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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과 설날의 가치와 의미와 역사를 되새기고 일구며,금년 곡수성당 설날 미사는?

글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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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설날의 의미와 가치와 교훈과 역사와 전통을

잠시나마 간결히 더듬어 보는 길목에 서서,,!

 

이나 설날이란 말은 새로움이나 처음이라는 말들과 차원이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낯이 다. 과일이 아직 덜 익어 다. 등, 지금까지도 우리말의 이곳 저곳 구석에 남아 있는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관습과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나 설날이란 말은 새로움이나 처음이라는 말들과 차원이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분명히 철학적이며, 신학적이고, 신앙적이며, 종교적이고, 신심적이며 천륜적인 차원에서 한 인간 개인의 차원을 넘어 가정의 효심이나 마을의 대동(大洞) 공동체 윤리 도덕적 정신을 넘는 차원을 엿볼 수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이나 설날이란 말은 달력이 생겨나고 쓰여지기 이전부터 선사시대의 우리 생활과 역사에 주요한 역할과 기능을 하던 것이었다. 마치 갖난 아기가 엄마이나 아빠라는 말을 알고 말하기 그 이전부터, 이미 엄마나 물이나 아빠의 인식과 활용 중에 살며 자라고 있듯이. 다만 달력이 생기고 쓰여지면서, 이나,설날이란 말이나 그 정신적 기능과 역할은 달력의 테두리나 한계 안에서 좀 정리되고 정착되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달력이 생겨나고 쓰여지기 전부터 이나 설날이 있었다고 하는 뜻은, 바꿔 말하면, 이나 설날이 먼저 있어 왔었기에달력의 출현이 생기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달력의 제정과 사용 그 이전의 우리 생활과 역사의 기간은 그 이후의 기간보다 훨씬 더 오래일 수도 있다. 

 

우리 말의 고대 어원에 아직도 깃들어 있고 살아 있는 몇가지 뿌리를 살펴보면서 설이나 설날의 기원과 역할과 의미와 가치를 조금씩 캐내어, 상하 좌우 선후 표리(表裏)를 다각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 말 중에 우리가 갖난 아기 시절부터 엄마나 할머니 무뤂에 안겨서 제일 먼저 쉽게 배우는 말들은 외마디 한 글자, 한 음절로 된 낱말들인데, 이러한 낱말이나 어휘조차도 너무나 적었던 언어생활은 선사시대인들 때부터 일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눈, 코, 귀, 배, 등, 눈,피, 뼈, 입, 손, 발,살, 골, 힘, 비, 같은 말과는 좀 다르게, 마치, []의 소리에 담겨 있는, []이라는 발음 소리는 []과 유사한 표현으로, 물, 불, 별, 살, 골, 풀, 절, 돌, 달, 날, 굴, 발, 등과 같이, 선사시대인들은 [영(靈)]이나 [신령]한 힘의 [] 혹은 []이 들어있다고 믿었었기에, 얼굴은 []이 들어 있고, []이 살고 있는 []로 여겨, [얼굴]이라고 보며 말하였으며, []가 []을 뜻하는 소리였다는 것은 동서양이 같다고 하겠으니, 엠마누, 가브리, 라파, 바이, 얄, 가, 등에서 엿볼 수도 있다. 

 

또한 지금도, []을 []에 가까운 발음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설]이나 []은 신령한 힘이고, 신령한 것이며, 신령의 날이고, 신령한 영을 만나는 날이며, 이러한 []이나 설날은, 아직 달력이 생기기 이전 시절, 빗 물에 장마가 지는 경우 냇물이나 봄에 큰 나무 잎이나 풀이 싹 나는 현상 등을 계기로 하여, 때를 따라 신령한 얼이 출현하며, 담겨 있거나 서려 있거나 깃들어 있다고 여겼기에, 모두가 함께 즐겼으니, 얼씨구 좋다 절씨구 좋다 하는 말도 사실은 이 영혼(神靈)을 쓰고 또 저 혼령도 뒤집어쓰니, 좋다는 표현이다. 결국 이나 설날은 선사시대부터 신령한 초자연적 존재의 힘으로, 그를 만나고, 모시며, 그 기운을 받는 날이기에 물질적인 차원을 넘어서 신령한 존재로의 개념으로 발전하여 우리 인간들의 삶에 들어왔고, 이와 더불어, 우리는 그와 합하는 계기로 수 만년 혹은 적어도 수 천년을 살아오면서 습관이나 정치나 실정법의 차원을 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계속>

                       곡수리 공소 성당에서는 금년 설날 미사

       음력 1월 1일, 양력으로 2월 1일, 화요일 오전 11시에 바칩니다.

