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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겨레가 나아갈 길

Tomorrow of our People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2021.03. 31) - 대한 민족은 성인들의 민족 !

글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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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5.16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집전으로 거행된 

 

 

 

 103위 우리 한국 순교 선조들이 시성되신 5월 성모 성월에 우리 모두 힘을 내자 !, 

 

 

 

       한국 천주교회 순교복자 103위의 시성식 거행 미사 봉헌 광경

 

 

       

 <당일 일반 언론과 대부분의 홍보 매체에서는 약 100만여명 내외의 신도들 운집을 보도하였으나, 당시 주교회의103위 순교복자시성추진부의 [시성식기획위원회(위원장 변기영 신부)]에서는 로마 교황청에서 내한한 고위 성직자들에게, 55만여명 ~ 60 여만여명의 신도들이 참석하였다고 보고하였는데, 그 근거는 주교회의 [행사위원회(위원장 경갑룡 주교, 부위원장 김옥균 신부, 총무 박신언 신부)]에서 이미 수 주일 전에 우리 시성식기획위원회에 보내온 매우 치밀하게 잘 작성된 세부계획서 공문에서, 전국 각 본당과 각 교구에 참가 신도 수를 미리 배정하여 각 교구별로 어느 정도 정확하게 계산한 근사치를 알 수 있었고, 특히, 10만 여평에 불과한 여의도 5.16 광장의 수용인원 수를 대조하며 감안한 것이었다. 

 

이러한 교회 행사는 한국천주교회로서는 비록 정부의 기술 지원 협력을 염두에 두고서라도, 두번 다시 하기 어렵고 보기 어려운 전국 차원의 거룩하고 깨끗하고 평화로운 무사고 대규모 집회였다. 특히, 서울대교구가 맡은 행사위원회의 위원장 경갑룡 주교님과 더욱이 총무 박신언 신부님, 등 위원들의 역사적 업적이 아닐 수 없다.>


 

본문이미지
(Photos by Baeck - Nam-Shick)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5.16 광장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집전으로 거행된 

 

       한국 천주교회 순교복자 103위의 시성식 거행 미사 봉헌 광경

       

 <당일 일반 언론과 대부분의 홍보 매체에서는 약 100만여명 내외의 신도들 운집을 보도하였으나, 당시 주교회의103위 순교복자시성추진부의 [시성식기획위원회(위원장 변기영 신부)]에서는 로마 교황청에서 내한한 고위 성직자들에게, 55만여명 ~ 60 여만여명의 신도들이 참석하였다고 보고하였는데, 그 근거는 주교회의 [행사위원회(위원장 경갑룡 주교, 부위원장 김옥균 신부, 총무 박신언 신부)]에서 이미 수 주일 전에 우리 시성식기획위원회에 보내온 매우 치밀하게 잘 작성된 세부계획서 공문에서, 전국 각 본당과 각 교구에 참가 신도 수를 미리 배정하여 각 교구별로 어느 정도 정확하게 계산한 근사치를 알 수 있었고, 특히, 10만 여평에 불과한 여의도 5.16 광장의 수용인원 수를 대조하며 감안한 것이었다. 이러한 행사는 한국천주교회로서는 비록 정부의 기술 지원을 염두에 두고서라도, 두번 다시 하기 어렵고 보기 어려운 전국 차원의 거룩하고 깨끗하고 평화로운 무사고 대규모 집회였다. 사진을 보면서 십자가 제단이 좌우 중심 지점이었다.> 

 

103위 우리 한국 순교 선조들이 시성되신 5월 성모 성월에 온 교회 모두가 힘을 내자 !,

  

 
<Sua Santità Giovanni Paolo II aveva concelebrato la messa per la canonizzazione dei 103 Beati martiri coreani, con molti Cardinali, Arcivescovi, Vescovi, sacerdoti e fedeli cattolici - circa 500.000 ~600,000- a' Seoul il 6 maggio 1984. Per quella canonizazione, il Rev. Byon, rettore di Chon Jin Am, il luogo natale della Chiesa, aveva servito per 5 anni (1980~1984) come segretario esecutivo generale della commissione episcopale per la canonizzazione dei 103 Beati Martiri coreani.> 
    

                       -(2021. 03. 31. 수요일, 오후 2시,원 정자동 주교좌대성당에서 )-

 

