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17 오전 9:56. 조갑제닷컴에서 퍼온 글>
2023년 11월 23일, 全斗煥 前 大統領 逝去 2주년을 맞으며!
2021년 11월 21일 全斗煥 前 大統領 逝去 소식에,
全斗煥 前 大統領 逝去 소식을 듣고, 당일 오전 즉시, 卞基榮 몬시뇰은 곡수리 공소 소성당에서, 11월 위령성월 평일 미사에 나온 직원들과 수녀님들 몇분과 함께,향년 90세 천수를 누리시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가시는 全斗煥 前 大統領을 추모하면서, 慰靈聖月 맞아,앞서간 모든 이들과,특별히 고인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며, 위령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2021년 11월 23일 오전 9시>
필자가 [한국 천주교회 주교회의]에서 한국천주교회200주년주교특별위원회 사무국장 겸 한국순교복자103위시성추진부장을 겸하고 있을 때,선 후배 동료 사제들 중에 군종사목 근무 중인 신부들과 여러 신자 장교들로부터,"전두환 장군은 정부 요직에서 일하면서도, 종종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부 대기업가들로부터,돈을 받는다든가 돈을 모으지 않는, 또 여성 문제의 잡음이 전혀 없는,아주 깨끗하고 매사에 아주 엄정하고 명확한 장군"이라는 소리가 종종 들렸었다.국군보안사령관이나 대통령 시해사건에 합동수사본부장으로는 가장 적임자로 보였고, 그는 천주교 신도가 아니고, 불교에 가까운 무관으로 보였는데도, 천주교 성직자들을 존경하였으며,천주교회 일에 매우 협조적이었다는 평판이 있었다.
이제 全斗煥 前 大統領 逝去를 맞이하여 그 분의 功過와 偉業 되새기며,曲水里 公所 小聖堂에서 慰靈祭를 봉헌하고서, 一筆 奉呈을,,,!<2021년 11월 23일 오전 10시 卞基榮 몬시뇰>
心慮淸明, 光風霽天,<심려청명 광풍제천>
平生爲民, 死生報國,<평생위민 사생보국>
泰山虎嘯, 猶然苦海,<태산호소 유연고해>
早舟一孤, 萬古聖君,<조주일고 만고성군>
正義勇將, 眞實無言,<정의용장 진실무언>
乘秋忽飛, 乾坤双涕,<승추홀비 건곤쌍체>
그대는 마음과 생각이 바르고,맑고, 굳세고, 밝아서,
빛과 바람처럼 어둡던 하늘도 개이게 하였으며,
한 평생 백성들 위한 일만 하느라고, 죽고 사는 모든것 하늘에 맡기고,
나라에만 바칠 따름이었지!태산도 요동치던 호소(虎嘯)소리는,
그제나 이제나 괴로운 이 천지간에 외로움만이 늘 벗이었고,
노젖는 고닲음 달래는 새벽 바다 위의 한 척의 조각 배처럼,
만고에 길이 빛날 성군들의 발자국 밟고 가고자,
옳고 바른 용장 앞에 진실은 무언으로 천지도 진동하니,
늦가을 짧은 해 뒤로 하고,문득 훌쩍 날아가시매,
하늘과 땅도 한쌍이 되어 애닲은 눈물 흘린다오 !
卞基榮 몬시뇰
*註: 虎嘯 (호소):
큰 산의 호랑이가 산 능선에서 낮잠을 푸욱 한숨 자고 나서, 출출하고 시장하여 먹이를 잡으러 나가기 전에, 낮잠 자던 펀펀한 바위에 일어나 몸을 풀 겸 기지개를 켜면서,두 앞 발로만 딛고 앉아서,꼬리를똬리처럼 뚜르르 말았다가 갑자기 풀고 펴면서,꼬리로 바위 바닥을 때리며, 마치 올벼 익어가는 논에 참새 떼 쫓듯,태기를 치면, 온 산골짜기가 울리는 소리를 '호소(虎嘯), 즉, 호랑이 꼬리의 휘파람 소리'라고 하는데, 唐詩나 聯珠詩에서는 종종 명인 명사들의 출세(出世)하는 계기를 뜻한다. 그 한 예를 들면, 장자방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박랑사에서 진시황을 습격한 후부터였으니,당시 백성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도대체 장자방이라는 사람이 누구길래, 글쎄, 호위무사 대군을 몰고 가는 진시황을 쳤다네 그려 !"
