니다.! 지금 소련과 중국에도 성당들이 있고, 신도들과 사제들이 있는데,,,! 종교적 신앙의 자유는 인권 신장의 척도입니다.

침묵은 바로 묵인이오, 동조며, 共犯이 될 수도 있으니, 천주교 신앙부재 북한의 참혹한 현실에 관하여는 철저한 벙어리가 되어버린 남한의 일부 知識人들이, 자유와 풍요가 세계 선진국 수준인 남한 사회에 관하여는 達辯의 억지 비판을 넘어, 반대와 방해를 일삼으며, 심지어, 위대한 선진화 경제대국,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증오하고, 敵對視하며, 國力을 瓦解시키고, 無力化시키는 일에까지 후안무치하게 나서며, 쌍지팡이를 짚고 난리를 치는, 일부 남한의 지성인들이 있는 것은 대단히 개탄스러운, 실로 너무나 正直하지 못한 처신으로, 良識(양심과 상식)의 함량미달이 아닐 수 없읍니다.

한마디로 북한 사회의 진실에 대하여 우리 知性人들의 비겁한 침묵으로 북한사회가 얼마나 개선되고 있으며,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얼마나 억제되고 있으며, 나아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 포기 가능성이 얼마나 증가되고 있으며, 전쟁이 어떻게 얼마나 예방될 수 있는지?  오히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발전 실험으로 강대국들의 신무기들이 집합하여 신무기 대목장 열리고 있지 않은지 !? 북한의 自由化와 民主化에 무관심한 우리의 침묵이 현실개선에 무슨 도움을 주고 있는지?  

또,  自由不在 사회가 지속되는 현실에서, 일부 종교인들과 지성인들까지 철저히 침묵하는 것이 무슨, 어떠한 결과를 내고 있는지, 깊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읍니다.  이러한 시국에 살고 있으면서, 기도하지 않고, 침묵하는 종교인들은 신앙을 포기한  진리의 종교인들이라고 할 수 없읍니다.!
 
이러한 시국에 성당마다 교우들이 촛불 들고 모여서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다면, 언제, 그 어떤 경우에, 기도해야 하겠읍니까 ?!  전쟁은 비참한 파괴의  [헌마을 운동] 입니다.우리 모두가 自由의 殉敎者, 正義의 勇士, 眞理의 宣言者, 信仰人으로 살다가 죽을 수 있기를 원하고 바라는 마음으로 날마다 정성껏 기도합시다! 

We are Martyrs for freedom,  Warriors of justice, and,  Speakers of truth  오늘의 이 위대한 大韓民國을 再建한, [새마을 運動家들]을 제거하려고, 지금은 [헌마을 運動人들]이 나타나서, 심지어 貧者와 弱者로까지 僞裝하고, 각계 각층에 끼어들어, 철면피하게 발광하며 동분서주하는 시대가 되었읍니다. 민족 수치의 역사 현장과 시국을, 우리는 더 이상 언제까지 수수방관만 해야 한단말인가 ? !!! 
 
이러한 시국에 성당마다 교우들이 촛불 들고 모여서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다면, 언제, 그 어떤 경우가 와야, 기도하겠다는 것입니까 ?! 우리 모두가 自由의 殉敎者, 正義의 勇士, 眞理의 宣言者로서, 진정한 信仰人들이 되어 살면서,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함께, 진노를 거두시도록, 겸손하고 진솔한 기도를  천주 성부님께 바치며 죽을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시다!
 
주님,우리나라를 보살펴 주시고, 우리겨레를 불쌍히 여기소서! 
Maria, Auxillium Christianorum,Ora pro nobis!  
 
<이번 주 풍경소리. No. 47.  2011-03-01.4:35, [서울이 불바다]가 되면,[평양도 잿더미]가 된다는데!/ 이번 주 풍경소리. No. 282, 2015. 8. 11. 국무총리를 대통령 전권특사로 임명, 9월 초, 중국의 항일승전기념일 행사에 참석케 함이 차라리,,,.!참고 Msgr.Byon. -               
입력 : 2016.02.12 오전 12:43:49

************************************************************************

천진암 성지에서는 겨레의 꽃 무궁화의 날, 천진암 성지의 8월은 겨레의 꽃, 무궁화 사랑의 달 !
 
<한국천주교회 발상지 천진암 성지에서 8월 15일(木) 낮 12시에 기념 경축미사 봉헌>
 
천주교회 2 천년 역사를 훑어보면, 天上에 계신 그리스도의 어머니시며, 使徒들의 어머니시고, 地上 敎會의 어머니시며, 信徒들의 어머니이신, 聖母 마리아의 紀念 祝日이나, 聖母 聖月, 5월에는 종종 神秘로운 恩寵의 단 비가 내렸었다. 특히, 8월 15일은 使徒들의 시대부터 聖母 마리아의 昇天을 기념하며 공경하던 가장 오래된 축일이었다. 끊임없는 戰亂과 凶年과 疾病과 迫害 같은 苦難의 渦中에서, 눈물로 부르짖는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천상에 계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지상의 신도들과 함께 天主 聖父께 간구하시어, 종종 人力으로는 거의 불가능하게 보이던 自由와 平和와 救援의 큰 은총이 내렸었다. 그래서, 전쟁이 그치고, 포로들이 석방되는 慶事가 성모님 축일이나 성모님 성월 5월에 종종 있어서, 우연이라고만 보기에는 번수가 많은 편이다.
 
제1차 세계대전도 1917년 8월 15일 聖母昇天 大祝日을 깃점으로 終戰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아주 끝났으며, 제2차 세계대전도 1945년 8월 15일 聖母昇天 大祝日에 日本이 항복하므로서, 인류 역사상 최대의 그 무서운 전란이 끝났다.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미국의 원자폭탄이 2개 투하되어 도시는 잿터미가 되었고, 20여만명 일본국민들이 죽었어도, 日本은 항복은 커녕, 오히려 毒을 뿜는 방송만 계속하였었다. 그 당시 조선 땅에서도 우리 어린이들까지도 부르게 하던 노래가 있었다. “갓따서 닛뽕, 단 지데 갓따서, 메이헤이 이마꼬소 돗찌우리다”(이겼다, 일본이, 또 이긴다 일본이, 이제서야 美, 英을 박살내어 진이겨 버린다!”. 후퇴와 항복과 패배라는 말 자체를 禁忌視하던 日本은 전 국민이 모두 죽어도 항복할 수 없는 체질의 軍隊의 나라, 軍國主義 帝國이었다. 

마치 지금의 북한처럼. 미국의 무력이나 중국의 군사력에 의존하여, 남북 어느 쪽에서든 평양이나 서울을 점령한다해도, 쌍방의 항복은 없으며, 종전이 되어도, 게릴라 전은 짧아도 10여년, 길면 30여년 갈 것이다. 6.25 사변 후, 남부군 이현상 부대의 지리산 공비토벌은 3년이 걸렸었다.  그러나 전 세계 10억을 넘는 천주교 신도들의 애절한 기도와 천상에 계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세계대전이 신앙자유 국가들의 승리로 끝난 것은 천상 성모마리아의 도우심이었다. 사실 당시의 표현으로 우리나라는 뜻밖의 해방을 맞았다.
 
1945년 9월 8일 성모 성탄축일에는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4선 대통령으로 유명한, Roosevelt 대통령의 전권특사, 美國 Spellman대주교(후에 추기경) 미군 하지 중장 (Lt. General Hodge)을 대동하고, 대한의 해방군으로서, 소련군보다 한달 늦게서야 인천에 상륙하여 입국하였으며, 남 한 내의 일본군 무장해제와 정권인수를 정식으로 공식 접수하고, 다음 날 9월 9일에는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스펠만 대주교와 노기남 주교 공동집전으로, 2차대전 종식과 倭政 終熄으로 한민족 해방과 미군의 개선 입성을 환영하는 미사를 봉헌하였다. 

점령군 사령관 하지 중장과 예하 미국 장성들이 명동대성당 마당에 모인 정계 최고위 저명인사들 앞에서 땅에 무뤂을 꿇고 노기남 주교의 손가락에 낀 주교 반지에 입을 맞추는 인사를 하였는데, 당시 한국인들을 크게 놀라게 하였다. 100 여년간을 두고, 처참하게 잡아 죽여도, 말한마디 못하고 맞아 죽던 천주교인한테, 점령군 사령관 장군들이 무뤂꿇어 한국인 성직자 손가락에 입을 맞추다니 ! 기가 막히고 어안이 벙벙한 사껀이었다. 이 이야기는 여러 해를 두고 서울 시민들 사이에 이야기 거리가 되었고, 적지 않은 지성인들이 천주교에 입교하기를 주저하지 않게 하여, 명동대성당에서는 매주 700 여명의 새 지성인 입교자들로 붐볐고, 천주교를 대표하는 언론인 사제 윤형중 신부님의 신입교우 영세예비자 교리강의는 온 장안에 차고 넘치는 복음의 희소식이었다.  

1785년 을사년 봄, 수표동 이벽 성조의 자택에서 이벽 성조께서 대승을 더두었던 이벽 성조와 당시 공조판서로 내정되어 있던 금대 이가환 대학자와 문의현감 복암 이기양 학자들과의 천주교와 유교에 관한 공개토론회 이후로, 윤형중 신부의 예비자 교리 강좌는 전무후무한 경사였다. 이 때 입교한 대표적인 지성인들 중에는 33인 독립선언문 초안자인 육당 최남선 선생, 등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 이유없이, 당시 교회는 윤형중 신부를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미리내 산골 주임으로 인사발령하는 우(愚)를 범하여, 명동대성당의 700 여명씩 모이는 지성인 대상으로 하던 예비자 교리는 불과 몇 주일도 안가서 100여명으로 줄다가, 몇달 안가서 흐지부지되었다.
 
1945년 10월 성모 마리아 로사리오 성월(16일?)에는 미국에 머물던 이승만 박사가 귀국하자마자 제일 먼저 노기남 주교를 먼저 예방하는 자리에서, 이승만 박사는 그의 환영식 답사에서, 미국서 뉴욕 대교구장 Spellman 대주교와 G. M. Carrol 안신부와 재미 윤을수 신부, 및 중국 南京의 우빈(于斌) 대주교로부터 그동안 한국독립을 위해 받은 크나큰 특별 지원에 대하여 아주 진솔하게 정중한 감사를 표하였다. 독립군들의 전투현장 외에, 당시 국제 무대에서 세계 4대 강국 지도자들, 즉,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 영국 처칠 수상, 중국 장개석 총통, 소련 스탈린 수상에게, 직접 대면하여 수시로 한국 독립을 주장하는 말을 할 수 있던 사람은 미국 뉴욕 대교구장이며 루스벨트 미 대통령 전권특사였던 스펠만 대주교와 중국의 장개석 총통 정치 고문이었던 南京 교구장 우삔 대주교 뿐이었다.
 