2021년 부활절, 수원교구 성유축성미사 중에,심상태,변기영,김정원,이정운,몬시뇰 4명과 김영옥 신부, 등, 5명,

 

 2021년 3월 31일 수요일 오후 2시 수원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수원교구 부활절 성유축성미사 중에, 교구사제들 금년에 사제서품 5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하는 금경축 행사도, 지금까지 성목요일에 거행하던 성유축성미사를, 금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을 위하여, 성주간 수요일로 처음 이동하여 함께 거행하였다.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대책 중앙위원회의 방침을 따라 부득이 일반 신자들과 수녀들과 교구 사제들까지도 미사참석이 제한되었고, 500여명이 넘는 우리 수원교구 사제들 중에 일부만 참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투병 중이신 전임 교구장 최덕기 주교님과 현 교구장 이용훈 주교님, 그리고 두 분의 보좌주교님들이 모두 함께 하셨다. 

   그런데. 금년에 사제서품 50주년(1971~2021)을 맞는, 심상태, 변기영, 김정원, 이정운, 4명의 몬시뇰과 김영옥 신부, 모두 5명 중에, 이번 교구 주관 성유축성미사와 금경축 축하식에는 오직 변기영, 김정원 2명 몬시뇰들만이 참석하였고, 3명은 몸이 불편하여 미사에 나오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원래 천주교 사제들 중에 서품 50주년을 맞는 금경축 해당 사제들은 예부터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상례인데, 그 이유 중에 하나는, 50주년을 맞기 전에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금년 전국에서 우리 수원교구에만 5명의 금경축 해당 늙은 사제들이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를 돌보며 위해준 수원 교구 여러 본당 교우들의 은덕이 아닐 수 없다,,!  위 사진은 500여명의 교구 사제들을 대표하여, 50년 차의 막내동이 새 사제들 2명이 50년 차의 선배들에게 꽃다발을 바치는 모습이다!  

   사제생활이 아무리 힘들고 지치고 고닲으고 어렵더라도, 십자가 지시고 가시관 쓰시고서 앞서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못난 선배들 우리와 함께 아무쪼록 굳세고 바르고 용맹스럽게 나아가자 !. 혹시라도 앞서 가시다가 뒤돌아보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눈여겨 다시 보시며, "너희들도 날 닮았구나 !" 하고 말씀하시지 아니 하시랴?!

Msgr. Byon


2021년 3월 31일 수요일 오후 2시, 수원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수원교구 부활절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의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2021.03.31.수요일 오후 2시)


2021년 3월 31일 수요일 오후 2시, 수원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수원교구 부활절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의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2021.03.31)


2021년 3월 31일 수요일 오후 2시, 수원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수원교구 부활절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의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2021.03.31) 중에 교구장 이용훈 주교님의 축하 인사를 받으며, 변기영 몬시뇰의 답사가 시작되었다,,!.

 

<특히,이용훈 주교님은 새 신부 시절(1981년 1월~1982년 8월), 수원교구 내의 본당들 중에 신자 수가 가장 적고 (신자 수 약 450여명) 재정이 가장 빈약하였던 신장본당에서, 당시 본당 주임으로 있던 변기영 신부가 천진암 성지 개척을 자발적으로 착수하여  홀로 추진하던 때에, 변기영 신부가 서울 대교구 경갑용 주교님의 신장본당 방문과 요청에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님의 동의로, 주교회의에 불려가서주교회의 한국천주교회 200주년기념 준비위원회의 사무국장에 임명 되자, 너무나 분주하고 과로하여 신장본당 변기영 신부의  역대 16명 젊은 보좌신부들 중에서 첫 보좌신부로 이용훈신부가 임명되었다.

 

그러나, 외견상만 보좌신부라고 할 뿐 실제는 주임신부나 다름이 없었다. 변기영 신부에게 본당 주임직무와, 특히, 주교회의 신규 조직 탄생의 사무국장은 물리적으로도 너무나 과다한 업무였읍니다. 당시 40세의 젊은 변기영 신부는 1980년 5월 말, 그 당시 광주 5.18의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천진암 성지 이벽 성조 묘역 좌편 계곡에 있던 화령암 위의 약 100 m 위치 종점에 새로 매입한 교회 토지 대지에, 샌드위치 판넬로 임시 건립한 30평짜리 가건물 2동을 교구장 김남수 주교님이 공식으로 인정하고 축성한 천진암한국신학연구소에서 3일간 혼자 피정 중에 열심히 기도하면서, 한국천주교회200주년기념5개년계획 초안을 입안하여 마쳤다. 

