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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WIND BELL

변 몬시뇰 [삶과 종교] 논고 월별 종합, Monthly Columns of Denuclearization Philosophy on our life in Kyeong-Ghi by Msgr. Byon <2017년 8월~2018년 8월,경기일보

글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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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영 몬시뇰 논고, 월별 종합 Monthly Columns of 'Denuclearization Philosophy on our everydays' life' in [Kyeong-Ghi Daily News], by Msgr. Byon.<2017년 8월 ~ 2018년 8월, 경기일보, [삶과 종교]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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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원로에게 듣는다.] 변기영 몬시뇰 천주교 원로사목자

       

이선호 기자 lshgo@kyeonggi.com 노출승인 2017 08 07 19:48   발행일 2017 08 08 화요일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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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역화에 반평생을 쏟은 원로사목자 변기영 몬시뇰. 양평군 지평면 소재 양평성당 곡수공소에서만난 그는 "새로운 천년을 위해 경기도가 한국을 위한 경기도의 차원을 넘어 인류 정신문화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며 "아시아 문화를 주도하는 경기도가 되도록 해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전형민 기자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1970년대 ‘성지’란 말이 쓰이지도 않았던 천진암 성역화에 반평생을 쏟아 천주교 성지로 만든 신부가 있다. 그 누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던 때, 천진암 성지를 개발하면서 반평생을 쏟은 원로사목자 변기영 몬시뇰이 그 주인공이다. 변 몬시뇰은 천진암 성지의 교과서이자, 산증인으로 통한다. 변 몬시뇰의 천진암 성지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다. 지금은 천진암 성지를 떠나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에 소재한 양평성당 곡수공소에서 조용하게 지내고 있지만, 변 몬시뇰의 24시간은 여전히 천진암 성지를 향해 있다. 특히 ‘한민족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 건립을 위한 노력과 천진암 관련 모든 사료를 자료화시켜 나가고 있는 변 몬시뇰은 요즘도 밤낮없이 변기영 몬시뇰 사랑방(www.msgr-byon.org)과 천진암성지(http://www.chonjinam.org)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직접 관리하며 한국뿐 아니라 세계인들과 교회 및 사회에 도움이 될 것들은 알리고 소통한다.

변 몬시뇰이 천진암 성지와 함께 한 세월이 자그마치 40여 년. 76세의 나이에도 변 몬시뇰의 눈동자는 맑게 빛났다. 변 몬시뇰의 미소와 눈빛 그리고 검은 머리는 신부로서 외길을 걸어오며 얻은 ‘산골 바보의 증명서’이기도 하다. 지난 7월 25일 변 몬시뇰을 만나 대한민국의 정치계와 종교계, 그리고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행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지혜와 조언을 들어봤다.

-공소는 본당보다 작지만 지역을 아우르며 과거 한국교회 성장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요즘 양평성당 곡수공소 생활은 어떠한가. 매 주일미사 주례와 강론 등으로 바쁠 것 같은데.

한 때 곡수리는 300 여년 간 곡수장이 제법 크게 열리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올해 곡수초교 1학년 신입생이 3명뿐이었다. 곡수리 공소에는 매주 평균 75세 이상 노인 신자들 약 35명 내외 정도가 주일미사에 참석하며, 주변 군부대의 장병이 25명 내외가 매 주일 미사에 나오는데 그중에 10여 명은 영세 예비하는 군인들이다.
양평 지역은 한국 천주교회 창립선조들 중에 하느님의 종, 권철신ㆍ권일신 형제의 고향으로 자발적인 진리탐구 정신으로 이 곡수리 공소도 사제나 수도자나 전교사가 파견되기 전에 자발적으로 입교한 공소역사를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가톨릭 교회의 고위 성직자에 대한 ‘몬시뇰(Monsignore)’이라는 명예 호칭이 다소 생소하다. 2005년 6월 몬시뇰로 임명되셨는데 몬시뇰의 역할과 의미는.

몬시뇰(Monsignor)은 본래 주교(episcopus)와 대주교(archiepiscopus)를 부를 때 쓰는 호칭인데, ‘교황의 전속 사제’로 선임된 사제(Cappellanus)를 일반 사제들과 구별해 주교나 대주교처럼 같은 존경 호칭으로, 즉, Monsignor, Mon Signor, My Lord 등으로 부르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 주교와 대주교와 몬시뇰들을 부를 때는 다 똑같이, 몬시뇰이라고 부른다. 마치 왕조시대에 정일품(正一品), 정이품(正二品) 하는 행정계통의 3정승 6판서와 각 도의 감사 관료들과는 달리, 종일품(從一品), 종이품(從二品) 하는 시종관(侍從官)들이 궁중에 있었듯이 교황을 모시는 특수 임무를 띠고 봉사하는 시종직으로서 시작됐으나 최근에는 그 용도와 의미가 많이 달라지고 변질됐다고 볼 수 있다.

-천진암은 한국천주교회 신도들의 신앙의 고향으로 통한다. 천진암 성지와의 인연, 그리고 스토리가 궁금하다.

전 세계 교회 역사가들과 근세의 역대 교황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천주교회는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한국인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천주교 진리를 탐구하고, 교회를 세웠다고 격찬했다.그러면 실제로 구체적으로 한국인들 누가, 한국 어디서, 어떻게 진리를 탐구했으며, 교회 신앙공동체를 결성했느냐에 대답하는 것이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지 개척과 성역화의 이유와 동기와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천진암을 한국천주교회 발상지이며, 이벽과 한국교회 신앙의 제1세대 양반 학자들이 1779년을 전후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천주교신앙의 공동체를 결성했음을 발표하자, 북경에서 이승훈 진사가 프랑스 선교사 죠셉 드 그라몽 신부한테 영세한 1784년을 내세워 천진암 성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승훈 진사의 북경 북당에서의 영세를 내세우면서 한국교회 출발지로 삼으면, 북경 북당을 한국 천주교회 발상지라고 해야 하고, 프랑스 선교사 죠셉 드 그라몽 신부를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로 받들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역대 교황들의 공식 강론과 선포도 모두 허위로 처리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0여 년간 한국천주교회 창립성조 광암 이벽 성조의 묘를 비롯해 선조의 묘를 잊어버리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까닭이 바로 역사 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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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 성지에 건립 중인 ‘한민족 100년 계획 천진암대성당’은 어디까지 와 있는가. 

