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303 , 전쟁이 나더라도, 天主님께 대한 신앙과 신뢰심으로, 평화를 잃지 말고,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 몬시뇰 글-2016-07-10, 조회 1155
전쟁이 나더라도,핵폭탄이 터지더라도, 우리 모두
天主님께 대한 신앙과 신뢰로, 평화를 잃지 맙시다!
No.303 | 몬시뇰 글-2016-07-10, 조회 1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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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나더라도, 天主님께 대한 신앙과 신뢰로,
핵폭풍 전야가 오더라도, 평화를 잃지 맙시다!
天主님께 대한 신앙과 신뢰심으로, 전쟁이 나더라도, 핵폭풍 전야가 오더라도 평화를 잃지 맙시다! 교황님께서는 TV를 거의 보시지 않는다고 어느 기자의 질문에 답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최근 매일 같이 시간마다 가공할 핵무기 언급과 세계 대전을 전제한 장거리 유도탄 시험발사와 방어무기 소식, 국내외의 지진과 태풍과 홍수 ! 이슬람 무장단의 끔찍한 자살폭탄 테러와 미국 사회의 끊이지 않는 무차별 총격사건, 게다가 국내에서도 무차별 무작위의 흉악한 사건들 ! 더욱이 중국 문화혁명을 되새기게 하는 무경오(無經緯)의 횡포가 정계와 일부 종교계에서까지 도를 넘는 현실이 날로 더해가고 있습니다.
전쟁은 군인들이 시작하거나, 정치인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대 백성들이, 특히, 그 시대 지성인들 중에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의 죄악이 차고 넘치면, 하느님도 막지 못하는 것이 전쟁입니다.
(악관이 약만이면 천필주지니라.-익지서 -惡鑵若滿 天必誅之- 益智書).
주후 72년 경 이스라엘 처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나 일본침약(한일합방) 때처럼, 지금 우리나라 사회와 교회의 실상이 이러한 지경인데, 전란이 나지 않는 것이 주님의 기적이오, 주님의 은총이며, 우리 신앙의 순교 선조들의 도우심입니다. 전란이 난들 이보다 더할까? 신전에서 왕하는 무신론 세력들의 함성으로, 신도 거할 수 없는 처지라면, 이보다 더 큰 난리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아무리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가리며 겹겹이 짙게 덮어 내리고, 우박과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심하게 휩쓸며 불고 가도, 이 바람과 저 구름 위의 맑고 밝은 푸른 하늘은 변함 없이 우리를 지키며 보고 있듯이, 天主님께서는 우리를 참새 한 두 마리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고,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결코 잊지 않으시고 챙기십니다.
최근 이란과 미국의 전쟁이 점점 일촉즉발의 형국입니다. 아니 이미 미 이란 전쟁이 시작된 느낌입니다. 사실, 핵무기와 무기 비핵화의 전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은 생각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강건너 불 구경하듯, 남의 일이 아닙니다. 핵무기 신앙으로 자유불감증에 걸려서 시시각각으로 전운이 짙어지는 삼천리 강산에서, 국민들은, 아니, 신도들도, 더욱이, 일부 지도층 인사들도 오락과 유흥과 사치와 향락에 젖어서, 성당이 텅텅 비어 있게 만들고 있지 않는지 !?
지금 우리는 신앙으로 살아야 하는 시국입니다.신뢰를 잃지 말아야 할 시기입니다. 우리 앞에서 원자폭탄이 터지더라도,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기로 합시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하겠지만, 어느날 가족들이 아침을 먹으려는 순간, TV를 보던 초등학교 3, 4학년 꼬마가,
“엄마, 전쟁이 났대요, 할무니, 정말 난리가 났대요!” 하는 소리에, 출근 준비로 옷을 갈아 입던 남편도, “뭐 ? 드디어 ! 기어코 ! 전쟁이 났구나!”하며, 부인에게, “빨리, 간단히 짐을 꾸려서 챙겨가지고, 어머님 모시고, 아이들 데리고, 시골로 내려가도록 해요 ! 나는 회사에 들려서, 직원들하며, 급한 일하며, 우선 처리하고 바로 갈테니!” 하며, 일시에 집안에도 집안 난리가 나게 해서는 안됩니다.