독일과 일본과 이태리를 패배시키고, 세계 2차대전을  승리로 끝맺은 것은 전투현장의 맼아더를 비롯한 名將들의 지휘 用兵術(technic) 뿐 아니라, 영국 쳐칠 수상과 미국 역사상 최고의 천재적 정치 지도자이며, 유일한 4선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 대통령 같은 위대한 정치가의 정책(politic)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루즈벨트 대통령은 U.N. 총회를 창설한 주역이었고, Spellman 대주교와는 매우 절친하여, 일심동체로 인류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이 시대는, 특히, 지금은,  Roosevelt 대통령과 Spellman 대주교 같은, 인류의 위대한 지도자들의 역활이 필요하고 아쉬운 싯점이다.  
 
1945년 12월 8일 성모무염시태 축일에는 노기남 주교가 명동대성당에서 상해에 있던 임시정부 귀국 환영식 거행하며, 임시정부 요인들, 金九 主席과 金奎植 박사, 등을 위하여 환영미사를 드렸고, 그동안 임시정부의 업적과 희생에 감사를 드렸다. 이 날 환영행사 중에, 金九 主席은 공개석상에서 답사를 통하여, 그동안 한국독립을 지원한 蔣介石 총통과, 그 정치 고문이었던 천주교 우빈 대주교의 협력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특히, 1943. 11. 27. Cairo 회담에서, 미국 Roosevelt 대통령과 종종 동행하면서까지 그의 해외 미국 대통령 전권특사로 활약하던 스펠만 대주교의 성원은 지대하였음을 밝혔다. 또한 1945. 7. 26. 포스담(Potsdam), 회담에까지 장총통과 함께 참석하여, 회의참석자들,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 장개석 등에게 회의 개최 직전을 전후하여, 약소민족의 자치권과 특히 대한민국의 독립을 역설해준, 천주교 Spellman 대주교지지와 성원에 깊히 감사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한많은 세월, 일본의 속국 국민으로 숨을 죽이고 숨어다니던 김구 주석과 임시정부 요인들에게는 얼마나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었으랴 ! 사실 한국독립을 세계 강대국 정상들에게 직접 거론한 유일한 경우였다. 1945년 12월 2일,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은 귀국하여, 여정을 풀자마자, 12월 8일, 성모 무염시태 대축일에 명동대성당에서, 상해 임시정부 각료들은 김구 주석과 함께 당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최고의  임시정부 귀국 환영식을 받은 것이었다.
 
이듬해, 즉, 1946년 10월 성모 마리아 로사리오 성월(9일?)에는, 미국 메리놀회 번(Byrne)신부가 초대 한국 교황대사로 임명되어 입국하자, 3일 후, 10월 12일에 명동대성당에서 노기남 주교가 환영미사를 드리고, 18일에는 美軍政廳과 천주교회가 古宮, 秘苑에서 환영 축하연을 공동개최하였다. 2년 후,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2년 전 일이었다. 로마 교황청이 전 세계에서 최초로 우리나라(Corea) 대한민국을 정부수립 선포 2년 전에 미리 독립국가로 사전 승인하고, 교황대사를 임명한 것이다. 따라서 교황대사로서 제출하는 신임장을 받을 국가 원수도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을 때였다.
 
사실 되돌아보면 우리나라는 100년 迫害(1785~1885)가 끝나는 것도 1886년 5월 1일, 聖母 聖月이 시작되면서였다. 5월 1일 韓.佛修好條約 체결로 인하여 신앙의 자유가 시작되었으니, 한국 교회는 성모 마리아와 프랑스 선교사들에게도 두고두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당시에는 꿈도 꿀 수 없던 천주교대성당 건립이 같은 해 성모 성월 초(1886년 5월 3일 ?)에 明禮坊 鐘峴 언덕에 착공되었다.
明洞에 427평의 大聖堂이 착공되던 그 당시 우리나라는 전국에 성직자들이 모두 프랑스인 선교사들만 주교 1명, 사제 10명이 전부였고, 한국인 사제는 1명도 없을 때였으며, 수녀들도 전국에 1명도 없었으며, 신학생은 글방에 다니던 소년들 6명뿐이었고, 전국 신도수는 1만 4천 500여명 뿐이고, 그 중에 서울 장안에는, 고작 3백여명 남짓한 가난한 신도들만이 있을 때, 신앙의 자유와 대성당 착공은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聖母 마리아께서 보살펴주시고 돌보아주시는 은덕이었다.
 
1945년 8월 15일 聖母昇天 大祝日, 당시 우리 어려서의 표현으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解放이 되었으나, 38선을 경계로 南北이 分斷되자, 北韓은 소련의 스탈린 無神論 共産主義 정권이 지원하는 共産黨 조직으로 출발하였으며, 南韓 각처에서는 社會主義 혁명을 위한 조직적인 民衆 武裝蜂起가 서울과 지방에서까지, 심지어 정부수립 이후에도, 그치지 않았다. 착하고 순수한 일가친척 농민들과 근면하고 정직한 동료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죽창과 낫이나 도끼를 들고, 아주 저속한 폭언과 폭력으로 대규모 방화와 폭동을 일으키는 일은 불가능하기에, 서울 용산역 폭동을 비롯하여, 여수, 대구, 순천, 제주, 등의 폭동이나 반란은 분명히 미리 교육받고 훈련된 조직체에 속한 요원들의 선전과 선동과 지휘에 의한 것일 수 밖에 없다고, 당시 대부분의 노인들은 생각하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드디어 1948년 聖母聖月, 5월 10일 U.N. 감시하에 南韓에서는 반만년 역사상 최초로 국민들의 자유 총 선거가 실시되어, 制憲 國會議員들을 선출하므로써, 제헌국회가 탄생하였다. 제헌국회의원들은 절대다수(98%)로 이승만 박사를 국회의장으로 선출하였고, 해방 후부터 유진오 박사를 비롯한 헌법학자들이 미리 준비해 오던 헌법 초안을 접수하고 손질하여, 오늘날의 우리나라 헌법 제정을 제헌국회가 마무리하게 되었다.
 
마침내 1948년 7월 16일, 갈멜산의 복되신 童貞女 聖 마리아 祝日에, 國號를 대한민국으로 하는 憲法을 확정하여, 다음 날, 즉, 미국 독립기념일이기도 한, 7월 17일에는 大韓民國 憲法 선포식을 거행하였다. 制憲節이다.! 이어서, 헌법에 따라, 제헌국회에서는 국회의장 이승만 박사를 절대다수(98%) 찬성으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헌법에 의한 政府 組織法을 가결하고, 계속하여 부통령과 12部, 4處의 장차관을 임명하였다. 황제의 나라 大韓帝國을 상해 임시정부의 우리 선조들이 大韓民國으로 국호를 개칭한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전승한 이승만 대통령 정부와 제헌국회의원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같은 해, 즉, 1948년 8월 15일 聖母昇天 大祝日에 우리나라는 정식으로 전 세계에 大韓民國 政府 樹立을 선포하였다. 위대한 우리나라 大韓民國 建國日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해 늦가을 파리에서 열린는 U.N. 총회에 요한 張勉 선생과 趙炳玉 박사, 金活蘭 女史, 毛允叔 女史, 4인을 대표로 파견하여 국제연합이 대한민국을 정식 국가로 승인하도록 요청하게 하고, 최초의 한국 대표 4인은 파리 Rue de Bac에 있는 파리외방선교회 본부 앞 길건너의 Lutetia 호텔 2층에 머물면서, 파리외방선교회 신부들의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후원으로 처녀외교 활동의 초년생들은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러나 국내 共産黨 조직에서는, 이를 극구 반대하였다. U.N.의 승인은 나중으로 미루고, 먼저 南北이 공산주의 사회로 하나가 된 후에 국제연합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마침내 1948년 12월 8일, 聖母 無染始胎 大祝日에 당시 파리 U.N. 총회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은 48대 6으로, U.N.은 대한민국을 정식 국가로 승인하기로 확정하였고, 발표식은 다음 날, 즉 12월 9일에 하였다. 그 당시에는 유엔 승인의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내다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었다. 그러나, 1년 정도 지난 후, 즉, 북한 共産軍의 기습 南侵이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에 38선 전역에서 일제히 시작되어, 3일만에 서울이 점령되고 계속하여 1주일 후 수원이 점령되고, 이어서 대전이 점령되어, 한달만에 대구와 부산만이 남는 전황으로, 대한민국의 운명이 風前燈火 같이 위태로울 때, 1년 전 U.N. 총회의 승인을 근거로 하여, 전 세계 60여개 국가가 대한민국을 지원하여, 20여개 나라는 현역 전투부대까지 파병하는데 있어서 명분과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성모님의 안배의 손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대한민국의 건국과정 마디 마디를 천주교 신앙인의 편에서 살펴볼 때, 성모 마리아의 축일에 베푸시는 은덕을 부정할 수가 없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와 우리 겨레를 위하여 성모 마리아 축일에 큰 은총의 선물을 주실 것만 같다. 특히 천진암 성지에서는 1995년부터 매월 첫토요일 저녁에 성모신심 미사와 묵주의 기도 15단을 바치는 촛불 기도회를 지금까지 185회가 넘도록 15년 이상 거행하여 오고 있다. 우리나라와 우리민족을 위하여, 각 가정과 직장을 위하여 봉헌하고 있는, 천진암 성지의 순수하고 거룩한 촛불기도회가 시작된 후 몇 년이 지나자, 촛불만을 흉내 내어, 어느새 촛불기도회가 아닌, 촛불 시위가 서울 중심가에서 종종 개최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매우 얺잖아 지는것이 사실이다. 민주화나 인권신장이라는 말이 인끼가 있으니까, 가장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인 조직체 요원들이 모두 너도나도 복장과 명찰을 바꾸어 달고 나와서, 사회 각처에 진출하여 자천 출연하지만, 몸둥이는 바꿀 수가 없는데도!!
 