 

하산 후, 1980년 6월 초서울, 퇴계로에 있던 주교회의 4층 200주년위원회 사무실로 전국 교구총대리 회의를 소집하여, 위 5개년계획에 관하여 변기영 신부는 온종일 제안설명에 열을 올리며 총대리 신부들을 설득시키는데 집중하였고,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 대전교구 총대리 신부가 바로 며칠 전 새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젊은 새 교구 총대리 신부를 대리하여 대전 성모병원장 겸 전 총대리 이인하 신부님 회의 참석하는 전국 14개 교구 총대리 신부들 중에 유일하게(또 총대리들 중 최고 선임 연장자로서) 일어나서, 젊은 사무국장 변기영 신부가 입안한 5개년 계획 초안을 극구 격찬하시면서, 모두가 전폭적인 지지와 동참을 강조하며 호소하는 바람에 당일로 무수정 만장일치 통과를 받았다.

 

따라서 바로 즉시 주교회의 사무총장 이종흥 신부 집무실로 보내어, 그 해 추계 주교회의에 미리 상정하였으며, 6개월 후, 즉, 1980년 11월, 준비위원장 경갑룡 주교님의 제안설명과 강력한 요청 열변(?)으로,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님의 전폭적인 지지발언에 힘입어, 위 5개년계획 초안은 전국 교구 총대리 신부회의에서처럼, 전국 주교회의에서도, 각 교구 총대리 신부들의 회의결정을 따라, 주교회의도 일사천리로 무수정 만장일치 인준 승인과 동시에, 오히려 확대, 개편, 보완이 가능하도록 본안을 그대로 인준하여, 인준이나 의결 그 이상의, 각 교구 총대리 신부들의 [결의를 재확인함과 다짐] 자체였다. 한국주교회의가 이렇게 빨리 움직여서 의지를 보인 것은 기적적인 현상이었다. 

*본 홈페지의 메뉴 상단,E-Book(전자 북)의, 월보 천진암 24호(1985. 6. 25. 한국천주교회창립사연구소 발행)에 한국어+프랑스어로 전문 게재되어 있음). 

 

추계 주교회의가 끝난 후, 김수환 추기경님은, " 전국  모든 교구가 총 동원되는 이런 의안을 정기 주교회의가 단번에 무수정 통과시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며, 우리 주교님들이 모두 무슨 혼령을  뒤집어 쓰고 홀려서 정신없이 끌려간 느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참석한 모든 주교님들과, 김남수 주교님도 동감이었다고 그후 종종 당시 회의를 회고하셨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 내에서도 국가의 정치적 부조리 극복 거론이 극심하던 터에, 순수 교회적인  안목의 전국 14개 교구의 공동 사목계획 설정, 5개년 계획은, "1980년 가정성화의 해" , "1981년 이웃 전교의 해", "1982년 본당 공동체의 해" ,"1983년 교구적 일치의 해", "1984년 전국적인 단결의 해" ,등, 모두가 비정치적이며 탈정파적이며 신앙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당시 1년에 전국에서 대인 영세자 수는 연 평균 3만여명 ~ 많아야 4만 5천여명이었으나, 1984년 교황님 방한이 거론되던 그 3년 전(1981년)에, 즉, 이미 5개년계획 2차년 1981년도이웃 전교의 해  통계는 전국 대인 영세자 수가 10만 여명에 이르고 있어서한국천주교회 200주년기념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윤공희 대주교)가 구성되고, 4개 분과 별로 주교 4 분이 각각 전담하므로서, 한국천주교회200주년기념5개년계획 마치 마른 봄의 산불처럼 전국 교회 전반에, 본당은 물론 공소와 천주교신자가 한두명이라도 있던 마을에까지도,  200년 전 우리 신앙선조들의 뜨거운 순교정신의 불을 질렀다. !!! 