늘 기도하며 평화로이 차분하게 살고 있는 부인이, 커피와 라면을 차려오며, “얘들아, 어서 앉아서 아침 먹자 !”, “커피 식기 전에 어서 마시고, 아침을 잡수십시다!", 하며, 조금도 당황하거나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평소와 다름없이, 가족들이 모두 아침식사를 잘 하게 하는, [신앙있는 부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훗날, 저 꼬마들이 모두 자라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새로 태어나 자라나는 어린 손자 손녀들을 무릎에 앉치고, 그 옛날 그 무서운 전쟁이 나던 날 아침 이야기를 하면서,
“그 무서운 전쟁이 나던 날 아침에, 내가 너희만한 어린이었을 때, 전쟁 발발 보도에 우리가 모두 놀라고 겁에 질려, 당황하며 혼비백산할 때, 너희 증조할머니께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전 날 아침처럼, 그 때 우리 온 가족이 모두 앉아서, 모두 기도하며, 평화로이 아침 식사를 하게 하셨단다 ! 그 전쟁 통에 돌아가셨지만!,,,"
天主님께 대한 신앙으로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天主님의 사랑과 안배를 신뢰하면서, 이 시국을 살아갑시다. 공산주의 사상으로 다스리는 나라들의 핵무기와 군사력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강대국들의 무기와 국제 협약을 너무 믿지 맙시다. 天主님을 믿는 신앙심으로, 하루하루를 평화로이 굳세고 바르고, 용감하게 살아갑시다. 天主님은 우리 편이십니다.
No.303 , 전쟁이 나더라도, 天主님께 대한 신앙과 신뢰심으로, 평화를 잃지 말고,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
몬시뇰 글-2016-07-10, 조회 1155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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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 설마 난리가 나랴 ?
글 : Msgr. Byon
[삶과 종교]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7년 12월 12일 20:26 발행일 2017년 12월 13일 수요일 제22면 에서 퍼온 글의 원고 제약본에 본 원고 초안 일부 추가본.
그러나 전쟁은 통치권자들의 결정이나 정치인들의 합의로 군인들이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그 지역 백성들의 죄악이 천지간에 차고 넘치면 하늘도 말리지 못하고 막지 못하여, 인간들이 자청하는 천벌이다. 악하고 독한 사람들이 이렇듯 많으니, 어떻게 난리가 아니 나랴? 결국 전쟁발발을 정치외교 문제로 보다는, 타락한 국민 다수의 윤리 문제로 본다.
성탄절만이라도 남북한 우리 민족 모두에게 하느님의 참 평화가 내리기를 기도하자. 2천년 전 첫 성탄절 때, 베들레헴 주막집 마구간 말구유에 하느님의 아들이 아기 예수님으로 성탄하시던 날 밤,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부르는 노래가 하늘과 땅 사이에 울려 퍼졌는데, 그 의미와 교훈은 善과 平和의 메아리였다. “존경과 영광과 찬미는 천상에 계신 하느님께 드려야 하리로다! 지상에서는 마음이 착한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도다!” (Gloria in altissimis Deo, et in terra pax hominibus bonae voluntatis. Editio Vulgatae, Luc. Caput II, art. 14)
평화는 칼과 돈이 있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마음이 겸손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것이다. 또한 존경과 영광과 찬미는 왕이나 황제 같은 사람들에게 드릴 것이 아니라, 천상에서 진리와 사랑과 정의로 우리를 평화로이 보살피시는 하느님께 드려야 하리라.
