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교황의 평양 방문과 자유통일 행진곡
그러나 우리는 지금 자유와 정의와 진실이 통일의 본질과 내용이 되는, ‘자유통일’을 역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가 없고, 정의가 죽어서 진실도 없는 사회의 통일은 분단만도 못한, 사이비 통일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보유량은 지구를 40번 파괴하고도 남는다고 했었다. 레이건 대통령의 주도에 소련이 공감하여, 인류는 핵무기 축소와 생산 통제에 U.N.의 이름으로 착수하였으니, 북한 비핵화는 남북통일과 무관한 차원의 온 人類와 神의 절대 명령권역이다.
겨레의 소원 남북통일과, 종교계가 외치는 평화통일 행진곡에, 최근에는 남북한이 대국들과 직간접으로라도 북핵 타령을 합창하지는 말아야 한다. 1세기 전부터 온 겨레가 함께 부르던 현 애국가나, 나라꽃 노래를 부른다면 차라리 좋으련만! ‘불바다’나 ‘잿더미’ 거론으로 대재앙의 전주곡 같은 북핵 타령은 저승사자들이나 뻐기며 부르는 인류의 장송곡이나 다름이 없다.
남북통일에는 백해무익하며, 주변국들의 핵 무장화의 핑계가 될뿐더러 국제 전쟁 전문가들만 결집시키는 핵보유를 남북은 아직도 아쉬워하거나 흥겨워하며, 제정신을 잃지 말자. 평화의 사도 로마 교황의 평양 방문을 방해하며, 통일을 훼방하는 북핵 타령으로는 한반도에 신무기 대목장 개업이나, 신무기 종합시험장 개장의 전주곡이 될 뿐이다.
양쪽이 모두 지니고 있는 핵무기 사용의 전쟁으로는 남북통일이 더욱 멀어지고, 중동전처럼, 또다시 휴전선의 이동으로 끝나는, 종전 전주곡만 반복할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미 10여 차례나 U.N.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속이고, 속았으니, 또 속이고, 또 속아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이제, 이번만은 북한도 핵 타령 가설무대를 거두어치고, 로마 교황님과 함께 평화통일 행진곡을 불러야 할 것이다.
서독은 남한처럼 핵무기가 없었기에 경제발전이 가능하였고, 동독과도 통일하였다. 핵무기는 고비용의 경제파괴 무기며, 더 큰 핵무장 갈증의 증폭제가 될 뿐이다. 미ㆍ소가 핵무장에 집중 하던 노력만큼, 비핵화에 주력했다면, 지금쯤 미.소의 국민소득이 10만불을 넘어, 세계 빈민국들 지원으로 인류평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대만, 남한, 이태리, 서독, 등, 미국과 U.N.이 점령하여 민주화시킨 나라들은 지금 모두 선진국 대열에 올라 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이 무력과 공산주의 사상으로 점령했던 북한, 티벳, 위그루, 내몽고,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알바니아, 동독, 폴란드, 등을 살펴보면, 지금도 중.소는 공산주의 종주국답지 않게 가난을 겪으며 허덕이고 있다.
이제는 북한도, 또, 남한의 이른바, 좌경인사들도, 아닌 척하며 겉 꾸미느라 불안해 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각국의 진솔한 손익계산서를 따라, 용감히 공산주의 사상 포기는 물론이고, 종주국 소련이나 중국도 과감히 멀리해야 한다. 중국과 소련과 친하게 지내 봐야 이득도 없고, 생기는 것도 없다.
또한 몽골이나 폴란드처럼, 북한도 미국과 국교 정상화에 힘쓰게 도와야 한다. 북한이 몽고의 징기스칸이나 당나라의 이세민처럼, 점령지마다 종교의 자유만이라도 보장하였다면, 지금쯤 북한은, 중국이나 남한보다 훨씬 더 잘 사는 아시아 대국이 되었을 것이다.
