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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순이 된 시골 공소 낙락장송이 생전 처음 호강하느라고(?)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을 냈다.(2019.10.12.토요일),
이제 내년부터 공소를 방문하는 손님들로부터,'비록 한 아름이 넘는 굽은 주름살로 평생을 살면서 그대로 풍상을 겪고 있는
공소 마당의 저 늙은 소나무도 이발을 좀 해주어야 하겠군요!' 하는 소리를 면할것 같다.!
사진 좌로부터 장희복 공소 회장,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 이승화 유자격 전문 조경사, 김상영 루카, 변기영 몬시뇰, 진선숙 아녜스 조경단장, 권웅길 요셉 관리장, 구창모 가롤로. 등이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온 종일 조경 이발 후 변기영 몬시뇰이 곡수리 주변 식당에서 사골떡만두국으로 저녁식사를 대접하였다.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늙은 낙낙장송이 모양을 내어 보기도 좋겠지만 풍우대작에도 건물들이 안심을 하게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로다!)".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
(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할아버지 소나무가 이발하는 날, 손자 손녀 소나무 2 그루도 이발을 하였다.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위험한데, 조심 조심 !!!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들.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할아버지 소나무가 이발하는 날, 손자 손녀 소나무 2 그루도 이발을 하였다.
제목 |
80여세의 낙락장송이 난생 처음, 모양을 내려고,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이발하던 날.(2019.10.12.토요일), |
글쓴이 |
Msgr. Byon 작성일 : 2019-10-18 (조회 : 2) |
내용 |
8순이 된 시골 공소 낙락장송이 생전 처음 호강하느라고(?)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을 냈다.(2019.10.12.토요일),
이제 내년부터 공소를 방문하는 손님들로부터,'비록 한 아름이 넘는 굽은 주름살로 평생을 살면서 그대로 풍상을 겪고 있는
공소 마당의 저 늙은 소나무도 이발을 좀 해주어야 하겠군요!' 하는 소리를 면할것 같다.!
사진 좌로부터 장희복 공소 회장,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 이승화 유자격 전문 조경사, 김상영 루카, 변기영 몬시뇰, 진선숙 아녜스 조경단장, 권웅길 요셉 관리장, 구창모 가롤로. 등이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온 종일 조경 이발 후 변기영 몬시뇰이 곡수리 주변 식당에서 사골떡만두국으로 저녁식사를 대접하였다.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늙은 낙낙장송이 모양을 내어 ,보기에도 좋지만, 풍우대작에도 건물들이 안심을 하게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
"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로다!)".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할아버지 소나무가 이발하는 날, 손자 손녀 소나무 2 그루도 이발을 하였다.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
(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들.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들.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들.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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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세의 낙락장송이 난생 처음, 모양을 내려고,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이발하던 날.(2019.10.12.토요일), |
글쓴이 |
Msgr. Byon 작성일 : 2019-10-18 (조회 : 2) |
내용 |
8순이 된 시골 공소 낙락장송이 생전 처음 호강하느라고(?)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을 냈다.(2019.10.12.토요일),
이제 내년부터 공소를 방문하는 손님들로부터,'비록 한 아름이 넘는 굽은 주름살로 평생을 살면서 그대로 풍상을 겪고 있는
공소 마당의 저 늙은 소나무도 이발을 좀 해주어야 하겠군요!' 하는 소리를 면할것 같다.!
