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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겨레가 나아갈 길

Tomorrow of our People

제16차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 Synodalitas 위한- 2022/12/08 - 코로나 태풍 속 시골 공소의 성모의 밤!

글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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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들 위한 설날 합동 연미사 오전 11시 2023년 1월 22일 주일 오전 11시 곡수성당>

 

천주교회의 Sinodalità의 시국을 계기로, 전 세계 교회에서 국가와 교구와 대륙을 초월하여 선발된 20여명의 신학 전문학자들 중 젊은 신학자들, 특히, 비교적 다수의 10 여명이 넘는 여성 신학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일의 우리 천주교회의 신선하고 젊고 새로운 모습이 보이는듯 합니다. 특히, 유롭 주도의 신학분야에 이끌려 다니며 가까스로 참석이라도 하는 경우도 그리 흔치 않아서, 늘 아쉬움을 느껴오던 차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도, 특히, 한국 출신도, 더구나 여성들의 활동이 아직도 매우 희소하고 충분히 넉넉하다고 할만한 정도가 아닌 우리 한국에서도 여성 평신도 신학자를 발굴(?)하여 참석케 하시는 로마 교회의 담당 추기경님들과 교황님께 특별한 감사를 드립시다.-Msgr Byon -

Sinodalità 위원들이. 전 세계 교회에서 국가와 교구와 대륙을 초월하여 선발되어 현재 Roma의 Frascati에서 합숙하며 (2022.10. 02), 주어진 업무에 비하여 너무나 단기간에 전 세계 국가별 지역별 시노드 제1의안집 검토와 종합 편찬에 불철주야로 봉사이상의 혹사들을 하고 있지 않는지, 염려됩니다. 위 사진 중에 붉은 띠를 목걸이처럼 하고 있는 분들이 아마(?) 각 대륙별 선발 요원들 표지인듯 합니다. 

 

20 여명 중에 10여 명 내외의 비교적 젊은 여성 신학자들의 참석이 돋보여서, 좀 새롭고 신선한 인상을 줍니다. 특히, 여성 신학자들을 비교적 많이 참석시킨 것은 교회와 신학의 내일을 위해서도, 매우 다행하고 좋은 일로 보입니다. 비록 신학이 전공은 아니었더라도, 적어도 기초신학적 기반은 충분한 학력과 경력이 전제된 학자들이라고 생각됩니다.(cf. For instance, really, some theological infrastructure, that is to say, the fundamental theology, that which is different from the level of Church administration, ecclesialogical organizatione, and, systematic conclusion, or statistique fruits, etc.,,!). 

 

사진을 보면서  맨 앞줄 맨 좌편에 한국 서강대학교에서, 10 여년 째 신학강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국에서는 매우 드문 여성 신학자라 할 수 있는 최현순 박사의 모습도 보입니다. 신학의 모태이며 신학체력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신앙과 신심]이 충만한 신학적 탐구와 활동은, 교회 발전을 위하여, 보다 크고 많은 결실을 거두게 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모두, 저 분들을 위하여 거룩히 열심히 기도해 드려야 하겠읍니다. - Msgr. Byon- 

 

20221002.jpeg

      

Synodalita' 개최를 선포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제1의안집 정리 중인 현장(?)을 방문, 위원들과 기념 사진.  

사진을 보면서 교황님 우편 3번째가 한국에서 선발되어 간 서강대학교 최현순 교수. 2022년  10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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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8 15:24  2022-11-29 14:10  606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

교황청 문헌소식세계주교시노드 2022-10-24

 첨부_「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 번역문(최종본).hwp 611.5 kB

«너의 천막 터를 넓혀라» (이사 54,2)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 



바티칸 시국, 2022. 10. 24.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차례


서론 


1. 시노달리타스 과정의 경험

1.1 “시노달리타스의 열매, 씨앗, 그리고 가라지”

1.2 세례를 통한 공통된 품위


2. 성경에 귀 기울이기


3.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를 향하여 

3.1 환대가 되는 경청

3.2 사명 수행을 위한 형제자매들

3.3 친교, 참여, 그리고 공동 책임성

3.4 시노달리타스는 형태를 갖춘다

3.5 시노달리타스의 삶과 전례


4. 다음 단계들

4.1 회심과 개혁의 여정

4.2 대륙별 단계를 위한 방법론



서론

    1. 시노드는 계속된다. 시노드가 개막된 지 일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열정을 다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자문 단계의 이 첫 번째 기간 동안 온 세상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어떤 이들은 지역 차원의 모임에 참여하면서, 어떤 이들은 다양한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고 또 활동을 조직하는 일에 협력하면서, 어떤 이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기도로 지지해 주면서 시노드 활동에 참여하였다. “우리는 또한 관상 생활하는 수도자들에게도 감사를 표하는데, 이들은 기도로 백성을 동반하였고 시노드의 열매를 위하여 계속해서 기도하였다”(페루 주교회의). 참여한 이 모든 사람이 시노드의 참된 주인공들이다!


    2. 이들은 전체 과정을 이끄는 근본 질문에 응답하는 데에 도움을 주려는 열망으로 움직였다. 깊이 있는 질문을 제시하면서, 식별을 안내하고 심화하도록 도우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교회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따라 복음을 선포하게 하는 ‘함께 걷기”가 오늘날 다양한 차원에서(지역 차원부터 보편 차원까지) 어떻게 실현되는가? 그리고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는 교회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가 어떤 순서를 밟아가도록 초대하시는가?”(「예비 문서」, 2항). 


    3. 이 과정 동안 이들은 신자들이 말씀에 귀 기울임으로써 그들 안에 반향된 것들을 공유하면서, 그리고 「예비 문서」(Preparatory Document)의 자극들에 기초하여 교회의 미래에 대하여 서로 질문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로 만나는 기쁨을 체험하였다. 이것은 이들 안에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을 더욱 살아가는 교회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 곧 시노달리타스는 그들에게 더 이상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체험의 모습을 띄게 되었고 그들은 시노달리타스를 맛보았으며 시노달리타스를 계속 실현해 나가기를 원하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시노달리타스가 교회 됨의 한 방식, 아니 바로 그 방식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성령께서는 우리가 더욱더 시노달리타스의 방식을 살아내기를 요청하고 계신다’”(잉글랜드와 웨일즈 주교회의).


    4. 그들의 체험은 말로, 다양한 공동체와 그룹이 교구에 보낸 의견서로, 그리고 주교회의에 보낸 종합 의견서에 표현되었다. 그리고 주교회의는 「예비 문서」 안에 포함된 내용들로부터 출발해서 이 의견서들을 하나의 종합 의견서로 작성하여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로 보냈다. 


    5. 전 세계적 차원에서 참여는 어떤 기대를 하든 그 이상으로 이루어졌다.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로 모두 합하여 114개 주교회의 가운데 112개의 주교회의 종합 의견서, 전체 15개 동방 가톨릭 교회의 종합 의견서가 제출되었고, 여기에 로마 교황청 23개 부들 가운데 17개 부의 의견서, 그리고 수도회 장상들(세계 남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USG]와 세계 여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UISG]), 축성 생활회, 사도 생활단, 평신도 단체와 운동들로부터 의견서가 제출되었다. 그리고 개인들과 그룹들로부터 천 개가 넘는 의견서와 ‘디지털 시노드’ 주도로 소셜 미디어를 통하여 수합된 의견서들도 제출되었다. 제출된 이 자료들은 각 대륙의 매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그룹에게 배부되었는데, 이 그룹은 남성과 여성, 주교들, 사제들, 남녀 수도자들, 그리고 남녀 평신도들로 이루어졌다. 이 전문가들은 자료들을 읽은 후 약 2주 동안 총 보고관,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총장, 사무국장들, 임원들, 조정 위원회 위원들, 그리고 평의회 위원들로 구성된 편집 팀과 만났다. 이들은 기도와 식별의 분위기 속에서 자신들이 읽은 결과들을 공유하며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 초안을 작성하였다.


    6. 이 문서에 간간이 삽입되어 있는 인용문들은 제출된 자료들이 담고 있는 풍요로운 생각들을 제공하려는 것으로서, 전 세계 곳곳에서 나온 하느님 백성의 소리가 이 문서 속에서 다시 울리게 하려는 것이다. 이 인용문들은 어떤 특정 지역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될 것이고, 설사 자료의 원천들의 출처라는 면에서 어떤 균형을 이루려고 했다 하더라도, 단순히 지리적 다양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아서도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이 인용문들은 많은 종합 의견서에서 언급하는 어떤 감각 방식을 특별히 강력하고 아름답게 또는 정확하게 표현하였기 때문에 채택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문서도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에 제출된 의견서에서 흘러넘치는 신앙의 심오함, 희망의 생생함, 사랑의 에너지를 농축해서 담아낼 수 없음은 분명하다. 여러 교회들이 걸어가면서 그리고 말로 표현된 다양한 소리들에 스스로를 개방함으로써 얻게 된 체험의 풍요로움과 힘을 이 의견서들에서 엿볼 수 있다. 이런 만남과 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 시노달리타스 여정의 의미이고, 이 여정의 목표는 어떤 문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희망의 지평을 여는 것이다. 