한국천주교회는 최근 여러 교황님들의 모범을 본받아 성모 마리아 공경에 정성을 다하여야 하겠다. 더욱이,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문서로까지 천명해주신 바를 따라, 우리나라의 평화통일 기원 천진암대성당 건립에 관심과 정성을 바쳐야 하겠다. 금년에 세계 평화의 청동제 성모상이 천진암 성지 광장 한쪽에 세워졌다. 천년세월을 두고 우리나라와 우리겨례를 지킬 것이다. 서울과 예루살렘과 바티칸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세워졌다. 교우들은 관광지나 유원지 가는 일을 줄이고, 천진암 성지의 성모상 앞에 와서,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대한민국 건국기념일, 8월 15일은 성모 마리아 승천대축일이다, 이 날은 천진암 성지에서 겨레의 꽃 무궁화의 날로도 기념하며, 천진암 성지의 8월은 겨레의 꽃, 무궁화 사랑의 달 이기도 하다. 낮 12시에 미사가 봉헌된다.

한반도를 무대로, 인류  문명사의 최대 위험 악재가 되는 핵무기 사용 전쟁 발발의 먹구름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짙어지며 임박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For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all the human beings, specially, the people of Korean penisula, we have to pray in preparing the Holy Assumption Feast of Our Lady this year ! Particularily, the Korean Catholic people's preparation prayers must be concenterated into the Denuclearization Movement now !   And, much honest and sincere thanksgiving to our Mother of God, Mother of the Church, Mother of the Christ, Mother of the faithfuls,and Mother of the poor Korean People, Holy Mary, before the coming August of this year !!!. - Msgr. Byon
 
좀더 알고자 하는 분은 柳洪烈 박사  著, 한국천주교회사, 下권, <제111장, 민족의 해방과 교회 발전> 1962. 가톨릭출판사 발행, 및 CATHOLIC ENCYCLOPEDIA FOR SCHOOL & HOME, vol. 10.  1965, McGRAW-HILL BOOK COMPANY, New York, London, etc.,,,를 보시기 바랍니다. -

< Msgr. Byon>
입력 : 2013.08.10 오후 9:04:51

---------------------------------------------

强大國들의 核武器 擴散의 責任있는 大國들은 ?! 
 

전쟁 중 핵무기는 어느 편이 먼저 사용하든지간에, 반드시, 즉시, 몇 배로 받게 마련이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 때와는 지금 상황이 전혀 다르다. 특히, 북한이나 중국보다는 미국이나 서방 제국들이 더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산되므로, 결코 어느 편도 사용해서는 않되는 무기다.

앞으로 핵무기 보유국들은 국제법상 무역상의 많은 제재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핵폭탄을 사용하기 전에,경제폭탄  사용이 선행되도록, 이미 수차례 필자는 강조하였다.경제폭탄으로 많은 백성들이 가난으로 고생해야 하지만, 핵폭탄으로는 보다 많은 백성들이 순식간에 잿터미가 되는, 더욱 끔찍한 일이 아닌가!? 일부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을 앞세워서 핵무기 제조를  대화니, 평화니, 하는 감언이설로, 은근히 지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 제조와 보유에 중공과 소련이 대화라는 이름으로 한반도 비핵화의 노력을 방해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자국이 아닌 타국을 빌리거나 타국을 시켜 핵무기 제조를 지원하는 국가는 대국답지 못하므로, 불가피하게 훨씬 더 큰 손실을 받게 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나라들은 U.N. 대표 이사국 사퇴를 전 인류가 강요해야 하며, 그러한 나라의 지도자들은 조속히 권좌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 인류의 비핵화에는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동양과 서양이 따로 없다.

오늘의 인류가 비핵화에 실패하는 경우, 지구상의 인류는 스스로 재터미가 될 수 밖에 없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비핵화의 대명제 앞에서는 국가와 사상과 문명과 종교와 인종, 등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Msgr. Byon-


8월15일에는 온국민이 성모님께 감사해야 할텐데,,,.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는 온 국민이 성모님께 감사해야 할 텐데!!!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은 예수부활, 성령강림, 예수성탄 대축일과 함께, 천주교회 안에 사도 시대부터 내려온 20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가장 오래된 축일이다. 主後 100년경을 전후하여, 초대교회 시대에는 지금처럼 천주교신도들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에페소와 코린토, 테살로니카, 예루살렘, 등의 중앙아시아 지역의 교회에서만, 그리고, 주로 유태인 교포(diasphora) 신자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천주교 신자 단체를 중심으로 聖母昇天日을 기념하며, 중요한 기념 축일로 경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로마 교회를 창립한 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Maria Santissima in mezzo ai Santi Apostoli Pietro e Paolo, I fondatori della Chiesa di Roma(M. Garrucci)가 한 가운데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있는 초대교회의 조각상이나 금장식물에서 보듯이, 로마에서는 매우 일찍부터 성모신심이 뿌리를 내렸다.

그리하여 사도들과 그 제자들의 전교활동으로부터 직접적인 가르침과 영향을 받은, 지중해 연안 아프리카 지역과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의 남부 지역의 신자들도 중앙 아시아 지역의 여러 교회에서처럼, 대부분 매년 8월 15일에 성모승천 기념 경축예절을 거행하였다. 지나간 2천년 천주교회 역사를 보면, 전쟁의 종식이나 휴전이나 대규모 포로들의 석방이 [성모님 축일]에 이루어지는 특으니기도 하였다.近代史에서도 성모님께서는 우리겨례를 보살펴주신다는 사실을 읽어볼 수 있다.

그러나 지역교회의 사정에 따라, 또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마치 예수성탄 축일처럼, 用語와 날짜와 예절 형식이 조금씩 相異하였다. 그 후, 동로마 제국의 Mauritius 황제가 등극하면서, 主後 580년경에는, 동로마 제국의 모든 국경일 성격을 띤 大祝日들을 통일시키면서, 정리하여 확정할 때, 동방교회 지역 천주교회에 慣習化한 전통을 그대로 지키도록,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을 그대로 계속 거행하도록 확정, 선포하므로써 세계화하였다.

또한 主後 650년경을 전후하여서는 이탈리아 북부와 프랑스, 영국, 스페인 북서부, 등, 유롭 북서부 서방교회에까지, 성모께 대한 信心과 함께,[8월 15일 성모승천축일] 전례와 경축예절은 빠르게 전파되었다.

결국, 8월 15일의 성모승천 대축일의 역사는 사도시대부터 시작되어, 200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오늘의 천주교회를 성장시킨 뿌리요, 줄기다. 따라서, 主後 350년대 후반부터는, 특히 동방교회에서 이미 성모 마리아께 대한 여러가지 아래와 같은 기념일의 제정과 경축이 지역교회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를 두고 시작되어 거룩하게 만발하였다.

[9월 8일의 聖母 聖誕 祝日],
[11월 21일의 聖母 自獻 祝日],
[2월 2일의 聖母 取潔禮 祝日],
[8월 15일의 聖母 昇天 祝日],
[12월 8일의 聖母 無染始胎 祝日],
[10월 1일의 콘스탄티노플의 主保 聖母大祝日],
[1월 15일의 農事 主保 聖母 祝日],
[5월 15일의 밀 農事 主保 聖母 祝日],
[8월 15일의 포도 農事 主保 聖母 祝日],
[6월 15일의 최초 聖母 聖堂 祝聖 祝日],
[每月 21일의 聖母 恭敬日], 등이 지방에따라 크고 작은 행사로 거행되어 왔다.

에페소 공의회, 니케아 공의회, 콘스탄틴 공의회, 등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천주교회는 성모 마리아의 평생동정과 천주의 모친, 무염시태와 성모승천, 등에 대한 신앙을 천주교회의 敎義(dogma)로 선언하였다. 특히, 역대 교황님들은, 8월 15일 성모승천을, 예수부활, 성령강림, 예수성탄과 함께 천주교회의 4대축일로 확정하였는데, 사실 이것은, 후대 교회가 새로이 제정하였다기보다도, 先代 교회의 오랜 신심과 전통과 역사를 공인하고 계승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할 것이다.

일부 異端者들의 신학적인 異論도 없지는 않았으나, 교회는 주님의 福音宣布에 대한 信仰과 信心生活로 成長하는 것이다. 복음선포와 신앙생활은 신학이나 법규보다 훨씬 앞서는 것인데, 신앙을 보다 잘 설명하고, 지키며, 가꾸기 위하여, 훗날 출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천주교회의 정통신학은 성모신심을 수호하고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승천하신 성모님께서는, 천상에 계신 그리스도의 어머니시며, 지상에 있는 교회의 어머니시고, 그리스도신자들의 어머니시므로, 2천년 교회 역사에 종종 지상 교회에 발현하시어, 우리를 가르치시고, 위로하시고, 이끌어주셨으니, 그동안 천주교회가 교황의 이름으로 公認한, [聖母 마리아의 최근 發現]을 몇 가지만 추려서 소개한다.

1830년~1836년, 프랑스 Paris에서 Canterine Laboure 에게 발현하셨다.(奇蹟의 聖母)
1846년, 이태리 La Salellete에서 발현하셨다. (痛苦의 母親)
1858년, 프랑스 Lourdes에서 Bernarde Subirous에게 발현하셨다.(無染始胎의 聖母)
1879년, 아일랜드 Knock의 Madonna로 발현하셨다.(虛弱者의 聖母)
1917년, 폴투갈 Fatima에서 3명의 10세전후 어린이들에게 발현하셨다.(反共勝利의 聖母, 즉, 소련의 무신론 공산주의에서 회두)
1932년, 벨지움 Beauraing에서 5명 어린이들에게 발현하셨다. (祈禱하는 聖母)
1932년, 벨지움 Banneux에서 Maria Beco에게 발현하셨다.(貧者들의 어머니)

<참고 문헌 소개: “성모 마리아 學(MARIOLOGIA)”에 관한 저서와 기록들은 대단히 많은데, 그 중 최근에 편찬하여 발행된 아래 백과사전 내용이 가장 풍부한 역사문헌들을 열거하면서 잘 되었다고 보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ENCICLOPEDIA DEI SANTI - BBLIOTHECA SANCTORUM - CITTA NUOVA EDITRICE, 1996, ROMA. Vol. VIII. p. 814 ~ P.962>.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이르러, 1917년 폴투갈 Fatima에 發現하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10세 전후의 루시아, 히야친타, 프란치스코, 3명의 어린이들에게, 지금 이 큰 전쟁(제1차세계대전)이 빨리 끝나도록 함께 기도하자고 권하시며, 열심히 기도하면, 얼마 안가서 이 전쟁은 끝나겠지만, 사람들이 悔改하고, 천주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신자들도 열심히 기도하지 않으면, 지금 이 전쟁보다 더 무서운 큰 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시면서, 天主 聖父의 震怒하심을 면하도록, 함께 열심히 보속하며 기도하자고 권고하셨다. 지나간 2천년 천주교회 역사에, 참혹한 전쟁의 종식이나 휴전이나 대규모 포로들의 석방이 [성모님 축일]에 이루어졌음을 볼 때, 성모님께서 우리겨례를 위해주신다는 사실을 近代史에서 읽어볼 수 있다.

