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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의 곡수리 성당, 봄 풍경! <사진 화보> 한 미카엘라,한 마리아 자매 가족들의 순례 기념!

글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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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4월의 곡수리 성당의 봄 풍경 沙右居士紀念書齎와 柳閑堂 權氏 紀念天學房 방문 순례와 斷想!- 
 
서울,한미카엘라,한마리아,이도로테아 자매님 가족의 곡수성당 순례(2017.04.30)
자연 봄꽃이 장식한, 하느님의 종 沙右居士紀念書齎와 柳閑堂 權氏 紀念天學房의 곡수 성당!


서울,한미카엘라,한마리아,이도로테아 자매님 가족의 곡수성당 순례(2017.04.30)


서울,한미카엘라,한마리아,이도로테아 자매님 가족의 곡수성당 순례(2017.04.30)


양평,구마리아 부부 곡수성당 순례,(2017.04.29)


양평,구마리아 부부 곡수성당 순례,(2017.04.29)
北으로는 앞록강과 두만강 변에 20 여만명의 중공군이 집결하고,
南으로는 부산 앞바다에 미국 최대의 핵 잠수함이 입항하고,
東海와 西海에는 대규모 항공 모함들이 집결하여,
결전이 임박했다고(War is imminent,,,), 연일 보도되고 있는데,
이렇게 戰雲이 뒤덮은 강산에도 봄은 오고, 꽃은 만발하였읍니다. 
"깊은 산속에서 생장한 지초와 난초는 꽃이 피면,
찾아와서 보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그 향기가 없지 않다더니,!"
(芝蘭生深林, 無人不無芳 - 老子의 道德經).

겨울을 밀어내며 새 봄의 얼굴이 웃음을 시작하는 곡수성당 봄 풍경(2017.04.12)


겨울에 죽었던 논 밭 둑에 봄이 살아 나오는 곡수성당 봄 풍경(2017.04.13)


벗꽃으로 추운 겨울을 벗기 시작하는 곡수성당에도 봄이 오기 시작하는 풍경(2017.04.14)


부지런한 농부들이 논밭을 갈면서 새 봄이 기지개를 피는 곡수성당 봄 풍경(2017.04.15)


만민을 모으시는 예수 성심상의 곡수성당 봄 풍경(2017.04.15)


부지런한 농부들이 논 밭을 갈아 농사를 시작하는 곡수성당 봄 풍경(2017.04.15)


봄이 깊히 무르익어 가는 곡수성당 봄 풍경(2017.04.15)


벗꽃이 꾸며주는 곡수성당 봄 풍경(2017.04.15)


벗꽃이 지자마자 연산홍이 뒤를 이어 피어나는 곡수성당에도 봄이 오는 풍경소리(2017.04.26), .
300여년 간 5일장이 열리던 곡수의 옛 앞동산에 봉오리를 열기 시작하는 연산홍의 곡수성당 봄 풍경(2017.04.26)


300여년 간 5일장이 열리던 곡수의 옛 앞동산에 봉오리를 열기 시작하는 연산홍의 곡수성당 봄 풍경(2017.04.26)

300여년 간 5일장이 열리던 곡수의 옛 앞동산에 봉오리를 열기 시작하는 연산홍의 곡수성당 봄 풍경(2017.04.26)

만민을 모으시는 예수성심상 아래 연산홍으로 장식하는 곡수성당 봄 풍경(2017.04.26)


만민을 모으시는 예수성심상 아래 연산홍으로 장식하는 곡수성당 봄 풍경(2017.04.26)

만민을 모으시는 예수성심상 아래 연산홍으로 장식하는 곡수성당 봄 풍경(2017.04.26)
 
斷想 ! ************************

지난 해(2016) 4월 초, 처음 곡수리 공소 성당을 다녀갔는데, 6월 20일, 성당 앞에 모심은 논에 뜸북새들이 새벽부터 와서 울어주는 소리는, 나를 어린 시절 고향생각에 젖게 하였다. 마을 노인들 말이, 어디론가 사라졌던 뜸북새들이 수십년만에 돌아왔다고 신기해 하였다. 전에는 없었다던 못 보던 산새들도 곡수리 성당 주변에 날아왔는데, 아마 앵자산에서 나와 같이 살던 산새들이 나를 따라 찾아온듯 하다. 배가  빨간 곤줄박이와 흰 목도리를 하고 노란색 앞치마로 배를 가린 깝쭉 새와, 작은 솔씨를 찾아 다니는 박새, 오목눈이 붉은머리 꼬마 산새와, 청딱다구리 한 쌍도 언제 왔는지, 천진암에서 나보다 약 2, 3주일, 늦게 찾아와 도착하였다. 예부터 산골 처녀가 수백리 밖으로 시집을 가면, 같은 산골 뒷산에 살고 있는 까마귀, 까치, 비들기, 등 산 새 벗들이, 산골 또랑물에 와서 나물 씻던 아가씨가 이사간 동네를 갔다가 온다는 말이 있읍니다. 그래서, 좀 잘 사는 양반 집 딸이 시집갈 때는 위급할 때 친정에 소식을 전하는 비들기를 가마에 태워 기별사로 함께 데리고 간답니다. 새들은 우리 사람들이 모르는 기능과 체력을 가지고 있읍니다.
 