 

그리하여 변기영 신부 홀로 사무국장 업무 담당이 실로 어려운데다가, 천진암 새 성지 개척과 새 수도원 건립, 등으로 눈코 뜰 사이가 없자, 변기영 신부는 신장본당의 실질적인 주임신부 업무를 이용훈 첫 보좌신부에게 거의 전권을 맡기다싶이 하여, 본당 주임신부처럼 아주 훌륭히 사목하셨으며, 변기영 신부는 마음놓고 주교회의 신 업무와 천진암 개척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젊은 새 신부들 중에 본당 사목을 모범적으로 거룩히 수행한다고, 교구장님의 칭찬이 컸었다. 신학생 때 서울 혜화동 대신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하여, 젊은 이용훈 신부는 변기영 신부의 첫 보좌신부로서 아주 작고 가난한 신장본당 사목 차원을 넘어, 자연히 전국차원의 주교회의 업무 일부에도 수시로 듣고 참여하면서, 특히 천진암 성지 업무 중에도, 제1회 한국천주교회 창립기념일 행사 준비와 실무를 주관하며, 성지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읍니다.> 


2021년 3월 31일 수요일 오후 2시, 수원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수원교구 부활절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의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2021.03.31), 코로나 대난국이라서, 교구사제들만 띠엄 띠엄 참석한 모습 !


2021년 3월 31일 수요일 오후 2시, 수원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수원교구 부활절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의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


수원교구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2021.03.31)에 5명 중 몸이 불편하여 불참한 동료 3명을 생각하며 외로히 걱정스러워하는 김정원  몬시뇰 불참한 2명이 모두 갓등이 국민학교 코흘리개 동창들이고, 소신학교, 성신중학교 1학년때부터 성신고등학교와 성신대학을 거쳐,오늘까지 같은 수원교구에 몸을 담고 여태 70 여년을 같이 성무에 매달려 살아왔으니, 그럴 수 밖에!!! 


 수원교구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2021.03.31)에 5명 중 몸이 불편하여 불참한 동료 3명을 생각하며 변기영  몬시뇰도 매우 걱정스러워하는  모습 ! 


 

2021년 3월 31일 수요일 오후 2시, 수원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수원교구 부활절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의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축하 순서에 교구장 이용훈 주교님을 비롯한 교구 내 각 단체 대표들의 축사에 금경축을 맞는 몬시뇰들을 대표하여 변기영 몬시뇰의 답사요약 !!!.

  

--- "이 답사는 원래 김정원 몬시뇰이 해야 하는 것인데, 자꾸 나한테 미뤄서, 나는 또 다시 더 미룰 데도 없으므로, 마지 못해 제가 하게 되었읍니다마는, 김정원 몬시뇰이 하면 아무리 길게 해도 5 분 이내로 끊낼테지만, 제게 마이크를 넘기면 아무리 짧게 간단히 한다 해도, 두세시간은 넘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소리에 웃지 않은 신부들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김정원 몬시뇰과 이정운 몬시뇰과 김영옥 신부, 3명은 코흘리던 어린 시절부터 갓등이 같은 본당 출신들이고, 또 김정원 몬시뇰과 이정운 몬시뇰은 왕림국민학교 어린시절부터 혜화동 소신학교 즉 성신중학교 1학년 입학을 거쳐, 성신고등학교와 성신대학을 거쳐,지금까지 70 여년을 죽마고우로서 서품 50주년을 함께 맞는 동기 동창들이니, 그 중 마땅히 금경축 대표로서, 더우기 김정원 몬시뇰은 말년에 수원교구의 전 교구가 단합하여 건립한 수원교구의 조원동과 정자동 2개 주교좌 대성당들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한 최고 명물 대성당, 수원 권선동 대성당 건립을 혼자서 완공하였읍니다. 

 

수원시 변두리에서 농촌의 신설 본당에서 장단지에 붙은 거머리 떼어내며 모심으러 다니던 많지 않은 신자들을 데리고, 시내 이웃 몇몇 일부 본당에서는 매주 주일미사 강론 때마다 권선동 새 성당 대규모 건립 평가절하의 사명을 띤 양, 귀가 따겁게 울려주는 비판의 대포소리 들으며, 꿋꿋이 이룩하느라고 건강이 악화하여 부득이 완공 후 은퇴의 길로 들어섰으니, 시간이 좀 허락하는 자리라면 회고삼아 후배들에게 대표로서의 답사를 맡아 해야만 하는데, 내가 서품  동기 4명 중 살레시오수도회 출신으로 성신대학 신학과 때 고향 교구인 수원교구로 입적하여 동창생들 중 나이가 좀 몇 살 더 많아서, 한 때 교구 Decanus(반) 였기에, 또, 동기들도 지금 모두들 나처럼 80 고개를 넘기면서 건강도 좋지 않고, 여러가지로, 참으로 거싴하고, 뭐시하며, 저거하여, 부득이 내가 답사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었읍니다. 사진과 글로 옮기면서 일부는 수정 보완합니다.


