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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母 마리아의 反共主義 敎訓

Holy Mary of Anti-communism

4) 천진암 성지의 파티마 성모상 건립과정

글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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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神論克復의 平和統一 聖母 마리아 像 건립


無神論克復의 平和統一 聖母 마리아 像 (청동제 지상 22M 높이(좌대 7M, 동상 15M) 曠菴聖堂 聖母像은 卞基榮 신부가 사제서품 25주년(1971. 8. 27.~1996. 8. 27.)을 맞아 구내에서 銀慶祝 축하행사를 거절하고, Fatima 聖地에 가서 서품기념일을 전후하여 1주일 동안 날마다 식사시간 외에는 하루종일 묵주의 기도만 바치면서, 은경축 기념으로 Fatima 발현 성모상을 구입할제, 그곳 聖地 主任 Villa Nuova 신부에게 부탁하여, 함께 고른 것인데, 中南美로 보내기 위하여 포장까지 해놓은 곳을, 극동 우리나라로는 처음이라면서, 1996년 9월에 보내온 것이다.
 
내 기억에 발송료까지 합쳐서 모두 2천불내외가 들었는데, Villa Nuova 신부의 부탁대로, 우리는 천진암 성지에서 이 성모상을 모시고 촛불을 켜들고 천진암대성당터를 반바퀴 돌면서 행렬하면서 촛불 기도회를 바쳤는데, 10월 묵주의 기도성월과 이듬해 5월 성모성월에만 하였으나, 1998년 4월부터는 그 당시 국가 경제가 부도가 나서, IMF 체제로 들어가면서, 온 국민이 금반지까지 내다 파는 사태가 벌어질 때, 우리는 매월 월례행사로, 첫 토요일 저녁마다 이 성모상을 모시고 우리나라와 우리겨례를 위하여, 각 가정과 직장을 위하여, [천진암 성지 월례 촛불기도회]를 지금까지(2011년 11월 5일까지), 제 164회 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여름이나 한 겨울이나, 매월 바치고 있다.
 
신자들이 가장 많이 모일 때는 2,500여명까지 모였었으나, 보통 200여명 내외의 신자들은 늘 참석한다. 그런데 Fatima에서 온 통나무 조각 성모상이 너무 아름답고 아까워서, 때로 비오는 날 밤에는 목각 성모상이라 아끼기 위하여, 몇 년 후부터, FRP로 제작된 Lourdes의 성모상을 모시고 행렬하기 시작하였으며, Fatima에서 온 성모상을 광암성당 제단 좌편에 고정하여 모셨다. 이 성모상은 천진암 성지로 모셔온 후부터 많은 기적을 내어준 성모상이다. 이 성모상은 無神論 克復의 平和統一 聖母像이다. 내년에는 높이 15m 내외의 확대한 靑銅制 성모상을 만들어, 대성당 터의 성모성당 아래에 모실 생각이다.

무신론 극복의 청동제 성모상(폭 6M, 동상 높이 15M, 좌대 높이 7M)
 
세계 2차 대전 참전 모면을 기도하며 걱정하던 포르투갈 부인들은 Fatima에 발현하신 성모님께 감사하며 정성을 모아 표하기로 하였다. 7천만 명 이상이 죽어간 세계2차 대전에 유럽에서 유일하게 참전을 모면한 나라는 포르투갈이었다. 또한 포르투갈은 성모 발현 후로, 교우들의 열심한 성모신심으로 바치는 기도와 성모님의 보살피심으로 잔인한 강력범죄가 없는 나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10세미만의 루시아, 히야친타, 프란치스꼬 3명의 어린이들이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하였는데, 그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9세) 루시아 소녀가 성모님의 모습을 6개월 동안 매월 한번씩, 그리고 그 후로도 몇차례 더 뵙고나서 말해주는 목격담을 근거로, 성모 마리아의 모습 최근사치를 그린 發現像을  토대로하여, 매우 어렵게 木刻 조각상이 최초로 모습을 들어낸 것은, 그 당시 1차 세계대전 직후 전 유럽이 모두가 살기 힘든 때였고, 또 포르투갈과 그 중에서도 파티마 지역은 너무 몹시 가난한 시골이라 성모상 제작이 어려워, 발현 3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신심있는 교우 Gilberto Fernandes dos Santos 씨가 가까스로 어렵게 모아서 실로 정성껏 바친 성금으로, José Ferreira Thedim 조각가가 목각상 조각을 결심하고, 브라질에서 특별히 수입한 삼목(杉木)을 가지고 110cm 크기로 조각하여, 성모 발현지 상수리 나무 옆에 아주 좁고 작게, 마치 한국의 열녀각(烈女閣)이나 효자각(孝子閣)처럼, 지금 사진을 보면 너무나 초라하다고 할만큼, 아주 작게 세운 발현각에 모시고, 1920년 5월 13일에 최초로 순례자들 기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목각 성모상은 발현지에서 약 3km 떨어진 파티마 본당으로 임시 옮겨, 축성하고, 성모 공경 본당행사를 한 후, 다시 상수리나무 옆 발현각으로 다시 옮기고 그 앞에서 순례오는 시골신자들이 기도하면서, 후에는 수도 리스본으로도 옮겨 성모 신심행사를 거행하기도 하였읍니다.
 