    7. 이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가 자리하는 곳 그리고 그 의미를 발견하는 곳은 바로 이 여정 안에서이며, 이 문서는 결코 그 여정의 결론이 아니다. 대륙별 단계에서 볼 때 이 문서는 온 세상에 퍼진 하느님 백성의 희망과 근심을 핵심적인 것들을 중심으로 모은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2023년 대륙별 회의를 염두에 두면서, 지역 교회들에게 서로의 소리를 들을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대륙별 회의는 2023년 10월 4일부터 29일까지 열릴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1회기에서 식별하게 될 우선적 주제들의 목록을 작성하게 될 것이다. 


    8. 다음과 같이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의 성격이 아닌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 문서의 역할을 분명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서는 결론적 성격의 문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과정이란 끝나는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 문서는 교회 교도권의 문헌도 아니고 사회학적 조사 결과 보고서도 아니다. 이 문서는 활동 지침 그리고 목표와 목적들의 형식을 제공하려는 것도 아니며, 비록 하느님 백성이 성령의 소리를 들은 체험담 속에 탁월하게 포함된 신학적 보화를 담아냄으로써 하느님 백성의 신앙 감각을 드러나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신학적 전망을 제시하는 작업 문서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교회의 사명에 봉사하려는 지향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볼 때 이 문서는 신학적 문서이기도 하다.


    9.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를 읽을 때 어떤 모호함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 문서의 구조와 함께 그 고유한 본질을 염두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문서는 단순한 연대기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교회들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자문 그리고 주교회의 안에서 목자들이 수행한 식별과 함께 지금까지 삶으로 체험한 시노달리타스의 경험을 신앙에 비추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곧 그리스도교 신앙의 집단적 참된 경험을 구성하는 초석들을 식별하면서 시노달리타스 경험의 개요를 이야기하고, 이 여정에서 마주하였던 어려움들 그리고 수합된 것들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열매들을 보여 준다. 이러한 방식으로, 시노달리타스의 어떤 엄밀한 정의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해서는 「예비 문서」 또는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누리집(www.synod.va)에 제안된 자료들을 참조할 수 있다.―참여하였던 이들이 체험한 시노달리타스 경험들이 공유하고 있는 의미를 표현한다. 이로써 세례 받은 모든 이들이 가지는 공통된 품위를 깊이 있게 다시 얻게 된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 공통된 품위는 시노달리타스를 살아가는 교회의 참된 기둥이며, 균질화로 몰아가려는 것에 저항할 수 있는 일치의 신학적 기초로서,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예측할 수 없이 풍요롭게 부어 주시는 은사와 부르심의 다양성을 계속해서 활용할 수 있게 한다. 


    10. 제2장은 성경의 표상을 소개하는데, 이사야서 54장 처음에 나오는 천막의 이미지로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의 내용을 당신 백성과 당신 교회를 위하여 하나의 부르심이 되는 하느님 약속의 틀 안에 넣음으로써, 말씀에 비추어 그 내용을 해석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 “너의 천막 터를 넓혀라.”


    11. 이 천막은 친교의 장이고, 참여의 장소이며 사명을 위한 기초로서 제3장에서 시노달리타스 과정의 핵심 단어들을 하느님 백성의 소리를 경청한 결과들과 연결시키게 한다. 이것은 서로 엮여 있는 다음 다섯 가지 생산적 긴장들을 중심으로 그 경청 결과들을 수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1) 환대를 여는 것으로서의 경청으로서, 이것은 형제자매들과 그리고 공통의 하느님 아버지와 누리는 친교라는 전망 안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근본적 포용―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음!―에 대한 열망으로부터 출발한다. 여기에서 경청은 어떤 도구적 행위로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 백성의 소리를 들으시는 하느님의 근본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고, 그리고 거룩한 땅에서 길을 가시며 만난 사람들의 소리를 항상 변함없이 들으셨다고 복음서가 전하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경청은 이미 사명이고 선포이다. 


    2) 사명을 향하여 나아가는 추동력. 이것은 가톨릭 교회 신자들이 돌봄의 인간적 행동을, 우리가 생명을 얻어 넘치게 하려고 당신 목숨을 바치기까지 우리를 돌보신 하느님의 얼굴을 선포하는 참으로 영적인 체험들로 변화시키면서, 다른 비그리스도교 형제자매들과 함께 그리고 다른 종교인들과 함께 수행해야 하는 사명이다.


    3) 사명을 수행하는 일은 참여에 기초한 형태를 갖출 것을 요청하고, 이것은 세례 받은 모든 이가 교회의 유일한 사명에 대한 공동 책임성을 온전히 갖추는 것에 상응하며, 그러한 공동 책임성은 세례의 공통된 품위로부터 유래한다. 


    4) 적합하게 양성되고 살아 있는 영성으로 북돋워지는 사람들이 속하는 구조와 제도들을 통하여 친교, 참여, 사명을 살아가기 위한 구체적 가능성을 구축하기. 


    5) 전례, 특히 그리스도교 삶의 원천이요 정점인 성체성사는, 공동체를 모으고 친교를 체험 가능한 것으로 만들며, 참여의 실행을 가능하게 하고, 사명을 향하여 매진하도록 말씀과 성사들로 자양분을 공급한다. 


    12. 마지막으로 제4장은 두 개의 노선을 언급하면서 미래를 향한 시선을 제시하는데, 두 노선 모두 긴 여정을 진행하기 위하여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서, 하나는 시노달리타스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회심의 지평을 추구하게 하기 위한 영적 노선이고, 다른 하나는 대륙별 단계에서 다음 발걸음을 내딛기 위한 방법론에 대한 것이다. 


    13.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는 오직 제자의 눈으로 읽을 때 이해할 수 있고 유용할 것이다. 제자는 이를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는 교회를 향한 회심의 과정에 대한 증언으로 인식하며,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는 교회는 시대의 표징들에 비추어 교회가 어떻게 자신의 복음화 사명을 쇄신할 것인지 경청으로부터 배우고, 이렇게 해서 모든 이가 포함되고 주인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온 인류에게 계속해서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 길에서 우리 발걸음을 비추는 등불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이 삶으로 얻은 경험들을 다시 읽고 해석하며 표현하도록 비추어 준다.


    14.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 전체를 시노드에 모으셨습니다. 


이 한 해 동안 환영과 겸손, 환대와 형제애의 태도로, 하느님과 그리고 형제자매들을 경청하면서 이 여정을 걷기로 결정한 이들이 체험한 기쁨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거룩한 땅” 위에 있는 것처럼, 저희가 이 문서를 한 장 한 장 열어갈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오소서 성령님. 함께 걷는 저희의 여정에 안내자가 되어 주소서! 


1. 시노달리타스 과정의 경험

    15. 전 세계 교회에서 보낸 종합 의견서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기쁨, 희망, 고통, 상처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말들 속에 인류 전체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반향되어 있다. 이 종합 의견서들은 복음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교회의 바람을 표현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시노드 경험은 교회의 삶, 현대 세계 안에서 교회의 과업, 그리고 지상에서의 교회의 사목 활동에 관여하고자 하는 생각과 바람을 평신도들 안에 일깨웠다”(캐나다 주교회의).


1.1 “시노달리타스의 열매, 씨앗, 그리고 가라지” 

    16. 시노달리타스 과정의 첫 번째 단계는 풍요로운 열매와, 하나의 새로운 성장을 약속하는 새로운 씨앗들을 만들어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잡한 시대에 기쁨을 경험하게 하였다. “시노달리타스의 열매, 씨앗 그리고 가라지에 대한 검토를 통하여 드러난 것은 교회를 향한 커다란 사랑의 소리, 믿을만한 증언을 할 수 있는 교회, 포용적이고 개방적이며 환대하는 하느님 가족이 되는 법을 아는 교회를 꿈꾸는 소리들이다”(짐바브웨 주교회의). 아이티 주교회의 종합 의견서는 많은 이들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계속해서 납치와 폭력 상황들이 존재하지만, 교구 종합 의견서들은 시노드의 이 첫 번째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아이티 주교회의). 많은 이들이 이 첫 번째 단계에서 체험한 기쁨을 확장하여 다른 이들과 공유할 것을 요청하였다. 에베비인 교구(적도 기니) 의견서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메아리친다. “시노달리타스의 이 경험은, 많은 이들의 그리스도교 삶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경험 중의 하나였다. 시노드 작업이 시작된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 하느님 백성은 커다란 감격을 느꼈다.” 여러 종합 의견서들이 시노달리타스의 경험에서 얻은 열매 가운데 교회에 대한 소속감의 강화 그리고 실천적 차원에서 단지 주교들과 신부들만이 교회가 아니라는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을 언급하고 있다. “함께 걷는 이 여정을 ‘오늘날 여러분의 교구에서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공유하면서 사람들은 교회의 참된 본성을 깨달을 수 있었고 이에 비추어 자신들의 교구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방글라데시 주교회의).