신앙의 자유는 인권신장의 척도다. 로마 교황의 내년 평양 방문 예정 손익계산 개관을 보면, 남한 국민들과 전 세계에서 모이는 관광객들로부터, 평양시는 내년에 적어도 2천만불(한화 2백억 원) 이상의 관광수입이 예상된다. 물론 입국단들의 종교, 문화, 관광의 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전제한 경우다.
변기영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년 10월 17일 19:58 발행일 2018년 10월 18일 목요일 제22면-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다시 이 현시국으로 돌아와서!********
북한 김정은,
교황, 평양 방문 초청 ! 오시면 열렬히 환영해 드린다고? !!!
We will welcome th Pope from heart when He visit us !, the leader
Kim, chaireman of the defense ministery of North Korea.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건마는,,,,!
글쎄 !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서 !!!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103위 한국순교복자들의 시성식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10만평에 달하는 5․16광장을 가득히 채운 천주교신도들과 함께 뜨거운 감격 속에 집전하시고 나서, 만 5개월 후, 로마의 사도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약 2만 5천여 명의 전 세계 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한국의 25명 주교들과 더불어, 3천여 명의 한국 신도들과 함께, 103위 한국 순교성인 첫 경축일 미사를, 9월 20일에서, 10월 14일 주일로, 그 해에만 이동하여, 실로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1984년 10월 14일 로마는, 한국 순교자들의 날이었다.색동저고리와 다홍치마가 베드로대성당 광장을 누볐으며, 시간 시간 TV 뉴스의 화면들을 채웠다.
사실 로마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 세계 교회 역사상 최초로, 로마가 아닌 다른 나라에 가서 시성식을 거행하는 것도 처음이고, 103위의 다수 성인들을 동시 시성하는 것도 처음이고, 특히,103위 중 93위가 평신도들로서, 평신도 시성 위주 시성도 처음이다.
시성식 1년 전, 1983년 2월 26일,오전에 로마를 처음 가서 시성부장관 팔라찌니(Palazzini) 추기경을 집무실에서 뵈웠을 때, "한국인 대표 격으로 김대건 신부 한 분과, 프랑스 선교사 대표로 앵베르 범주교(Imbert) 한 분, 이렇게 2분 복자들의 시성만 추진해보자." 그나마도 금방 이번 200주년 기념행사 때(1984)는 어렵고, 적어도 약 50여년 걸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2,3,년 전부터 국내 103위 복자들의 시성추진에 관심과 협력을 아낌없이 베풀어주시던 김추기경님과 김남수 주교님, 강우일 신부님, 등이 로마를 다녀오실적마다, 로마 시성부에서는 인편에 국내 우리 시성추진부에 1~2 페이지 지침서 요약과 함께 구두로 전해주던 같은 내용을 그날도 내게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여러번들어서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사실 국내에서는 충분히 알려진 이야기였다!
그 때 필자는 어디서 무슨 용기가 났는지, 이태리어로, "Tutti o nulli ! Sua Eminenza ! "즉, 103위 순교복자 모두를 시성해주시든지, 아니면, 아무도 시성하지 않으셔야지", 순교는 성직자나 평신도나 마찬가지 공덕이고, 오히려 신학도 배우지 않은 평신도들의 순교는 성직자들의 순교보다 더 위대한 영웅적이 아닙니까?하며, 이어서, 영어로," All or no one ! "하면서, 나는, "신부나 주교, 우리 성직자들은 시성식 안해도 신자들이 존경하고 있고, 그렇다고 성사를 집행하며 독신으로 사는 것을 일반 신도들이 본받을 수는 없읍니다.
그러니, 성직자들보다는 평신도들을 많이 시성해주시면, 신도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가정을 성인되는 학교로 알고, 자신들이 일하는 논밭과 공장같은 직장에서 하는 일들을, 성인되는 학과목으로 알고, 가정과 직장을 성화하게 되고, 평신도들이 사는 가정과 직장이 성화되어야,,,,하고, 중언부언 말씀을 드렸다. 나는 당시 제정신 아닌듯,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다지 능숙하지도 않은 이태리어로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백발에 얼굴이 붉은 홍안동자 같은 팔라찌니 추기경님은, 좀 언잖아하시는 기색으로 정색을 하시면서,"너, 우리한테 강론하러 왔니?"하셨다. 나를 안내하며 동석했던 단떼(Giulio Dante) 변호사는, "젊은 한국 신부가 아직 잘 모르고 하는 말씀입니다"하며, 불야불야 불끄듯, 분위기를 다시 갈아앉 혔다. 103위 모두 평신도들의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 관면을 교황님께서 확정 발표하셨을 때, 필자는 팔라찌니(Palazzini)추기경님과 교황님께 밤잠을 설치면서 밤새도록 감사를 드렸다.