2021년 3월 31일 수요일 오후 2시, 수원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수원교구 부활절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의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에 교구장 이용훈 주교님을 비롯한 교구 내 각 단체 대표들의 축사에 금경축을 맞는 몬시뇰들을 대표하여 답사하는 변기영 몬시뇰. ,,,,,, 

 

----정신없이 달려온 50여년을 되돌아보면서,,,,! <성직자들 축하행사와 성직자들 휴가, 안식년 제도 재고 소감 ! >

 

사실 저는 신학생 때부터, 성격이 좀 유별나고 괴팍한 편이라서, 지금까지 사제생활 50 여년 간 단 한번도, 본명축하식니, 부임 환영식이니, 송별식이니, 은경축 하식이니, 회갑이니, 무슨 생일잔치니, 하는 축하행사를, 솔직히 말해서 내가 좀 못나서 부끄러움을 많이 타기 때문인지, 하여간 내 자신이 축하 대상이 되는 것은 좀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늘 기피하고, 사양하며, 거절하여, 아예, 준비하지 못하게 하고, 아주 하지 않고 살아 온 것이 사실입니다. 본당신부 시절 그 흔한 본명축일이라고 해도, 회장님들이, "이럴 수가 있느냐?"고 야단법석을 해도, 못하게 내가 훼방을 해서, 기껏해야 직원들 몇명과 회장님들 몇분과 함께 평소에도 종종 하듯이, 그저 부근 식당에 가서 순대국이나 보신탕 한 그릇에, 잘 할 줄도 모르는 그저 소주 한잔 정도지, 뭐, [태극기 걸어놓고, 애국가 봉창하며, 기념사나 축사니, 꽃다발 증정이니], 하면서 한바탕 일을 벌리는 것은 언제고 회피하여, 은경축도 전혀 하지 않았고, 아예 없었으며, 그저 조용히 지내는 평화 속에 살아왔읍니다.  

 

이번 이 금경축 교구 행사만 해도 사실 나는 사양하고 반대하며 불참키로 말해 왔었으나, 상하 좌우 선후 제반 사정상 참석이 불가피하게 만들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확신합니다. 특히, 나는 교우들과 함께 어울려 잘 놀 줄도 모르고, 함께 쉴 줄도 모르는, 주변머리가 너무 없는 신부라서, 고스톱도 못하고, 골푸도 못하고 안하며, 낚시질이나 정기적 등산할 틈도 겨를도 없어서, 아직까지 다른 신부들처럼, 10년마다 한번씩 1년간씩 안식하며 자율적으로 쉴 수 있는 [안식년]을 한번도 찾아서 받아 사용한 적이 없으며, 또 모든 사제들이 쉬는 매주 하루씩의 주로 월요일 휴무날도 챙겨서 쉬어본 적이 없읍니다 

 

참으로 마른 북어 대가리처럼, 멋도 없고 맛도 별로인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지를 스스로 조성하며 40 여년 가까이 살다보니, 성지를 찾아오는 순례단들이 들이닥치는 것을 보면서, 성지 책임 사제로서 외면하고 다른데로 놀러 가거나 쉬러간다는 것은 정말 아주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읍니다. 그러나 성지에 손을 대기 전부터도, 좀 뒤돌아다 보면, 늘 일에 미쳐서, 쉬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려워서, 부득이 만날 새 일거리를 만들어 부스럭거리며 지내면서, 주변의 교우들이나 서울에서 방문 온 귀빈 교우들까지도 만나면 모두 일꾼으로 부려먹기 위해 우선 사제관에는 항상 식객이 많게 되고, 특히 천진암 성지에 아주 들어간 후에는 심산궁곡에 당시 퇴촌면 내에는 음식점이 하나도 없고 가로등도 하나도 없을 때라서, 순례자들 위한 미사 후에는 사제 혼자서만 점심을 할 수 없으므로, 당시 사제관에서는 점심 식객이 늘 10여명이상씩 붐볐으며, 그래서 본당의 다른 사제들과 달리 식복사들도 항상 2,3명이 늘 상주하며 바쁘게 봉사할 수 밖에 없었고, 사제관비도 사제 1명분을 매월 추가하여 책정토록 교구 사무처장 황익성 신부님과 교구장 김남수 주교님이 배려하였었읍니다.,,,!.여럿이 먹게 되니, 쓴거 단거 모르고 식사 투정도 덜하며 잘 먹는 습관도 생기게 됩니다. 일을 좀 덜 하는 것이 쉬는 것이고, 일상생활이었읍니다. 그리하여 1985년부터 2005년 경까지는 방대한 토목공사와 건축공사로 내 일생 주경야독이 가장 혹심하던 시기였읍니다. 