    17. 영적 대화의 방법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널리 이루어졌고, 이것은 많은 이들이 교회의 삶의 현실을 정직하게 바라보도록, 그리고 빛과 어둠으로 그것을 명명하도록 하였다. 이 정직한 평가는 즉각적으로 사명에서 열매를 맺었다. “하느님 백성의 어떤 강한 움직임이, 함께 만나고 함께 걷고, 그리고 자유롭게 말하는 기쁨이 있었다. 상처받았다고 느끼며 교회로부터 떠나간 어떤 신자들은 이 자문 단계의 기회를 통하여 돌아왔다”(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주교회의). 많은 이들이 교회가 자신들의 의견을 경청한 것이 처음이었다고 강조하면서 이런 여정이 계속되기를 원했다. “공동체나 단체의 모든 구성원이 개방적으로 그리고 정직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말할 수 있었던 시노드 방법론의 정신 안에서 모임, 그리고 교회 밖의 다양한 그룹과의 만남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런 형태의 협동은 교회 문화의 ‘불문법’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고, 이는 교회의 구성원들과 사회의 그룹들이 서로 가까워지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며, 그래서 사람들이 더욱 깊은 대화에 기꺼이 참여하게 할 것이다”(라트비아 주교회의).


    18. 그렇지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종합 의견서들은 그런 어려움을 숨기지 않고 있다. 어떤 어려움은 자문의 단계가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과 겹쳐서, 어떤 어려움은 시노달리타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렵고, 내용을 번역하고 자신들의 문화 안에서 정착시키는 데 큰 노력이 필요하며, 지역의 어떤 상황으로 시노드 일정을 잘 잡을 수 없어서, 또는 제안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되었다. 매우 분명한 거부의 표현들도 없지 않았다. “나는 시노드를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시노드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떤 변화를 가져와서 그분의 교회에 또 다른 상처를 주려고 소집되었다고 생각한다”(영국의 개인 의견).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강조가 민주적 형태의 다수성 원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메커니즘과 절차들을 교회에 강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매우 빈번하게 표현되었다. 시노드 과정의 실제적 효과나 의도에 대한 회의적 입장 표명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교회를 변화와 현대화를 원하지 않은 경직된 제도로 이해하기 때문에, 또는 시노드 결과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 때문에 시노드 과정의 결과에 대하여 의구심을 표현했다”(캐나다 주교회의). 


    19. 많은 종합 의견서들이 성직자 편에서의 두려움과 저항을 언급하고 있지만, 또한 평신도의 수동성,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는 것에 대하여 그들이 가지는 두려움, 그리고 목자들의 역할과 시노드 역동성을 연결시키는 데에서의 피로에 대해서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저항, 참여 부족, 관여하지 않는 공동체들도 있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도전의 새로움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많은 공동체들이 교회의 이런 삶의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은 또한 어떤 책임자들과 목자들이 자신들의 몫인 안내자의 역할, 그리고 활기를 북돋우는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교구 의견서들이 사제들의 참여가 부족하거나 혹은 약했다는 점을 애석해하고 있다”(칠레 주교회의). 많은 경우에, 시노드 과정과 의견서에 취합된 내용들이 사제들과 그 밖의 하느님 백성 사이의 분리를 널리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교구 및 국가 차원에서의 자문 과정은 많은 곳에서 사제들과 신자들의 관계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한편으로는 사제와 평신도들 사이에 있는 거리를 인식하며 이를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제들이 심지어 풍요로운 공동체에 어떤 장애처럼 체험된 곳도 있었다. 동시에 사제들이 마주한 도전들도 언급되었는데, 사제들과 사제 지망자들의 수적 감소가 그들을 극도의 피로로 이끌고 있었다. 게다가 사제들 본인이 항상 경청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며, 어떤 사제들은 자신들의 직무가 논의에 부쳐진 것을 보기도 한다. 좋은 사제는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하면 관계된 모든 사람에게 본당 사제의 삶이 풍요로운 체험이 되게 할 수 있을까? 왜 성소를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더 적어질까? 이런 질문들이 논의되어야 한다”(오스트리아 주교회의).


    20. 함께 걷는 여정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장애는 성직에 속한 사람들 또는 교회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행한 남용 추문들로서, 먼저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성년자와 약자에 대한 남용이 있고, 또한 영적, 성적, 경제적 남용, 권위의 남용, 양심의 남용 같은 종류의 남용도 있다. 이것은 피해자들과 피해 생존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그리고 공동체에 계속해서 상처를 주는 아물지 않은 상처이다. “사제의 성추행으로 인한 위기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그 결과는 아직도 날카로운,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그 공포, 그리고 야기된 악을 인정할 것에 대한, 그리고 약한 사람들을 돌보고 교회의 윤리적 권위에 입힌 해로움을 회복하며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더욱 경주할 것에 대한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 어떤 교구 의견서는, 참여자들이 과거의 성추행에 대하여 교구가 인정하고 보상하기를 원하였다고 말하고 있다”(호주 주교회의). 남용이 남긴 일에 대한 주의 깊은 그리고 고통스러운 성찰을 통하여 많은 시노드 그룹들은 교회 안에서 더 큰 투명성, 더 큰 책임감과 공동 책임성이라는 관점에서의 문화적 변화를 요청하게 되었다. 


    21. 마지막으로, 너무나 많은 나라에서 세상을 피로 물들이는 전쟁 속에 시노드 과정이 진행되었다. 전쟁은 “온갖 종류의 광신주의, 박해, 심지어 학살이 마구 일어나게 하였다. 분파적 그리고 인종적 선동 형태들을 주목하였는데, 이런 형태들은 악화되어 무력적 그리고 때로 유혈의 정치적 충돌로 이어졌다”(마로니트 교회). 특별히 고통스러운 것은, 서로 전쟁 중인 나라들에 가톨릭 신자들을 포함한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는 상황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더욱 강하게 만나게 하는 이런 취약한 상황에서도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시노달리타스를 체험하자는, 그리고 함께 걷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찰하자는 초대를 받아들일 줄 알았고, 또 그것을 계속해서 수행하려는 바람을 표현하였다. “투치 족에 대한 인종 학살은 르완다 백성들을 분열시켰고 이에 대하여 집단 기억의 참된 치유라는 관점에서 친교라는 주제를 보다 심화시켜야 할 것이다. 이 시노드는 우리가 일치와 화해의 사목이 계속해서 우선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하였다”(르완다 주교회의).



1.2  세례를 통한 공통된 품위 

    22. 시노달리타스 실천들은 “어떻게 우리 모두가 세례성사를 통하여 공통된 품위를 갖고 교회의 삶에 참여하는 소명을 받았는지 알게 하는 데에 결정적이고 귀중한 순간”(에티오피아 주교회의)을 이루었다. 세례성사에 기초한 이 말은―추상적이지 않은 용어로, 그러나 실제로 이해한 정체성으로서―교회의 시노달리타스 형태와 그 사명의 수행 가능성 사이의 연결을 곧바로 명확히 드러낸다. “세례성사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께서 그들을 부르시는 것을 공유하고 식별하면서 함께 걷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기르게 되었다.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서 함께 걷는다는 것은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가 되기 위한 바로 그 방법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일본 주교회의). 많은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많은 지역 교회들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세례를 통한 공통된 품위, 그리고 복음에 봉사라는 공통의 사명을 강조하였다. 시노달리타스 과정은 다른 신앙을 고백하는 형제자매들을 만나지 않고서는, 또 그들과 공유하고 대화하며 공통의 일을 하지 않고서는 완성될 수 없다. 종합 의견서들은 더욱 깊은 교회일치적 대화와, 그리고 이와 관련된 양성의 필요성을 표명하고 있다.  


    23. 종합 의견서들은 시노드 과정을 새로움과 신선함의 경험이라고 표현한다. “하느님 백성은, 합당하게 준비된 만남 안에서 어떤 미리 정해진 안건 없이, 그리고 성령의 영감을 따르려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체험이 특별했다고 강조하였다.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교회에 나오면서도 어떻게 그들이 처음으로 발언 요청을 받아보았는지에 대하여 말하였다”(파키스탄 주교회의). 또 다른 이미지, 곧 새로운 존재가 날개를 펼치도록 깨지는 알껍데기의 이미지가 해방과 새로운 삶의 경험을 표현한다. 