그러나 핵폭탄과 장거리 미사일, 특히, UN과 미국과 북한이 싸움판 앞에 나와서 으르렁거리는 폭언을 들으면서, 실제로 일어나는 전쟁은 결코 대한민국만의 南北전쟁일 수가 없고, 南北韓과 美中日, 5개국만의 전쟁도 아닐뿐더러, 제3차 세계대전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는 예감이 든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니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거부하고, 불허한다고, 전쟁을 기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로, 세계 인류 문명을 초토화시키는 그 피해규모와 결과 때문에, 불가피하게 전 세계가 들러붙게 되어 있다. 구한국 말처럼,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사변과는 상반되는 현실과 결과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더욱이 1세기 전, 청일(淸日)전쟁이나, 일로(日露)전쟁 때, 朝鮮의 입장보다 더 난처한 처지가 지금이 아닐까? 하지만, 이번 전쟁은 유물론 공산주의 사상과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최종 결전장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남북통일을 위하여 남한의 공산화를 주장하는 시도와 선전 자체가 천만 부당한 것이다. 남북통일과 남한의 共産化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동포들을 들볶던 남북통일 전쟁의 핑게와는 달리, 만일에라도 이번 전란이 일어나더라도, 남북통일은 더욱 멀어지고, 휴전선의 이동으로 끝나는 자업자득의 민족상잔의 비극 반복일 뿐이다. 그 이유는 칼과 돈을 집결시키며,국제적인 싸움 전문꾼들을 불러모으고,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신무기 대목장과 시험장이 열리는 곳에, 당연히 고객들이 집결하게 되어 있다.
성탄절만이라도 남북한 우리 민족 모두에게 하느님의 참 평화가 내리기를 기도하자. 2천년 전 첫 성탄절 때, 베들레헴 주막집 마구간 말구유에 하느님의 아들이 아기 예수님으로 성탄하시던 날 밤,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부르는 노래가 하늘과 땅 사이에 울려 퍼졌는데, 그 의미와 교훈은 善과 平和의 메아리였다. “존경과 영광과 찬미는 천상에 계신 하느님께 드려야 하리로다! 지상에서는 마음이 착한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도다!” (Gloria in altissimis Deo, et in terra pax hominibus bonae voluntatis. Editio Vulgatae, Luc. Caput II, art. 14)
평화는 칼과 돈이 있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마음이 겸손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것이다. 또한 존경과 영광과 찬미는 왕이나 황제 같은 사람들에게 드릴 것이 아니라, 천상에서 진리와 사랑과 정의로 우리를 평화로이 보살피시는 하느님께 드려야 하리라.
그러나 핵폭탄과 장거리 미사일, 특히, UN과 미국과 북한이 싸움판 앞에 나와서 으르렁거리는 폭언을 들으면서, 실제로 일어나는 전쟁은 결코 대한민국만의 南北전쟁일 수가 없고, 南北韓과 美中日, 5개국만의 전쟁도 아닐뿐더러, 제3차 세계대전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는 예감이 든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니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거부하고, 불허한다고, 전쟁을 기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로, 세계 인류 문명을 초토화시키는 그 피해규모와 결과 때문에, 불가피하게 전 세계가 들러붙게 되어 있다. 구한국 말처럼,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사변과는 상반되는 현실과 결과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더욱이 1세기 전, 청일(淸日)전쟁이나, 일로(日露)전쟁 때, 朝鮮의 입장보다 더 난처한 처지가 지금이 아닐까? 하지만, 이번 전쟁은 유물론 공산주의 사상과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최종 결전장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남북통일을 위하여 남한의 공산화를 주장하는 시도와 선전 자체가 천만 부당한 것이다. 남북통일과 남한의 共産化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동포들을 들볶던 남북통일 전쟁의 핑게와는 달리, 만일에라도 이번 전란이 일어나더라도, 남북통일은 더욱 멀어지고, 휴전선의 이동으로 끝나는 자업자득의 민족상잔의 비극 반복일 뿐이다. 그 이유는 칼과 돈을 집결시키며,국제적인 싸움 전문꾼들을 불러모으고,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신무기 대목장과 시험장이 열리는 곳에, 당연히 고객들이 집결하게 되어 있다.
지금 또다시 불씨가 된, Jerusalem의 경우, 이미 주후 72년 경, 로마 대제국의 가장 막강한 제7 기마군단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하던 Titus 장군이 난공불락의 도성으로 자신하던 예루살렘을 완전 파괴하면서, 당시 유태인들에게 외쳤다. "하느님을 공경한다는 이 놈들아, 내가 바로 하느님의 도리깨다. 하느님의 도리깨 맛을 좀 보거라" (Flagellator Dei, Ego sum ,,,).종교인들의 신앙 때문에 전란이 피해 가지는 않는다. 세계 1,2차 대전 때, 유롭에 신부,수녀, 목사들이 없었는가!? 260 여분의 교황님들 중에 60%~70%가 전란으로 구속되고, 유배되고, 처형당하여, 순교하였다. 허기야, 교회 창립자 예수님과 그 대리자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대부분의 교황님들이 순교하였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아기 예수님이 성탄하신 마구간과 말구유가 없는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는 없다. 우리 각자를 기다리는 우리 자신이 성탄할 마구간 말구유로 내려가 보자. 거기에는 인류의 대량 살상무기가 보이지 않는 평화가 있다.