예컨데,
子方未虎嘯(자방미호소)할제,
破産不爲家(파산불위가)라,
滄海得壯士(창해득장사)하여,
槌秦泊浪沙(퇴진박랑사)하더라.
번역문:
張子方이 아직 이름이 알려져 출세하기 전에,
가산을 팔아서 집안 일에는 전혀 쓰지 않고,
滄海지역의 壯士들을 매입하여 泊浪沙에서 대기시켰다가,
지나가는 진시황을 습격하였으나 성공하진 못하였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글이다."
2021년 11월 23일 오전 10시, 龍門山, 牛頭山 자락, 曲水里 公所 小聖堂에서慰靈祭 올리고나서, 卞基榮몬시뇰-作 兼 譯述.
No. 192 全斗煥 前 大統領 逝去 소식에,卞基榮 몬시뇰, 당일 오전 즉시, 직원들과 몇몇 수녀님들과 함께, 곡수리 공소 소성당에서 위령미사 봉헌 ! Msgr. Byon 2021-11-25 방문자 수 973 명
故 全斗煥 前 大統領 在任 中 歷史的 業績, 善業, 功績 小考
1. 위대한 국가원수 故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신속 철저 수사, 범인 체포 구속 재판, 처형.
2. 國家危機 管理, 國憲 遵守, 國權 守護, 정권과 사회 질서 확립,야간통행 금지법 최초 해제.
3. 全 휴전선과 동.서.남 3面 全 해안선 철책담장 완공 (당시 700억(?) 예산 투입). 반공 安保 최 于先.
4. 당시 50 억불내외 국가 악성 외채 완전 상환 후, 최초로 外債 全無한 國家 政權 확립.
5. 大邱-光州, 嶺南과 湖南 고속도로 완공, 반도체 산업 경제발전 장기 기획 착수. 최초 무역 흑자국 달성.
6. 한국천주교회 103위 殉敎福者 서울 諡聖式에 교황 요한바오로 2세 訪韓 공식초청 執典 거국적 후원.
7. 서울 올림픽 유치, 준비에 만전, 체육경기 세계 3위 성적, 경기운영 세계 올림픽 사상 최초 흑자 거행.
8. 대통령 단임제 창안 발의 국민투표로 최초 확정 실시, 야당 지도자들도 장기집권 예방 조치.
9. 세계 7대 무역대국, 세계 10대 경제 자립 대국 건설.
寸 評
①자주국방 확립, 안보 대통령,
②민족문화 승화, 문화 대통령,
③외채상환 완납, 경제 대통령,
No. 192 全斗煥 前 大統領 逝去 소식에,卞基榮 몬시뇰, 당일 오전 즉시, 직원들과 몇몇 수녀님들과 함께, 곡수리 공소 소성당에서 위령미사 봉헌 ! Msgr. Byon 2021-11-25 방문자 수 973 명 ,,,,, !
<추후 계속> <2021년 11월 23일,오전 10시,
龍門, 牛頭山 자락, 曲水里 公所 小聖堂에서
慰靈祭를 올리고나서> Msgr. 卞基榮 作,譯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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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위령성월에 6.25 대 전적지, 破虜湖를 순례하며!
1951년 봄, 지평, 가평, 용문산, 화천 지역에서 의 대격전 파로호 대첩은, 북한 공산당 인민군이 1950년 6월 25일부터 기습 남침하여 3일만에 빼앗았던 수도 서울이 1950년 9월 15일, 국군 특수부대 요원들의 참여와 지원을 받으며 미군의 인천상륙 작전 대승과 함께, 1950년 9월 28일 국군과 UN군이 서울을 완전히 수복하고, 평양을 점령하고, 앞록강까지 진격하자, 100만이 넘는 중공 대군이 북한 공산군을 지원하기 위하여, 특히, 남침 3일만에 기습 점령하여 빼앗았던 서울을, 빼앗긴 후 3개월 만에 다시 국군과 UN군에게 빼앗기자 이를 다시 최종적으로 빼앗기 위하여, 모택동의 오른 팔과 같이 중국 공산화 유혈혁명의 대장정 동료 팽덕회가 지휘하는 중공 집단군 3개사단 약 4만 5천여 명~5만 여명이 지평과 용문에 대규모로 집결하여 1951년 2월 13일 경부터 10여일간의 혈전을 시작으로 5월말까지 가평과 화천 지역에서 국군과 UN군에게 대패하였다.