    24. 또 다른 종합 의견서들에서는 가족 구성원 사이의 소원해짐과 간절히 바라는 돌아옴이라는 개념을 연상시키는 표현들이 나온다. 이 돌아옴은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집단적 상실의 종결을 연상시킨다. 성경의 이미지를 사용한다면, 시노달리타스의 과정은 유배로부터 돌아오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결과는 하느님 백성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곧 교회가 시노달리타스를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자신이 참으로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2. 성경에 귀 기울이기 

    25. 유배를 겪는 백성에게 하는 예언자의 이 말은, 오늘날 우리가 시노달리타스 경험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를 무엇으로 부르고 계신지에 초점을 맞추도록 도와준다. “너의 천막 터를 넓혀라. 네 장막의 휘장을 아낌없이 펼쳐라. 네 천막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이사 54,2).


    26. 예언자의 이 말은 유배 중인 백성에게 그들이 천막에서 살 때인 탈출과 사막을 건넜던 경험을 상기시키면서 기쁨과 희망의 표징인 땅으로 돌아가리라는 약속을 선포한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천막 구조의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천막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천막 천으로서, 이것은 태양과 바람, 비로부터 보호해 주며, 삶과 향연의 장을 묘사한다. 아직 이 공간 밖에 있지만, 그곳에 들어가도록 초대받았다고 느끼는 이들도 보호할 수 있도록 천막 천을 펼치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 구조적 요소는 줄인데, 천들을 함께 잡아 준다. 줄은 천막이 축 처지지 않게 하는 데에 필요한 장력과 바람이 일으키는 흔들림을 완화시키는 유연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천막을 확장한다면, 적당한 장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줄은 길게 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요소는 말뚝으로서, 이것은 구조를 땅에 고정하고 그 견고함을 확고하게 하지만, 천막을 다른 곳에 쳐야 할 때는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있어야 한다. 


    27. 오늘 들은 이사야서의 이 말씀은 교회를 천막으로, 아니 모임의 천막 곧, 사막을 걷는 동안 백성과 함께했던 그 천막으로 상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이 천막은 넓혀지고 옮겨지도록 요청받았다. 천막의 한가운데에는 지성소가, 곧 주님의 현존이 있다. 천막의 유지는 말뚝, 곧 변하지 않는 신앙의 기초의 견고함으로써 보장되지만, 항상 새로운 땅에 옮겨지고 세워질 수 있기 때문에 천막은 역사 안에 걸어가는 백성과 함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천막이 축 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 구조에 가해지는 다양한 힘과 장력들 사이에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식별의 필요성을 표현하는 은유이다. 이렇게 해서 많은 종합 의견서가, 교회를 넓지만 동질적이지 않은 거처, 모든 이에게 피난처를 제공할 수 있되 개방되어 있어 드나들게 하며(요한 10,9 참조), 성부와 인류의 다른 모든 구성원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처로 상상하고 있다. 


    28. 천막을 넓히는 것은 다른 이들의 다양성에 자리를 만들어 줌으로써 천막 안으로 그들을 환대할 것을 요청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리고 이웃과 관계 안에서 또 그 관계를 통하여 자신을 찾으면서, 사랑을 위하여 스스로 기꺼이 죽는 마음을 갖게 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교회의 풍요로움은 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지만,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채우시도록 자신을 비우는 경험이며, 따라서 우리가 더욱 풍요로운 관계들과 하느님 그리고 다른 이들과 더욱 깊은 유대를 선물로 받게 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5-7).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부여하신 사명을 수행하는 데에 교회의 구성원들이 저마다 그리고 모두 함께 성령과 협력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전례적, 성체성사적 행위의 조건에서이다. 


3.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를 향하여

    29. 천막이라는 성경 이미지는 많은 종합 의견서에 나타나는 다른 이미지들과 연관되는데, 곧 사람들이 속하기를, 그리고 돌아오기를 원하는 장소인 가정과 집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교회-집은 닫히는 문이 아니라 계속해서 확장되는 테두리를 갖는다”(이탈리아 주교회의). 집과 유배, 소속과 배제의 역동성은 종합 의견서들에서 하나의 긴장으로 나타난다. “교회 안에서 집에 있는 듯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부재를 느낀다”(아일랜드 주교회의). 이러한 소리들을 통하여, “다양함 가운데 일치를 살아가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세계 교회에 대한 하느님의 꿈”을 우리는 이해한다. “하느님은 어떤 새로운 것을 준비하고 계시고 우리는 그에 협력해야 한다”(세계 남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세계 여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


    30. 다양성과 그리고 거기에서 생겨나는 긴장들을 직면하는 데에 교회가 마주한 근본적인 유혹들 가운데 두 가지를 피하고 있기에 수합된 의견서들은 고무적이다. 첫 번째 유혹은 갈등에 갇힌 채로 있어, 지평은 좁아지고 함께라는 감각은 상실되어 우리가 하위-정체성들로 쪼개져 버린다. 이것은 바벨의 경험이지 성령 강림의 경험은 아니며, 세상의 많은 것에서 잘 볼 수 있다. 두 번째 유혹은 영적으로 분리되고, 관련된 긴장에 무관심하여, 여정에서 우리와 가까이 있는 이와 함께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길만을 가는 것이다. 반면에, “부르심은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진리와 자비 사이의 긴장을 더욱 잘 사는 것이다. …… 꿈은 그리스도론적 역설을 더욱 충만하게 사는 교회에 대한 것이다. 곧 교회가 용기 있게 자신의 참된 가르침을 선포하고 동시에 식별에 기초한 사목적 동반을 통하여 근본적 포용과 수용에 대한 증언을 하는 것이다”(영국과 웨일스 주교회의).


    31.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근본적 포용, 소속의 공유, 깊은 환대를 할 수 있는 교회에 대한 전망은 시노달리타스 과정의 중심에 있다. “식탁에서 다른 이들을 배제하려는 문지기처럼 행동하는 대신, 모든 사람이 여기에서 자리와 집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우리는 더욱 많은 일을 해야 한다”(어떤 미국 본당 그룹의 의견). 우리는 “인류의 여정에서 우리의 동반자인 사람들의 실존에 수용될 수 있도록 환대해 주는 사람들의 편안한 자리를 떠나”(독일 주교회의), 온갖 장소에, 특히 더욱 익숙한 영역 밖으로 가도록 초대되었다. 



3.1 환대가 되는 경청 

    32. 이 여정에서, 교회들은 더욱 큰 포용―넓혀진 천막―을 향한 여정이 점진적 방식으로 실현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정은 경청으로 시작해서, 태도들과 구조들의 더욱 광범위하고 깊은 회심, 사목적 동반의 새로운 접근, 그리고 회심하라는 그리고 더욱 단호하게 복음을 실천하라는 요청이 울려 퍼지는 곳이 변방일 수 있음에 대한 기꺼운 인정이 요구된다. 경청은 타자를 고유의 여정을 가는 주체로 인정할 것을 요청한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자신이 판단받은 것이 아니라 환대받았으며, 자신의 영적 여정을 공유하는 데에 자유롭다고 느낀다. 이것은 많은 상황에서 체험되었고 어떤 곳에서는 전체 과정 중에서 가장 혁신적인 것이었다. 곧 시노드 체험은 교회 안에서 충분하게 인정받는다고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인정받는 과정으로 읽힐 수 있었다. 그것은 특히 이전에는 제도적 교회가 자신들의 신앙체험이나 의견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남녀 평신도, 부제, 남녀 축성 생활자들의 경우에 참으로 그러하였다.


    33. 종합 의견서들은 또한 깊이 있는 경청의 어려움, 그리고 경청이 가져온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의 어려움에 대하여 성찰하고, 경청과 식별의 공동체적 과정이 부족하다고 강조하면서, 이 부분에서 더 많은 양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에 더하여 구조적 장애들의 지속도 지적하였다. 그런 장애들 가운데에는 독재적 경향을 조장하는 위계적 구조, 개인들을 고립시키고 사제와 평신도의 관계를 분열시키는 성직 중심 및 개인주의 문화, 부유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사회문화적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 서로 분리된 그룹 구성원 간의 만남을 촉진할 수 있는 ‘중간’ 공간의 부족 등이 있다. 폴란드 종합 의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청하지 않는다는 것은 몰이해, 배제, 소외로 이어진다. 나아가 결과적으로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폐쇄성, 단순화, 신뢰 부족, 두려움을 만든다. 사제들이 듣지 않으려 할 때, 예를 들어 많은 활동을 핑계 삼을 때, 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없을 때, 평신도들의 마음속에는 슬픔과 소외감이 생겨난다. 경청하지 않는다면, 신자들의 어려움에 대한 응답은 맥락을 벗어나 그들이 겪는 문제의 본질을 다루지 못한 채 그저 공허한 윤리주의가 되어버린다. 평신도들은 진지한 경청으로부터의 도피가 사목적으로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주교가 신자들에게 말하고 그들의 말을 들을 시간이 없을 때 비슷한 느낌은 더욱 커진다.” 