천진암대성당 건립은 온갖 어려움과 공격적인 비협조 속에서도 정말 기적적으로, 가장 빨리 진척되고 있는 편이다. 
36년 전만 해도 천주교회 소유의 토지가 단 한 평도 없던 이곳, 한국 천주교회 발상지 천진암 성지에 그동안 화전하던 토지나 산자락까지 조각 땅 270여 필지를 하나둘씩 매입해 모아서 현재 한 덩어리 36만 여평이 됐고 거듭된 10 여년 간의 무사고 터 닦기 공사로, 3만여 평의 대성당 터 수평 대지가 중심부에 2단계로 이뤄졌으며, 국내외 최상의 저명한 전문 학자들과 성직자들에 의해 15년 여에 걸쳐 입안된 설계도가 확립되고 다듬어져 마침내 완성됐다. 현재 토목공사를 마치고 기초공사 중이며 한국천주교회 창립 300주년(1779~2079년)이 되는 2079년까지 100년 프로젝트다. 오늘도 주님의 집 건축은 황소걸음처럼, 뚜벅뚜벅 같은 발걸음으로 후퇴나 정지나 노선 이탈을 모른 채 한 걸음씩 내딛고 나아갈 뿐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대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절박하고 진지했는데 이제는 종교를 ‘가져 보면 좋을 것 같은 기호품’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종교인들의 정체성 자각이 시급하다. 경제발전이 국가존립의 유일한 목적이 될 수 없듯이 더욱이 예수님이 기적적으로 빵 5개로 5천여 명을 먹였고, 나병환자들을 고치고, 소경의 눈을 보게 하시는 등 기적을 행했다고 해서 그분이 안과 병원이나, 무료급식센터 개설을 위해서 강생하신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로마 대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 오신 것도 아니셨듯이, 종교와 정치는 비록 서로 분리될 수 없지만 그러나 서로 구분(distinction)될 수 있고, 구분돼야 한다. 마치 같은 사람의 몸과 건강에 관해서 내과의사와 외과의사의 각기 다른 업무가 있듯이 말이다.

-통일, 저출산, 세대 간 갈등 등 우리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천주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회문제를 모두 종교가 맡아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인들은 사회적으로 유능하고 만능의 인격자들이 아니며, 오히려 무능한 사람들이 많은데도 유능한 체하며 정치, 사회, 여러 문제 해결에 뛰어 드는 것은 용감한 일인지는 몰라도 현명한 태도는 아닐 수 있다. 우리 종교인들은 사회 문제에 대해 우선은 좀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부님은 1971년 8월 27일 수원 주교좌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후 경기도와 남다른 인연을 이어오셨다. 내년이면 ‘경기’ 정명 천년이 된다. 전국 최대 지방자치단체이기도 한 경기도가 새로운 천년을 위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할까.

프랑스 인권혁명 200주년이 되던 해 파리를 간 적이 있었는데 전부터 잘 알던 프랑스 노인 신부님이 식사하면서 “오늘의 프랑스 파리는 프랑스만을 위한 파리가 아니고, 더구나 파리만을 위한 파리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며 우리 파리는 전 세계를 위한, 세계 인류를 위한, 세계 인류의 파리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경기도는 한국을 위한 경기도의 차원을 넘어, 전 아시아 민족들을 위한, 아시아를 위한 경기도가 돼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특히, 경제발전만을 위주로 하는 각종 경제시설과, 오락과 유흥과 사치와 향락 위주의 아시아의 축(axle)이 되기보다도, 인류 정신문화의 거울이 되는 적어도 ‘아시아 문화를 주도하는 경기도’가 되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으로부터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라는 의미의 ‘막차세대’로 불리는 중년 세대에게 등 우리 사회 각 구성원에게 게 꼭 전하고 싶은 조언과 용기의 메시지가 있다면. 

양심과 상식을 지키고, 경위(經緯)와 역사를 아끼며, 자아를 가꾸는 인생을 살도록 합시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해야 한다. 특히 종교인들은 정치적인 면을 줄이고 종교인의 삶에 집중해야 한다.

변기영 몬시뇰은…

1940년 용인 출생
1971년 사제 서품
1971년 수원교구장 비서 겸 교구 기획관리실 보좌
1972년 용인본당 주임
1974년 수원교구 사목국장 겸 가톨릭농촌사회지도자교육원 원장
1976년 신장본당 주임,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지 개척 착수, 이벽성조 시복시성 추진 착수, 동 위원회 결성ㆍ총무
1980년 주교회의 한국천주교회200주년기념사업위원회 사무국장, 순교자시복시성추진부장
1982년 한국천주교회창립사연구소 소장
1985년 천진암 성지 주임 겸 천진암본당 주임, 100년계획천진암대성당 건립 주임
1992년 천진암 박물관 관장
2005년 베네딕도 16세 교황, 몬시뇰로 임명
2012년 사제정년 은퇴
 
대담=이선호 문화부장/정리=강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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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지축이 핵으로 동요하더라도 흔들리지 말자 !
 
변기영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7 09 12 21:03     발행일 2017 09 13 수요일     22

 
우주만물과 삼라만상은 각기 존재 이유와 존재 목적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지 않다. 눈은 자기 눈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고 대상물을 보기 위해서며, 귀도 자체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고소리라는 대상을 듣기 위해서며, 위장도 위장 자체를 삭이지 않고 음식물을 소화시키기 위해서 있다.

물질 세계에서 물리적으로만 이렇지 않고, 사상과 정신의 세계에서도 윤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자유, 사랑, 정의, 진리, 마음, 평등, 통일 모두가 대타존재임을 부정할 없다.
또한 모든 존재는 자신의 출발 근거와 기초도 이유와 목적처럼 자기 안에 있지 않고, 부모나 뿌리나 열매같은 자기 밖의 남에게서 받고 있으므로, 우리들은 의존자들이며 우연유들이다. 따라서 궁극에 가서 논리적으로는 필연유의 자존자 존재가 반드시 불가피하게 있어야만 한다. 이름이야이라고 하든지, ‘무한자무극이라고 부르든,  ‘조물주라고 하든지….

그런데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주객이 뒤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민을 위한 국가라기보다 국가를 위한 국민으로 봉사 아닌 혹사를 강요 당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사실 국법도 국민을 위하여 있는 것인데, 국법을 위하여 국민이 존재하는 강요하는 목소리가 우렁찬 나라와 시대도 있다.

생물과 무생물을 포함하여, 만물의 동작과 행위 역시 인간사회의 마을이나 가정처럼 특히, 나라들 간의 끝없는 회의를 거듭하는 국제연합도 들여다보면 모두가 서로 의존적이다. 마치, 새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도 날개와 깃털이 있어서만이 아니라 공기라는 비상여건이 있기 때문이며, 물고기가 헤엄을 치는 것도 지느러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물이라는 수영가능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물건을 있는 것은 물건의 모양과 색채와 우리 눈의 시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눈의 시력이 다른 물건을 있게 밝음이라는 가시여건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지력과 정신세계에 있어서도, 하나 더하기 하나 하면 (1+1=2)이라는 수학적 논리를 깨닫는 것도, 나아가 자유와 정의와 진리를 깨닫는 것도, 선과 악을 인식하고 식별하는 것도, 지능적밝음, ‘조명(illuminatio)’이라는 가시여건 덕이다. 그러므로 우리 존재 자체와 주변에 대한 인식은 최우선의 지식이다. 특히, 국민과 국가를 충분히 의식하지 못한 대기업이나 정권이 사회혁명의 씨를 뿌리는 것도 자기 존재의 천부적 목적 망각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도, 고독은 그래도 극복하기가 쉬우나, 고립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모두가 서로 의존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최근 어떤 싸움꾼이 너무나 심심하여(?), ‘전쟁을 구걸하는(begging for war)’ 지경이라고, 비꼬듯 공격적 발언을 UN 대사의 표현은 목적의식 망각의 소치라 하겠다.