특히, 기적심사 관면을 위한 교황청의 모든 추기경님들과 주교님들이 교황님을 모시고, 거의 3~4시간 이상이나, 거의 온 종일하다시피 장시간 마라톤 회의라기 보다도 토론회의가 있었다고, 옵써버로 참석하였던 당시 장익신부님이 전화로 알려왔을 때, 팔라찌니 추기경님과, 단떼 변호사와 교황성하께서는, 속칭, [마귀의 옹호자]라고 부르는, 시성 반대하는 검은 복장을 한 검사직 고위성직자(몬시뇰 법관 중의 한 분)의 거듭되는 반론에 적절하게 응답하셨고, 절대다수의 추기경님들과 고위성직자들이 찬성하자, 파격적으로 회의 후에 신속히 약 한 시간 후에, 교황께서는 바로 인준 결재하셨으며, 바로 발표케 하셨다고 국내 우리 시성부에 전해주었다.
만일 교황성하께서 내년에 평양을 방문하시게 된다면,!?
하느님의 종 광암 이벽 요한세자와 132위 한국 순교자 시복식을 평양에서 봉헌 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온 굑회가 총 동원하여 주선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버스와 기차 등으로, 남한 신도들의 1% 정도, 즉 5~6 만명 정도의 젊은 이들이 평양에 가서 2박 3일 정도 야영하며, 북한 교회의 부활을 경축할 수 있다. 1인당, 30만원 정도씩만 북한 각처에 가서 쓰고 와도, 150억(약 1천 5백만 달러) 정도 관광수입을 북한 동포들에게 기여할 수 있다. 매년 봄 가을 한 두 차례씩 평양에서 천주교 집회를 열면, 북한 주민들의 농목축 수입보다 낳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매년 남한의 많은 신자들이 매월 유롭 성지 순례가서 사용하고 오는 수천불씩의 순례비를 생각하면, 평양과 주변의 모든 호텔들을 사용하는 어른들을 감안할 때 2천만 달러 정도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계산된다. 관광수입은 원료수입비와 가공비와 선전 광고비,인건비, 등이 들어가지 않는 순수 수입이다! 이야말로 어렵지 않게 우리민족끼리 할 수 있는 상호부조 사업이다.
We have to be martyrs of faith for God, warriors of justice for human kind, and, speakers of truth in all over the world !Sincere, and, honest people, we have to be, today for the Church & for our country with the Church spirit in our Holy Spirit ! How many times, were these repeated by Msgr. Peter Byon without interruption in the voice of Chon Jin Am for 1995~2017 upto now to all the leaderslike leaders of today for denuclearization of war ! It's an infinite glorious opportunity if we can be martyred for the people's freedom, being warriors for human justice, and, speaking the truth of our Catholic Church of Christ !
지금 로마 교황께서 평양을 방문하신다면, 열렬히 대환영하겠다는, 북한 김정은 최고 지도자의 말을, 남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평양 방문 때 듣고, 이번 유럽 방문 때 교황 알현시에 전달할 예정(초청장?)이라는데 ! 로마 교황의 평양방문 설, 특히, 북한 김정은 최고 지도자의 초청의사와 함께 열열한 교황 환영 언급은 교계에 큰 뉴스 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철의 장막'이라고 부르던 교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북한 교회의 평양을 로마 교황께서 방문하시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으며, 이런 소식이 처음은 아님을 간결히 알리고 싶다.