2021년 3월 31일 수요일 오후 2시, 수원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수원교구 부활절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의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에 교구장 이용훈 주교님을 비롯한 교구 내 각 단체 대표들의 축사에 금경축을 맞는 몬시뇰들을 대표하여 답사하는 변기영 몬시뇰. ,,,,,,

 

----정신없이 달려온 50여년을 되돌아보면서,,,,!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지 확보와 한국교회 창립선조들의 묘를 찾아 함께 안장,,,,!>

<한국천주교회 창립자 이벽성조 묘를 찾아, 신앙선조들의 묘를 ,,,,!> 

<천진암 성지에 100년계획 한민족 대성당 건립 ,,,,!>

 

그래도 기억에 남는 일들이 없지 않습니다. 1979년도에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 광암 이벽 성조의 묘를 찾고자 헤매다가 천신만고끝에 뜻밖에도 포천 화현리 공동 묘지에서 찾아서, 족보상의 후손들까지 찾아, 관계분야 담당 주교님들과 사학자들과 함께 한국천주교회 탄생지 천진암 성지로 안전하게 이장하여 모시고, 이어서 이듬 해, 이승훈, 정약종, 권철신, 권일신, 성현들의 묘도 천진암 성지, 같은 한 곳으로 이장하여 안전하게 모시던 일은, 정말 꿈속에서나 생각하며 바라던 기적적인 일이었읍니다.  

 또한 천주교회 소유의 땅이 1평도 없던 천진암 성지에 275 필지의 38만 5천여평의 성지용 토지 확보와 토목공사도 힘에 겨웠지만, 30 여 차례 주로 유롭의 대성당들을 둘러보고나서, 한국 천주교회 탄생지 천진암 성지에 100년계획 한민족 대성당 건립의 터전을 닦고, 설계도를 완성하여, 교황 성 요한바오로 2세께서 친히 작성하시고 서명하여 당시 주한 교황대사 죤 블라이티스 대주교를 통하여 보내주신 머릿돌 강복문을 30톤 화강암 통돌에 조각하고, 동시에 100톤 제대석 화강암 통돌을, 미국, 카나다, 아시아 대주교님들이 주한 교황대사님과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님과 함께 축성한 날의 감격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직도 기쁨의 샘이 되고 있읍니다. 

2021년 3월 31일 수요일 오후 2시, 수원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수원교구 부활절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의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에 교구장 이용훈 주교님을 비롯한 교구 내 각 단체 대표들의 축사에 금경축을 맞는 몬시뇰들을 대표하여 답사하는 변기영 몬시뇰. ,,,,,,

 

----정신없이 달려온 50여년을 되돌아보면서,,,,!  <한국천주교회  순교복자 103위 시성 추진,,,!!!!!> 

 