성모님의 轉求하심으로 제1차 세계대전은 1917년 후반기부터 바로 수그러들기 시작하여, 마침내 1918년에 끝났으나, 제2차 세계대전은 원자폭탄이 사용될 정도로, 인류역사상 前代未聞의 참혹한 전쟁이었다. 히틀러와 뭇소리니가 죽고, 독일이 재터미가 된 직후에도, 일본은 항복을 거부하면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발표하였으나,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일본이 항복하므로써, 수천만명이 죽어간 세계 제2차대전이 끝났고, 우리나라는 光復이 되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美.蘇 양 강대국 점령하에서 3년을 보냈다. U.N.의 결정에 따라, 남한에서는 U.N.감시하에 1948년 5월 10일 자유 총 선거가 실시되었다. 반만년 韓民族史에 최초로 순수 民意에 의한 선거로 制憲國會議員 198명이 선출되어,이승만 박사를 초대 제헌국회 의장으로 선출하고, 해방후 즉시 헌법학자 유진오 박사, 등이 착수한 헌법을 가결, 같은 해 7월 17일에는 헌법이 제정, 선포되었고, 새 허법에 의한, 정부조직법, 등을 제정하여,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박사를 선출,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와 3부 요인들은 온 국민과 함께 환호하며, [대한민국 건국]을 전 세계에 선포하였다.

그러나 신생 대한민국은 국제연합(U.N.)의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장면 박사와 조병옥박사, 김활란 여사(?)를, 그해 가을에 파리에서 열리는 U.N. 총회에 파견하여, 그해 12월8일,[성모무염시태 축일]에 국제연합(U.N.총회)에서 48대6으로 확정되었으나,실제 발표는 다음날(12월 9일)에 절대적인 지지와 승인이 발표되었다.

당시 우리나라 대표들은 외교의 황무지 상태에 있었고, 미국역시 세계대전 후, 오늘날처럼 아직 외교 조직이 자리잡히지 않던 시절이어서,우리나라 대표들은 누구한테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막막하였다.당시 70 여 개국과 대사관계를 가진 로마교황청과 주한교황대사관(아직 정식 대사는 없었고, 다만 교황 사절만이 연락업ㅂ무를 하던 시절)과,또 여러 나라와 국교를 가진 프랑스의,[ 파리외방전교회(Mission Etrange du Paris)] 신부님들의 도움으로, 각국 대표들의 지지를 얻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사실, U.N.의 대한민국 승인에 관한 뒷 이야기는, 다음에 파리의 Lutetia호텔 이야기를 할 때 다시 한번 알리고 싶다(1992년. 5월.3일 자, 조선일보, 문화면의,"파리-2, 파리외방전교회" 참조).성모신심에 열정적인 프랑스 출신의 신부님들과 당시 교황청을 움직여준 분은 바로 우리나라를 사랑하시는 천상의 성모님이셨다. 48대 6의 U.N.승인은,그후 1년 반만에(1950/6/25) 북한 공산군의 남침 때 많은 나라의 지원참전을 가능케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U.N.대한민국 승인 기념일(12월8일)에, 현재도 국내에서 활약하는,[파리 외방전교회]와 주한교황대사관에, 그 흔한,[감사장] 하나 정도는 표시할만하다.

2차 세계대전의 終熄과 韓民族의 解放, 大韓民國의 건국, 모두,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그리고 U.N.의 승인역시 12월 8일 [성모무염시태 축일]에 확정이 되었으니, 모두가 우리나라와 우리겨례를 사랑하시는 [천상에 계신 성모님]이 베푸시는 은덕임을 깨닫게 한다.

앞으로 남북통일을 위한 획기적인 전환점도,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이나, 혹은 다른 [성모축일]에 이루어질 것만 같은 심정이다
Msgr. Byon 
Writer : 천진암    Date : 2011-07-26 14:59   Hit. 1881
다음글 : 大洪水 중이지만 잠시 생각을 돌려 쉬며,,,

이전글 : 狂亂의 時代에, 發狂하는 人類의 狂氣가,,,.



***********************


Les armes nucléaires de grandes puissnces


-Chon-Jin-Am, Berceau de l'Eglise catholique en Corée... 1994. 25. May-

-Movement of Denuclearization of war-weapon-
 
De nos jours, en fabriquant et en possédant les armes nucléaires, les pays puissants menacent les petits pays faibles voire même l'humanité tout entière. Etre un pays puissant signifie déjà en soi avoir une arme la plus forte, et, sans mê̂me posséder d'arme nucléaire, n'avoir pas à craindre d'ê̂tre menacé. Le lion et le tigre n'ont d'autres armes que leur force et leur férocité. Le fait d'ê̂tre fauve levient l'arme la plus redoutable. Par contre, les petits animaux faibles ont besoin d'un système de protection. 

Par exemple, la mouffette sécrète et projette, comme moyen de défense, un liquide d'une odeur infecte. C'est une question inéluctable de survie. Ainsi, dans les petits pays faibles, l'idée de posséder des armes nucléaires pourrait provenir de leur état de nécessité. Surtout, dans u pays comme la Corée qui a enduré des guerres d'invasion au cours ded son histoire : du continent, elle a eu l'invasion chinoise (Byung-Ja-Ho-Ran en 1637), de l'océan, elle a eu l'invasion japonaise (Im-Jin-Oué-Ran en 1592). En toute franchise, en tant que descendants des survivants de telles guerres implacables et prévoyant la réunification de la Corée, il nous est difficile de repousser la tentation de posséder des armes nucléaires. Mais en réalité ce sont des pays puissants qui possèdent ces armes et, à leur profit en menaçant les petits pays.
 
Comme les enfants apprennent le mensonge et l'injure auprès des adultes, les pays faibles sont infectés d'une maladie contagieuse ; l'envie de posséder l'arme nucléaire. Ils tentent d'imiter leurs prédécesseurs. Les pays puissants devraient se rendre compte de tout cela et assumer leur responsabilité. Il est donc équitable que les petits pays puissent effectuer de façon régulière l'inspection des armes nucléaires en commençant d'abord dans les pays puissants. Mê̂me si de petites nations possèdent ces armes dangerouses, elles ne pourraient, en aucun cas, occuper des pays puissants. Comme on dit : "Rien n'est si contagieux que l'exemple", pour ce qui est de la suppression des armes nucléaires, les pays puissants devraient se montrer comme un exemple à suivre.
 
Or, en ce moment, les hommes politiques du monde, que ce soient ceux des grandes puissances ou ceux des pays faibles, nous semblent vénérant comme Dieu, en les considérant comme l'objet de notre dernier recours. Sans doute, les effets de l'arme atomique seraient effroyables. Mais elle n'est ni si puissante et ni si utile que nous le pensions. Autrement dit, elle ne peut prolonger le maintien d'un régime dictatorial ni porter secours aux pays pauvres ; elle n'est purement et simplement que neusible. 

Du plus, nous pourrions nous poser des questions sur l'efficacité. des armes nucléaires pour la défense nationale de chaque pays. Prenons l'exemple de l'ancien U.R.S.S. : s'est-elle écroulée parce qu'elle n'avait pas d'armes nucléaires? N'est elle pas dans la misère complète? Ou est-ce parce que ses armes nucléaires étaient moins nombreuses et moins puissantes que celles des Etats-Unis? Et en conséquence est-ce grâ̂ce àleurs armes atomiques que les américains ont accompli leur expansion économique, tout en sauvegardant un régime démocratique?
 
La Russie et la Chine vivraient largement mieux que maintenant, si elles ne s'étaient pas tant livrées à la recherche nucléaire. De mê̂me les Etats-Unis et d'autres puissances démocratiques auraient pu contribuer plus à la prospérité de l'humanité et vivraient encore mieux aujourd'hui, s'ils ne s'adonnaient pas tant à recherche nucléaire. En fait, la possession des armes nucléairs par des petits pays ne peut ê̂tre une menace pour les Etats-Unis. 

Et cela n'est pas une garantie de stabilité pour leur régime politique, quel qu'il soit. En revanche, cela va accélérer leur effondrement en aggravant le processus d'appauvrissement. En dépit de tout, les politiciens se sont voués entièrement aux armes nucléaires en y investissant de façon insensée, et en y mettant le meilleur d'eux-mêmes. Quel qu'il soit le pays qui se cramponne aux armes nucléaires ne peut que faire partie du groupe des fanatiques. Comment les consciences peuvent-elles rester silencieuses devant un tel abus?
 
Pour quelle raison la bonne conscience des puissances nuléaires se retranchent-elles derrière le mutisme? Les peuples, soi-disant de pays développés vivent en quelque sorte de la vente des armes qui massacrent les peuples pauvres et innocents. Du plus, ils concluent des mqrchés è des prix de rabais avec cet argent malhonnê̂te, gagné par le carnage des innocents. Comment ne peuvet-ils il savoir que le café qu'ils boivent est le sang de peuples faibles, et que le pain qu'ils mangent est la chair de ceuxci?
 
Les peuples des grandes puissances dirigéés par les fonds venant le la vente des armes, ne sont-ils pas de la mê̂me famille que celle des cambrioleur à main arméé? Dans ces pays-là n'existent-ils que les loups sous forme humaine? Que sont-ils donc devenus les intellectuels? Que font-ells les presses de ces pays? Nous pourrions nous demander si tour(politiciens forçant l'achat des armes dangereuses, marchants des armes, les intellectules gardant le silence et vivant sans souci) ont le mê̂me et sont, au fond, est pareils à des loups.

     Actuellement, la Corée court terriblement le danger de la guerre à cause des armes nucléaires. Au début, les nord coréeens afirmaient que leur recherche nucléaire serait purement destinée àl'usage industriel. Mais récemment; ils ont laissé entendre un autre son de cloche, en disant : "Nous pouvons transformer Séoul en une mer de feu" pour contrecarrer cette affirmation menaçante, sous le préteste d'empê̂cher une attaque éventuelle du Nord, les Etats-Unis annoncent partout la mise en place de missiles en Corée du Sud, comme si cette péninsule était l'un des camps d'entraî̂-nement de l'armée américaine. En l'occurrence, surprise, la Chine don't l'attitude redouble de vigilance à l'égard des américains, se demande si elle n'est pas la vraie cible de ceux-ci.