    34. 동시에 종합 의견서들은 많은 성직자의 고독, 외로움에 대해서도 민감하다. 이들은 경청되고 지지받고 제대로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아마도 종합 의견서에서 덜 강조되고 있는 소리 가운데 하나는 사제들과 주교들이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함께 걷는 여정에서의 자신의 체험에 대하여 말하는 소리일 것이다. 성품 직무자들에게 특별히 주의 깊은 경청이 이루어진 것은 그들 삶의 정서적, 성적 차원에 대한 것이었다. 또한 독신 서약을 어긴 사제들의 여성들과 그 자녀들에 대한 환대와 보호를 위한 어떤 형태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면 이들은 심각한 불의와 차별을 받을 위험이 있다.  


젊은이들, 장애인들 그리고 생명 보호를 위한 선택  

    35. 시노드 과정에서 그리고 교회의 삶에서 점점 더 젊은이들의 소리가 빈약하게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우려가 보편적으로 있었다. 젊은이들, 그들의 양성과 동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앞서 있었던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2018)에 대한 시노드의 결론을 실현하는 방법으로서도 시급히 요청된다. 그 시노드에서 오늘날 신앙의 전수라는 관점에서 더욱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각시킨 것은 젊은이들이었다. ‘디지털 시노드’의 주도는 젊은이들의 소리를 들으려는 의미 있는 노력이고, 복음 선포의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앤틸리스 제도의 종합 의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고도의 소외를 체험하기 때문에 우리는 젊은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해야 한다.”


    36. 수많은 종합 의견서가 장애인들을 위한 적절한 동반 구조와 방식이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참여를 촉진하고 그들의 기여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요청한다. 교회는 자신의 가르침이 있음에도, 사회가 장애인들을 무시하는 방식을 모방할 위험이 있다. “열거하는 차별의 형태들―경청의 부족, 어디에 그리고 누구와 함께 살지 선택할 권리의 침해, 성사 수여의 거절, 주술에 대한 비난, 학대―그리고 그 외 여러 가지 것들이 장애인들에 대한 거부 문화를 묘사하고 있다. 그런 형태들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공통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곧 장애인의 삶은 다른 이들의 삶보다 덜 가치 있다는 생각에서 생겨난다”(평신도가정생명부가 수행한 장애인들의 시노드 특별 자문 종합 의견서).


    37. 마찬가지로, 연약하고 모든 단계에서 위협받은 생명의 보호에 대한 하느님 백성의 임무가 강조되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그리스-가톨릭 교회에서는 다음 내용이 시노달리타스에 포함되었다. “여성 이민 현상을 연구하고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을 지원하기, 물질적 가난과 우크라이나 가족의 반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낙태를 결정하는 여성들을 특별히 주의해서 돌보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보존하고 보호하고 낙태를 예방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삶에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을 때 책임 있는 선택을 해야 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교육 활동을 증진시키기, 낙태 후 증후군을 갖는 여성들을 돌보기”.


무시되고 배제당한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귀 기울이기 

    38. 종합 의견서들은 많은 공동체가 이미 시노달리타스를 교회로부터 추방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경청하기 위한 초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추방당했다는 느낌을 갖는 그룹은 자신들이 받은 선물과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많은 여성과 젊은이들을 비롯해서 다양하다. 그들 서로 매우 이질적인 이 그룹 안에서 많은 이가 폄하, 무시, 오해를 받는다고 느낀다. 집에 대한 향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적 발전에 대하여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진지하게 경청되는 체험은 많은 이에게 변화를 가져오는 그리고 포용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첫 번째 단계이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이 시노드 과정에서 자신들의 참여가 환영받지 못했다고 느꼈다는 사실은 슬픔을 불러왔다. 이는 이해와 대화를 필요로 하는 느낌이다. 


    39. 더욱 의미 있는 대화 그리고 더욱 환대하는 자리를 요청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다양한 이유로 교회에 대한 소속감과 자신의 정서적 관계 사이에서 긴장을 느끼는 사람들, 예를 들어, 이혼하고 나서 재혼한 이들, 한 부모, 일부다처제로 사는 사람들, 성 소수자(LGBTQ) 등이 있다. 종합 의견서들은 많은 지역 교회에서 환영에 대한 요청이 얼마나 도전이 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사람들은 교회가 완전한 이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상처받고 부서진 사람들을 위한 피난처이기를 요구한다. 사람들은 교회가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를, 그들을 판단하기보다는 함께 걷기를, 그리고 우월감이 아닌 돌봄과 진정성을 통하여 참된 관계를 수립하기를 원한다”(미국 주교회의). 종합 의견서들은 또한 이에 응답하는 방법에 대한 불확실성을 드러내면서, 보편 교회의 식별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레소토에는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 교회 안에 있는데, 곧 동성 간의 관계이다. …… 이 새로움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그리고 그것을 죄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는 원인이다. 놀랍게도 레소토에는 이런 행동을 하기 시작했고 교회가 자신들과 자신들의 행동 방식을 받아들이기를 기대하는 가톨릭 신자들이 있다. …… 이것은 교회에는 문제가 되는 도전인데 왜냐하면 이들은 배제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레소토 주교회의). 또한 결혼하기 위하여 성품 직무를 떠난 이들도 더욱 큰 환대와 기꺼운 대화 의지를 요구한다.


    40. 문화적 차이가 있음에도 다양한 대륙들에서 사회 그리고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도 배제된 것으로 이해되는 사람들에 대하여 눈에 띄게 비슷한 점이 있었다. 많은 경우에 그들의 소리는 시노드 과정에서 부재했고, 그들의 배제를 슬퍼하면서 다른 이들이 그들에 대하여 말했던 덕분에 종합 의견서에 나타났다. “볼리비아 교회로서, 우리는 변두리와 가장 외진 곳에 있는 가난한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볼리비아 주교회의). 가장 자주 언급된 배제된 그룹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극빈자들, 독거노인들, 원주민들, 소속이 없고 위태로운 생활을 하는 이주민들, 거리의 아이들, 알코올 중독자들과 마약 중독자들, 범죄의 굴레에 빠진 사람들과 성매매가 유일한 생존 방법인 사람들, 인신매매 피해자들, 교회 안팎에서 학대의 생존자들, 수감자들, 인종, 민족, 젠더, 문화, 성으로 인하여 차별과 폭력을 겪는 사람들. 종합 의견서들에서 이 모든 이가 이름과 얼굴을 가진 사람들로 등장하며, 연대, 대화, 동반 그리고 환대를 요청한다. 


3.2 사명을 위한 형제자매들

    41. 교회는 충만한 생명의 선포자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복음서들은 생명의 충만함과 하느님 나라를 분리된 실재 또는 영역으로 표현하지 않고 항상 역동적으로 엮인 것으로 표현한다. 교회의 사명은 말씀의 봉독, 성사들의 거행 그리고 상처받고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는 모든 행위를 통하여 하느님 백성 가운에 그리스도를 현존케 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이가 이 요청에 응답하기 위하여 회심의 과정에 들어갈 필요가 있으며, 이것은 케리그마, 곧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근본적 경청과 선포의 제안을 포함한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적 삶과 우리의 첫사랑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우리의 뿌리인 초기 공동체들, 곧 모든 것을 공유했던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코스타리카 주교회의). 


    42. 사명을 수행하면서 우리의 그리스도교적 소명의 충만함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천막을 넓혀라.’는 사명을 수행하는 활동의 중심에 있다. 그러므로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을 실현하는 교회는 복음의 강력한 증언을 세상에 제공한다. “성령께서 우리의 전략, 임무, 헌신, 동기를 새롭게 하도록 촉구하시어, 우리가 함께 걸을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기쁘고 열정적으로 전파하면서, 우리의 재능과 선물, 능력을 사용하면서,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고 신앙과 교회의 삶에 비추어 문화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들에게 도달할 수 있게 하신다”(베네수엘라 주교회의). 종합 의견서들은 오늘날 세상의 도전에 자신을 개방하고 또한 구체적 변화를 통하여 거기에 응답할 수 있는 교회에 대한 꿈을 담고 있다. “세상은 ‘밖으로 나가는 교회’를 필요로 하며, 이런 교회는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의 분리를 거부하며 인류에게 시선을 돌려, 어떤 교리나 전략을 제시하기보다 인류와 자연의 부르짖음에 응답하는 구원의 체험, ‘선물의 흘러넘침’을 제공한다”(포르투갈 주교회의).


오늘날 세상 안에서 교회의 사명 

    43. 시노달리타스는 인류 가족 전체가 함께 걸어가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다. 많은 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종교인들 혹은 믿지 않는 이들 가운데에서 살며, 일상생활과 공동생활의 교류 안에 이루어지는 대화에 참여한다. “아프리카 전통적 종교를 실천하는 이들과 그리고 어떤 종교에 속하든지 간에 다른 모든 사람이나 공동체와 대화하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었다”(세네갈, 모리타니아, 카보베르데, 기니비사우 주교회의). 그러나 종합 의견서들은 사회적, 문화적, 영적 그리고 지적 교류와 협력이라는 면에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하고 있다. 