따라서 말하기 쉬운 평화도 합당한 대상이 필요하듯, 전쟁도 걸맞은 상대국이 있어야 한다. ·소의 후원(?)으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양손에 들고 호소하는 북한의 눈에는 비핵화 조치로 맨주먹이 남한만이 만만하게 보이겠지만, 미국을 위시한 세계열강들은 핵무장에 있어서 북한보다 훨씬 대선배라는 점을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만도 없다.

더구나 핵보유국 공인이 체제유지나 국방이나, 국가 경제발전이나 조국통일에 백해무익하며, 오히려 장애물이 됨을 알아야 한다. 동서독이 핵무기가 있어서 통일하지 않았고, 구소련이 핵무기가 없어서 와해되지 않았으며, 미국이 핵무기 덕택으로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과 중국이 핵무기 개발, 보유에 힘쓰지 않았다면 지금쯤 국민소득이 20만불 이상씩 되어 세계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 가꾸는데 지금보다 훨씬 기여하고 있을 것이며, 저개발국의 기아퇴치로 만민의 존경과
미를 받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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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지축이 핵으로 동요하더라도 흔들리지 말자
 
<변기영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7년 09월 12일 21:03  발행일 2017년 09월 13일 수요일 경기일보,  제22면>


 
우주만물과 삼라만상은 각기 그 존재 이유와 존재 목적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지 않다. 눈은 자기 눈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고 대상물을 보기 위해서며, 귀도 귀 자체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고 ‘소리’라는 대상을 듣기 위해서며, 위장도 위장 자체를 삭이지 않고 음식물을 소화시키기 위해서 있다.

물질 세계에서 물리적으로만 이렇지 않고, 사상과 정신의 세계에서도 윤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자유, 사랑, 정의, 진리, 마음, 평등, 통일 등 모두가 대타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모든 존재는 자신의 출발 근거와 기초도 이유와 목적처럼 자기 안에 있지 않고, 부모나 뿌리나 열매같은 자기 밖의 남에게서 받고 있으므로, 우리들은 의존자들이며 우연유들이다. 따라서 궁극에 가서 논리적으로는 필연유의 자존자 존재가 반드시 불가피하게 있어야만 한다. 이름이야 ‘신’이라고 하든지, ‘무한자’나 ‘무극’이라고 부르든, ‘조물주’라고 하든지….

그런데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주객이 뒤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민을 위한 국가라기보다 국가를 위한 국민으로 봉사 아닌 혹사를 강요 당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사실 국법도 국민을 위하여 있는 것인데, 국법을 위하여 국민이 존재하는 듯 강요하는 목소리가 더 우렁찬 나라와 시대도 있다.

생물과 무생물을 포함하여, 만물의 동작과 행위 역시 인간사회의 마을이나 가정처럼 특히, 나라들 간의 끝없는 회의를 거듭하는 국제연합도 들여다보면 모두가 서로 의존적이다. 마치, 새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도 날개와 깃털이 있어서만이 아니라 공기라는 비상여건이 있기 때문이며, 물고기가 헤엄을 치는 것도 지느러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물이라는 수영가능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물건을 볼 수 있는 것은 물건의 모양과 색채와 우리 눈의 시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눈의 시력이 다른 물건을 볼 수 있게 밝음이라는 가시여건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지력과 정신세계에 있어서도, 하나 더하기 하나 하면 둘(1+1=2)이라는 수학적 논리를 깨닫는 것도, 나아가 자유와 정의와 진리를 깨닫는 것도, 선과 악을 인식하고 식별하는 것도, 지능적 ‘밝음’ 곧, ‘조명(illuminatio)’이라는 가시여건 덕이다. 그러므로 우리 존재 자체와 그 주변에 대한 인식은 최우선의 지식이다. 특히, 국민과 국가를 충분히 의식하지 못한 대기업이나 정권이 사회혁명의 씨를 뿌리는 것도 자기 존재의 천부적 목적 망각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도, 고독은 그래도 극복하기가 쉬우나, 고립은 견디기 더 어려운 것이다. 모두가 서로 의존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최근 어떤 싸움꾼이 너무나 심심하여(?), ‘전쟁을 구걸하는(begging for war)’ 지경이라고, 비꼬듯 공격적 발언을 한 UN의 모 대사의 표현은 목적의식 망각의 소치라 하겠다.

따라서 말하기 쉬운 평화도 합당한 대상이 필요하듯, 전쟁도 걸맞은 상대국이 있어야 한다. 중·소의 후원(?)으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양손에 들고 호소하는 북한의 눈에는 비핵화 조치로 맨주먹이 된 남한만이 만만하게 보이겠지만, 미국을 위시한 전 세계열강들은 핵무장에 있어서 북한보다 훨씬 대선배라는 점을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만도 없다.

더구나 핵보유국 공인이 체제유지나 국방이나, 국가 경제발전이나 조국통일에 백해무익하며, 오히려 장애물이 됨을 알아야 한다. 동서독이 핵무기가 있어서 통일하지 않았고, 구소련이 핵무기가 없어서 와해되지 않았으며, 미국이 핵무기 덕택으로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과 중국이 핵무기 개발, 보유에 힘쓰지 않았다면 지금쯤 국민소득이 20만불 이상씩 되어 세계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 가꾸는데 지금보다 훨씬 더 기여하고 있을 것이며, 저개발국의 기아퇴치로 만민의 존경과 찬미를 받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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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리와 진실도 다수결로 결정하려고 하나 ?!    
변기영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7년 10월 17일 21:02 , 발행일 2017년 10월 18일 수요일 / 경기일보, 제22면
  
 
진리와 진실이 없으면 정의가 있을 수 없으며, 정의도 자유가 없는 곳에는 있을 수가 없으니 진리도, 진실도, 자유가 없는 곳에는 있을 수가 없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된다(1+1=2)는 수학적인 진리는 전세계 수학자들이 모여서 다수결로 결정한 것이 아니고, 또 앞으로도 새로운 수학인들이 다시 모여서 다수결로 변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세계 전 인류가 배우고 깨달아 따르며 활용해야만 하는, 영구불변의 진리다. 결국 모든 진리는 인간들이 발견하고 깨닫고 활용하며 따라야 하는 것일 뿐, 새로이 창조하고 변경하거나 꾸미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7년 다음에는 2018년이 온다는 시간적 진리 역시, 전세계 모든 시계 제작인들과 우주 천체 물리학자들이 모여서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새로이 또 다수결로 변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리학이나 물리학이나 천문학에 있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비물리학적인 이성과 정신세계의 형이상학, 즉 철학, 윤리학, 정치학, 법률학, 신학, 등의 종교적 영역에서도, 자유를 존재가능조건으로 삼는 진리와 정의는 다수결과 무관하게 그 자체가 영구불변적이다.