    De ce fait, nous avons l'impression que les puissances occidentales, prenant certaines parties de l'Asie qui font problème, tels que Hongkong, Taiwan; Macao et ainsi que la Corée du Nord comme tremplin de leurs…, amorcent leur "stratégie de trente ans", qui a pour but de diviser la Chine en plusieurs blocs, de sorte que le grand bouleversement de l'Asie approche rapidement d'un moment à l'autre. Parmi les américains, il existe des gens opposés aux armes nucléaires. De mê̂me parmi les japonais, il existe des anti-américais qui ne sont pas communistes. Ainsi, l'opposition au nucléaire est différente de l'anti-américanisme, et l'anti-americanisme ne correspond pas au pro-communisme. Or, pour quelle raison, la voix des presses garde-t-elle un silence pesant? Au moment où une mèche, don't la moindre flamme provoquerait un grand trouble en Asie, guette l'occasion de s'enflammer, pourquoi n'entendons nous que les échos lointains et faibles de la presse, qui touche nos oreilles comme des bourdonnements d'insectes mourants? Mê̂me si le pouvoir et l'idéologie changent d'un cô̂té à l'autre, que le peuple d'une nation n'est-il pas perpétuel et sa survie n'est-elle pas grandiose?

     A présent, nous sommes persuadés que la force capable de transformer la Russie en voie de la démocratisation et de l'humanisation, n'est pas dù aux armes nucléaires des américains ni à celles d'autres pays démocratiques. Le changement radical en Russie n'est pas fondé non plus sur la compétence diplomatique des grandes puissances occidentales, ni sur leur expansion économique. Plus precisément, les armes nucléaires n'ont joué aucun rô̂le dans la transformation de la Russie. En mê̂me temps, la puissance éconmique des pays développés de l'Occident n'a pas pu influencer l'ouverture de la Russie. En réalité, le déséquilibre des forces militaires et économiques ne peut que renforcer la situation d'inégalité et provoquer la guerre entre les pays opposés. 

Bref, ni l'argent ni l'epee  pas plus que le discours diplomatique  n'ont pu toucher  l'attitude fermée de la Russie. En se repentant, elle revient dans la bonne direction grâce aux prières des fidèles et à l'aide de la Sainte Mère. Dieu attendrit le coeur endurci des russes. La transformation de la Russie est pour notre humanité un livre de référence en provenance de Dieu. Par les compétitions sportives et l'utilisation d'armes dangereuses progressent la violence et la force militaire. Beaucoup d'intellectuels restent aveugles quant aux conséquences et à l'influence de ce genre de choses sur développement de la civilisation humaine. Il ne faudrait pas penser comme si la croissance économique était l'unique moyen de survie d'un Etat et mettre tout l'énergie au service du projet de développement éconmique. Il ne faudrait pas non plus dénaturer l'Evangile, en considérant l'Eglise comme une organisation fondée en vue de résoudre loutes sortes de problèmes sociaux. Tout le monde doit reprendre ses esprits. Les pays développés de l'Occident don't le système de sécurité sociale est arrivé au plus haut niveau s'éloignent de plus en plus de Dieu. Qu'est-ce que tout cela signifie?

     C'est un fait, derrière le repentir de la Russie, il y a les prières de nombreux fidèles du monde entier. Surtout suivant le conseil du Saint Père, chaque année, plus de six millions de fidèles catholique se rassemblent aux lieux saints comme Fatima, Lourdes et Banneux et prient la Vierge Marie pour le repentir des communistes. C'est précisément grâ̂ce à ces prières ferventes et persévérantes que Dieu a exaucé leurs voeux. La réunification de la Corée également ne serait réalisable d'abord que par la prière et la persévérance dans la prière.

     Les armes nucléaires du Nord (si elles existent), ne pourraient en aucun cas contribuer à la réunification de la Corée. Celles des Etats-Unis n'amèneraient pas notre peuple è s'unir de nouveau. Ni l'idéologie communiste de la Corée du Nord, ni la puissance économique de la Corée du Sud ne sont pas capable de réaliser notre rê̂ve : la réunification de notre pays. Que ce soit de notre propre gré ou de la volonté d'autrui, la réunification est encore loin, tant qu'on essaie de l'accomplir par la force militaire ou par le pouvoir de l'argent. Utilisant de tels moyens on pourrait peut-ê̂tre occuper ou annexer un pays, mais rien de plus. Qui ne pourrait distinguer l'apparence de réunification par annexion ou occupation d'avec la réunification, réalisée par la compréhension et l'affection intérieure? Nous y arriverons finalement à l'aide de la Sainte Mère, en priant avec amour dans la sérénité et dans la compréhension pour la réunification de notre peuple.

(Père Pierre Byon Ki-Young, à Chon-Jin-Am, Berceau de l'Eglise catholique en Corée... 1994. 25. May)

<1994 5 25, “이달의 천진암” 12호 3면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18년 8월 15일 성모승천축일을 앞두고, 모든 천주교 신자들은 천상에 계신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며,
지상에 있는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 한민족의 진솔한 회개와 인류의 비핵화를 위하여,
겸손한 특별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오늘날 강대국들은 핵무기 제조와 보유를 반성해야 한다.
  
2012년 서울의 핵 관련 세계 정상 회의 개최를 당하여 20년전  小考를 다시 뒤적여 본다 !  

-1994. 5.  25. 강론  초
-

 
   핵무기를 먼저 개발하고 제조하여 보유하고 있으면서약소국들과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강대국들이다.또 「강대국」이라는 사실 자체가 가장 「큰 무기」이기 때문에 핵무기가 없어도 아무런 위협을 받을 수 없는 것도 강대국들이다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는 「맹수」라는 그 자체가 하나의 무기이므로별도 무기가 불필요하나,스컹크 같은 연약한 동물들은 독한 방귀 같은 자신 보호무기가 필요하듯이사실상 핵무기 개발 제조 보유의 필요성은 약소국들에게나 있음직한 구상인데오늘날 핵무기란 강대국들이 먼저 만들어가지고 갖가지 목적으로 약소국들에게 겁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아이들은 어른들한테서 거짓말과 욕설을 배우듯이약소국들이 핵무기 보유병에 전염되어강대국 흉내를 내보려고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 따지고 보면 그 책임이 먼저 「강대국」들에게 적지 않다그러므로 핵무기 사찰은 강대국들이 먼저 약소국들한테 수시로 받아야 할 일이며또 만일약소국들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강대국들을 점령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핵무기 폐지는 강대국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할 일이다.
 
   특히 우리가 근세에 와서, 대륙 민족들로부터의 1637년 병자호란과 해양 민족들로부터의 1593년 임진왜란 등을 겪으며비참한 전란에서 살아남은 선조들의 후예인 우리로서는특히 통일한국을 내다보면서핵무기 보유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오늘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약소국이든 강대국이든 간에 제 정신을 잃은 각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은 핵무기를 최후로 의지하는 대상인 처럼 모시고 받들고 있다. 즉, 핵무기 신앙시대그러나 핵무기란 장기 독재국가들의 체제 유지나 빈곤한 국가들의 경제발전에 백해무익할 뿐이며각국의 자국 방어나 타국 침범에도 사실상 실용성이 없는 무기이다. 남북통일을 위해서도 분명히 무용지물이다.
 
   예를 들어소련이 핵무기가 없어서 와해되었으며아직도 빈곤에서 허덕이고 있는가?
소련의 핵무기가 미국의 핵무기보다 성능이 낮고 분량이 적어서 소련의 와해를 막지 못하였는가따라서 미국은 핵무기 덕택으로 현 체재를 유지하고 있으며경제발전을 이루었는가소련과 중공등이 핵개발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세계 인류 번영에 기여했을 것이며자국들도 더 잘 살게 되었을 것이다.
 
   사실상 약소국들의 핵무기 보유가 미국에 위협이 될 수 없는 동시에약소국들 자신의 체제 유지에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오히려 약소국 자신들의 조직 붕괴에 가속제가 되고빈곤심화의 촉진제가 될 뿐인데도전 세계의 정치가들은 인류자멸의 핵무기 개발제조 등에 엄청난 자금과 정성을 바치며, 「핵무기 신앙」에 빠져 있으니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간에 핵무기에 매달리는 나라는 광인집단이 아닐 수 없다.
 
   핵무기를 제조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의 국민들은 도대체 왜 입을 다물고 있는가가난하고무지하고 순진한 약소국 국민들을 집단 살해하는 무기들을 만들어 팔아먹고 사는소위 선진 강대국 국민들은, 자신들이 마시는 커피가 약소민족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무기를 팔아 벌어들인 돈으로 보다 싼 값에 사서 마실 수 있는 것이니,저들의 커피에는 약소민족들의 피가 섞여있고또 자신들이 값싸게 사먹고 있는 빵에는 약소민족들의 살덩이가 섞여 있다는 것을 왜 모르고 있는가?
 
   집단 살인무기를 제조 판매한 자금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강대국의 국민들은 살인 강도들의 가족들이 아닌가?무서운 집단 살인무기를 만들어 팔아먹는 나라에는 사람다운 사람들이 없고사람의 모습을 가진 늑대들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도대체 강대국의 언론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러한 나라의 종교 지도자들은 집단 살상 무기 대량생산과 무역거래에 관하여, 침묵할 의무가 있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핵무기 때문에 가공할 전쟁 위험으로 치닫고 있다핵무기 개발이나 제조와는 전혀 거리가 먼순수 산업발전용이라던 북한의 핵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큰 소리가 자연스레 나올 정도의 수준임을 드러냈고북한 핵을 막아야 한다는 불가피한 이유로, 우리는 우리나라를 미군의 부대 훈련장으로 쓰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구도 달갑게 여길 수 없는 미사일 배치 요청이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으니이는바로 중국대륙까지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냐고, 대륙 민족의 눈매를 달라지게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남북관계와 열강들과의 관계또 이념과 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상이한 체재
관계등으로 반핵적인 발언이나 주장에 대하여, 각기 전혀 다른 각도에서특히 남북과 열강들과의 이해관계 면에서 오해와 증오소외와 보복 등이 걱정스러워 사실상 속에 있는 말을 시원하게 털어놓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인들 중에도 핵무기를 반대하는 이들이 있고미국을 싫어하는 일본인들이 모두 공산주의자들이 아니므로반핵주의와 반미주의가 다르고반미주의와 용공주의가 다른데왜 아시아를 불바다로 만들 성냥개비가 한반도에서 춤을 추는 마당에무슨 독감에 걸렸길래 한국언론들의 목소리는 숨져가는 모기들의 울음소리같이 멀리 가냘프게 귀 밖에서만 울린 뿐인가국제적인 열강들의 세력은 언젠가 바뀌게 되고, 모든 나라 국민들의사상도 변하고 있지만민족들은 보다 영구적이며그 생존은 절대 선천적인 것이 아닌가?
 