로마 교황님의 서울 방한이 확정되자, 국내외에서는, 서울 행사 시성식 후, 교황님께서 평양을 잠시(하루) 들려서, 미사드리고 가실 수 없을까, 그 기회에 남한 신도들이 수천명, 외신기자들과 함께 평양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들을 공공연히 공석이나 사석에서 자주하였었지만,,,,,,!
일찍이 1984년 10월 14일 경축행사 참석 겸 로마에 먼저 와서 머물던 고종옥 마테오 신부가 오스트리아 비엔나 주재 북한 담당자 최학근 대사(전 캐나다 몬트레알 올림픽 북한 선수단장)와 면담하고, 4일간 평양을 다녀와서, 로마 교황께서 평양을 방문하신다면, 열렬히 대환영하겠다는, 지금과 똑같은 김일성 수령 의사를 당시 로마에 머물고 있던 김수환 추기경과 필자를 포함하여 주교회의 담당 한국 사제들 한두 명에게 전하였다.
즉,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만일 평양을 방문해주신다면, 북한 주민 전체가 뜨거운 환영으로 모시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로마에 머물고 있던 주교회 김수환 추기경과 관계 담당 신부들 약간 명은, 교황의 북한방문으로 철의 장막이 걷히지 않을까 마음이 부풀어 있었는데, 처음에는 긍정적이었던 김추기경은, 막상 일이 성사되어 가는 듯하자, 실상 일이 터지기 직전의 그 신중성이, 마치 전에도 전국 대신학교 합동 대학원과정 건립 추진 때처럼, 항상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신중성(?)을 또 내보이셨다.
그래서 당시 교황의 평양방문은 이쪽의 타진과 저쪽의 환영 회답 소식만으로 그치고, 우선 먼저 김추기경 자신이 먼저 평양방문을 타진하게 하였고, 고종옥 신부는 급기야 평양을 재차 모스크바 경우, 다녀와서, 김일성 수령은 김수환 추기경이 평양을 방문하시는 경우, 온 평양 시민이 열렬히 환영하여드리겠다고 우리에게 답하여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로마에 와 있던 국내 모 정부 기관에서 부정적이었다. 추기경은 국제적 최고위 공인이므로 일단 귀국 후 서울에서 방북하는 것이 안전하고 마땅하다는 의견을 갑자기, 또 아주 강력히 내놓으므로, 로마에서 김추기경의 파리, 모스크바 경우 평양 방문 계획역시 또 취소되었다. 비엔나에 나와 있던 북한 최고 책임자 최대사는 두 번씩이나 허탕을 쳤다는 책임을 물어, 본국 북한에서 급기야 최학근 대사를 현직에서 파면시키고, 귀국, 좌천조치되어, 평안도 선천역 철도역장으로 좌천 되었다고, 훗날 고종옥 신부는 캐나다에서 필자를 만났을 때 내게 직접 이야기하였다. 씁쓸한 심정으로 우리는 맥주 한잔씩을 더하였다.
언론계와 정치계와 국민들은 천주교회 최고 성직자들의 방문 자체가 기사 거리도 되고 이야기 거리도 되어, 방문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열광하겠지만, 교황이나 추기경이 방북하여, 김일성 동상에 헌화 경배하는 등, 그쪽의 요구사항대로 움직일 때,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화면을 보는 남한국민들과 세계 언론의 눈과 붓이 어떻게 보고 논평할 것인가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150여명에 달하는 신부 수녀들을 1950년 1년 남짓한 기간에 구속, 고문, 타살, 총살한, 끔찍한 역사에 눈을 감고, 공산주의자들의 구미에 맞는 처신을 하며 비위를 맞추는 것이 전교에 무슨 도움이 될지, 매우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특히, 당시에도 중공의 형무소나 집단 수용시설에서 고생하는 성직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이북 지역을 소련의 사회주의 공산군이 진주한 북한 평양을 천주교회 공식기관(한국주교회의 해외선교 담당요원 사제)에 소속된 성직자 신분으로 평양을 최초로 방문한 사제는 1984년 말 고종옥 마태오 신부였다. 당시 고종옥 신부와 동행하기로, 한국주교회의 순교자시복시성 추진위원장 김남수 주교의 허락으로, 사전에 고종옥 신부를 통하여, 북한 당국자의 북한입국 허락을 받아, 서울 김포 공항을 함께 떠난 성직자는, 미국인 메리놀회 함제랄드 신부와, 주교회의 순교자시복시성위원회 총무를 겸하던 한국천주교회 200주년기념사업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국장 변기영 신부였다. 주교회의 담당주교와 국내 담당기관과 북한 담당 기관의 합법적인 사전 허가로 우리 3명의 신부들은 서울 가족들에게 유언서를 써서 보내놓고, 홍콩에서 진주여행사 이성진 사장을 통해, 파리와 모스크바 경우, 평양 행 비행기 표를 매입하였다.