특히 지평과 용문산 전투 최종 3일간은 피아 쌍방의 실탄이 모두 소진되고, 식량도 떨어져 굶어가며 소총을 꺼꾸로 잡고 몽둥이 삼아, 이른 바, 백병전으로 처절하게 난투극을 벌였으나, 그래도 국군 6사단과 8사단 일부가 지평에서 재집결 편성한 국군이 미군 특전 기갑연대와 프랑스 육군 1개 대대 6백여 명은 제공권을 장악한 미공군이 공중 투하하는 비상 대용식량 통조림으로 허기를 면할 수 있었으나, 중공군은 수송차량이 전혀 없이 도보로 이동하며, 낮에는 숨어서 자고, 밤에는 분대별, 소대별, 중대별로 아군을 기습하며 발악을 하였으나, 아군은 미 공군의 폭격과 미군 기갑부대의 지원을 받으며 중공군 약 2만여 명을 사살하면서, 중공군의 한국 수도 서울 재 점령 작전계획을 사전에 방어하면서, 오늘의 휴전선까지 중공군 대부대를 퇴각시켰다.
이 후 중공군은 더 이상 다시는 남하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한국군 6사단(사단장 장도영 준장) 지상군 장병들의 결사적인 반공 투쟁의지와, 제공권을 장악한 미8군 공군의 무서운 지원 폭격 공습과, 더우기, 미군 기갑 부대의 지원에 힘입어, 특히, 공산주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하여, 당시 프랑스 육군 현역 3성 장군 몽클라르 중장이 600명의 병사들을 위한 한국 지원병 부대 대대장을 맡기 위하여, 스스로 3성 장군의 현역 육군 중장 계급을 사임하고, 육군 중령 계급을 자청하여 붙이고, 대대장으로 취임하여 한국에 도착한 후, 우선 미 8군에 배속하여 지평리 전투에 참여하였는데, 실로 출중한 프랑스 장병들의 전투력으로 4만 5천여명~5만여명 중공군 3개 사단에 포위된 지평리 전투에서 미군 1개 연대에 불과한 3천여명 남짓한 소수 병력과 함께 대승을 거두자, 수만명이 사살된 중공군(총사령관 팽덕회)은 전의를 상실하고,오늘의 휴전선까지 북으로후퇴하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계속된 패배로, 바로 휴전을 제의하게 되었다.
1950년 7월과 8월에낙동강 다부동 전투는 아군이 주로 인민군 육군 부대만을 상대하며 싸우던 전투였으나, 이와는 달리, 지평과 용문산에서의 전투는 주로 약 5만여 명에 달하는 중공군과의 격전이었고, 우리국군을 지원하는 미군과 프랑스군이 U.N. 이름으로 함께, 특히 1951년 2월 13일부터 10여일간 지평과 용문산 전투에서는 약 2만 여명의 중공군을 사살하며 대승을 거두어, 가평, 청평, 화천에 이르는 중공군 대부대를 추격하며 격파하여, 오늘의 휴전선까지 퇴각시킨 최대 승전 기념비로 이승만 대통령은 [화천호]를 [파로호 (破虜湖)] 로 명명함과 동시에 승전 기념비를 세웠다.
破虜湖의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천주교회에서는 먼저 세상을 떠난 조상님들과 친척들과 모든 영혼들을 기억하며 매일 기도하고 미사를 올리며, 많은 이들에게 잊혀진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무덤이나 연고지를 찾아 순례하며, 기도하는 달입니다.
70 여년 전 지평, 용문, 가평. 청평. 화천, 등지에서 우리나라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전 세계 인류의 자유를 위하여, 反共의 깃빨을 드높이 휘날리며 용감히 싸우다가 거룩히 전사한 약 5 백 여명의 우리 국군 용사들과, 특히, 나이 어린 학도병 무명 순교 용사들과, 더욱이 고국을 떠나와서, 이 심산궁곡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다가 끓는 피로 젊음을 불태우며 목숨을 자유의 씨앗으로 이곳에 뿌리고 간, 미국과 프랑스의 천사적인 1 천여명의 UN군 전사자 장병들의 영혼을 위하여, 그리고, 또 이국 땅 한국에 와서, 고향의 부모 형제들을 그리워하며, 애타게 어머니만을 찾으며 부르면서 죽어간, 이름도 모르는 불쌍한 중공군 수만명,약 5만 여명에 이르는 전사자들의 영혼을 위하여도, 이들을 모두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맡겨드리며, 오늘 아침 곡수리 공소 성당에서는 파로호 격전지 순례 길을 떠나기 전에, 우리 직원들이 위령미사를 바쳤답니다.
