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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WIND BELL

政治나 外交도 中道가 아닌, 正道로만 가야!,保守도 아니고, 進步도 아니며, 더구나 中道는 더 더욱 아닌, 正道로만 가야 한다 !

글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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商人들의 흥정이나 협상과는 달리, 政治나 外交도 中道가 아닌, 正道로만 가야 한다. 

政治人들은 政治哲學이나 信念이라도 있어야만 한다. 

<2013.03.08 오후 10:30:36/ 조회수  2,319 명>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良心도, 愛國心도, 事理 판단력도, 洞察力도, 政治哲學이나 政治信念도 없는 협상꾼들이 설치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누를 수가 없다. 핵문제만 하여도, 그것이 어디 정치문제며, 思想 문제며, 政治路線 문제란 말인가? 핵문제에는 保守도, 進步도, 中道도, 南韓도, 北韓도, 社會도, 宗敎도, 따로 무관하게 袖手傍觀하며 침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民主主義者는 아니더라도, 차라리 共産主義者라고 솔직히 밝히기라도 한다면, 同助하거나 共感할 수는 없어도, 아예, 그러려니 하고, 그러련 하며, 그 나름의 그릇되고 못된 틀린 理念에 물든 그런 사람으로 치부해 줄 수는 있는데, 保守도, 더구나 進步도 아닌 사람들이, 더 더구나 그들이 걷는 길은 中道도 아닌데,,,, 양다리 걸친 타협과 협상이란 이름의 흥정꾼들에 불과하여, 책임회피와 직무유기를 다반사로 여기는 사람들이 현명하고 유능하고 超正常的인 지도자들인양, 發狂하고 있는 느낌이다. 실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차라리 正道를 걷는 자신의 정치 철학과 정치 신념만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다행이랴?

 

오늘날 우리 사회는 正道를 모르고, 正道를 피하는 사람들이, 保守도 아니고, 進步도 아니며, 더구나 中道는 더욱 아닌, 길이 아닌 泥田鬪狗의 現場에서 野壇法席들이다. 지금 우리가 직업의 如何를 막론하고, 굳세고 바르고 용감하게 나아갈 길은 保守도 아니고, 進步도 아니며, 그렇다고, 더구나 中道도 아니고, 오직 正道 뿐이다. 政治人도, 法曹人도, 言論人도, 宗敎人도, 우리 국민 모두가 각자의 正道를 걸어야 한다. 進步도, 保守도, 또 中道역시, 모두 正道 위에서, 正道만은 벗어나지 말아야만 하겠다!

 

進步가 正道를 벗어날 때, 保守가 正道를 벗어날 때, 民主니, 共産이니 하는 思想을 가진 자들이 그 나름의 正道를 버릴 때, 모험과 위험과 독선과 패배의 함정으로 빠지게 마련이다. 모두가 가야 할 모를 수 없는 正道는 애국심과 신앙심과 양심이 가르쳐 주고 있다. 이는 인류사회의 국가와 민족과 가정의 기초요 바탕이다. 강대국의 國力이란 군사력이나 핵무기나 경제력이 아니라, 그 기초와 바탕이 되는 正道를 걸어가는 國民意識 수준과 역량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中道는 오늘날 우리 사회 안에서 거의가 타협의 산물이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약자의 몸부림치는 잔꾀이며, 반대와 방해를 피하면서 존경과 영광과 추앙을 받고, 인기를 얻고자 하는 이들이 양편에서 던지는 돌에 맞을 용기가 없어서, 아주 비겁한 무골충이나, 변신만능의 보호색을 지닌 오징어 같은 인생길을 찾아 몰려가며 숨바꼭질하는 옆길이다. 한마디로 정치철학이나 정치신념이 없는 사람들이 인간사회의 외형을 규정하는 中道는 결코 우리가 걸어갈 正道가 아니다. 특히 政治家然하는 지도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될 수가 없다.