특히, 곡수 앞산길 북쪽 모퉁이 성당 주변에는 처음으로 까치 한쌍이(아마 천진암 연구원에서 해마다 집을 짓던 까치들 중 한쌍이 따라온듯?!) 성모상 앞에까지 와서 앉고 날고 하더니, 여기 와서는 아랫마당가에 있는 전주 위의 변압기 3통 곁에다가 지난 해 10월초부터, 설계도 한장 없이, 무허가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가,  새 참을 주어먹으러 내려 앉은 한마리가 옆집의 마귀같은 검은 고양이한테 잡혀 애처롭게 죽었다. 외톨이가 된 까치가 2,3일을 두고 날아다니며, 깎깎거리며, 울어대다가, 1주일 후, 어디가서 까치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 다시 한쌍이 되어, 금년 1월 초 집이 거의 다 되었을 때, 한전에서 무허가라 철거한다고, 긴 장대로 헐어 버렸다. 감전사고 위험 때문에 불가피하단다.
 
울고불고하던 한쌍 재혼 부부 까치들은 2주일 후, 신축 가옥이 준공 허가 전에 철거된 바로 같은 곳에다가, 엄동설한에도 더욱 부지런히 나무가지를 물어다가 다시 집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집이 거의 다 될 무렵, 한전에서는 제2차로, 철거반이 또 와서 신축 까치집을 또 헐어버렸다.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까치들과의 무허가 철거 2차전도 한전의 완전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도 불쌍한 옹고집 까치부부는 항복하지 않고, 성당 주변을 돌며 날아다니다가, 뒷동산 100여미터 떨어진 곳의 높은 고압선 큰 철탑 중간 층에다가 다시 3번째로 집을 짖기 시작하였다. 나뭇가지를 물고 전보다 3배가 더 높은 고압선 중간층에까지 올라가기 위해서 아랫 층에서 한두 번씩 쉬어서 물고 날아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 3번째 까치집은 철거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전에 진정서를 낼까 하다가, 늙은이가 주책을 바가지로 떨지 말라고 할 것 같아, 애처로운 동정심으로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이제는 나뭇가지를 물고 다니지 않고, 그냥 드나드는 것을 보니, 집안에 도배장판하는 모양이다.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진흙을 물어다가 바르고, 좀 부드러운 헝겁 조각들과 마른 풀뿌리들을 물어나르는듯 하다. 요새는 출입이 뜸한 것을 보니, 아마 알을 낳아 품고 있나보다. 아무쪼록, 까치새끼 몇마리가 날아 나오는 것을 보고 싶으나, 전에는 없었다던 부엉이가 밤이면 내 서재 창문 가까이에까지 종종 와서 울고 가고, 낮에도 꽤 큰 독수리와 새 매들이 우리 앞산 마을 지붕 위를 지나는 것을 보니, 깨어나는 까치새끼들에게 위험이 될 것 같다. 앞뜰 논에는 오래 전부터 온다는 야생 오리떼와 백로, 황새, 왜가리들이 요새도 날마다 마른 논에까지 날아다니며 앉고 뜨고 하는데, 나를 따라 새로 이사온듯한 우리(?) 까치 한쌍은 텃세를 겪으며, 구박과 서러움 속에서나마, 새끼들이 무사했으면,,,! 
 
곡수리 공소 성당 옆의 고압선 철탑 중심층에 설계도 한장없이 불법으로 3번째 무허가 집을 짓는 까치 부부는, 성당 마당가의 낮은 전주에 첫번째 무허가 집을 짓다가, 고양이한테 배우자를 잃고, 잠시 중단하였다가, 어디 가서 다른 새 까치와 재혼한 후 함께 새 부부가 된 후, 전 배우자가 짓던 집을 완공하였는데, 안타깝게도 한전 직원들한테 사정없이 철거를 당하자, 바로 그 자리에 두번째로, 또 불법으로 집을 지었는데, 살기도 전에, 또 철거를 당하자, 이번에는 세번째로 가까운 왼쪽 언덕에 있는 좀 높은 고압선 철탑에 자리를 옮겨, 마침내 집을 다 짓고, 요새는 새끼를 깠는지, 부부가 15분 간격으로 뻔찔 드나드는 걸 보면, 며칠 후, 새 까치 가족들이 날아나올 것 같습니다.
 