그런데 오늘의 세계는 민주주의 다수결 만능의 전성시대라고 할 만하다. 특히 정치계에 있어 다수결 원칙은 성경이나 불경이나 유교의 사서삼경 이상으로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존중하고 앞에 내세우며 천하의 진리인 듯, 다수결 원칙을 ‘최고의 天命(천명)’처럼, 때로는 다수결을 만들어가며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결의 절대적인 전제조건은 너무나 잘 모르고 있으니, 다수인들의 자유롭고 바른 양심과 건전한 상식 수준이 함량미달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조건, 즉 ‘다수결의 절대적인 전제조건’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고 있고 확인하지 않으며, 무시하고 또 소홀히 여기고 있다. 마치 언론 보도의 자유와 권리에는 사실을 사실대로 정직하고 공정하게, 공익을 위하여 보도해야만 하는 의무와 책임이 절대적인 전제 조건으로 있음과 같다.

그래서 비일비재한 소수의 폭력이나, 독재자 1인의 비민주적 폭력도 매우 두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민주적이라고 내세우는 다수결 주창자들 다수의 폭력은 소수의 폭력이나 1인 독재자의 폭력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다.
최근 우리는 다수의 폭력이 소수의 폭력보다 비할 수 없이 더 끔찍하다는 사실을, 중국의 이른바 ‘문화혁명’을 통하여 모를 수가 없게 되었고, 특히 지난 세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17년을 전후한 북유럽 각국에서도 그 비극을 세계 인류가 너무나 뼈저리게 직시하여 왔다. 
그러므로 정의와 진리의 절대조건이 되는, 자유가 없는 사람들의 말과 글과 행동에는 진리와 진실이 있기 어렵고, 특히 정의가 살아있을 수 없으니, 정의가 없는 권력이나 권한 행사는 폭력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교황 베네딕도 16세 교서).

지금 우리는 이번에도 ‘휴전선의 이동으로 끝나게 되기 쉬운, 새로운 전쟁'의 전주곡이 요란하게 매일같이 울려 퍼지는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다. 남북한만의 전쟁이 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중공만의 전쟁도 아니며, 더욱이 가공할 핵무기 사용의 제3차 세계대전의 출발과 동시에 종결이 될 수도 있다는, 인류 자멸의 비참한 대재앙급 천하대란의 전쟁이 임박한 듯, 많은 국민들이 참으로 불안해하며 착잡한 예감을 누를 수가 없는 모습이다.

이러한 전쟁은 인류의 고귀한 자유와 정의와 진리와 진실을 무시하고 짓밟아 버리는 비인간화 민족 집단들의 다수결을 빙자한 소수와 1인 독재자들의 오만한 폭력행위다. 따라서 비양심과 몰상식의 극소수 인간들이 외치는 원앙 소리만을 따라가도록, 광란의 집단들이 부르짖는 함성으로, 인류자멸의 대흉사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우리 모두 자유를 위한 순교자들이 되고, 정의를 위한 용사들이 되어, 진리와 진실을 지키고, 아끼고, 가꾸어 나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야 하겠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5천여만 명의 주민들은 많이 살고 있으나, 국민들은 너무나 적지 않은가?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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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균형과 질서 안에서 묵상하며 살자
변기영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7 11 14 21:01    발행일 2017 11 15 수요일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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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자체 존재 유지와 성장에 필수적인 최소한의 지니고 있다. 힘이 없으면 사라지고 만다. 작게는 미생물의 세포나 분자, 원자에 이르기까지, 크게는 우주 천체의 수억만개 별들도, 질서 안에서 자전과 공전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은하계나 외부 은하계의 항성들과 행성들, 공간과 다양한 궤도들까지도, 엄청난 힘에 의해서 존재하고 유지되며, 엄정한 천체 질서 안에서 무한대로 확대, 팽창, 공동 발전하고 있다.

자동차를 움직이는데도 수십마력의 동력이 필요한데, 지구와 태양계와 은하계의 수많은 별들과 광대무변한 우주 천체가 질서를 지키며 움직이게 하는 힘은 도대체 어떤 힘이며,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 것인가? 천문학이나 우주물리학, 생물학 관계 분야의 전문학자들도 힘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으나, 제대로 분명하게 수는 없어서 흔히미지의 (dark energy)’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우주와 천체들의 운행은 미지의 힘에 의한 신비다.

이러한 미지의 힘은 인류의 정신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모든 자체는 존재양식이 동적(動的)이며, 결과가 변화무쌍(變化無雙)하므로 우리는 운동으로 계속 변하고 있는 힘으로 살고 있으나 아직도 힘을 사용하고 있을 , 알지는 못하며 다스리며 조절하지도 못하므로, 개인의 죽음이나 국가 간의 전쟁이나 멸망 같은 불의의 결과에도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광대무변한 우주공간에서 보면, 지구라는 동네는 별로 크지 않은 작은 별에 불과하지만 지구상에 태어난 인간들이 세운 나라를 통치하는 집단이나 독재자들 중에는 자기들에게 주어진 , 권력과 무력으로 마치 바다의 태풍처럼 인간세계와 자연계까지도 무시하고 파괴하는 동시에, 자신들도 태풍과 함께 사라지기가 일쑤다. 일찍이 장자(莊子) 표현한, 동해 원풍(苑風) 짧은 일생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태풍과 파도는 심할수록 파도에 의하여 급히 사라지듯, 인간역사에서 권력이나 무력의 태풍이나 쓰나미같은 정변이나 세계대전도 힘이 질서와 균형을 상실할 발생하는 변화현상이므로, 결코 영구불변은 아니다. 혹자가폭풍전야라고 하는 오늘의 한반도 정세 속에서 급변하는 힘이 질서 안에서 균형과 조화를 잡아야 할텐데! 사실 잘하는 이들 대부분은 닥치는 힘들을 무대책 상태에서 쓰려고만 , 여러 힘들을 다스리거나 조절하지 못하여, 태풍에 휩쓸려 돌풍과 함께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게 된다. 유럽에 적지 않던 민족들이 지구상에서 아주 사라졌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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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대전과 2차대전, 뒤이어 계속된 동남아 전란과 중동전쟁이 거의 끝나가는 지금, 핵무기가 거론되는 천하대란이 바로 코앞에 다가오는 소리가 위협적이다. 더구나 이번 지각변동은 향후 10여년 안에 마무리되기는 어렵게 보인다. 더욱이 무임승차의 특혜만을 즐기며 반기려는, 매우 정직하지 못한 민족들에게 이상의 공짜 횡재는 없을 것이다. 개인도, 가문도, 나라도, 단체도, 종교도, 정도를 걷는 정의의 용사들만이, 모든 힘이 질서 안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있을텐데!