 

中道라는 명함을 내걸고, 흔히 절충과 타협으로 말 잔치를 벌이는 이들이 걸어가는 길은 正道가 될 수 없다. 한동안 國會가 폭력현장이 되어 국민들을 실망시키더니, 이제는 挾雜꾼들의 흥정과 타협의 골방처럼 느끼게 한다. 國憲도, 國權도, 國家도 , 政府도 없는 國會는 되지 말아야 할텐데! 당파의 조직에 속하여 있어서, 自由가 없는 사람들의 발언은 국민들을 서글프게 한다. 自由가 없는 곳에 正義가 있을 수 없고, 自由와 正義가 없는 곳에 眞理와 眞實과 眞心이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正道가 끊어진 終點이다.

 

正道는 걷기 쉽고 가기 편한 길이 아니라, 때로는 외롭고, 괴로운 길이다. 그러기에 다시 한번 더 文度公 요한 丁若鏞 承旨의 감회어린 詩를 읽어보자. 1827년 늦봄, 65세의 노구를 이끌고, 어린 시절 자신이 10여 년간이나 공부하던 母校, 天眞菴을 옛 동료들과 함께 3일간을 머물며 마지막으로 다녀가면서, 文度公 정약용 승지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고달프고 서글펐던 지나간 옛날들을 回顧하며,下山의 詩文을 남겼다. “그 때나 이때나 나는 항상 한평생 괴로운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조각 배 한 척의 신세로세”(猶然苦海一孤舟 - 丁若鏞 전집 2권의 天眞消搖集).

 

그렇다. 正道는 올바른 길이라서, 바르지 못한 우리들이 걸어가기가 매우 어렵고, 외롭고, 괴로운 길이다. 또 이 길을 가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더 어렵고 더 외롭다. 또 正道가 있는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굽은 길들이 뒤엉켜 있는데다가, 우리 자신들도 正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구나 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 옛날 中國 泰山 峻嶺에서 시작되어, 천길만길 절벽 아래를 굽이굽이 흐르는 三峽 계곡에서 돛단배를 타고 내리며, 허다한 갈림 길 나루터마다 내려서, 다른 나룻배를 다시 바꿔 갈아타고 오르내리기를 거듭하는, 나그네들의 旅路처럼, 우리네 인생길은, 李白의 표현대로, “참으로 다니기도 어렵고. 살아가기도 힘든 길이다. 내리고 또 타야만 할 갈림 길이 너무나 많기도 하기에!”(忽復乘舟夢日邊,行路難!,行路難!,多岐路!,,,-李太白의 行路難)

 

당장은 가장 지탄을 덜 받는 좀 안전한 中道라고 하지만, 거기는 박쥐들이 왕노릇하는 동굴이 있을 뿐이다. 정치도, 사업도, 정당도, 정책도, 종교도, 사람도 수시로 바꾸며, 모든 것을 다시 바꾸어 가며 헤매며 사는 곳이다, 그러니 中道를 생각지도 말고, 찾지도 말자. 누구도 바꿀 수는 없는, 또 바꾸어서도 아니 되는 正道를 찾고, 正道를 벗어나지 말도록 하자 ! 그래야만 참되고 올바른 保守와, 진정한 進步와, 초탈한 中道가 보일 것이다. 입력 :Msgr. Byon 2013.03.08 오후 10:30:36/ 조회수 2,319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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保守도 아니고, 進步도 아니며, 더구나 中道는 더 더욱 아닌, 

우리는 오직 正道만을 고집하며, 正道로만 굳세게 걸어가야 한다! 

<2012.04.13. 오전 12:38:58 / 조회수  2,143명> 

 

 

우리는 오늘날 保守도 아니고, 進步도 아니며, 더구나 中道는 더욱 아니니, 우리는 오직 正道만을 잃지 말고 꾸준히 나아가야 한다! 세상에는 뒤엉킨 길도 많지만, 바르고 곧은 길은 하나 뿐이 아닌가? 길가를 스치는 바람은 길이 아니다. 나무잎을 흔들며 지나갈 따름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은 保守도 아니고, 進步도 아니며, 그렇다고, 더구나 中道도 아니니, 오직 正道로만 나아가야 한다. 정치인도, 사법인도, 언론인도, 종교인도, 아니, 우리 국민 모두가,,! 물론, 進步도, 保守도, 또 中道역시, 모두 正道 위에서, 正道만은 벗어나지 말아야만 하겠다! 