   이제 소련의 민주화와 인도주의화한마디로 소련을 변화시킨 힘이 미국의 핵무기에 있는 것이 아니니소련의 회개와 개방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핵무기 덕택이 아니다. 또 미국을 위시한 서방 열강들의 외교역량 덕택도 아니고서방 선진국들의 경제발전 덕택도 아니다.
소련개방에 핵무기가 기여한 역할은 없었다. 또 동시에 소련의 개방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경제력때문에도 아니다무력이나 경제력의 격차나 불균형은 국가들간의 편파와 세력별 단결을 강화시키며나아가서는 국가들간의 전쟁을 야기시키기 쉬울 뿐이다.
 
   한마디로 (경제력)이나 칼(무력)이나 말(외교수완) 소련이 회개하고 개방되어, 인도주의 방향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로마 교황님의 권고를 따라, 전 세계 천주교 신도들의 기도와 성모님의 도우심 덕택이다.신자들의 기도와 성모님의 간청을 들으시는 천주께서 저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셨기 때문이다소련의 변화는 천주께서 현대 인류에게 읽어보라고 주시는 교과서이다. 천주께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체육경기와 무기 제조라는 인간들의 완력과 무력 향상이 오늘날 인류의 문화발전을 어떤 방향으로 가게 하고 있는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하여 너무나 많은 지성인들이 장님이 되어 있다마치 경제발전이 국가존립의 유일한 목적인양 생각하면서또 지금도 무력이라는 것이 아직도 각 국가와 인류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시대로 여기고 있으며그리하여 모든 나라가 경제발전 계획에만 광분하고 있고, U.N. 이라는 이름아래 국제회의는 장사꾼들의 노천시장처럼 되고 있을 뿐이 아닌가 한다.
 
   또한오늘날 대부분의 정치가들과 언론인들은 천주교회가 마치 사회의 경제 문제나 복지문제 해결을 위하여 설립된 자선단체 조직체인양은연 중 복음의 변질을 시도하며 강요하고 있는데사실상 이는 자신들의 업무를 남들에게 떠넘기는 직무유기이다정말 교회 내의 일부 신앙인들까지 교회가 사회의 가난을 해결하는 기관인양 오판하고 있다우리 모두가 좀 제정신을 차려야 하겠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다는 것이 물질적 지원에만 너무 집중되어 있다. 사회복지문제가 가장 최고수순으로 해결된 북 유롭이나 서방 선진국의 국민들이 천주공경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음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사실 소련이 회개하고 개방된 것은전 세계의 천주교신자들특히 매년 6백여만 명씩의 신도들이 로마 교황님의 권고를 따라파티마루르드반뇌 같은 여러 성지를 순례하면서,
무신론 공산주의, 유물론 사회주의 소련의 회개를 위하여소련 공산주의자들의 회심을 위해 성모님께 기도한 덕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이처럼 우리나라의 남북통일도 신자들의 기도가 선행되고 지속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남북한 동포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한국의 남북통일에 북한의 무기가 아무런 기여도 못할 것이며미국의 핵무기 덕택으로 우리겨레가 통일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또 무력으로 통일해보겠다고 전쟁을 일으켜도기껏해야 휴전선의 이동으로 끝나는 전란에 그칠 것이며엄청난 인명피해만 있을 것이다또 북한 공산주의 사상의힘이나남한과 자유세계의 경제력 덕택으로 통일되지도 않고또 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국민의식 수준과 가치관의 일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남의 손이건 자신의 손이건 간에손에 잡혀 있는 칼이나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즉 무력이나 금력으로는 통일되지 않고, 일시 점령되거나 합방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그러한 외형적 체제상의 합방이나 점령이라는 것은내면적이며 정신적인 사랑과 이해로 이루어지는 참 통일은 아니다진정한 참 통일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신도들은 우선 전 민족의식의 변화가치관의 발전적 변화를 위하여 힘쓰며 진심으로 기도해야 한다이해와 사랑으로 민족통일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 하늘이 무심할 수가 없다. 천상에 계신 우리 신앙의 선조들과 특히, 천상에 계신 그리스도의 어머니시며, 지상 교회의 어머니이시고, 신도들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마침내 한겨레 하나되는 평화통일의 결실을 맺게 할 수 있을 것이고다시는 분열하거나 서로를 죽이는 전쟁의 비극이 없게 할 수 있을 것이다Msgr. Byon


본문 이미지
Nagasaki, after bombardment of atomic bomb by B-29 fighter-bomber, A.M. 11:00 hours of the 11th, August 1945! There was only 1 country, United States, that could use the atomic bombs 70 years ago, when the world war II was terminated by only 2 atomic bombs.
Maria Auxillium Christianorum, ora pro nobis! - Msgr. Byon
 
We,
people of the Church
 have to pray
with Our Lady,
Holy Mary,
Mother of God,
Mother of Christ,
Mother of our Church,
Mother of all the faithfuls,
and,
Regina Mundi of all the human beings,
all together with the Saints in Heavenly Kingdom,
we should pray to our almighty God of mercifullness !
Our Movement of Denuclearization of war-weapon is Prayer Movement with our Lady  
for  all the human kind salvation ! 

Ubi Sancta Maria Mater Dei, ibi Jesus Christus, Filius Dei nobiscum est !!!
-Msgr. Peter Byon- 재 입력 : 2016.12.07 

------------------------------------------------------------------

무신론 공산주의 사상과 정신이 사라지지 않는 한,남북통일은 더욱더 어려워지고,세계 평화는 더욱더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세계 모든 인류가 허위와 불의가 통치하는 시대에서 벗어나,진실과 정의가 숨쉬는 자유로운 사회를 이룩하도록 순교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인류문명 파괴 원자 + 핵무기와 일본과 한국 특집 선발 기사*********************
                            
  • 어제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7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아인슈타인의 편지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에 유명한 평화주의자의 역할이 있었다는 사실은 핵무기의 본질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39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한 달 전 미국 프린스턴 대학 교수 엘버트 아인슈타인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헝가리 출신 물리학자 레오 스질라드였다. 아인슈타인처럼 나치를 피해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온 유대인 과학자였다. 그는 나중에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부인이 유대인으로서 무솔리니의 탄압을 받자 미국으로 피신)와 함께 흑연을 減速材(감속재)로 이용, 최초의 연쇄반응을 성공시켜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원자로를 만든 사람이다.
  •  
         스질라드는 친구인 아인슈타인에게, 나치 독일의 과학자들이 핵분열에 성공하였으며 연쇄반응 실험에 몰두하는 것 같다면서 가공할 新武器(신무기)를 만들 위험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발견한 질량-에너지 等式(등식)인 E = mc2(제곱)이 핵폭탄 개발의 원리가 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친구의 설명을 듣고는 곧 깨달았다. 핵분열과 연쇄반응이 핵폭탄 제조로 연결된다는 것을. 스질라드는 미국도 대응책을 세워야 하니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올리자고 했다. 초안은 스질라드가 쓰고, 아인슈탄인은 교정을 보고 서명하였다. 이 편지는 아인슈타인-스질라드 편지로 알려져 있다.
  •  
         문제는 어떻게 편지를 전달하느냐였다. 스질라드는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 국민적 영웅이 된 찰스 린드버그의 도움을 받으려 하였으나, 그가 고립주의자이고, 親나치 인물임을 알고는 포기하였다. 이 편지는 결국 알렉산더 삭스라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친구를 통하여 전달되었다.
      
       맨해튼 계획
      
       1939년 10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 직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 명의의 편지를 받은 루즈벨트는 군사문제 고문인 와트슨에게 이를 건네면서 "행동이 필요해"라고 했다. 과학자들로 急造(급조)된 위원회는 대통령에게 대응책을 건의, 육군이 관할하는 핵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계획'이 시작되었다. 뉴멕시코주 로스알라모스의 연구소를 중심으로 전개된 맨해튼 계획엔 한때 13만 명이 종사하였고, 20억 달러(요사이 가치로는 230억 달러)가 들어갔다. 90%가 原子爐(원자로) 등 시설을 짓는 데, 10%가 폭탄 제조, 설계 등에 쓰였다.
  •  
         아인슈타인은 당초의 핵개발 계획이 느리게 진전되자 1940년 3월 다시 루즈벨트에게 편지를 썼다. '베를린에선 우라늄 프로젝트가 급진전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신속한 대응을 촉구하였다. 대통령은 긴급 대책 회의를 소집하고, 아인슈타인도 참여시키도록 지시하였으나 그는 감기에 걸렸다면서 자리를 피했다.
  •  
         1945년 3월이 되자 종말이 가까워진 독일이 핵폭탄을 개발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미국의 핵개발에 핵심적 역할을 한 스질라드는 원자폭탄의 파괴력을 알고 있었으므로 사용을 중단시키려고 했다. 그는 다시 아인슈타인을 찾아가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달라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스질라드와 과학자들을 만나 줄 것을 건의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대통령은 전달된 편지를 읽지 않았다. 루즈벨트가 4월12일에 죽은 뒤 이 편지가 집무실에서 발견되어 트루먼 후임 대통령에게 전해졌다. 그는 편지를 번스 국무장관에게 주었고 번스는 스질라드를 만났으나 건의를 묵살했다.
      