성탄하는 인생, 성탄하는 가정, 성탄하는 사회는 불화와 충돌과 전쟁이 멀리 사라지고 평화가 깃들어 있다. 사회 모든 분야 어디에서나, 우리는 성탄할 특은을 받은 자들이다. 올라가는 용기도 필요하고, 돌아가는 지혜도 도움이 되겠지만, 내려가는 겸손은 꼭 있어야 한다.
가정에서의 善과 평화는 母女의 관계며(Bonum et Pax), 사회 어디에서나 진실과 정의는 父子의 관계다(Veritas et Justitia). 인간사회 안에서 정의와 평화의 최저선(Ad minimum)을 법학에서는 ‘正義’라고 하며, 최상의 무한선(Ad maximum)을 신학에서는 ‘愛德’이라고 한다. 그래서 善은 평화의 어머니요, 진실은 정의의 아버지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아기 예수님이 성탄하신 마구간과 말구유가 없는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는 없다. 우리 각자를 기다리는 우리 자신이 성탄할 마구간 말구유로 내려가 보자. 거기에는 인류의 대량 살상무기가 보이지 않는 평화가 있다.
성탄하는 인생, 성탄하는 가정, 성탄하는 사회는 불화와 충돌과 전쟁이 멀리 사라지고 평화가 깃들어 있다. 사회 모든 분야 어디에서나, 우리는 성탄할 특은을 받은 자들이다. 올라가는 용기도 필요하고, 돌아가는 지혜도 도움이 되겠지만, 내려가는 겸손은 꼭 있어야 한다.
가정에서의 善과 평화는 母女의 관계며(Bonum et Pax), 사회 어디에서나 진실과 정의는 父子의 관계다(Veritas et Justitia). 인간사회 안에서 정의와 평화의 최저선(Ad minimum)을 법학에서는 ‘正義’라고 하며, 최상의 무한선(Ad maximum)을 신학에서는 ‘愛德’이라고 한다. 그래서 善은 평화의 어머니요, 진실은 정의의 아버지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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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는 시늉을 하지도 않고,
내가 통곡을 해도 너희는 가슴을 치는 흉내도 내지 못하니,,,
그러면서 병아리 떼는 종,종,종, 누구를 따라 어디로 가고 있느냐?!
축구경기도, TV도 없던 시절,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동네 어린이들은 어른들 따라 장터에 와서 놀면서, 잔치집이나 초상집의 풍경을 보고, 어른들 흉내를 내며, 놀이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휘자연하는 어린이 하나가 피리부는 체 하면, 다른 어린이들은 춤추는 시늉을 하며 흥겨워하는 양하면서 놀고, 문패도 번지 수도 없는 무허가 꼬마들의 가설극단의 순서를 바꾸어, 주연 배우 꼬마가 서글프게 통곡하는 소리를 내는 체하면, 다른 어린이들은 가슴을 치며 애통해 하는 흉내를 내면서 해지는 줄 모르고, 하는 놀이였다.
그런데, 피리 소리나 통곡 소리에 걸맞는 시늉을 안하거나, 흉내를 내지 못하는 동무들을 보면서, 주연배우 겸 연극 감독관 꼬마는 김이 새고, 맥이 빠지게 되어, 마침내 투덜대며 꾸짖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정경을 예로 들며, 당시 사회 대중을 향한 예수님의 지적이, 바로 오늘 아침 미사 복음의 요지다.