그러다가 세계 2차 대전의 전운이 심각해지면서, 1942년 10월 13일을 기하여, 포르투갈 부인회 회원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던 진주 313개와 2,679개의 보석을 바치고, 12명의 조각가들이 무보수로 자원하여 면류관을 만들어서, 세계 2次大戰 참전 모면을 기도하며, 성모님께 감사하기 위하여, 정성껏 만들어 씌워드렸는데, 후에 좀더 다듬고 보완하여,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6년 5월 13일에는 교황특사 Masella 추기경이 순례와서, 세계 교회 이름으로, 마침내  면류관 대관식(戴冠式)을 거행하였습니다. 1981년 5월 13일, 로마에서 故 교황 복자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저격당하신 자신의 몸 속에 박혔던 암살범의 총알을, 감사의 뜻으로, 이 성모상 면류관에 보태어 박았습니다.
 
지금 전 세계 인류가 천주 신앙을 외면하고, 핵무기 신앙으로 광분하며, 특히 우리나라는 북한 핵폭탄 공격 위협으로 전 세계가 들끓고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오락과 유흥과 사치와 향락에 젖어 있어, 금년에  천진암 성지 100년계획 대성당 건립 넓은 터 한쪽에 자리잡고 세워지는 성모상은 無神論 克服의, [世界 平和의 聖母像]으로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청동 성모상 자체(15m높이에 좌대 7m 높이) 제작 건립만도 힘에 겨운 처지이므로, 아직 면류관 제작과 대관식은 현재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성모신심으로 보아, 엄두도 못내고, 훗날로 미루게 됩니다.
 
이번에 천진암 성지에 세워지는 천진암 성지 무신론 극복의 세계 평화의 성모상은 전 세계 교회 안에서도 그리 작은 편은 아니지만, 아주 큰 편에 속하지도 못합니다. 인도네시아 마호멭 교도 섬에 고난회 회원들이 세운 성모상(35m)이나, 프랑스 러쀼(Le Puy) 면 소재지 중앙 바위 동산 위에 중세기에 무쇠로 만들어 세운 성모상(33m) 등이 있습니다. Le Puy 읍내 바위 동산 위에 중세기에 세워진 성모상은  그곳 출신고향인 파리외방전교회  Marcell Pellise 신부님의 안내로, 3일간 머물면서, Metz 출신인 Perrin 신부님과 함께 필자 자신이 순례한 바 있다.
 
특히, Le Puy의 성모상은 프랑스 동남부 지역이 허구많은 침략(반달족, 몽고족, 이슬람, 등) 등으로 주변 지역 읍내들이 초토화될 때 유일하게 성모님의 보호를 받아 무사하였고, 한재가 심한 거듭된 흉년의 기근도 모면하면서, 특히, 각종 전염병이 만연하던 중에도, 더욱이, 노스트라다무스 시절 흑사병으로 전 유롭 인구의 50%가 무참히 사망하여 장례조차 못치르는 마을이 허다하였을 때도, 전 읍민들의 기도의 대상이오, 중심이며 의지가 되었던 성모께 대한 신심 집결의 대상으로, 실로 기적적으로 무사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Le Puy는 프랑스 전국에서 가장 작은 교구이지만, 사제 성소가 가장 많은 교구로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 선교사제 파견이 가장 많은 교구이며, 최근 사제 성소의 급감현상으로 적지 않은 대신학교들이 폐교, 통합되고 있으나, 아직도 사제 성소가 여전하다고 전해지고 있읍니다. 파리외방 전교회 한국 지부장과 경북 영주본당을 설립한 Marcel Pellise(M.E.P.) 신부의 고향으로, 필자가 Le Puy를 함께 방문하여 3일간 머물 때, 배신부님(한국 姓)이 밤늦도록 Perrin 신부님과 함께 들려주던 거룩한 고향 교구 성모상에 관한 자랑 이야기였습니다. 
 
천진암 성모상은 커다란 관광물이나 조경물이 아니라, 신도들이 앞에 모여 기도하는 신심의 대상이 되는 聖物로서, 규모와 위치, 등이 감안되었습니다.성모상만 세우면 세계평화나 조국의 평화통일이 공짜로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입으로 소리내며 기도 몇마디만 바친다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Le Puy의 프랑스인들이 자기네 나라 프랑스를 위하여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위하여도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싸웠듯이, 우리도 평화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목숨을 바치며 싸워야 합니다.   
 