그러나 우리를 마중하러나온 3명 북한 안내원이 기다린다는 파리 샤를르 공항으로 가기 위하여 홍콩에서 파리로 출발 직전, 미국인 함제랄드 신부의 북한 입국은 허락할 수 없다는 북한의 통보를 받고, 함신부는 즉시 귀국하였고, 추계 주교회의 도중에 주교회의 의장 김수환 추기경과 부의장 윤공희 대주교, 총무 겸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의 주교 3자 별도 회의에서, 고종옥 신부와 변기영 신부의 평양 방문계획도 중단하고 취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교회의의 급보가 날아왔다. 그리하여, 103위 시성식에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과 주교들과 교황 집전의 한국역사상 전무한 행사 소식을 북한의 평양 수뇌부에 전달하며, 북한교회에 남한 교회가 할 수 있는 협력사항이 무엇인지, 등을 타진하려던 우리 신부들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소식은 그때나 이때나 변함이 없건마는,,,,글쎄. 이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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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6월 9일, 오전11시부터,교황궁에서 요한바오로2세 성하께서 친히 임석하시는 가운데, 개최된, 한국순교복자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을 위한, 대법관(Romana Rotta Concistori)들과 시성부 위원 대주교들 및 관계 추기경들의 최종 연석 합동회의. 사진은 시성부장관 팔라찌니 추기경의 보고 및 기적심사관면 건의 장면.
1983년 6월 9일, 오전11시부터,교황궁에서 요한바오로2세 성하께서 친히 임석하시는 가운데, 개최된 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을 위한, 대법관(Romana Rotta Concistori)들과 시성부 위원 대주교들 및 관계 추기경들의 최종 합동 연석회의에서 기적심사관면 건의에 적극 찬성하는 위원 대주교들의 발언 장면
1983년 6월 9일, 오전11시부터, 교황궁에서 요한바오로2세 성하께서 친히 임석하시는 가운데, 개최된 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을 위한, 대법관(Romana Rotta Concistori)들과 시성부 위원 대주교들 및 관계 추기경들의 최종 합동 연석회의 중에 시성부장관 추기경의 건의와 위원 대주교의 찬동에 이어 변론을 시작하는 단테변호사의 발언 장면(당일 단테변호사는 3차까지 발언하였다)
1983년 6월 9일, 오전11시부터, 교황궁에서 요한바오로2세 성하께서 친히 임석하시는 가운데, 개최된, 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을 위한, 대법관(Romana Rotta Concistori)들과 시성부 위원 대주교들 및 관계 추기경들의 최종 연석회의 중에 시성부장관 추기경의 건의와 위원 대주교들의 찬동 발언에 강력히 반대발언을 하는 몬시뇰. 이 몬시뇰을 흔히, "마귀의 옹호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1983년 6월 9일, 오전11시부터, 교황궁에서 요한바오로2세 성하께서 친히 임석하시는 가운데, 개최된, 한국순교복자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을 위한, 대법관(Romana Rotta Concistori)들과 시성부 위원 대주교들 및 관계 추기경들의 최종 합동 연석회의에서 기적심사관면 건의에 적극 찬성하는 위원 대주교들의 재발언 장면
1984년 10월 14일 성 베드로 대성당 103위 성인 첫 축일 대미사
-----------교황 평양 방문 초청에 관한 참고 기사--------------
Corea del Nord. «Kim Jong-un vuole invitare papa Francesco a
Pyongyang»
Redaziome Esteri martedì 9 ottobre 2018
Sarà il presidente sudcoreano Moon Jae-in a recapitare al Pontefice una lettera del presidente della Corea del Nord durante l'udienza in Vaticano in programma giovedì 18 ottobre
Il presidente Kim jong-un con il segretario di Stato Usa Mike Pompeo domenica a Pyongyang (Ansa)
Il leader nordcoreano Kim Jong-un ha invitato Papa Francesco a visitare Pyongyang, dicendo che sarà «accolto con calore». Lo ha riferito la presidenza della Corea del Sud, aggiungendo che trasmetterà il messaggio della Corea del Nord al Vaticano. Il presidente sudcoreano Moon Jae-in, infatti, avrà un'udienza con il Papa in occasione della visita in Vaticano del 18 ottobre. «Nel corso dell'incontro con Papa Francesco Moon riferirà il messaggio del presidente Kim Jong-un, che vuol accogliere calorosamente il pontefice», riferisce il portavoce di Moon, Kim Eui-kyeom.