또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지구상의 어디에서도, 결코, 절대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이처럼 한조각 돌이라도 세워서 우리 후대를 가르치는 선인들께도 감사하며,,,!!! - 변기영 몬시뇰 - <추후 계속>
1951년 봄 지평, 용문산,가평, 화천 지역에서 중공군 5만여명 대부대를 격파하고 수도 서울 의 재 점령 작전계획을 사전에 완전 방어하며, 오늘의 휴전선까지 중공군을 최종 격퇴시킨 승전 대첩의 기념비 화천 파로호 순례 !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전투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변기영 몬시뇰 사랑방,www. Servant Hall of Msgr. Byon. org] 직원들 순례.
(파로호 자유수호탑을 순례하는 변기영 몬시뇰, 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전투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변기영 몬시뇰 사랑방,www. Servant Hall of Msgr. Byon. org] 직원들 순례.
(파로호 자유수호탑을 순례하는 변기영 몬시뇰, 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전투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변기영 몬시뇰 사랑방,www. Servant Hall of Msgr. Byon. org] 직원들 순례.
(파로호 자유수호탑을 순례하는 변기영 몬시뇰, 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전투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변기영 몬시뇰 사랑방,www. Servant Hall of Msgr. Byon. org] 직원들 순례.
(파로호 자유수호탑을 순례하는 변기영 몬시뇰, 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전투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변기영 몬시뇰 사랑방,www. Servant Hall of Msgr. Byon. org ] 직원들 순례.
(파로호 자유수호탑을 순례하는 변기영 몬시뇰, 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전투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변기영 몬시뇰 사랑방, www. Servant Hall of Msgr. Byon. org. 직원들 파로호 자유수호탑 변기영 몬시뇰과 직원들과 함께 순례 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순례(천진암성지 전 사무국장 박희찬 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2021.11.12)
변기영 몬시뇰 사랑방, www. Servant Hall of Msgr. Byon. org 직원들 순례(2021.11.12)
삼류작가 (2016-05-17 오전 9:5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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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까지 광주사태의 진상에서 가장 의문점을 가지고 있던 일이었습니다. 정말 전두환이 광주사태진압을 지휘했는가? 좌파세력들의 주장처럼 '학살원흉'인가? 전두환이 발표명령을 했나? 아니면 그의 지시를 받은 부하가 내린 것인가? 그런데 청문회를 하고 그렇게 철저하게 이잡듯 뒤지고 했는데도 그에 대한 증거도 안나왔고 발포명령자조차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몇십년이 흐르도록 말이죠. 아무래도 이상하다, 전두환은 광주사태의 진압책임과는 무관한 것이 아닌가? 의도적으로 신군부가 광주사태를 조장 학살을 자행했다는 좌파세력들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안들수가 없었죠. 이제서야 좀 알것 같군요. 아,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그동안 왜 그렇게 좌파들의 타깃에서 벗어나있었는지도 알것 같습니다. 사회 정치적 기류가 어떻게든 전두환을 '광주학살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그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것으로 해야했으니, 팩트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았던 거라고 보입니다. 그가 광주사태의 책임자가 아니어도, 그가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쓰고 돌팔이매질을 당해줘야 문제가 매듭이 지어지고 이 일이 봉합될 수가 있었으니까요. 그렇지 않은게 팩트라고 밝혀지는걸 피해당사자들이나 좌파세력들이나 국민들까지도 용납할 수가 없었을겁니다. '광주사태 사망자들이 어디까지나 '악랄한 살인마 전두환'의 직접 지시로 인해 숨진 순교자여야 하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고, 전두환의 지시와는 무관하게 우발적인 총격으로 인해 숨졌다는게 사실로 밝혀지는 것을 피해자 유족들이나 좌파세력들이나 야당들이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인터뷰 기사가 조선일보에 실리는게 거부된것 같은데, 아직도 그런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사회인것 같습니다. 아마 전두환씨가 관속에 들어가고도 한참은 시간이 지나야, 적어도 그가 광주사태와는 무관했다는게 인정될것 같습니다.<2016-05-17 오전 9:56, 조갑제 닷컴 헤드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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