전 세계 도처에서 전란과 분쟁이 그치지 않는, 작은 우리 마을 지구촌에, 천진암 성지의 세계 평화 통일 성모상 건립에 우리 모두 참여합시다. 금년 6월 23일까지 제작 건립 완료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가지 아쉽고 시급한 일로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면서, 평화통일기원 성모상 건립을 위하여 매일 직원들과 함께 열심히 기도하면서 노심초사하고, 동분서주하는 천진암 성지 주임 김학렬 신부님께 우리 모두 기도와 정성과 힘을 모아드리며, 함께합시다. 여러분들의 정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Msgr. Byon




성모상 사진 축성(폭 6M, 높이 15M, 좌대 5M) 후 녹암천진회 최초로 묵주기도(성모상을 촬영한 백남식 사진작가)(2012.04.16)


성모상 사진 축성(폭 6M, 높이 15M, 좌대 5M) 후 녹암천진회 최초로 묵주기도(2012.04.16)


성모상 사진 축성(폭 6M, 높이 15M, 좌대 5M) 후 녹암천진회 최초로 묵주기도(2012.04.16)


성모상 사진 축성(폭 6M, 높이 15M, 좌대 5M) 후 녹암천진회 최초로 묵주기도(2012.04.16)



성모상 사진 축성(폭 6M, 높이 15M, 좌대 5M) 후 녹암천진회 최초로 묵주기도(2012.04.16)



성모상 사진 축성(폭 6M, 높이 15M, 좌대 5M) 후 녹암천진회 최초로 묵주기도(2012.04.16)



성모상 사진 축성(폭 6M, 높이 15M, 좌대 5M) 후 녹암천진회 최초로 묵주기도(2012.04.16)




Le Puy 성모상은 프랑스 동남부 지역 중부 고산지대 작은 읍내 주민들이 중세기에 무쇠로 만들어 읍내 한가운데 있는 바위 동산위에 세운 것으로(철상 높이만 약 45m), 중세기를 전후하여 외부 야만족의 거듭덴 침략 때(반달족, 이슬람,몽골족, 게르만족, 등)와 가종 흉년이나 전염병, 특히 전 유롭 인구의 50%이상이 죽어갔던 흑사병 만연 때(노스트라다무스 시절) 신도들 기도의 대상으로서, 기적적으로 읍내가 무사하였으며, 프랑스에서 가장 작은 교구지만 사제 성소가 가장 많고, 아프리카 파견 선교사제도 가장 많은 교구(많을 때는 850여명까지)로 유명하다.


Le Puy 성모상은 프랑스 동남부 지역 중부 고산지대 작은 읍내 주민들이 중세기에 무쇠로 만들어 읍내 한가운데 있는 바위 동산위에 세운 것으로(철상 높이만 약 45m), 중세기를 전후하여 외부 야만족의 거듭덴 침략 때(반달족, 이슬람,몽골족, 게르만족, 등)와 가종 흉년이나 전염병, 특히 전 유롭 인구의 50%이상이 죽어갔던 흑사병 만연 때(노스트라다무스 시절) 신도들 기도의 대상으로서, 기적적으로 읍내가 무사하였으며, 프랑스에서 가장 작은 교구지만 사제 성소가 가장 많고, 아프리카 파견 선교사제도 가장 많은 교구(많을 때는 850여명까지)로 유명하다.
<사진 설명>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던 1917년 10월 13일 낮 12시, Portugal의 Fatima에서 70,000여명의 군중들이 불모지 풀밭에 모여 목격한 태양의 기적은 파티마에서 5 km 떨어진 지역에서도 목격되었다. 당시 기자들이 찍어서 여러 신문에 보도된 사진들 ! 1917년 5월 13일부터 6개월간 매월 13일 정오에 10세미만의 어린이들 3명에게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께 우리 나라와 겨레와 가정과 직장과 전 세계 모든 민족들의 평화와 자유와 일치를 맡기고 바치며 기도하자!! 核戰爭이란 政治나 武力의 次元을 넘어서, 전 人類的 문제이며, 특히, 宗敎人들의 책임이 제일 큰 문제다. 종교인들은 침묵할 의무가 없다. 침묵할 권리도 없다. 沈黙은 黙認이오, 때로는 共助이며, 나아가 共犯을 면치 못하게 된다. 우리는 前無後無한 현재의 大災殃 勃發의 危機에서, 어찌 침묵하며, 누구를 믿고, 무엇을 바라며, 기도하지 아니하랴?
Msgr. Byon

 

본문이미지
<위 사진은 1917년 10월 13일 낮 12시, 7만여명의 군중이 한동안 목격한 태양의 기적으로, 당시 기자들이 촬영하여 신문에 보도하였던 사진들 중 한 면. 파티마에서는 오는 2017년에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입력 : 2017.05.06 오전 11: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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