Il direttore della sala stampa vaticana, Greg Burke, ha precisato che l'udienza presso il palazzo apostolico di papa Francesco con il presidente sudcoreano Moon Jae-in è prevista il 18 ottobre alle 12. Il giorno precedente all'udienza, mercoledì 17 ottobre alle ore 18, il segretario di Stato vaticano, cardinale Pietro Parolin, presiederà nella basilica di San Pietro una “Messa per la pace” nella penisola coreana a cui parteciperà lo stesso presidente sudcoreano Moon.
Il portavoce vaticano Burke, a chi gli chiedeva se il Papa accetterà l'invito, ha risposto: «Aspettiamo che prima arrivi questo invito».
Moon ha infatti in programma un tour di nove giorni in Europa dal 13 al 21 ottobre che farà tappa in Francia, Italia e Danimarca, oltre che in Vaticano. Durante il suo più recente faccia a faccia con Kim - una visita a Pyongyang il mese scorso - Moon è stato accompagnato dall'arcivescovo sudcoreano Hyginus Kim Hee-joong. Durante una conversazione con l'arcivescovo in visita, Kim lo ha esortato a far sapere al Vaticano la sua intenzione di costruire la pace. Questo invito al Pontefice è l'ultimo di una serie di gesti conciliatori del giovane leader nordcoreano, compreso il summit con il presidente degli Stati Uniti Donald Trump a giugno. Durante il summit del mese scorso, Kim ha confermato la volontà di alleviare le tensioni militari sulla penisola, ma è rimasto vago sulle misure per smantellare il suo temibile arsenale atomico.
Per quanto riguarda la situazione dei cristiani, in Corea del Nord la libertà religiosa è sancita dalla Costituzione, ma tutte le attività religiose sono soggette a rigide restrizioni e completamente bandite al di fuori delle istituzioni ufficiali. All'inizio del XX secolo, prima della divisione della penisola, Pyongyang era un centro missionario regionale con decine di chiese e una fiorente comunità cristiana che era definita «Gerusalemme dell'Est». Ma Kim Il Sung, il defunto capo fondatore della Corea de Nord, nonno dell'attuale sovrano, considerava il cristianesimo come una minaccia al suo dominio autoritario e lo sradicò con esecuzioni e deportazioni. Il regime del Nord della Corea da allora ha permesso alle organizzazioni cattoliche solo di gestire progetti umanitari nel Paese impoverito, ma i rapporti diretti con il Vaticano sono inesistenti. Quando Papa Francesco ha visitato la Corea del Sud nel 2014, ha organizzato una Messa speciale a Seoul dedicata alla riunificazione delle due Coree. Un sondaggio del 2014 condotto da Korea Gallup ha mostrato che il 22% dei sudcoreani si identifica come buddhista, mentre quasi il 30% è cristiano.<© Riproduzione riserva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