그러나, 특히, 한국순교복자 103위의 시성추진은 한국 천주교회 내의 상하 좌우 선후 각계 각층 다방면으로부터 받던 식자연하는 대가들의 가장 심한 오해와 불신과 비판과 비평과 무시와 반대역시 다 공개하기 어려운 사실로서, 이를 아주 강하게 받아가며, 최대의 비협조를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이들 틈에서 천상의 선조들과 성모님의 보살피심으로 이루어진 우리 시대의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기적이 아닐 수 없읍니다. 원래 한국순교복자들의 시성추진 운동은 처음에 1971년을 전후하여 전국 평협회장이던 유홍렬 교수와 당시 주교회의 사무총장 김남수 신부(후에 수원교구장 주교, 주교회의 순교자시복시성위원회 위원장), 주로  2 분이 제안하고 주선하여, 오기선 신부님과 박희봉신부님, 김창석 신부님, 등이 적극 함께 시작, 동조하였으나, 처음에는 순교복자 김대건 신부, 한 분 만 시성추진이 주로 대상이었고 유일한 목표였으며, 그나마도 전국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의아해 하며, 한국에서도 성인의 탄생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할 정도 였으며, 주교회의에서 한국천주교회200주년기념을 계기로, 한국순교자 시복시성추진부에서 103위 순교복자 전원의 시성 추진을 포함한 한국순교자시복시성이 거론되자, 비판도 극심하였으니, 복자 김대건 신부, 한 분 시성추진도 될까말까 한데, 103위 순교복자 전원의 시성추진은, 복자 김대건 신부 한 분 시성 추진 그나마도 어렵게 하고, 안되게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읍니다.

 

1980년 봄부터 한국천주교회 창립200주년기념사업 추진에 한국순교선조들의 시복시성이 강하게 거론되자, 한국주교회의의 로마 교황청을 방문자가 있을 때마다, 김수환 추기경, 김남수 주교, 강우일 신부(후에 제주 교구장 주교), 등은 로마 주재  POSTULATOR (당시는 연락관이라고 불렀다) 연락관 박준영 신부와 김진석 신부, 등은 시성성의 의사를 한국주교회 시복시성위원회에 문서로 전하곤 하였다. 그리고, 한국순교 복자들103위 중에 한국인 대표격으로 김대건 신부 한 분과 프랑스선교사 대표로서 앵배르 범주교 한 분, 이렇게 2명의 성직자들만 우선 시성추진 대상으로 함이 어떨지 한국교회에 타진하며, 시성부에서는 우리에게 권하고 있음을 알리며, 시성 가능성은 그나마도 향 후 40여년~50여년 후에나 생각해볼 수 있다고 알려왔다. ,,,, !    


2021년 3월 31일 수요일 오후 2시, 수원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수원교구 부활절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의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에 교구장 이용훈 주교님을 비롯한 교구 내 각 단체 대표들의 축사에 금경축을 맞는 몬시뇰들을 대표하여 답사하는 변기영 몬시뇰. ,,,,,,

 

---정신없이 달려온 50여년을 되돌아보면서,,,,!  <한국순교복자 103위 마침내 시성확정 소식이,,,,!!!>!   

 

1983년 2월 26일, 로마 교황청 시성성을 처음 방문한 한국주교회의 시성추진부장 변기영 신부와 동행한 단떼 변호사에게, 시성부 장관 팔라찌니 추기경은 이미 한국주교회의 의장 김수환 추기경과 김남수 주교, 또 강우일 신부 등 인편에도 이미 문서로 한국에 보낸 내용을 거듭 반복하여 알리면서,역시 한.불의 신부 주교 각 1명씩 2명의 시성 후보 추진을 재설명 언급하였다. 그리하여 변기영 신부는 줄리오 단떼 고문 변호사도 반대하는 내 주장을 되풀이하였다. 영어로, All or no one !, 즉,이태리어로는, Tutti o nulli !, 즉, [103위 순교복자 전원의 시성이 아니면, 아예 아무도 시성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하며, 한.불 성직자들 2명만 시성함에는 반대한다는 의사를 너무 강하게 표하여, 시성부 최고위 실무자들과 심지어 단떼 변호사까지도 모두가 우리 국내 교회의 고위층 견해처럼, 반대하는 것이였다. 이렇게 103위 순교복자 전원의 시성은 서울과 로마의 교회 장상들까지도 모두 강력히 반대하던 사항이었는데, 끝에 와서 우리의 희망과 주장이 이루어진 기적이었다.