사람들은 일시적이며 상대적인 자기 존재와 지위에 주어진’, 이상으로 없는 힘까지 쓰고자, 체력이나, 재력이나, 권력을 남용하고, 악용하며, 차용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국가조직과 사회질서를 파괴하고 와해시키며, 국가 간에는 전쟁까지 불사하게 만들고 있다.
우주 천체들이 자기 궤도를 준수하듯, 우리가 돈벌이를 위해서라도 체력은 70% 쓰고 재력은 50% 쓰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도 권력은 30% 쓰되, 그나마 조심하며 여유를 두고 써야만 개인과 가정과 사회가 모두 질서 안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진선미(眞善美) 만발하는 국가사회를 여유있게 이룩하여 나갈 것이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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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설마 난리가 나랴?
변기영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7 12 12 20:26     발행일 2017 12 13 수요일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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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쟁 임박설을 실증하는 현장과도 같이, 최신예 무기들이 대목장을 이루며 집결, 전시되고, 실전 같은 대규모 군사훈련이 반복되자, 세계인들과 많은 국민들이, 특히 우리 종교인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애타는 기도를 매일 바치면서도, 전쟁이 나지 않기를 바라고 믿는 마음으로, “설마, 정말 전쟁이 날까?” 하는 생각이 어느덧신념처럼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전쟁은 통치권자들의 결정이나 정치인들의 합의로 군인들이 시작할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 지역 백성들의 죄악이 천지간에 차고 넘치면 하늘도 말리지 못하고 막지 못하여, 인간들이 자청하는 천벌이다. 악하고 독한 사람들이 이렇듯 많으니, 어떻게 난리가 아니 나랴? 결국 전쟁발발을 정치외교 문제로 보다는, 타락한 국민 다수의 윤리 문제로 본다.

성탄절만이라도 남북한 우리 민족 모두에게 하느님의 평화가 내리기를 기도하자. 2천년 성탄절 , 베들레헴 주막집 마구간 말구유에 하느님의 아들이 아기 예수님으로 성탄하시던 ,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부르는 노래가 하늘과 사이에 울려 퍼졌는데, 의미와 교훈은 善과 平和의 메아리였다. “존경과 영광과 찬미는 천상에 계신 하느님께 드려야 하리로다! 지상에서는 마음이 착한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도다!”

평화는 칼과 돈이 있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마음이 겸손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것이다. 또한 존경과 영광과 찬미는 왕이나 황제 같은 사람들에게 드릴 것이 아니라, 천상에서 진리와 사랑과 정의로 우리를 평화로이 보살피시는 하느님께 드려야 하리라.

그러나 핵폭탄과 장거리 미사일, 특히, UN 미국과 북한이 싸움판 앞에 나와서 으르렁거리는 폭언을 들으면서, 실제로 일어나는 전쟁은 결코 대한민국만의 南北전쟁일 수가 없고, 南北韓과 美中日, 5개국만의 전쟁도 아닐뿐더러, 3 세계대전의 시작이 수밖에 없다는 예감이 든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세계 인류 문명을 초토화시키는 피해규모와 결과 때문에, 1950 6 25 사변과는 상반되는 현실과 결과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더욱이 1세기 , 청일(淸日)전쟁이나, 일로(日露)전쟁 , 朝鮮의 입장보다 난처한 처지가 지금이 아닐까? 하지만, 이번 전쟁은 유물론 공산주의 사상과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최종 결전장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남북통일을 위하여 남한의 공산화를 주장하는 시도와 선전 자체가 천만 부당한 것이다. 남북통일과 남한의 共産化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아기 예수님이 성탄하신 마구간과 말구유가 없는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는 없다. 우리 각자를 기다리는 우리 자신이 성탄할 마구간 말구유로 내려가 보자. 거기에는 인류의 대량 살상무기가 보이지 않는 평화가 있다.

성탄하는 인생, 성탄하는 가정, 성탄하는 사회는 불화와 충돌과 전쟁이 멀리 사라지고 평화가 깃들어 있다. 사회 모든 분야 어디에서나, 우리는 성탄할 특은을 받은 자들이다. 올라가는 용기도 필요하고, 돌아가는 지혜도 도움이 되겠지만, 내려가는 겸손은 있어야 한다.

가정에서의 善과 평화는 母女의 관계며(Bonum et Pax), 사회 어디에서나 진실과 정의는 父子의 관계다(Veritas et Justitia). 인간사회 안에서 정의와 평화의 최저선(Ad minimum) 법학에서는正義라고 하며, 최상의 무한선(Ad maximum) 신학에서는愛德이라고 한다. 그래서 善은 평화의 어머니요, 진실은 정의의 아버지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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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다원사회와 유일체제 그리고 빙상 화합장
변기영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 01 09 20:53     발행일 2018 01 10 수요일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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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닉슨 대통령 시절, 1974 북경에서 이른바 미중 탁구 외교(ping-pong diplomacy) 시작되어 서방사회가철의 장막이라 부르던 공산권 중국과의 숨통을 트는데 다소간 도움이 되었다고 외교가에서는 흔히 말하고 있다.

강원도민들의 꿈같은 숙원사업을 국책사업화하여 평창 동계올림픽이 마침내 열리게 되었다. 이에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 추진한 지사들과 정부의 몇몇 대통령들 이하 실무 담당관들에게 축하와 감사를 드리자. 사업은 오해와 반대와 방해와 공격적인 최대의 비협조를 극복하면서 결실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번 축제의 씨앗를 뿌리며 가꾸고 추수하여 세계적인 감사제를 올리는 마당에, 지금까지 고락을 같이한 모든 이가 참여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수만을 취하려는 이들의 낯뜨거움이 역사에 길이 남아, 어린이들의 윤리 교육에 점박이가 것이다. 남의 팔매에 주워 먹기는 그만하자.

그동안 차례 남북한 체육인들이 함께 참가하는 대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번 대회에만 주어진 여건이 있으니, 남북한의 정치 현실과 열강들의 이해가 충돌하는 현장이 아직도 전운이 짙어지는 공간인데, 북한 핵과 장거리 미사일 시국이라는 시간의 제약이 개최지의 지정학적 요소들로 가일층 불안함을 부정할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원사회와 유일체제의 만남과 충돌이 빙상 화합장을 이루려면 어느 쪽에 의해서만 좌지우지되거나 보장될 없고, 남북한과 세계가 공동사명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세계 인류의 상식이 아닐 없다. 더구나 핵무장은 세계가 불가피하게 관여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이러한 대회를 계기로 정치적 대목장을 보려는 일부 정치인들의 () 올림픽 정신은 히틀러의 뒤를 따르는 처신으로, 말로가 우려되며 경제적 대목장을 놓치지 않으려는 일부 기업인들의 () 올림픽 투기정신 역시, 경제 대박은커녕 빚더미에 올라앉게 하였다는 바르셀로나 시의 경우를 우리가 남의 일로만 없는 이유다. 더구나 선수들의 집단 약물복용으로 문제시된 소련처럼, 과도한 명예욕이나 승부욕도 예외는 아니다. 스포츠와 체육의 순수 올림픽 정신을 손상치 않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되기를 기원하자.