    44. 교회의 상처는 세상의 상처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종합 의견서들은 교회와 세상의 삶에서 부족주의, 종파주의, 인종주의, 가난, 성 불평등의 도전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우간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면서 다른 많은 나라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부자들과 교육받은 사람들이 더 많이 경청된다.” 필리핀 종합 의견서는 “사회의 가장 낮은 계급에 그리고 변두리에 속하는 사람들은 교회로부터도 소외되고 있다고 느낀다.” 또 다른 종합 의견서들은 민족적 차별과 부족주의에 기초한 문화의 차별이 교회 공동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현실은 우리의 사명의 배경만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과 목표 또한 규정한다. 곧 교회가 선포할 의무가 있는 복음의 메시지는 인류와 피조물을 속박하는 죄의 구조 또한 변화시켜야 한다.


    45. 하느님 백성은 가난한 이들과 땅의 외침을 경청하려는 깊은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종합 의견서들은 사회적 환경적 도전들 사이의 상호연결을 인식하도록, 그리고 비 가톨릭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종교인들 그리고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과 협력하고 동맹을 맺음으로써 그 도전들에 응답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교회 일치 운동의 쇄신과 종교 간 대화에 대한 이런 호소는 특히 사회적 환경적 피해에 더 큰 취약성과 더 확연한 불평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지역에서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대륙과 태평양 지역의 종합 의견서들은 사회적 환경적 도전에 직면하는 것이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님을 인식하도록 전 세계 교회들에 촉구한다. “하느님의 창조물 가운데 이 부분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인데, 왜냐하면 매우 많은 방식으로 우리 백성들의 복지가 바다에 의존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 일부 국가에 주요 위협은 바다인데, 기후 변화가 이 나라들의 실제 생존에 끔찍한 결과들을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태평양 주교회의). 


    46. 어떤 종합 의견서들은 공적 영역에서, 특히 평화 건설과 화해의 과정과 관련하여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극도로 분열된 사회에서 이것은 교회 사명의 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다른 종합 의견서들에서는 교회가 공적 논쟁과 정의를 위한 일에서 더 결정적으로 기여하도록 초대한다. 교회의 사회 교리 영역에서 양성을 더하여야 한다는 바람도 나타난다. “우리 교회는 다툼이 아니라 대화와 모든 수준에서의 협력에 부름받았다. …… 우리의 대화는 쓸데없는 논의를 하는 호교론적 대화가 아닌 생명과 연대의 대화이어야 한다”(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 


    47. 많은 종합 의견서에서 공통된 또 다른 주제는 깊은 교회 일치적 활동이 약하다는 것, 그리고 사회적 환경적 정의를 위한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구체적이며 일상적인 협력으로부터 출발해서 어떻게 교회 일치적 여정에 새로운 활력을 줄지 배우려는 바람이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그리고 신앙 공동체들 사이에 더욱 일치를 이룬 증언을 하기를 열렬히 바라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걷기

    48. 그러나 교회 일치 운동에 대한 요청은 단순히 사회적 공통 과제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것만은 아니다. 많은 종합 의견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치가 없다면 시노달리타스가 완성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다양한 전례 예식을 가진 교회들 간의 더욱 긴밀한 친교에 대한 요청으로 시작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부터 교회 일치적 대화는 계속해서 발전해왔다. “우리 나라에서 서로 다른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산다’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경험되는 사실이다. 우리의 이웃, 가족, 영안실, 직장은 교회 일치 운동의 참된 장이다”(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주교회의). 그러나 교회 안의 시노달리타스의 구조들과 직무들에 관련 있는 많은 교회 일치적 문제는 아직 잘 설명되지 않고 있다. 박해가 그리스도인들을 계속해서 일치시키고 있는 곳에서 ‘순교의 교회 일치 운동’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여러 종합 의견서가 강조하고 있다. 종합 의견서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현실들, 예를 들어 성체성사의 공유 문제와 같은 것에 더욱 큰 주의를 기울이기를 요청한다. 

    49. 또한 서로 다른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서로 다른 종교인들로 구성된 가정의 숫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민감한 현상을 지적하면서, 그들에게 특별히 필요한 것들을 동반의 측면에서 언급하고 있다. 분열된 세상에서 행하는 증언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한 일을 다시 시작하려면, 교회 일치 그리고 종교간 대화를 위하여 주교, 신부, 축성 생활자들, 남녀 평신도들에게 신뢰, 능력, 그리고 동기화를 증진시킬 양성이 필요하다. “비록 인도에서 가톨릭 교회가 교회 일치 그리고 종교간 대화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노력해 왔지만, 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활동은 미미하다는 느낌이 든다. 대화를 위한 노력은 서로 다른 신앙과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이 공통의 대의를 위하여 식별하고 계획을 세우고 함께 일함으로써 대중운동, 삶의 대화, 사랑,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활동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오직 극소수 엘리트들만이 이에 관여하고 있고, 사상과 개념들 영역에 국한된 두뇌 훈련에 머물러 있다”(인도 주교회의).


문화적 맥락

    50. 수많은 종합 의견서들은, 교회가 특별한 문화적 상황 안에서 교회가 깊은 그리고 급속한 사회적 변화에 영향을 받으며 복음을 선포하는 고유의 사명을 완수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요인들은 다양하지만, 이 요인들이 참여에 중요한 도전들을 곳곳에서 일으키고, 교회 사명의 현실을 형성한다. 여러 다른 장소에서 다른 방법으로 표현되고 체험된 종파주의, 부족주의, 민족-국가주의의 유산은 교회의 보편성을 표현하는 것을 제한하는 위협을 계속해서 가하고 있다.


    51. 많은 지역 교회가 남용의 위기 때문에 신뢰성과 신용이 감소하는 문화적 상황 앞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른 지역 교회들은 중대한 문화적 요인으로서 개인주의와 소비주의를 언급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복음 선포가 세속화의 증대와 개인주의, 종교의 제도적 형태에 대한 무관심의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것을 나날이 느낄 수 있다”(헝가리 주교회의). 다른 종합 의견서들과 마찬가지로 몰타의 종합 의견서는 교회와 정치권력 사이의 역사적 얽힘이 어떻게 사명 수행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강조한다. 많은 교회가 이 모든 문화적 도전 앞에 놓여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지속 가능성, 형평성 또는 성취감 등을 보장할 수 없는 소비주의적 사회”(아일랜드 주교회의) 안에서도 복음을 선포할 수 있다는 확신을 더욱 갖기를 원한다. 다른 지역 교회들에서는 그들 내에 다양한 입장이 있음을 체험한다. “중앙아프리카는 또한 세속화, 개인주의 그리고 상대주의의 세계적 흐름의 영향을 받는다. 낙태, 피임, 여성 서품, 기혼 사제, 독신, 이혼과 재혼, 영성체 가능성, 동성애, 성 소수자(LGBTQIA+) 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같은 주제들은 도시와 시골의 모든 교구에서 제기되었다. 서로 다른 관점들이 있고, 이 주제들 가운데 어떤 것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공동체 입장을 하나로 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남아프리카 주교회의). 수많은 종합 의견서가 가족들에 가해지는 압력들 그리고 그 결과 발생하는 세대 간 관계와 신앙 전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유감과 우려를 표명한다. 아시아의 많은 종합 의견서는 문화적 변화에 직면한 가족들을 위하여 더 나은 동반과 양성을 요청하고 있다. 


    52. 어떤 상황에서 신앙의 증언은 순교에 이르기까지 한다. 어떤 나라들에서는 젊은이들이 조직적 강제 개종에 직면해 있다. 박해받는 소수자들로서 그리스도인들이 대항해야 하는 불안과 폭력을 강조하는 종합 의견서들이 많았다. 이런 경우 분리의 벽 뒤로 물러나는 대신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예언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문화, 종교 그리고 대화

    53. 시노달리타스의 본질적 요소,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더 나은 이해와 더욱 의미 있는 심화를 위하여 필요한 요소는 더욱 의식적인 문화간 접근에 대한 요청이다. 그런 접근은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면서 그리고 그 차이들을 성장의 요소로 이해하면서 다른 이와 함께 걸음으로써 시작된다. “캄보디아에서 가톨릭 교회와 캄보디아 불교 승려들과 신자들 간의 만남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다.’ 우리의 모든 활동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세상 전체에 영향을 준다. 종교가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모두 공동선을 추구한다”(라오스와 캄보디아 주교회의). 더욱 강렬하게 상호문화성을 체험하며 사는 상황에서 약한 소수를 대표하는 것은 교회이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의 ‘다공성(多孔性)’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과 시민 사회와 경계선은 역설적으로 다른 곳보다 약하다. 교회 ‘안’의 일 또는 ‘밖’의 일들을 하는 데에 문제가 없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는 교회로 정의되는데, 왜냐하면 언제나 ‘다른 이의 집에’ 있기 때문이고, 이것이 우리에게 형태, 언어, 실천들에 있어 경청, 유연성 그리고 창의성을 가르쳐 주었다”(북아프리카지역 주교회의). 