 

 

사진 설명1951년 1.4 후퇴 전후의 곡수리에 처음 출현한 김복수 회장과 이영수 회장 등 새 신자들 한두 집만의 공동체와 함께 태어난 우리 공소의 어른이신 노송(老松)은 나무 나이가 이미 80 여세가 넘어 곧게 서 있기가 힘에 겨워서 옆으로 누워서도 홀로 성모상 곁을 지키며 첫눈을 치우러 올라온 힌눈처럼 소박한 참 신앙인들과 겨울을 함께 시작하며 누리고 있다. 

 

이제 사진을 보면서 노송의 벗들을 소개하면, 사진 맨 왼편부터, 김복순 마리아, 곡수리 공소 교회 일의 일귀신 안살림 터주대감 마님과, 변기영 몬시뇰은  8순을 넘긴 수원교구의 늙고 낡은 은퇴사제와, 그리고  지난 해, 12.12 날 선종하신, 故 나환형 베드로 회장으로, 전 서울교구 某 본당의 전 총회장도 역임하고, 이곳 곡수리 서편 산넘어 수곡리에 와서 10 여년 째 혼자 거하면서, 8순을 훨씬 넘긴 노익장인데도 매일 아침 6 Km 이상 걸어서,  곡수 공소성당 평일 미사에 몇 년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참석하던 신심가였다.

 

또, 사진 맨 오른 편에 눈 쓸던 싸리 비 자루를 남에게 빼앗길세라 꼭 잡고 있는 70 대 중반의 고옥자 로사, 사우거사 기념서재 자료실장은 일귀신으로, 고실장은 젊어서 바오로회 수녀님들과 함께 수원 고등동 옛 주교좌성당과 수원교구청에, 또 이어서, 신장본당과 천진암 성지에서는 이벽 성조 묘를 찾기 전부터, 특히 천진암 성지에 천주교회 땅이 1평도 없을 때부터, 성지 성역화와 103위 순교복자 시성추진 등의 저 엄청난 일에 매달리던 사제들과 함께 교회 큰 일들의 뒷바라지로 지금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여러 성직자들과 회장님들의 업무 수행을 함께하며, 1인 3역을 마다하지 않고, 아주 근면하고 꾸준하게, 또 한결같이 교회 일에만 늘 과묵하고 성실하게 장기 근속하는, 한국교회 최 고참 장기 근무 직원들 중, 지금도 힘든 일, 험한 일,궂은 일까지도, 늘 일에는 빠지지 않고, 기도에는 앞장서서 나오는, 기도 대장으로서, 한 평생을 성모님과 함께 일과 기도로만 살아오는 신심가다. 

 

그러니 이처럼 이른 새벽 첫 눈을 치는데도 빠질리가 없다. 그런데 위 사진에는 안 나오지만, 늘 우리 홈의 대부분 사진들 촬영과 편집을 맡는 일은 허관순 세라피나, 본 홈페지 변기영 몬시뇰 사랑방 (Servant Hall of Msgr. Byon) 편찬실장의 몫이다. 몇명 안되지만 1당 100의 일귀신들이 새벽부터 눈 길을 걸어서 모이는 노익장 일꾼들이 아직 잔존하며 건재하는 한, 눈이 또 와도, 더 내려도, 정부 기관들처럼 제설차는 비록 1 대도 없지만, 예비역 환풍기 기술자 최미성 미카엘 군이 대기하고 있으니, 김병연 김삿갓의 푸념섞인 시 한구절 대로, 한겨울 하늘에 가득찬 눈과 비바람에도 우리 곡수리 공소는 걱정이 없도다. 천풍우독무수(滿天風雨獨無愁)로다 ! Msgr. Byon

 <곡수리 공소 성당 금년 설날 미사: 변기영 몬시뇰 집전. 음력 11일, 양력으로 21일, 화요일 오전 11>

 


 <곡수리 공소 성당 금년 설날 미사: 변기영 몬시뇰 집전음력 1월 1일, 양력으로 2월 1일, 화요일 오전 11>


 <곡수리 공소 성당 금년 설날 미사: 변기영 몬시뇰 집전음력 1월 1일, 양력으로 2월 1일, 화요일 오전 11>


입력 : 2022.01.11 오후 7: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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