대단한 까치부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도 본받을 점이 많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 대성당은 주후 930년에 터닦기 시작을 하여 400여년 후에서야 터가 다 되어, 주후 1,330년에 어렵게도 당시 로마 교황청의 착공 허가를 받아, 건축을 시작한 후, 600여년간 계속하여, 1,925년에 와서야 마침내 준공식을 거행한 신앙심의 결정체를 이루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1,000여년 간 책임 신부들과 신도들이 계속 바뀌면서도 마침내 대성당 건축을 완료한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에게 존경과 찬미를 드립시다 ! 우리나라처럼, 사람이 바뀌면, 계획도 바뀌고, 또 사업도 바뀌는, 일시적인 당대주의 사고방식이 만연한 시대사회에서, 사람은 바뀌어도 정신과 계획과 사업이 연속되는, 연면한 역사의 줄기찬 전승 위에서 쇄신적인 발전으로 역사를 아끼고, 지키고, 가꾸는 보완적인 자질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천진암 성지의 100년계획 한민족 대성당 건립의 현장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 
 
옛날부터, 이웃 수나라, 당나라, 연나라, 금나라, 명나라, 청나라, 등 대륙 세력과 동해 건너 섬나라의 倭寇들이라고 부르던 일본의 임진왜란, 병자호란, 정유왜란, 한일합방, 등 우리나라를 수시로 침략하던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의 무지막지한 국수주의 칼잽이 족들이 연상된다. 그래도 살아남은 후예들이 우리가 아닌가 !
 
- 곡수리 성당에서는 평일과 주일에 항상 오전 8시 30분에 미사가 봉헌됩니다. -
 
붉은 연산홍보다 더 뜨거운 信仰心과 愛國心과 民族愛로 뭉쳐진 殉敎精神으로 하나가 되어, 太極旗와 敎皇廳旗를 앞세우고 나아가자!  하느님이 保佑하사 우리나라 萬歲! 大韓 사람 大韓으로 길이 保全하세!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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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 추가 후기: <산새들의 능력과 의리>
 
반생을 산골에서 살다 보니, 동물들, 특히 새들은 우리 사람들이 지니고 있지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내가 천진암 성지에 아주 입산하던, 40 여년 전, 이웃 박석골의 논다랑이 옛 우물가에서 갖 깨어난 뜸북이 새끼 일곱마리를 직원들이 줏어왔는데, 며칠 보호하며 키우다가 어미가 우는 골짜기로 갖다준 적이 있고, 연구원 본관 옥상에서는 해마다 겨울에 쌀이나 수수 좁쌀 같은 곡식을 미리 준비해 두고, 거의 매일 아침 산새들에게 모이를 주면 여러 종류의 산새들이 온종일  싸우지 않고 와서 먹었는데, 까마귀와 까지, 콩새들도 많이 와서 먹었었다.
 
아래 빙천담 풀밭에서는  6월초에 직원들이 야생 오리알을 15개 정도 줏어온 적이 있었는데, 부화기를 사다가 부화시켜, 큰 오리들이 되도록, 닭 사료 외에도 잠자리, 여치, 등을 직원들이 잡아다가 먹여 키워 날려보냈고, 3 쌍둥이 고란이 새끼도 직원들이 주어다가 며칠 동안 보호한 후 어미들이 새끼 찾느라고 밤에 우는 계곡으로 보내주었는데, 연구원에 낯설은  외국인 손님들이 오면, 한 동안 안보이던 산새들 중에도, 누가 다녀가는지 검사하는 양, 와서 지붕 위를 날아 돌며 둘러보고 사라지기도 하는데, 1980년대에는 연구원 둘레의 낙엽송 위에 까치들이 집을 일곱 개나 지었었으나, 청살모들이 알을 꺼내 먹고, 새끼를 잡아 먹는 바람에, 그 후, 까치들은 우리가 사는 집에 아주 가까이에만 한 두채씩 짓고 새끼를 쳐 나갔었다.
 
내가 곡수리로 이사온 후, 2,3일 후에, 전에 못보던 까마귀 그룹들과 까치 한두쌍이  갑자기 와서 며칠 다녀가자, 이웃사람이 전에 안보이던 새들이라 하였는데, 내게는, 천진암 연구원에서 밤에만 울던 부엉이들조차 이곳 곡수리 서재의 창 바로 앞에 나무에까지 와서 종종 울고 가는 것을 보면, 새들은 자기들과 함께, 같은 큰 산, 같은 골짜기에서, 30 여년 이상 같이 살며, 겨울에는 먹이도 풍부히 주던  산골 늙은이가 없어지니까, 어디 가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와서 보고 가는 것이 분명합니다. 먼저 다녀간 새들한테 방향을 물어서,,,! 동물들, 특히, 새들은 우리 인간들보다 더 영리하고 비상한 능력이 있으며, 소박하고 순수하며 진솔한 우정과 의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길도 없는 이 드넓은 공간을 나침판도 없이,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나뭇가지에 설계도 한장없이 무허가 자유 건축을 한 둥지를 어김없이 매일 수없이 찾아서 드나들며 살고 있으니,,,! Msgr. Byon

체코, 프라하의 성귀(St-Guy)주교좌대성당 / 주후 935년 터 닦기 시작 / 1344년 건물 착공
1352년 제단 둘레와 후면 벽 완성 / 1420년 제단 앞 좌우 측면 벽, 열대문 완성
1929년 성당 정면과 대문 등 전체공사 완료, 축성 / 1,000여년 공사
종각높이 125m / 천정높이 45m / 내부넓이 3,200평
 
입력 : 2017.04.27 오전 8: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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