더구나 정신적으로 북쪽의 험산준령을 넘어, 빙판 길로 썰매를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썰매를 끌면서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가깝고도 머나먼 길을 마침내 평창까지 와서 세계대회를 함께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남한의 친북인사들 일부 몇몇 사람들의 외교술(?) 의해서가 아니라, 북한 지도층 인사들의 냉엄한 손익 계산에 따라 불가피한 차선책으로 참가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한 예의라고 하겠다.

체육대회는 체육대회로만 마쳐야 한다. 한마디로, 세계 청소년들이, 북한의 젊은이들도 모두 와서 썰매를 함께 타며 자유롭고 즐겁게 실컷 놀다 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경제와 명예와 체면에 환장한 어른들이 훼방을 놓지 못하게 해야 한다. 방해꾼들의 심보가 이성을 잃을 , 즉시 상상 외의 전란의 구실까지 수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외 동포들과 세계 만민이 화면으로라도 함께 하는 시대의 빙상 축제에 박근혜 대통령도 석방하여 함께하게 해야 빙상에서도 모든 이가 추위를 느끼게 것이고, 빙판은 녹아서 사라지게 것이며, 북한 선수단 참석 이상으로 집권자들에게도 실정 복구의 최종 기회가 것이다. 또한 혹시라도 평창의 부족함이 있다면, 이를 보완하는 유일한 역사적 저력이 것이다.

외교와 종교와 경제는 힘으로 마음대로 있는 것이 아니니, 동계올림픽 축제를 계기로 경제는 빙판도 녹아서 물처럼 흐르게 하고, 종교는 연기와 구름처럼 자유로이 피어오르게 하며, 외교는 바람처럼 상처나 흔적을 내지 말고, 부드럽게 지나가며 자유의 꽃을 피우게 하라.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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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
변기영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 02 09 19:22     발행일 2018 01 10 수요일     18
           
아시아 국가들의 지각 변동으로 국경 이동이 임박함을 알리는 국제 정치 기상특보 같은 현상에 우리는 이목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열강들의 초현대적인 무기 집결과 증강 및 대규모로 계속되는 합동군사훈련은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 직전 평양에서 거행한다는 대규모 열병식 등으로 급박해지는 충돌 위험이 올림픽 후 전쟁 발발 일보 전의 최고조에까지 달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평창 올림픽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우리 국경에도 변화의 가능성이 없지 않음을 뜻한다. 우리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진지하게 예상해 보는 것이 필요 이상의 최우선 급선무다. 한일 불법합방 때처럼, 아무한테라도 달려가 매달리거나, 정신없이 끌려가서는 안 될 것이다.

혹자들은 지금 우리나라와 가까운 대국에 매달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절대 불가한 것이니, 명·청과 그 이전의 고대와 중세사를 제쳐 놓고라도, 6·25 동란 때 중국은 100만 대군을 투입하여, 3년간이나 우리와 혈투를 벌이며, 수십만 명씩을 서로가 서로를 죽이며 싸웠다. 

압록강과 백두산까지 진격한 한국군과 UN군을 후퇴시켜, 다 된 남북통일을 훼방하며, 오늘의 휴전선을 만들었다. 우리 국민들 절대다수는 중국에 의존함을 꺼려한다. 이번 사드 배치 문제만 해도, 중국은 우리를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동시에 자기네 속국처럼 여기려는 태도에 우리 국민들은 아직도 매우 불쾌해 하며 분개하고 있다. 무법천지의 대국 행세하는 횡포가 과도하지 않은가?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지난 70여 년간 우리와 고락을 같이한 혈맹, 미국과의 보다 견고한 단합으로 미국의 핵우산 아래서 남북통일과 나아가, 동명고강(東明故疆)의 고토회복(故土回復)까지도, 미·중간의 평화적 경제외교로 해결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지각변동이 명실 공히, 온전한 ‘大韓國’ 건설 절호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으며, 이는 중국의 영구적인 안정과 평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 안에서의 남북통일을 염두에 둘 때, 혈맹 미국과의 철통같은 단결 외에는 현 시국의 위기극복에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은 결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중국도 이제는 동북 3성을 대한민국에 돌려주는 것이 대국으로서의 할 일이다.
연길과 북만주 지역을 지나면서, 한글 간판을 써 붙이고 있는 상점들을 무수히 보았다. 얼마나 많은 우리겨레들이 그곳에서 자자손손이 원주민으로 살면서도 지금은 중국에 체류하는 교포들의 신세로 살고 있는지를 모를 수가 없었다.

지금 우리는 꿈의 대한민국을 빛내며, 그동안 미국의 안보 그늘 아래에서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세계적 문화행사들도 거뜬히 거행하는 국력이니, 미국에 큰 신세를 지고 있다. 미국과 하느님께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유의 용사로서 미국 사회와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길을 가야 한다. 북한이나 중국이 핵무기나 미사일로 우리를 협박하며 속일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겠지만 이길 수는 없으며, 통일은 더욱 불가능할 것이다. 

이제는 중국·일본·러시아도 주변 약소민족들에 대하여 정직해야 한다. 국토와 인구와 경제력과 무력으로 큰 나라라는 것을 근거로 과거의 향수에 젖어, 점령 위주의 욕망은 버려야 하는 시대다. 단군성조의 홍익인간(弘益人間)을 동양삼국이 정치 대강령으로 삼도록 하자.

따라서, 우리는 핵무기와 미사일 대신 자유와 정의와 진리의 깃발을 들고, 정의를 위한 용사로서 진리를 선포하며, 자유를 위한 순교자로서 진리를 수호하며,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을 바치며 살아가는 백의민족의 후예로서, 지축이 요동치는 핵무기 앞에서도 태산의 무게를 가진 용사들의 거룩한 표지(標識)가 되어, 용맹히 싸우고 자랑스럽게 이기는, 자유의 용사들이 걷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자유가 없는 사람들의 말과 글에는 진리와 진실이 있을 수 없고, 自由가 없는 곳에는 正義가 없다. ‘오늘의 우리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은 국민의 자유를 지키는 정의와 진리의 길이다. 자유와 정의와 진실은 모든 국제협약이나 모든 나라의 헌법보다도, 모든 종교들의 규정보다도 더 우선하는 母法이며, 源泉이오, 基本이기에, 우리는 그 길로만 나아가야 한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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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신축 모스크바 주교좌대성당 낙성식과 한국의 헌법개정 방향!