    54. 그러나 타자의 수용 또는 바로 인정에 도달할 때도, 이 과정은 아직 완성되지 않는다. 교회의 상호문화적 접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지평, 곧 하느님 나라를 목표로 한다. 풍요로움인 다양성을 품을 때 우리는 더욱 심오한 일치 그리고 하느님 은총에 협력할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확장된 가족 그리고 여행 동반자들(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 정치인들, 비신자들)의 생각과 사상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속삭이시는 것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면, 우리가 무시한 채 내버려 둘 수 없는 소리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짐바브웨 주교회의). 이것은 참된 소명으로서 일치 안의 다양성을 보려고 수고하는 세상 안에서 하나의 증언을 구성한다. “공동체는 …… 다양성, 열망, 필요, 신앙을 살아가는 방법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 보편 교회는 일치의 보증자로서 있어야 하지만, 교구는 신앙을 지역적으로 토착화할 수 있다. 곧 탈중심화가 필요하다”(룩셈부르크 대교구).


    55. 적지 않은 종합 의견서들에서 지역 문화들의 풍요로움을 인정하고, 참여하고, 통합하며 그것에 더 잘 응답할 것을 요청하는데, 그 문화들 가운데 많은 것은 세상에 대한 전망, 시노달리타스의 특성을 갖는 행동방식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지역 문화를 증진시키기를(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회복하고 심화하기를), 신앙과 통합하기를, 그리고 전례 안에 받아들이기를 원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문화적 환경에 신앙을 토착화하기 위하여 신앙에 대한 자신의 전망으로부터 출발해서 기여하도록 초대되었다. …… 이런 다양한 접근은 문화 상호성의 한 모형의 실현으로 보아야 하는데, 이 모형은 다양한 제안들을 통합하고 서로를 풍요롭게 함으로써, 문화들의 단순한 병렬 배치이자 자신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는 다문화성의 모델을 극복한다”(교황청 문화평의회 의견서).


    56. 수많은 종합 의견서가 원주민들의 상황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청한다. 그들의 영성, 그들의 지혜와 문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다. 교회의 활동이 그들의 통합적 인간 발전에 기여한 상황에서 영감을 얻기 위하여 그리고 반대로 그들에 대한 억압에 공모했던 시간들에 대한 용서를 청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백성들과 함께 역사를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동시에 어떤 종합 의견서들은 문화적 관습들 또는 전통적 신념들과 교회의 가르침들 사이에 있는 명백한 모순들을 화해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더욱 일반적인 수준에서 시노달리타스의―친교, 참여, 그리고 사명의―실천은 식별과 생산성을 증진하는 긴장 안에서 문화들 그리고 지역적 상황들과 연결되어야 한다. 

 


3.3 친교, 참여, 그리고 공동 책임성

    57. 교회의 사명은 세례 받은 모든 이의 삶을 통하여 실현된다. 종합 의견서들은 그 공통된 품위를 교회의 삶과 직무 쇄신의 기초로 인정하고 재천명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종합 의견서들은 교회 안에서 모든 부르심이 지닌 가치를 강조하고, 특히 예수님께서 치유, 화해, 그리고 해방을 선사하기 위한 도구로 권한과 권위를 행사하신 방식과 방법으로 돌아감으로써 그분을 따르도록 초대한다. “일인 체제 운영에 특권을 부여하는 피라미드적 권력을 해체하기 위한 교회적 패러다임으로서, 시노달리타스의 제도적 모형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 안에서 유일한 합법적 권위는 주님의 모범을 따르는 사랑과 봉사의 권위여야 한다”(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성직주의를 넘어

    58. 종합 의견서들의 어조가 (사제들에게 또는 사제 직무에 반대하는) 반성직주의인 것은 아니다. 충실함과 헌신으로 그리고 마주한 많은 요청에 대하여 염려하면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사제들에 대하여 많은 종합 의견서가 깊은 존중과 애정을 표명하고 있다. 또한 사제들이 더욱 양성되기를 그리고 더욱 동반을 받고 덜 고립되기를 바라는 소리도 있었다. 더욱이 사제이든 평신도이든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공통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교회를 성직주의로부터 해방해야 할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성직주의는 영적 빈곤의 한 형태로, 성품 직무의 참된 선의 결여로 그리고 사제를 고립시키고 평신도들을 해롭게 하는 문화로 이해되었다. 이 문화는 우리를 하느님에 대한 살아 있는 경험으로부터 분리시키고 형제적 관계를 손상시키며, 경직성, 법적 의미의 권력에 대한 집착, 그리고 봉사보다는 권력으로서의 권위 행사 등을 낳는다. 성직주의는 성직자들에게만큼 평신도들에게도 하나의 유혹인데, 중앙아프리카 종합 의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본당 사제는 ‘명령의 분배자’처럼 처신하는데,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 뜻만을 강요한다.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지나치게 ‘성직 중심적인’ 주도권은 강하게 비난받아야 한다. 어떤 사목 활동가들,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은 때로 자신들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기를, 자신들의 의견에 적대적이고 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기를 선호한다.”


    59. 비록 정직하게 문제를 진단하고 있기는 하지만, 종합 의견서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관계적이고 협력적인―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의―리더십 수행 형태, 그리고 연대와 공동 책임성을 낳을 수 있는 권위의 형태에 대하여 깊고 생생한 바람을 표현하고 있다. “권위의 임무에는 교회의 삶에 참여하도록 고무하고 관여시키며 이끌고 용이하게 하는 것, …… 그리고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포함된다”(슬로바키아 주교회의). 평신도, 수도자 그리고 성직자들은 교회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들의 재능과 능력을 내놓기를 원하며, 그렇게 하고자 그들을 자유롭게 할 리더십 수행을 요청한다. 종합 의견서는 이미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지도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여성들의 참여에 대하여 재고하기 

    60. 교회 문화에 대한 회심의 호소는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구체적 용어로 새로운 실천과 구조 그리고 관습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갈 가능성과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여성들의 역할에 대한 그리고 세례를 통한 공통된 품위에 기초하여 교회의 삶에 충만하게 참여하라는 그들의 소명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발전된 인식이 자리 잡은 중요한 지점이다. 

    

    61. 가톨릭 여성들이 세례 받은 사람들로서 그리고 동등한 품위를 가진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되어야 한다는 호소가 전 대륙으로부터 있었다. 교회를 깊이 사랑하지만, 많은 여성이 종종 자신의 삶이 제대로 이해받지 않고 있고, 자신의 기여와 은사가 항상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아니기에 슬프다고 거의 만장일치로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종합 의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노드 과정에 더 헌신했던 이들은 여성이었으며, 이들은 단지 얻을 것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예언적 모서리로 내몰렸기 때문에 제공할 것이 더 많았다고 이해한 것 같다. 그 예언적 모서리에서 여성들은 교회의 삶에서 일어나는 것을 관찰했다.” 의견서는 계속해서 말한다. “결정을 내리는 이들이 거의 모두가 남성인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자신들의 소리를 듣게 만들 수 있는 장은 조금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 공동체의 중추를 이루는데, 행동하는 이들의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교회 구성원들 가운데 가장 활동적인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종합 의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의사 결정에서는 소외되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증진하는 교육과 연구 그리고 활동 지원을 통해 여성들의 활동에 대한 교회의 인식 전환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요청하였다.” 교회는 서로 연관된 두 가지 도전 앞에 있다. 여성들이 전례에 참여하는 그리고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가운데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 그러나 결정과 ‘협치’(governance) 역할의 대부분은 남성이 담당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교회가 남성들이 교회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끌 방법, 그리고 여성들에게 교회의 삶의 모든 수준에서 더욱 충만하게 참여하도록 허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62.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의 온갖 환경에서 교회가 그들 편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 전 세계에서 마주하는 곤궁, 폭력 그리고 굴욕 앞에서 여성들은 교회가 그들 옆에 있어 주기를, 이 파괴적인 힘과 배제와 싸우는 데에 더 많이 이해해 주고 연대해 주기를 요청한다. 시노드 과정들에 참여했던 여성들은 교회와 사회가 여성들을 위한 성장, 능동적 참여 그리고 건전한 소속감의 장이기를 원한다. 어떤 종합 의견서들은 자기 나라의 문화가 여성들의 포용과 참여에서 발전을 이루었고 이런 진보가 교회를 위한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다. “교회 안에서 여성의 평등성의 부족은 현대 세계의 교회에 하나의 장애물로 여겨진다”(뉴질랜드 주교회의).