 

그 당시 103위 순교복자 중 92위가 평신도 신분이므로, 로마까지 가서 시성부 장관님한테 꾸증과 좀 언잖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내가 평신도 다수의 시성을 주장하던 이유는, [신부나 주교는 시성하지 않아도 평신도들이 존경하며, 그렇다고, 독신생활을 하는 성직자들을 본받을 수는 없으니, 가정과 직장을 가진 평신도들 다수를 시성해야만, 가정과 직장이 성인되는 [성인대학]이고, 직장 일과 집안 일이 모두가 [성인되는 학과목]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말을 좀 불쾌하게 여기며, 동석하던 사람 중에는, [너는 우리들한테 강론하러 로마에 왔니!?하는 측근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6월 초), 약 3개월 후에, 교황 성 요한바오로 2세께서는 마침내 우리의 손을 들어주셨

즉, 기적심사 관면으로 103위 모두의 시성 확정 !!! 전 세계 매스컴이 모두 놀라 특필대서하였다!!! 

천주님께 감사를 !!! 이는 한국천주교회가 수백년에 걸친 세계 천주교회의 대변화와 평신도 시복시성 행정사의 큰 발전의 계기를 만든 것이었다. !!! 

-Msgr. Byon 

2021년 3월 31일 수요일 오후 2시, 수원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수원교구 부활절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의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에 교구장 이용훈 주교님을 비롯한 교구 내 각 단체 대표들의 축사에 금경축을 맞는 몬시뇰들을 대표하여 답사하는 변기영 몬시뇰. ,,,,,,성직자국장 이상선 신부님이  코로나 대 난국에도, 금경축을 맞는 우리 늙고 낡은 고물단지 같은 선배들을 위하여 고심초사하며,,,!


2021년 3월 31일 수요일 오후 2시, 수원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수원교구 부활절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의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에 교구장 이용훈 주교님을 비롯한 교구 내 각 단체 대표들의 축사에 금경축을 맞는 몬시뇰들을 대표하여 답사하는 변기영 몬시뇰.,,,변몬시뇰의 많은 미공개 이야기가 담긴 답사는 모두 15 분 가량밖에 안걸렸다니, 기적입니다. 


수원교구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2021.03.31). 대신학교 곽진상 젤마노 신부님과 최윤환 몬시뇰이 교구 주교님들과 함께, 부득이 불참이 불가피한 분들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며, 대신 자리를 함께,,,!


수원교구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2021.03.31) ! 마치 우리가 해외 무슨 대회에서 큰 우승이라도 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들 같네 그려! 


수원교구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2021.03.31).-원,이렇게 호화찬란한 꽃다발을 받아보기도 처음인데, 분명 마지막이 되겠지,,,! 그런데 정말 리가  마치 해외 무슨 국제대회에서 큰 우승이라도 한바탕 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들 같네 그려! 

 


수원교구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2021.03.31). 수원교구 평협회장님의 축하를 받으며,,,.


수원교구 성유축성미사 중에 거행된 김정원, 변기영 몬시뇰 외 3명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 행사(2021.03.31)는, 코로나 대란 덕택에 교구청에서는 커피 한잔도 편히 얻어 마실 수가 없었고, 미사 후, 이순자 막달레나 성우회 회장님과 교구 성직자국장 이상선 신부님이 마련한 식사도, 그나마도 코로나 극성에 못이겨, 수행원들과도 분리되어, 별실에서 따로 한 테이블에 4명이하씩만 함께 식사할 수 있어서,,,,,! 하여간, 그래도, 양평 곡수리 시골 공소에서 80을 넘긴 낡은 늙은이가 아침도 엉성하게 걸때리고, 점심도 어설프게 건너 뛰면서, 마지 못해 와서, 오후 2시에서 입당하여 4시에서야 마친 성유축성 미사와 50주년 금경축 행사라기보다 순서는 귀로만 축하 소리를 차고 넘치도록 받은 후, 마침내 수저에 담겨 입안에까지 들어오는 맛있는 생선회의 [늦 점심]이라기보다도, [때 이른 저녁식사]에는 감사를 드렸읍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다시 없을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금경축식]을 거론하는 소리가 시원하게 모두 다 지나가고 다 잘 끝났읍니다 !. 불참한 동료들이 생각에 좀 걸리지만 ! 그래도 정말 가볍게 일어서며, Deo Gratias 를 !!! 몇번이고 바치며 자리를 떴답니다. Deo Gratias ! 

-Msgr. Byon- 

 

입력 : 2021.04.01 오후 2:44:09 / 수정 입력 : 2021.04.10 오전 4: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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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입력 : 2021.04.10 오전 3:55:55 

입력 : 2021.04.10 오후 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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