세자 요한이 10 여세 초반부터 광야에 혼자 머물면서, 속옷도, 겉 옷도 없이, 죽운 낙타 털가죽으로 몸을 가리고, 바위 밑의 풀끝에서 아침 이슬을 빨아 먹으며 생명을 이어가는 메뚜기나 여치나 저녁 귀뚜라미를 잡아먹으며, 어쩌다가 만나는 부석바위 틈에 집을 짖고 날아다니며, 사막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잔 꽃을 찾아서, 천신만고 끝에 얻어 모은 꿀 방울을 모아 놓은 것을 찍어서, 맛을 돋구며, 불로 익힌 음식을 외면한 채, 원시적인 生食을 하여, 고신극기로 피골이 상접하였던, 20대의 세자 요한은 마침내 시원한 물이 있어서, 자신도 씻고, 다른이들도 씻겨주는 젊은 도사님으로서, 요르단 냇갈 가에 내려왔다.
그런데, "이 독사의 종류들아!,," 하면서, 바르고 쓴 말을 거침없이 토하는 세자 요한이 목이 메도록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당시 사회 대중들은 세자 요한에 대하여, 얼빠진 헛소리를 지르다가 지칠거라고 치부하며 왕따시켰다. 한편 이스라엘을 점령한 로마 대제국에 바치는 세금을 동포들한테서 거두어 떼어 먹으며 앞잡이로 살면서, 동족의 피를 빨아먹고 비만증에 걸린 세무서 직원들의 집에도, 젊은 예수님은 인간 차별하지 않고, 자처하여 들어가서 좋은 식사 대접도 거절하거나 싫어하지 않았고, 특히, 소문난 바람둥이 여성이 흘리는 눈물로 발을 씻어 주는 것도 거절하지 않고, 그냥 버려두는 예수님에 대하여, 당시 내노라 하며, 기침께나 하는 사회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민족사상과 사회 윤리의식이 매우 부족한 함량 미달의 젊은 도사에 불과하다고 비웃으며 비평하였다.
세자 요한은 사상적으로 과도한 고신극기의 근본주의 과격파라고 비판하며 멀리하고, 예수님에 대하여는 세무서 직원이나 바람난 젊은 여성들도 분간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정신과 윤리의식이 결여되어, 정신적으로 궤도이탈한 젊은 도사(?) 급으로 치부하며, 무시하고, 왕따시켰다.
오늘의 미사 복음은 우리에게, 인끼위주의 사회풍토를 휩쓸고 지나가는 회오리 바람을 깨닫게 한다.
격랑의 세월 속에서, 파도는 높고 험할수록, 새로운 파도에 의해서 부서지고 바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파도를 타며, 파도를 믿고 사는 뱃사공이 어디 있으랴!? -Msgr. Byon
Betrayers' voice ! Bene currit sed extra viam!
언론폭력과 언어폭력이 지배하는 背信의 忘德 時代社會에서,,,!
언론폭력과 언어폭력,
폭력사상의 폭력정치, 폭력사회와 신앙인의 순교는!
善과 平和 (bonum et pax), 眞과 正義 (verum et justum)가 滅種되지 말아야 할텐데!
착함과 평화는 母女관계고, 참됨과 옳음은 父子관계다.
有能하고, 有識하고, 有力한 사람들보다도, 善良하고 仁慈한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한 시대다.
착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 가난과 멸시도 좀더 쉽게, 가볍게, 즐겁게 이겨나갈 수 있다.
진솔하고 옳바른 사람들이 사회를 바로잡아 나가며, 사람 사는 사회로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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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의 날에, 무혈의 순교자 성모님의 일생을 되새기며,,,.
언론폭력과 언어폭력,
폭력정치와 정치폭력,
폭력사회와 신앙인의 순교는!
광란의 시대에 폭력언어를 되새겨 본다.
언론 폭력과 언어폭력 ! / 폭력 언어와 폭력 언론! / 사법 폭력과 폭력 법치 ! /
폭력 정치와 정치 폭력! / 행정 폭력과 폭력 행정! / 종교 폭력과 폭력 신앙! / 배신의 폭력 !
폭력 사회와 사회 폭력! / 개인 독재와 다수의 폭력 ! / 다수의 폭력과 폭도 사회! /
사회 폭력과 사회 정의 ! / 정의사회와 폭력의 광란 ! / 背信 狂亂의 人間群像 !
폭력과 순교 !무혈의 순교와 성모님의 일생 !