사진 좌로부터 장희복 공소 회장,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 이승화 유자격 전문 조경사, 김상영 루카, 변기영 몬시뇰, 진선숙 아녜스 조경단장, 권웅길 요셉 관리장, 구창모 가롤로. 등이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온 종일 조경 이발 후 변기영 몬시뇰이 곡수리 주변 식당에서 사골떡만두국으로 저녁식사를 대접하였다.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늙은 낙낙장송이 모양을 내어 보기도 좋겠지만 풍우대작에도 건물들이 안심을 하게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
"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로다!)".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
(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할아버지 소나무가 이발하는 날, 손자 손녀 소나무 2 그루도 이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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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세, 만 8순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들.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나무 아래서 보기와는 다른 위험한 난공사였읍니다.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들.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들.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제목 |
80여세의 낙락장송이 난생 처음, 모양을 내려고,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이발하던 날.(2019.10.12.토요일), |
글쓴이 |
Msgr. Byon 작성일 : 2019-10-18 (조회 : 2) |
내용 |
8순이 된 시골 공소 낙락장송이 생전 처음 호강하느라고(?)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을 냈다.(2019.10.12.토요일),
이제 내년부터 공소를 방문하는 손님들로부터,'비록 한 아름이 넘는 굽은 주름살로 평생을 살면서 그대로 풍상을 겪고 있는
공소 마당의 저 늙은 소나무도 이발을 좀 해주어야 하겠군요!' 하는 소리를 면할것 같다.!
사진 좌로부터 백발의 장희복 공소 회장,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 이승화 유자격 전문 조경사, 김상영 루카, 사고예방 자칭 감독관 변기영 몬시뇰, 진선숙 아녜스 조경 단장, 권웅길 요셉 양평봉당 관리장, 구창모 가롤로. 등이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온 종일 조경 이발 후 변기영 몬시뇰이 곡수리 주변 식당에서 사골떡만두국으로 저녁식사를 대접하였다.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늙은 낙낙장송이 모양을 내어 보기도 좋겠지만 풍우대작에도 건물들이 안심을 하게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
"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로다!)".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할아버지 소나무가 이발하는 날, 손자 손녀 소나무 2 그루도 이발을 하였다.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
(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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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들.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이
제는 만천풍우 독무수! 로다.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들.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이제는 만천풍우 독무수! 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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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들.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위험하고 힘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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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세의 낙락장송이 난생 처음, 모양을 내려고,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이발하던 날.(2019.10.12.토요일), |
글쓴이 |
Msgr. Byon 작성일 : 2019-10-18 (조회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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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순이 된 시골 공소 낙락장송이 생전 처음 호강하느라고(?)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을 냈다.(2019.10.12.토요일),
이제 내년부터 공소를 방문하는 손님들로부터,비록 한 아름이 넘는 굽은 주름살로 평생을 살면서 그대로 풍상을 겪고 있는
공소 마당의 "저 늙은 소나무도 이발을 좀 해주어야 하겠군요!" 하는 소리를 면할것 같다.!
사진 좌로부터,백발의 장희복 공소 회장,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 이승화 유자격 전문 조경사, 김상영 루카, 안전 자칭 감독관 변기영 몬시뇰, 진선숙 아녜스 조경단장, 권웅길 요셉 양평본당 관리장, 구창모 가롤로. 등이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온 종일 조경 이발 후 변기영 몬시뇰이 곡수리 주변 식당에서 사골떡만두국으로 저녁식사를 대접하였다.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늙은 낙낙장송이 모양을 내어 보기도 좋겠지만 풍우대작에도 건물들이 안심을 하게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
"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로다!)".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할아버지 소나무가 이발하는 날, 손자 손녀 소나무 2 그루도 이발을 하였다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
(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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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들.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들.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좌로부터 장희복 곡수공소 회장, 양평성당 유자격 조경 봉사자 이승화 전문 조경사, 김상영 루카, 변기영 몬시뇰, 진선숙 아녜스 조경단장, 권웅길 요셉 관리장, 구창모 가롤로.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봉사), 조경 후 변기영 몬시뇰이 곡수리 주변 식당에서 사골떡만두국으로 저녁식사를 대접하였다.