변기영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 03 06 20:33     발행일 2018 03 07 수요일     22

 
1931년 스탈린은 소련의 종교말살 정책으로 모스크바 주교좌대성당을 폭파하고 그 자리에 450m 높이 탑을 신축, 레닌의 초대형 동상 건립 장기계획을 착수시켰으나, 당시는 인력도 재력도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고르바초프, 옐친, 푸틴 등 새 대통령들의 개혁정책으로 모스크바 대성당 복원 운동이 구체화되어 새 대성당 건축은 매우 신속하게 진척되었고, 폭파 전에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유럽 교회들의 지원으로 약 5억 달러의 큰 예산을 들여 완공하였고, 마침내 지난 2000년 연말에 전 유럽 교계의 감탄과 경탄을 받으며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모스크바의 신축 대성당은 첨탑 높이 103.5m, 내부 평면 2만7천㎡, 천정높이 79m, 벽 두께 평균 3.5m, 천정 중앙 돔 직경 30m, 천정과 벽 내면과 외부 돔 지붕은 1㎜ 두께의 합금으로 입혀졌다. 모스크바의 루즈코푸 시장은 새 대성당 축성식 기념사에서 “과거 스탈린 공산주의 집단(regime)이 파괴한 새 대성당 복원은 우리 소련 인민의 정교회 정신 부흥운동의 출발이요, 표상”임을 강조했고, 소련 제2의 도시 레닌그라드(Leningrade) 역시, 거의 1세기 만에 페테르스부룩(Petersburg)이라는 옛 이름을 회복하였다(현재 사용 중).

신권(神權)이 무시되는 무신론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는 인권(人權)도 존중될 수 없었다. 고려말 이성계와 정도전 등이 고민하던 왕권(王權) 수호 통치와 신권(臣權)의 개혁 정치 시도, 나아가 민권(民權) 신장이 공산주의 체제하의 자유부재 사회에서는 경제발전의 기적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신앙인, 지성인, 부자를 모두 숙청하고 나면 노동자농민들이 기업가와 부자가 될 줄로 알았으나, 기업가들과 부자들만 없어지고, 노동자농민들은 가난한 채 그대로 남아서 1세기를 두고 대를 이어가며 변함이 없었다. 유럽 다른 나라 국민들의 삶에 비하여 소련 인민의 상대적 가난은 절대적 가난으로까지 심화되어 가는 듯하였다.
더군다나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에 대항하려는 소련의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대량 생산 노력은, 마치 오늘의 북한처럼 인민들의 복지에 정신 쓸 겨를이 없게 하여, 복지는 고사하고 국가 유지 자체도 어려워져서 1980년대 말, 결국 국방과 체제유지에 무용지물이 된 핵무기와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대량으로 제조보유한 상태에서 구 소련의 무신론 공산주의 정권 붕괴는 속수무책이었다.

최근 우리나라에 헌법 개정이 거론되고 있다. 민주(民主)니, 민족(民族)이니, 통일(統一)이니 하며 현행 헌법 개정 방향을 1세기 전 소련이 실패한 무신론 사회주의를 추종하려는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공산주의 망령들이 복장만 바꾸어 입고, 명찰만 새로 만들어 가슴에 붙이고 출현하여, 광란의 괴성으로 진실을 파괴하고, 일부 사이비 언론들은 괴변으로 정의를 거부하고 조작된 다수의 폭력으로 문화와 역사의 개조를 시도하지만, 진리와 정의를 부정하는 허위와 불의로 무신론 공산주의로 가는 헌법 개정만은 없어야 할 것이다.

‘안반이 글러서 떡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떡메질이 서투른 새 일꾼이 떡 찧는 판이 잘못 생겨서 떡이 잘 안 된다고 탓한다는 말인데, 기름 한 방울도 안 나오고 지하자원도 별로 신통치 않은 우리가 분단의 상처와 전란의 잿더미에서 단기간에 ‘세계 10대 경제대국’ ‘7대 무역 대국’ 하는 소리를 들으며, 중국에 앞서는 서울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문화행사를 계속 거뜬히 흑자 거행하며, 세계 여러 나라에 적지 않은 원조를 보내주고 있다.

이 한강 기적의 토대가 된 현행 헌법도 잘 안 지키고 제대로 못 지키는 마당에, 헌법개정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기존 헌법의 일부 조항에 대한 추가 보완 정도라면 몰라도, 대한민국의 국체(國體)까지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모험은 개헌이 아니라, 미지의 불안한 공산주의 혁명같은 개악(改惡)이 될까 걱정이다. 더구나 국가 100년 대계의 개헌작업에는 반드시 헌법학 전문 원로학자들이 참여하는 분명한 몫이 보장되어야 하겠다.

결국 현행 헌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과 남한 사회에까지 전염된 공산주의 무신론 사상과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유혈참극을 피하며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북한도 일본영국태국벨지움 등 나라들처럼 먼저 입헌군주제로 가는 것이 합당한 차선책이 아닐까 한다. 
* 모스크바 시에는 유명한 성당들이 여럿 있는데, 본란에서 거론한, 새로 복원된 대성당의 교회 전문 명칭은,"구세주 대성당(Redemptoris Church)"이다. 현재, 소련의 대표적인 대성당이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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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비핵화와 평화통일 위한 세계적 성지, 포르투갈 파티마 !
변기영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 04 03 21:35     발행일 2018 04 04 수요일     22

 
Denuclearizartion, peacefull unification of Korean, and, Fatima of Portugal!
                                                                                         
 
최근 우리는 ‘남북 평화통일’이라는 말을 매우 자주 즐겨 쓰고 있다. 특히, 종교계에서는 통일을 위해서라도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는 정신이 매우 지배적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더욱이 정치적으로, ‘평화’를 위해서는 武力과 재력이 우선 충분히 있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침략군들을 막는 국가 안보나 강도로부터 개인의 생명을 보호하는 신변안전과 최근 우리가 흔히 쉽게 즐겨 쓰는 ‘平和’라는 말의 뜻은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아니한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없다.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다. 남북한이 자신들에게 없는 평화를 상대방에게 줄 수는 없다. 우선 양쪽 모두가 자기들끼리나 먼저 칼을 버리고, 오순도순 평화롭게 살고 있는 평화로운 동족 국가들이라야만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칼을 갈면서 평화를 외치던 소리들은 모두가 거짓이었음을 현대 인류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 사회에서 평화의 뿌리와 기초는 善이다. 그래서 善은 平和의 어머니며, 평화는 善의 딸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평화는 칼과 돈으로 탄생되지 않고, 善에서 태어나게 마련이다. 참된 平和는 善을 기초와 원천으로 삼아, 자유와 정의와 진실의 터전에서 태어나 사랑을 먹고 마시며 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평화는 한마디로, 터 없는 집이 세워질 수 없듯이, 또 어머니 없는 딸이 태어날 수 없듯이, 善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선한 사람과 함께 말하며 일하면서, 우리는 평화를 느끼고 배운다. 그러나 선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살면 한 집안에서도 불화가 그칠 날이 없다. 사회 단체나 국가 간에도 善한 사람들이 없으면 논쟁과 전쟁이 그칠 날이 없다. 善하지 못한 사람들과 善이 없는 국가와 사회에는, 아무리 돈과 칼을 많이 주어도 그들과의 평화는 존재할 수가 없다. 군국주의 강대국 일본과, 부국강병을 이룬 히틀러의 독일에 평화가 있었는가?