       原爆 사용 반대 건의
      
       스질라드는 독일이 망한 후 핵폭탄이 일본에 투하될 것임이 확실해지자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70명의 과학자들로부터 서명을 받아 1945년 7월17일에 트루먼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냈다.
  •  
         이 탄원서에서 스질라드는 '우리가 개발한 원자폭탄은 첫 단계에 불과하고 앞으로 이를 발전시킬 경우 거의 무한한 파괴력을 갖게 될 것'이라면서 사용하기 전에 먼저 일본에 최후통첩을 할 것을 건의하였다. 즉 미국이 일본에 요구하는 조건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뒤 일본이 이를 거부하면 그 이후 신중하게 판단, 사용을 검토해달라고 하였다.
  •  
         이 탄원서는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원자폭탄을 쓰지 않고 재래식 무기만 가지고 일본에 상륙전을 펼 경우 미군 피해는 1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미국 정책 결정자들은, 전쟁이 끝난 뒤 원자폭탄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사용하지 않아 엄청난 人命 피해가 났다는 비난이 쏟아질 경우, 정치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맨해튼 계획을 지휘하던 글로브 장군은 스질라드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고, 서명자 거의 전원을 해고하였다.
  •  
         아인슈타인은 죽기 전에 핵폭탄 제조 요청 편지를 쓴 걸 후회하면서도 독일의 핵개발 정보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려 했다. 아인슈타인 자신은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FBI가, 그의 평화주의적 성향 때문에 보안에 위험을 주는 인물이란 판정을 하였던 것이다.
      
       나가사키의 不運
      
       헨리 루이스 스팀슨은 2차세계대전 때 미국 전쟁성 장관이었다. 그는 공화당원이었으나 민주당인 루즈벨트와 트루먼 정부하에서 요직을 맡았다. 國益만 생각하는 불편부당한 자세 덕분이었다. 1945년에 그가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할 때 나이는 78세였다. 미국 지도부 인사들중 最年長者(최연장자)였고, 公職경력이 화려했다. 이런 권위로 해서 대통령도 그를 존중했다. 1893년에 그는 마벨 웰링턴 화이트와 결혼했다. 신혼여행을 일본 교토로 갔다. 1000년 古都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일본인들의 정직과 예절에 반했다.
  •  
         1945년 미국 지도부는 개발에 성공한 원자폭탄을 투하할 후보지를 논의하고 있었다. 1차 후보지로 추천된 곳은 히로시마, 교토, 니가타, 고쿠라였다. 이들 도시는 그때까지 폭격을 당하지 않았으며 軍 시설이 있었다. 스팀슨은 교토를 제외시켰다. 신혼여행 때의 좋은 인상도 한 이유였다. 일본의 정신이 담긴 이 도시를 파괴하면 民心이 흉흉해져 戰後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였다. 원폭 투하지 선정위원회는 제외된 교토 대신에 나가사키를 집어넣었다.
       1945년 8월6일 새벽 사이판 옆에 있는 티니안섬을 출발한 미군의 B-29 폭격기는 오전 8시15분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했다. 우라늄彈이었는데 '리틀 보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570m 상공에서 폭탄이 터졌다. 7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후유증으로 더 많이 죽었다.
  •  
         8월9일 새벽, 소련이 對日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를 침공하였다. 이날 오전 티니안을 이륙한 미군 B-29는 요코하마 상공에서 호위 전투기와 합류한 뒤 목표지인 北 규슈 고쿠라 상공에 도착했다. 고쿠라의 하늘은 안개와 연기에 덮여 있었다. B-29는 몇 번 상공을 선회했으나 투하 목표물을 肉眼으로 볼 수가 없었다.
  •  
         機長은 B-29를 대체 목표지인 나가사키로 돌렸다. 여기도 구름에 덮여 있었다. 기름이 줄어드는 B-29가 마지막으로 상공을 선회하는데 구름이 갈라지면서 아래로 미쓰비시 중공업이 보였다. 거기를 향해서 '팻맨'이란 별명을 가진 플루토늄탄을 투하했다. 약500m 상공에서 터졌다. 오전 11시가 지난 시점이었다. 이 플루토늄탄은 폭발력이 TNT 기준으로 2만t이었다. 히로시마 原爆보다 40% 더 강한 것이었으나 나가사키에는 산이 많아 피해는 덜했다.
  •  
         히로시마와 마찬가지로 나가사키엔 한국인들도 많았다. 미국인 포로 수용소도 있었다. 이 수용소에 있던 미군포로 수백 명도 죽었다. 만약 미국이 원자폭탄을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군은 1945년 말에 일본에 상륙할 예정이었고, 소련군은 8월9일에 만주를 침공하기 시작하였으니, 한반도 전체가 소련군에 점령되어 한국은 공산화되었을가능성이 높다. 原爆 투하는 일본의 早期 항복을 불러 38선 以南을 자유지역으로 확보하도록 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 2018-08-07, 09:57 ] 趙甲濟 닷컴에서 - 조회수 : 795
***************************************

**********2018년 8월 15일,******


천주교 성모승천대축일에, 한민족 해방 기념일에, 조국 대한의 광복절에,  대한민국 건국절에,

여름내내 100년만에 처음 닦친 매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오후 4시 전후의,

서울 시내 아스팔트 뜨거운 불볕 위의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국민들 !!!******************

청와대로 향하는 끝없는 행진이 계속 이어진다. *****

resized_20180304_100247_1625810058.jpg

어제는 연일 폭염에 거의 40도 육박이었다.대부분 그늘이나 지하철 역사에 모두 내려가 계셨다. 그것을 감안해서 3.1일과 비교해보면정말 어마무시한 인파가 모였다고 본다.IMG_20180816_172735_336.jpg

IMG_20180816_172739_696.jpg

많은 분들이 그늘을 찾았는데도 사진상 약간의 밀도차이뿐이다.

IMG_20180816_172804_533.jpg8.15. 기념 경축행사에 있어서만은 적어도, 한민족의 해방과 대한의 광복을 위하여, 오끼나와 전투에서 목숨을 바친 수 만명(약 7만 5천여명???) 미군 장병들과 미국에 감사와 경의 표시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행진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8.15 한민족 해방과 조국광복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가슴에 품고 항일 대한독립투쟁에 목숨을 바치던 우리 독립군 선조들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니고, 성조기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며 목숨을 바치면서 수 만명의 미군 용사들이 군국주의 일본군과의 3개월 간에 걸친 오끼나와 혈전에서 승리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2 발의 원자탄 투하로 승전한, 미국과 미군 전몰장병들의 힘이 더 컸다기 보다도, 거의 전폭적으로, 미국의 승전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Msgr. Byon-IMG_20180816_172812_210.jpg

IMG_20180816_172758_840.jpg

어디가 많이 왔네 안왔네 증거도 없이 이야기 말고 이렇게 사진으로 증명해라.사진출처:보리떡님.[출처] 어제 서울역 얼마나 나왔을까? 3.1일과 비교 해보자.           2.jpg

여름내내 100년만에 처음 닦친 매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오후 4시 전후의, 서울 시내 아스팔트 뜨거운 불볕 위의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국민들 !!

여름내내 100년만에 처음 닦친 매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오후 4시 전후의,

서울 시내 아스팔트 뜨거운 불볕 위의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행진하는 국민들 !!!

8.15. 기념 경축행사에 있어서만은 적어도한민족의 해방과 대한의 광복을 위하여, 오끼나와 전투에서 목숨을 바친 수 만명(약 7만 5천여명???) 미군 장병들과 미국에 감사와 경의 표시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행진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8.15 한민족 해방과 조국광복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가슴에 품고 항일 대한독립투쟁에 목숨을 바치던 우리 독립군 선조들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니고, 성조기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며 목숨을 바치면서 수 만명의 미군 용사들이 군국주의 일본군과의 3개월 간에 걸친 오끼나와 혈전에서 승리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2 발의 원자탄 투하로 승전한, 미국과 미군 전몰장병들의 힘이 더 컸다기 보다도, 거의 전폭적으로, 미국의 승전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Msgr. Byon- -Msgr. Byon-


4.jpg

여름내내 100년만에 처음 닦친 매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오후 4시 전후의,

서울 시내 아스팔트 뜨거운 불볕 위의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국민들 !!!

5.jpg

여름내내 100년만에 처음 닦친 매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오후 4시 전후의,서울 시내 아스팔트 뜨거운 불볕 위의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국민들 !!!6.jpg

여름내내 100년만에 처음 닦친 매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오후 4시 전후의,서울 시내 아스팔트 뜨거운 불볕 위의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국민들 !!!7.jpg

12.jpg

여름내내 100년만에 처음 닦친 매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서울 시내 아스팔트 뜨거운 불볕 위의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국민들 !

8.15. 기념 경축행사에 있어서만은 적어도한민족의 해방과 대한의 광복을 위하여, 오끼나와 전투에서 목숨을 바친 수 만명(약 7만 5천여명???) 미군 장병들과 미국에 감사와 경의 표시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행진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8.15 한민족 해방과 조국광복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가슴에 품고 항일 대한독립투쟁에 목숨을 바치던 우리 독립군 선조들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니고, 성조기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며 목숨을 바치면서 수 만명의 미군 용사들이 군국주의 일본군과의 3개월 간에 걸친 오끼나와 혈전에서 승리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2 발의 원자탄 투하로 승전한, 미국과 미군 전몰장병들의 힘이 더 컸다기 보다도, 거의 전폭적으로, 미국의 승전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Msgr. Byon--Msgr. Byon-

13.jpg

여름내내 100년만에 처음 닦친 매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오후 4시 전후의,서울 시내 아스팔트 뜨거운 불볕 위의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국민들 !!!14.jpg

15.jpg


여름내내 100년만에 처음 닦친 매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오후 4시 전후의,서울 시내 아스팔트 뜨거운 불볕 위의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국민들 !!!19.jpg

여름내내 100년만에 처음 닦친 매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오후 4시 전후의,서울 시내 아스팔트 뜨거운 불볕 위의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국민들 !!!20.jpg

21.jpg

여름내내 100년만에 처음 닦친 매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오후 4시 전후,서울 시내 아스팔트 뜨거운 불볕 위의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국민들 !!!22.jpg

여름내내 100년만에 처음 닦친 매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 오후 ,서울시내 아스팔트 뜨거운 불볕 위의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국민들 !!!23.jpg

여름내내 100년만에 처음 닦친 매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 오후 ,서울시내 아스팔트 뜨거운 불볕 위의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국민들 !!!24.jpg

여름내내 100년만에 처음 닦친 매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 오후 ,서울시내 아스팔트 뜨거운 불볕 위의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국민들 !!!25.jpg

26.jpg
여름내내 100년만에 처음 닦친 매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 오후 ,서울시내 아스팔트 뜨거운 불볕 위의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국민들 !!! 어마어마한 인파!아무 사고없이 모두 평화롭게 마치도록 기도하며!