言論暴力과 言語暴力, 暴力이 亂舞하는 狂亂의 時局에,
暴力 政治와 政治 暴力! / 行政 暴力과 暴力 行政! / 言語 暴力과 言論 暴力! / 暴力 言語와 暴力 言論! / 司法暴力과 暴力 法治! / 宗敎暴力과 暴力 信仰! / 暴力社會와 社會暴力! / 個人獨裁와 多數의 暴力 ! / 多數의 暴力과 暴徒 社會! / 社會暴力과 社會 正義 ! / 正義社會와 社會正義 ! / 民衆暴力과 暴力革命 ! / 含血吩人, 先汚其口 ! / 勸上搖木, 矯角殺牛 ! /
善과 平和 (bonum et pax), 眞과 正義 (verum et justum)가 滅種되지 말아야 할텐데!
착함과 평화는 母女 관계고, 참됨과 옳음은 父子관계다.
有能하고, 有識하고, 有力한 사람들보다도, 善良하고 仁慈한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한 시대다.
우리가 지금 이만큼 살아갈 수 있도록 힘껏 애쓰며 일하여 주고 있는,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반면에 참으로 나쁜 국민들도 적지 않다.
도무지 말이 통해야 서로 대화를 할 수 있고,
(語不成說, 言語道斷, 牛耳讀經, 馬耳東風, 燆角殺牛, 勸上搖木, 含血吩人, 先汚其口),
마음이 통해야 한 마음 한뜻으로 함께 살며 단합하여,
통일도 이룩할 수 있지 않으랴?
언론의 자유와 권리에는 진실을 정직하고 공정하게, 공익을 위하여만 보도할 의무와 직분이 전제된 것인데, 허위를 꾸미고, 보태고, 덧붙이고, 늘이고, 침소봉대하고, 도색하며, 진실은 하나뿐인데, 깎고, 가리고, 줄이고, 변질시키며, 변형시켜 전하는 것은 보도의 자유와 권리가 아닌데,,,!
이미 풀어헤치고 쏟아놓은 보따리를 보면,
무슨 말인들 못하며, 무슨 짓인들 아니하랴!!
물에 빠진 자를 건져주면, 고맙다는 인사대신,
오히려 주머니 속에 숨기고 다니던 칼을 빼어 들이대며,
"자네 보따리도 내게 주고 어서 가게!"' 한다더니 !!
참으로 背信의 시대요, 背恩의 집단들이 忘德의 춤을 추는 저녁이다 !!!
흔히 사람들이 가장 하기 쉬운 말이 남을 흉보며 남의 말을 하는 것이고,
가장 쉽게 믿고, 가장 즐겨하며 빨리 전하는 말이 남에 대한 못된 말이다.
남들이 못나고, 틀리고, 나쁘다고 하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남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聖 Francesco Salesio 주교님은 가르쳤다.
"항상 남들에 관하여는 좋게 생각하고, 좋게 말하고, 좋게 대하여 주어라!"
또한, St. Augustinus 주교님도 좌충우돌하며 방황하는 이들에게 말하였다.
"바쁘게 뛰기는 잘 뛰는데, 길 밖으로 달리고 있구나 !
(Bene currit, sed extra viam !"
착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 가난과 멸시도 좀더 쉽게, 가볍게, 즐겁게 이겨나갈 수 있다.
진솔하고 옳바른 사람들이 사회를 바로잡아 나가며, 사람 사는 사회로 만들어 간다.
Msgr. Byon
이제 우리 모두 聖誕하자.
<이제 우리 모두 聖誕하자! 너와 나의 영원하고 무한한 성탄을 위하여 !>
성탄절이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세계에 성탄하셨다.
대궐 안방도 아닌 주막집 마구간 말구유에 聖誕하셨다.
가정마다 직장마다 마을마다
나의 성탄을 요청하며 기다리는 마구간 말구유가 비어있다.
성탄하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는 마을이 곧 베들레헴이고,
성탄하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는 가정이 곧 주막집 마구간이고,
성탄하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는 곳에 바로 아기 예수가 계실 것이며,
그리스도의 평화가 깃들 것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한 때이다.
구세주의 역할을 하는 아기 예수가 나시는
마구간 말구유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좋은 안방 높은 자릴랑 바라보지도 말아라.
그런 곳에는 아무나, 아무나 앉을 수 있다.
마구간 말구유에는 아무나 누을 수가 없다.
성탄은 2000년 전 한번 일어났던 1회성 성탄이 아니다.