 

進步가 正道를 벗어날 때, 모험과 위험의 함정으로 빠지는 길이 되고, 또 保守가 正道를 벗어나면, 기득권 유지 위한 부패로 인하여, 퇴보와 패배의 길로 가게 된다. 모두가 모를 수 없는 正道는 애국심과 신앙심과 양심이 가르쳐 주는 것이니, 이는 국가와 민족과 가정의 바탕이 되는 힘이다. 강대국의 國力이란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앞서, 그 바탕이 되는 正道를 걸어가는  國民意識 수준이다.

 

사실 中道는 오늘날 우리 사회 안에서 거의가 타협의 산물이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약자의 몸부림이며, 반대와 방해를 피하면서, 존경과 영광과 추앙을 받고, 인기를 얻고자 하는 이들이 양편에서 던지는 돌에 맞을 용기가 없는, 아주 비겁한 無骨蟲이나, 保護色 變身萬能의 오징어 같은 인생길을 찾는 이들이 가는 숨박꼭질 옆길이다. 인간사회의 외형을 규정하는 中道는 결코 우리가 걸어갈 正道가 아니다. 특히 지도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아니다. ! 

 

따라서, 비록, 中道가 오늘날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절충과 타협의 길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벗어나서는 아니 되는 正道는 아니다. 그런데 본래 正道로 향하는 길은 쉽고 편한 길이 아니라, 외롭고, 괴로운 길이다. 그러기에 文度公 요한 丁若鏞 承旨도, 1827년 늦봄, 65세의 老軀를 이끌고, 어린 시절 자신이 10여년 간이나 공부하던 母校, 天眞菴을 마지막으로 다녀가면서, 고달프고 서글픈 심정을 토로하였다. “그 때나 이때나 나는 항상 한평생 괴로운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조각 배 한척의 신세로세”(猶然苦海一孤舟). 

 

그렇다. 正道는 올바른 길이지만 이 길은 걸어가기가 매우 외롭고 괴로운 길이다.이 길을 가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正道가 나 있는 이 세상이 굽은 길들이 뒤엉켜  바르지 않고, 우리 자신도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君子에게 있어서, 中道는  必勿樂行해야 하며, 正道는 孤獨한 苦行의 길임을 각오해야 한다. 지쳐서 땀에 젖은 이마를 식혀주는 바람은 正道가 아니고, 아예 길도 아니다. 길가와 길 위를 스치고 지나며, 나무잎을 흔들고 갈 뿐이다. 오늘날 선풍기 만능시대에,,,! 

 

태산의 절벽 아래를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에서 돛단 배를 타고 내리며, 허다한 갈림 길 나룻터에서 다시 바꿔 갈아 타고 오르내리기를 거듭하는 나그네의 여로처럼, 우리네 인생길은, 李白의 표현대로, “참으로 다니기도 어렵고. 살아가기도 힘드는 길이다. 내리고 또 타야만 할 갈림 길이 많기도 하기에!”(忽復乘舟夢日邊,行路難!,行路難!,多岐路!,,,) 

 

 

어제의 進步는 오늘에 와서 保守가 되고, 그 사이에는 中道가 양자를 조정한다지만, 양다리 걸치듯, 사업도, 정당도, 정책도, 사람도 수시로 바꾸며, 모든 것을 다시 바꾸어 가며 살더라도, 누구도 바꿀 수는 없는, 또 바꾸어서는 아니되는 正道는 벗어나지 말도록 하자 ! 그래야만 참되고 올바른 保守와, 進步와, 中道가 가능할 것이다.  

Msgr. Byon / 입력 : 2012.04.13 오전 12:38:58 / 조회수  2,143 명

입력 : 2022.05.20 오전 12: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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