2017년 2월 18일, 서울, 시청 앞에서, 남대문 방향으로 가득찬 태극기 물결의 탄핵 반대하는 국민들의 애국 궐기대회 !

8.15. 기념 경축행사에 있어서만은 적어도한민족의 해방과 대한의 광복을 위하여, 오끼나와 전투에서 목숨을 바친 수 만명(약 7만 5천여명???) 미군 장병들과 미국에 감사와 경의 표시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행진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8.15 한민족 해방과 조국광복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가슴에 품고 항일 대한독립투쟁에 목숨을 바치던 우리 독립군 선조들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니고, 성조기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며 목숨을 바치면서 수 만명의 미군 용사들이 군국주의 일본군과의 3개월 간에 걸친 오끼나와 혈전에서 승리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2 발의 원자탄 투하로 승전한, 미국과 미군 전몰장병들의 힘이 더 컸다기 보다도, 거의 전폭적으로, 미국의 승전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Msgr. Byon-

2017년 2월 18일, 서울, 시청앞광장,대통령 탄핵 반대 국민들의 제13차 태극기 애국 궐기대회-여미카엘 신부 참석, 등단 탄핵 반대 피력-
(박상목님의 유투브에서
퍼왔습니다)
 
The 13 th Demonstration of the some hundred thousends Korean peoples !
They oppose the national assembly's impeachment of the present president Miss Julia Park !
Rev. Michael Yeo Hyeong Koo, the former parrishpriest of Myong Dong Cathedral of Seoul Archidiocese,
now, retired priest attended and did a brief speech against the impeachment!
 
본문이미지


본문이미지
2017년 2월 18일, 서울, 시청 앞에서, 남대문 방향으로 가득찬 태극기 물결의 탄핵 반대하는 국민들의 애국 궐기대회 !
2017년 2월 18일, 서울, 시청앞광장,대통령 탄핵 반대 국민들의 제13차 태극기 애국 궐기대회-여미카엘 신부 참석, 등단 탄핵 반대 피력-
 
The 13 th Demonstration of the some hundred thousends Korean peoples !
They oppose the national assembly's impeachment of the present president Miss Julia Park ! Rev. Michael Yeo Hyeong Koo, the former parrishpriest of Myong Dong
Cathedral of Seoul Archidiocese, now, retired priest attended and did a brief speech against the impeachment!!
 
2017/January/7.Saterday. 서울, 강남대로에서, 대한민국 수호 애국 태극기 집회 광경.[출처] 기억하고 싶은 애국집회 두 사진! 
 
본문이미지
8.15. 기념 경축행사에 있어서만은 적어도한민족의 해방과 대한의 광복을 위하여, 오끼나와 전투에서 목숨을 바친 수 만명(약 7만 5천여명???) 미군 장병들과 미국에 감사와 경의 표시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행진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8.15 한민족 해방과 조국광복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가슴에 품고 항일 대한독립투쟁에 목숨을 바치던 우리 독립군 선조들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니고, 성조기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며 목숨을 바치면서 수 만명의 미군 용사들이 군국주의 일본군과의 3개월 간에 걸친 오끼나와 혈전에서 승리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2 발의 원자탄 투하로 승전한, 미국과 미군 전몰장병들의 힘이 더 컸다기 보다도, 거의 전폭적으로, 미국의 승전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Msgr. Byon-
본문이미지

본문이미지

본문이미지
2017/January/7.Saterday. 서울,강남대로에서, 대한민국 수호 애국 태극기 집회 광경.[출처] 기억하고 싶은 애국집회 두 사진!
Demonstration of the some hundred thousend Korean People against the National Assembly's decision on the impeachment of the present president Miss Parck, that which was announced without, and, before investigation on it !!!


본문이미지
2017년 2월 18일 태극기 애국 궐기대회<미카엘 여형구 신부 등단 강연!>  
***2017.  3.  1. - 3.1. 만세 운동 98주년, 서울 중심가에서 태극기 애국 궐기대회- 태극기 역사상 最多의 太極旗人들의 애국 궐기대회가장 아름다운 태극기 활용 대회***
 
'
탄핵 반대'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3·1절 태극기국민운동준비위원회 주최로 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태극기국민운동 및 구국기도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7.3.1 hihong@yna.co.kr -연합뉴스에서 퍼온 사진입력 : 2017.02.19 오후 7:50:31

-------------------------------------------------------------------------------------

[팩트 체크]'태극기' 왜곡 보도, 사진으로 입증.최근 2년 집회 검증... '100만 인파'를 '옹기종기' 묘사... '촛불' 능가하면 보도 외면

 * 출처: 최재필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08.19 13:33:34
▲ 2017년 새해를 앞둔 31일 오후 2시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 거리를 뒤덮은 태극기가 물결을 이루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지난 8월 15일 광복절, 서울 광화문 도심에서 3만여명이 참여한 '건국 70주년 기념 8.15 국가해체세력 규탄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여 정부가 외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생일과 건국 정신을 기렸지만, 극히 일부 우파 언론 외에는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많은 매체가 "태극기 집회 때문에 태극기가 싫어졌다"는 식의 태극기 집회에 대한 지극히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촛불’과 ‘태극기'. 2016년 10월 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 이후부터 대한민국 사회를 대표하는 ‘좌파'와 ‘우파'의 상징이다. 그런데 우파 단체의 태극기 집회에 대한 일부 언론들의 ‘왜곡편파' 보도 논란은 여전하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 수를 아예 밝히지 않거나, 태극기 집회 모습이 아닌 참가자 몇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진을 게재하는 행태가 대표적이다. 


태극기 집회는 2016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집회, 31일 종각역 집회 등을 거치면서 규모에서 촛불집회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2017년 3월 1일 열린 태극기 집회는 남대문에서 종로5가까지 거리를 인파로 뒤덮었지만, 대다수 방송과 신문은 태극기 집회를 외면하거나, 친박단체의 집회인양 왜곡·축소 보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도 매주 토요일 태극기 집회가 열리고 있지만,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다.


이에 <뉴데일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이 본격화된 2016년 10월 말부터 대표적 태극기 집회와 관련, 일부 언론의 보도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보도 내용이 맞는지 당시 현장 사진을 중심으로 검증했다. 다만 집회 날짜는 역순으로 구성했다. 


***********************************************************************************************


◇태극기 폄훼 보도-'건국 70주년' 태극기 집회(2018년 8월 15일)


 일부 언론은 태극기 집회와 태극기 가치를 연결시켜 태극기 집회를 폄훼하는 뉘앙스를 전했다.ⓒ뉴스1 캡처
'건국 70주년' 태극기 집회가 열린 지난 15일, 태극기 집회에 대한 일부 매체의 '편파 보도'는 여전했다. 뉴스통신사 <뉴스1>은 "'태극기집회'의 역설…좌도 우도 태극기 싫어졌다"는 기사에서 태극기 집회에 대한 부정적 뉘앙스를 전했다. 

<뉴스1>은 "태극기가 예전만 못한 대접을 받게 된 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후에 있었던 '태극기 집회' 탓도 적지 않다"며 "태극기의 상징성과 이미지를 실추시킨 탓에 태극기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무관심을 넘어 부정적으로 변했다"고 했다.

"광복절에 태극기를 걸지 않겠다고 응답한 사람의 68%가 태극기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응답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태극기 집회와 태극기 가치를 연결시켜 태극기 집회를 폄훼하는 듯한 분위기를 전한 것이다. 그 밖에 “15일 광복절을 기념하며 서울 광화문 등 도심으로 나온 시민들 상당수는 태극기를 부끄럽게 여겼다"고 보도한 매체도 있었다. 

<조선일보> 등 보수우파 매체들이 대한민국수호 비상국민회의, 자유대연합, 국가원로회 등 200여 단체 회원 약 2만8000명(신고 인원 기준)이 참석한 집회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과는 다른 보도 행태였다.

◇언론 왜곡 보도 사례-제14차 태극기 집회(2017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이 절정에 이르렀던 2017년 2월께부터는 태극기 집회에 대한 언론의 편파·왜곡 보도가 더욱 극성을 부렸다. 그해 2월 25일에는 태극기 집회와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약간의 시차를 두고 열렸다. 대부분의 언론은 "촛불집회 100만명"이라는 주최 측의 주장을 여과없이 보도했다. 하지만 "300만명이 모였다"는 태극기 집회의 주최 측 주장은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못했다. 일부 좌파 성향 언론 중에서 이날 태극기 집회 참가자 수를 "10만명 수준"이라고 보도한 곳이 있었다.  

[보도 사진]
▲ 지난해 2월 25일 촛불집회 모습. 대부분 언론은 이 사진을 게재하며 100만명이 운집했다고 보도했다.ⓒ사진공동취재단

[실제 집회현장 사진]
▲ 주최 측 연단이 세워진 대한문 앞도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로 가득찼다.ⓒ사진출처=일간베스트

8.15. 기념 경축행사에 있어서만은 적어도한민족의 해방과 대한의 광복을 위하여, 오끼나와 전투에서 목숨을 바친 수 만명(약 7만 5천여명???) 미군 장병들과 미국에 감사와 경의 표시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행진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8.15 한민족 해방과 조국광복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가슴에 품고, 항일 대한독립투쟁에 목숨을 바치던 우리 독립군 선조들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니고, 성조기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며 목숨을 바치면서 수 만명의 미군 용사들이 군국주의 일본군과의 3개월 간에 걸친 오끼나와 혈전에서 승리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2 발의 원자탄 투하로 승전한, 미국과 미군 전몰장병들의 힘이 더 컸다기 보다도, 거의 전폭적으로, 미국의 승전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Msgr. Byon-
▲ 서울 중구 시청 광장 플라자호텔 쪽에서 남대문을 바라본 장면.ⓒ사진출처=일간베스트

언론 보도가 거의 없는 경우-8차 태극기 집회(2017년 1월 7일)

8차 박근혜 하야 반대 집회는 경찰 추산으로 우파 단체 집회 참가자가 촛불집회 참가자를 처음으로 누른 집회였다. 경찰은 2017년 1월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11차 촛불집회 참가자 수를 2만4000명(주최 측 추산 60만명)으로 집계했다. 같은 날 서울 강남 일대와 동아일보 사옥 앞,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우파 단체의 태극기 집회 참가자 수는 3만7300명으로 집계했다.[네이버 캡처]입력 : 2018.08.12 오후 6:22:11


입력 : 2018.07.05 오후 4:41:41
Copyright ⓒ 변기영 몬시뇰 사랑방 Servant Hall of Msgr. Byo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