너와 나의 성탄은 매일매일 영원한 성탄이며, 무한한 성탄이다.
성탄하는 신앙인, 성탄하는 생활, 성탄하는 인생,
성탄신앙이 내 안에 성탄하는 성탄절이 되게 하자.
2003/12/23/천진암 성지 변기영신부
Writer : 천진암 Date : 2003-12-23 23:33 Hit. 1364 |
無血의 殉敎와 聖母님의 一生 !
善과 平和 (bonum et pax), 眞과 義 (verum et justum)가 滅種되지 말아야 할텐데!
착함과 평화는 母女 관계고, 참됨과 옳음은 父子관계다.
有能하고, 有識하고, 有力한 사람들보다도, 善良하고 仁慈한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한 시대다.
착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 가난과 멸시도 좀더 쉽게, 가볍게, 즐겁게 이겨나갈 수 있다.
진솔하고 옳바른 사람들이 사회를 바로잡아 나가며, 사람 사는 사회로 만들어 간다.
Msgr. Byon
입력 : 201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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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
지금이 어떤 때이며,어느 때인지 모를 수 없는 머리가 있고,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입이 있어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모르려고 한다고, 모를 수 없는 일이 닥쳐 오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때가 아닌가?
무엇이라도 해야 할 때고, 어떻게라도 해야 할 때며, 혼자라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지 않는가?
무섭게 빠른 속도로 우리를 향해서 달려오는
죽음보다 더 무섭고 끔찍한 불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것을 보며, 알고 있는 때가 아닌가?
하다못해 한마디 기도라도 바칠 수 있는 때가 아닌가?
주님께 기도조차 바칠 수 없는 때가 닥쳐오고 있지 않는가?
아니, 주님도 알아뵐 수 없는 절망과 공포의 죽음의 순간이 지체하지 않고, 우리에게 오고 있다!
노아의 홍수를 시작하던 폭우가 아니고,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잿터미로 만든 원자핵무기가 세계 여기저기 도처에서 날아올 준비태세에 돌입한 지금이 아닌가?
주님이 당하신 서글픈 배신자들의 발걸음이 우리 곁을 맴돌며,
그칠 줄 모르는 악의로 우리를 헐값에 팔고자 흥정하며 다투는 소리가 점점 요란하지 않는가?
사람이 사람에게 늑대요 시랑이니,(Homo homini lupus est !),
우리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시랑이들에게 무엇을 바라며 기대하는가?
우리를 기다리는 형장을 향하여, 힘을 내어 걸어가자! 비키고 피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자!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 우리 앞에는 순교 선조들의 발자욱이 피로 얼룩져 있다!
밤새도록 놀림감이 되면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고나서, 유자나무 가지로 엮은 관을 쓰고,
십자가 형틀을 지고서 앞서 가신 주님이 우리를 뒤돌아 바라보시며 위로를 받으시고 힘을 내신다.
수천만명 인간군상들이 불시에 재터미로 바뀌는 것을 막아보기 위하여,
무엇이라도, 어떻게라도, 해봐야 한다.
천주님을 배반한 배신자들의 이목구비가 핵폭탄의 뇌관이 되어,
인류의 대재앙을 재촉하는 이 때,
무엇이라도, 어떻게라도, 혼자서라도,
우리는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라도 주님께 제물로 보태어 드리며,
기도의 예물을 바치자!
Msgr. Byon
善과 平和(bonum et pax), 眞實과 正義(verum et justum)가 滅種되지 말아야 할텐데!
착함과 평화는 母女 관계고, 참됨과 옳음은 父子관계다.
有能하고, 有識하고, 有力한 사람들보다도, 善良하고 仁慈한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한 시대다.
착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 가난과 멸시도 좀더 쉽게, 가볍게, 즐겁게 이겨나갈 수 있다.
진솔하고 옳바른 사람들이 사회를 바로잡아 나가며, 사람 사는 사회로 만들어 간다.
입력 : 2016.11.01
입력 : 2016.11.29
내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는 시늉도 안하고, 내가 통곡을 해도 너희는 가슴을 치는 흉내도 안내고,,,!
입력 : 2016.12.09 오전 11:32:55 / Copyright ⓒ 변기영 몬시뇰 사랑방 Servant Hall of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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