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과 종교
[삶과 종교] 바보들의 콧노래 ‘바보 타령’
변기영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9.01.30 22면
거짓인 줄 알면서도 따라가고, 속이는 줄 알면서도 속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바보나, 천치라고도 한다. 남들이 자신을 바보라고 하면 화를 낼 텐데, 불쾌하게 여길 줄도 모르면 정말 바보가 아닐까? 몇 년 전 모 일간지의 대기자 한 분이, 비록 교육적인 좋은 뜻에서지만, 필자를 전직 모 대통령과 김추기경과 함께 바보라고 부르며 쓴 글이 있었다. 바보라는 소리에 우선 못마땅하게 느꼈지만, 유명한 분들과 같은 바보반열에 올리면서도(?) 좀 차별화하여, 과분한 영예로 여기려는 자신이 진짜 바보라는 확증이 아닐까?
그러나 이런 바보 신부의 말을 듣고, 성당에 다니며,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 건립에 성금을 바치는 신자들도, 혹시 ‘바보 신자들’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이런 바보 신부와 바보 신자들이 있는 오늘의 한국천주교회도 바보 신자들의 천주교회가 아닐까?
특히 103위 성인들 추모 대성당 없이, 아직도 100여 년 전 프랑스신자들이 지어 준, 1천 500여 명 수용하는 420여 건평의 구호물자(?) 대성당뿐이라, 우리 손으로 우리식 큰 성당 하나 짓는 일에도 무관심한 이들은, 저런 구호물자 성당조차도 과만한 바보 신자들이 아니랴!
바보의 특징 중에는 반성을 모른다는 것인데, 이 어찌 정치적 선거 마당에서만 보는 바보 현상이랴?
김추기경님이 자화상과 함께 자신은 바보라고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모 대통령 역시, 스스로 자신을 ‘바보’라고 공언한 적이 있다지만, 필자는 스스로를 바보라고 말하거나 글로 쓴 적이 없음을 되새기며 생각하는 자체가 마치 술에 만취할수록 자신은 절대로 술에 취하지 않았다고 우겨대듯, 스스로가 바보인 줄도 모르고 자신은 바보가 아닌 체하며 사는 것이 바로 자신이 진짜 바보라는 실증이 아니랴?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와서, 주책을 바가지로 떨면서 떼 지어 몰려다니는 뻔돌이들의 마당이 어찌 정치계의 선거 현장이나 돈주머니 흔드는 투전판에서 뿐이랴? 속고 속으면서도 으스대는 바보 배우들 간의 억지웃음과 악수는 바보회 종신회원으로 추대되는 것이 아니랴?
남들이 그어놓은 38선으로 고희를 넘기는 분단의 ‘바보 나라’, ‘바보 국민들’이 이제 또, 국내외에서 ‘영수회담 추진’이다! ‘남북통일 추구’다! ‘북한 비핵화 담판’이다! 하지만, 문명의 격차가 사상으로 격돌하는 소리가 혹시라도 전란의 포성으로 급변하지 않길 빌면서, 바보들의 가냘픈 메아리 저 너머에서 펄럭이는 깃발 사이의 야단(野壇)과 법석(法席) 가설무대만을 바라볼 뿐이지만, 무력하고 무능한, 우리 바보 나라 民草들도 이제는 죽을 힘 다하여 한마디 기도만은 바칠 수 있어야 하지 아니하랴!?
“하느님이 보우하사, 이런 회담에 모이는 바보 나라 쌍방 대표들 생각대로 아무것도 되지 말고, 이들을 불러 모으시는 하느님의 뜻이 온 인류가 바라는 합당한 소원과 함께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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