종교인들은 설교와 기도 중에,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외치는 노력 그 이상으로, 남북 양쪽 사회와 국민 개개인들이 먼저 선한 사람들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다. 자신들이 아직은 善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상대방의 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선업의 受容性조차 전무하다면, 어떻게 평화통일이 가능하랴?

수천만명 많은 젊은이들이 서로 죽이고 죽어 가던 세계 제2차 대전 말 1945년 끝까지 參戰하지 않고, 自國의 軍人 1名도 2차대전에 참가하지 않았던 유일한 나라는 포르투갈뿐이었다. 중세에서 근대로 오면서, 포르투갈은 중남미와 아프리카와 인도와 특히 마카오 점령에서 보듯이 극동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해양 군사 대국으로서 무수한 전쟁을 감행하며 위세를 떨치던 싸움꾼의 정복자 나라였다.

그러나 1917년 포르투갈의 빈민 지역 파티마(Fatima)에 살던 10세 미만의 시골 어린이들 3명에게 천상 그리스도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 6개월 동안 매월 한 차례씩 발현, 10월 중 마지막 발현 때는 전 세계에서 걸어서 모인 7만5천여 명의 풀밭 군중들에게 “인류가 전쟁을 피하기 위하여, 또 무신론 공산주의자들이 회개하도록 열심히 기도하라”고 강조하셨다.

포르투갈의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이 초자연적 천상 인물의 발현은 로마 교황청과 전세계, 특히 유럽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포르투갈 국민들은 1차 세계 대전이 속히 끝나도록, 모두가 회개하여 善良한 국민들이 되도록, 또 세계평화를 위하여 기도하였으며, 포르투갈은 전쟁불가 국가로서뿐 아니라 끔찍한 강력범죄가 거의 없는 나라로도 유명하게 되었다. 현재 파티마는 매년 600여만 명의 순례자들이 찾아와 세계 평화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적인 남북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성지로, 가난하던 포르투갈에 매년 30억불 이상의 순수 관광수입원이 되고 있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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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자유와 정의가 없는 평화나 통일만은 ?
 
변기영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 05 02 20:47     발행일 2018 05 03 목요일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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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과 물은 같은 그릇에 쏟아도 하나로 융합되지 않는다. 남북통일의 근본적인 장애물은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며 적대시하는 유물론 공산주의 사상이다.
 
우리는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국가나 조직체들과의 허구 많은 정치적 대화나 국제적 평화회담의 가치와 의미와 교훈을 되돌아볼 , 대부분이 약속 불이행으로 무효화 결과를 지난 1세기 동안 비일비재하게 보아왔다. 남북 지도자들의 이번 판문점 회담 선언으로 많은 국민들의 마음이 들떠 있는 지금 국민은 냉엄하고 진솔하게 오늘의 우리 인류가 나아가는 길을 이탈하지 말아야 하겠다.

만일 북한이 남한처럼 자유와 정의와 진실이 살아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였다면, 지금 남한보다 훨씬 것이며, 패전국 일본 수준을 넘는 경제발전을 쉽게 이룩하여, 대만이나 싱가포르와 어깨를 나란히 아니라, 1950 10월에서야 정부수립을 선포한 오늘의 중국이 아직 약체를 면치 못하던 시절, 동명고강(東明故疆) 동북 3 회복, 관리도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마치, 승전국에 들어있는 남한이 패전국 일본이 자위대 3만여 명의 비무장 호기에 대마도 회복 관리를 소홀히 것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만시지탄이 있으나, 지금의 몽골처럼, 자유부재 사회제도를 신속히 탈피하는 철저한 탈공산주의화(脫共産主義化) 정책 실천만이 시급한 경제발전은 물론, 북한 현대화의 연착륙이 가능할 것이다.

북한이 지금이라도 인민들의 경제활동 자유를 보장한다면, 2~3 안에 국민소득과 국가 경제 지수가 200~300% 발전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을 것이며, 살벌한 사회 분위기도 사라지고, 훈훈한 인간 대동체(大洞) 모습이 살아나, 남한과의 통일이나 세계와의 대화나 회담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서울 불바다니, 평양 잿더미니, 핵실험이니, 대륙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니, 북폭이니, 하는 무력 폭언의 홍수가 일시 겨우 멈춘 지금, 우리뿐 아니라 미국과 세계가 이번 판문점 회담 선언의 비핵화나 평화통일 거론을 불신하는 것은 당연하며, 의심을 버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니, 불신을 불식시켜야 하는 지금의 북한 지도자들의 고충과 노력에 우리는 이해와 동정의 협력까지 포기하지는 말아야 것이다.

1953
3 , 소련 스탈린이 죽자, 소련의 16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에는 민주화의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였지만, 프라하에서는 포성과 화염 속에서, 겨우 너더댓 살밖에 되는 어린 아이들이, 부모님들의 손에 등이 떠밀려서, 울면서 서로서로 고사리 같은 어린 손들을 맞잡고 집을 나서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 앞가슴 옷자락에 붙인 헝겊 조각에 적힌 글들이 어렵게도 바깥세상, 로마에까지 전해지자, 자유 세계인들은 슬픔과 눈물을 금치 못하였다. 당시, 한국 시골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한 14 전후의 가난한 우리들에게까지도 알려지던 헝겊 조각 통신이 전하는 눈물겨운 소식은 다음과 같았다.

누구든지 어린 아이들을 만나거든, 우선 눈물을 닦아주시고, 너무 울지 않도록 울음을 그치게 달래주십시오! 허기진 배를 채우게 먹을 것을 주십시오! 제발, 부탁합니다! 아이들의 부모는 지금 우리 국민들의 자유와 정의와 진리를 위해서 소련 공산당원들과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 순간에도 총에 맞아 흘리며 죽어가는 부모들이 싸움터에서 알리는 유일한 최후의 부탁입니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바람은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소련의 무자비한 바르샤바 조약 공산군 20여만 명에 의하여, 피바다를 이루며 끝을 맺었으나, 1978 10 폴란드 공산권 출신의 보이티야(Karol Wojtyła) 추기경이, ‘로마 교황 요한바오로 2 즉위하면서, 폴란드를 시작으로 무신론 공산주의 소련이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유럽이 민주화의 물결로 경제번영의 길에 매진하고 있다.

1970
년대 , 월남과 월맹의 동남아 10 전쟁 말기에, 거듭 반복되던 대화와 회담에 모두가 지쳐 있을 , ‘파리 평화 협정발표는 세계를 환영과 기쁨으로 열광케 하였었으나, 美.蘇.英.中.佛, 5 강대국의 입회보증도 아무 소용이 없이, 월남은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나라가 되었다. 우리가 반드시 참고할 역사적 교훈을 주고 있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