제목 |
80여세의 낙락장송이 난생 처음, 모양을 내려고,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이발하던 날.(2019.10.12.토요일), |
글쓴이 |
Msgr. Byon 작성일 : 2019-10-18 (조회 : 2) |
내용 |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늙은 낙낙장송이 모양을 내어 보기도 좋겠지만 풍우대작에도 건물들이 안심을 하게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
"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로다!)".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80여세의 낙락장송이 처음으로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모양내던 날.(2019.10.12.토요일), 1950년 6.25 사변 후,이듬해 1951년 1.4 후퇴 이후, 작은 초가 3칸 오두막집 시골 공소 뒷동산 기슭에 서있던 장정 키 만한 10여년 남짓한 이 소나무를,지금은 고인들이 된 김복수,이영수,등 이 공소 창설의 주역들이 한번 옮겨 심은 것을 현재의 공소 건물 성당과 교육관을 세우면서 기억 자(ㄱ자) 한 가운데다 다시 옮겨셔,온갖 가난과 풍상을 다 겪으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이거나 태풍이 심히 불어 흔들어대면 이기지를 못하고 견디다 못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이제는 김병연 김사갓의 시문처럼,"하늘에 가득찬 비와 바람과 폭설에, 홀로 근심이 없게 되었도다
(만천풍우 독무수!)".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할아버지 소나무가 이발하는 날, 손자 손녀 소나무 2 그루도 이발을 하였다.
8순이 된 시골 공소 낙락장송이 생전 처음 호강하느라고(?)
5명의 조경사들로부터 무사히 모양을 냈다.(2019.10.12.토요일),
이제 내년부터 공소를 방문하는 손님들로부터,'비록 한 아름이 넘는 굽은 주름살로 평생을 살면서 그대로 풍상을 겪고 있는 공소 마당의 저 늙은 소나무도 이발을 좀 해주어야 하겠군요!' 하는 소리를 면할것 같다.!
사진을 바라보면서, 좌로부터 백발의 장희복 공소 회장, 양평성당 조경 봉사자, 이승화 유자격 전문 조경사, 김상영 루카, 자칭 안전 감독관 변기영 몬시뇰, 진선숙 아녜스 조경단장, 권웅길 요셉 양평본당 관리장, 구창모 가롤로. 등이 2019.10.12.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온 종일 조경 이발 후 변기영 몬시뇰이 곡수리 주변 식당에서 사골떡만두국으로 저녁식사를 대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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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큰 사람 밑에 가서 살아야, 큰 사람한테서 큰사람 덕을 보게되어, 하다못해 잔 벼슬 감투라고 얻어
쓰게 되지만, 나무는 큰 나무 밑에서 자라면, 큰 나무한테서 피해를 입어, 햇빛도 제대로 받지를 못해서, 작은 나무는 제대로 자라지도 못한다는 시골 민초들의 속담이 있어서, 큰 느티나무 아래서는 잔디조차 살지 못한다.
어려서 자랄 때는 같이 자라지만, 좀 크면서는 큰 나무 피해가 치명적이다.
8순을 넘기는 곡수리 공소 낙낙장송도, 소나무 아래 영산홍 15주가 최근에는 4월의 붉은 꽃송이도 이제
매우 작아졌고, 줄어들었다. 뿐 아니라 늙은 장송에게도 피해가 적지 않다. 이 해가 저물기 전에, 뜰아래로
이사를 시켜야 할텐데, 어디서 봉사자들을 구하랴? 마사토 모래같은 토질이라 삽질은 쉽겠지만.
지난 번 이 소나무가 이사올 때, 신축 공소 건물 외벽에서 겨우 2~3 미터 띠어서 심었는데, 큰
뿌리나무는 큰 건물이나 무덤 가까이에는 심지 않는 것인데, 1.4 후퇴 이후, 가난이 자갈처럼 깔린
시골에서 그나마 새로 지은 성당이 외로우랴 소나무로 장식하고, 혹시라도 수입을 볼까하고 교우들이
잣 나무들을 많이 심었으나, 잣이 열리기가 무섭게 날다람쥐가 따가고 고생들만 하였다.
그러나 이 8 순의 낙낙장송도 3년 전에 바로 아래 하느님의 종, 권철신, 권일신 2 분 순교 선조들의
기념비석이 세워졌고, 교황대사 대주교님과 교구장 이용훈 주교님이 오셔서 축성하셨으니, 시복확정
희소식을 기다리며, 기념성당 마련을 위하여, 난생 처음 미리 이발을 주선하였답니다.
- Msgr. By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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