    63. 문제는 다양한 형태로 모든 문화적 맥락에 존재하며, 여성 수도자와 여성 평신도의 참여와 인정에 대한 것이다. 축성 생활회들의 의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정 과정에서 그리고 교회의 언어에서 성차별은 매우 널리 퍼져 있다. …… 그 결과 여성들은 교회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에서 제외되어 있고, 그들이 수행하는 일과 봉사에 대한 동등한 대가를 받지 못하기에 차별을 받고 있다. 여성 수도자들은 종종 저임금 노동자로 여겨진다. 어떤 교회에서는 여성들을 배제하려는 그리고 교회 일을 종신 부제들에게 맡기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또한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 여성과 남성의 품위와 근본적 동등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수도복을 입지 않는 축성 생활을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세계 남녀 수도회 장상 연합회).


    64. 거의 모든 종합 의견서가 여성의 충만한 그리고 동등한 참여의 문제를 제기한다. “교회의 삶에 있어서 여성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증가는 교회적 구조들과 결정 영역에서,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여성들이 더 많이 참여할 가능성을 열어 준다”(브라질 주교회의). 그러나 종합 의견서들이 교회와 사회 안에서 여성의 소명, 포용과 그 가치를 펼치는 문제에 대하여 단 하나의 또는 완전한 대답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종합 의견서가 상황에 주의 깊게 귀 기울인 다음 교회가 교회 조직들의 통치 구조에서 여성들의 능동적 역할, 본당에서 여성이 적합한 양성을 받고 설교할 가능성, 여성 부제직과 같은 특별한 문제들에 대하여 식별해 줄 것을 요청한다. 여성 사제 서품에 대해서는 훨씬 더 다양한 입장이 있었는데, 어떤 종합 의견서는 그것을 옹호하는 반면 어떤 종합 의견서는 이 문제를 닫힌 문제로 간주했다. 


    65. 이 과정의 근본적인 요소는 이미 교회가 직면하도록 요청된 가장 어려운 사회적 상황들 가운데 어떤 상황에서는 여성 특히 여성 수도자가 시노드 실천에서 이미 맨 앞줄에 있는 방식들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연대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시노달리타스의 씨앗들이 있다. 곧 흑인, 갈색인, 아시아인 그리고 미국 본토인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인종적, 민족적 정의, 그리고 평화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 아메리카 원주민 본토인 형제자매들과 함께 깊이 연결되기, 다양한 운동들에 여성 수도자들의 존재를 위한 새로운 길을 열기, 근본적인 사회적 문제들(기후 변화, 망명자와 망명 신청자들, 노숙자들 문제), 또는 특정 국가들의 문제들을 마주하기 위하여 같은 지향을 공유하는 그룹들과 동맹을 맺기 등이 필요하다”(세계 남녀 수도회 장상 연합회). 이런 맥락에서 여성들은 협력자를 찾고 또 더욱 광범위한 교회적 과정 안에서 시노달리타스의 교사일 수 있다. 


은사, 소명 그리고 직무 

    66. 교회의 시노달리타스의 삶에 대한 책임은 위임될 수 없으며,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주신 선물에 응답하여 모든 이가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라에 교구의 어떤 그룹은 본당에서의 시노달리타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본당 사목 평의회 모임에서, 본당 모든 이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결정을 내리기 전에 여성들을 포함하여 참석한 모든 이의 의견과 제안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다른 본당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본당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우리는 모여서 공동체 안의 모든 사람의 제안을 경청하고, 함께 결정하고 결정한 바를 함께 실천해 나간다’”(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제도 주교회의). 그러나 공동 책임을 실제로 실현하는 데에는 수고를 들일 필요가 있다는 표현도 없지 않다. “주교들인 우리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선언한 ‘세례성사 신학’, 사명에 있어 공동 책임성의 기초인 이것이 충분하게 발전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세례 받은 이들 대부분은 자신과 교회의 충만한 동일시를 느끼지 못하며, 게다가 사명에 있어서 공동 책임성은 더더욱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현재의 사목적 구조들의 리더십은, 많은 사제의 의식과 마찬가지로, 이런 공동 책임성을 강화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남녀 수도자들은, 평신도 사도직 운동과 마찬가지로, 종종 미세하게 또는 공개적으로 교구의 역동성의 변두리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본당에서 소위 ‘열심히 일하는 (소수의) 평신도들’은 자신의 능력을 초과하고 시간을 소모하는 교회 내 책임으로 인하여 과중한 부담을 지게 되고 만다”(멕시코 주교회의).


    67. 공동 책임성에 대한 이 열망은 무엇보다도 공동 사명에 대한 봉사라는 열쇠에, 곧 직무성에 기반한다. “얻은 경험은 …… 세례의 품위로부터 오는 공동 책임성을 재발견하도록 하였고, 성품 직무자 중심으로 구성된 교회라는 전망을 극복하고 ‘모두 직무적인’ 교회, 곧 은사들과 다양한 직무들의 친교인 교회를 향하여 가게 하였다”(이탈리아 주교회의). 하느님 백성의 자문으로부터, 직무가 교회의 삶에서 중심이라는 주제가, 그리고 사명의 일치를 직무의 다수성과 연결시켜야 할 필요성이 나온다. 그런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증진한다는 것은 “여기서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이 아니라 사명에의 봉사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남녀 행위자들은 서로 다르고, 품위에 있어 동등하며, 표징이 되기 위하여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성사인 교회를 믿을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서로 상호보완적이다”(벨기에 주교회의).


    68. 많은 종합 의견서는, 공동체가 맡긴 실제적인 위임에 기초한, 직무들의 인정과 증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평신도 직무의 증진과 책임 인수가 규정된 요건을 갖춘 것으로 여겨지는 신자들의 선출이나 임명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모잠비크 주교회의). 이런 방식으로 모든 직무가 공동체의 삶에 있어 구조적인 그리고 구조화하는 요소가 된다. “책임 인수는 받은 위임으로 그리고 보조성의 원리로 보장된다. 교리교사들이 세워지고 이들은 하느님의 가족인 교회 안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특히 사제가 거의 없는 시골 지역에서 공동체의 ‘지도자’로 ‘세워진다’”(콩고 민주 공화국 주교회의). 평신도 직무성의 실행 가능한 영역에 대하여 질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그룹이 평신도들의 더 많은 참여를 염원하지만, 활동의 한계는 분명하지 않다. 평신도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임무를 할 수 있을까? 세례 받은 이들의 책임과 본당 사제의 책임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벨기에 주교회의)


    69. 어떤 상황에서는 단체들과 평신도 운동들 그리고 새로운 수도 공동체들 안에서 조직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은사들과 직무들의 다양성 또한 그 고유성과 함께, 각 지역 교회 안에서 조화를 보존하면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교회의 삶에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직무성이라는 주제는 불가피하게 그 제도화라는 주제와 만나게 되고 따라서 그 직무성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삶이 전개되는 구조라는 주제와 만나게 된다. 


    70. 가톨릭 교회에서, 성령께서 자유롭게 부여하신 은사적 선물들은 교회를 ‘젊어지게 하며’, 다양한 단계에서 성품성사에 연결되어 있는 교계적 선물과 불가분리적이다. 시노달리타스에 대하여 첫해에 나타난 커다란 도전은, 목자의 인도 아래 이 선물들을 대립 없이, 따라서 은사적 차원과 제도적 차원을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조화시키는 것이었다. 


3.4 시노달리타스는 형태를 갖춘다 

    71. 시노드 여정은 앞에서 설명한 일련의 긴장을 드러나게 하였다. 우리는 두려워하여서는 안 되며, 그 긴장들을 파괴적이 되게 하지 않고 힘의 원천으로 이용하려면 공통의 지속적 식별 과정 안에서 명료하게 하여야 한다. 오직 그렇게 할 때에 각자 자기 길로 가버리기보다는 계속해서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교회는 특히 협치에 있어 교회 고유의 제도들과 구조들이 시노달리타스를 계속해서 실행해 나갈 어떤 형태와 방식을 갖추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교회법은 현재 시행 중인 것들에 필요한 변화를 통하여 구조들을 쇄신하는 과정에 동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72. 그러나 참으로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작동하기 위해서 구조들은 전망과 능력에 있어 적합하게 양성된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시노드 전체 과정은 다양한 수준에서 이루어진 능동적 참여의 실행이었다. 이 과정을 계속해 나가려면 의식의 변화와 함께 기존 구조들의 쇄신이 필요하다”(인도 주교회의). 이 새로운 전망은, 시노달리타스의 도전들을 단순히 기술적-조직적 문제로 축소하지 않고, 함께 걸으며 공통의 사명에 봉사하면서, 주님을 만나고 성령의 목소리를 듣는 기회로 여기면서, 이 도전들을 마주하기 위한 도구들을 제공하는 영성에서 힘을 얻을 필요가 있다. 시노달리타스가 있기 위해서는 성령의 현존이 필요하며, 기도 없이는 성령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구조들과 제도들 

    73. 세계-지역의―이는 교회적 언어에서는 지역 교회들 사이의, 그리고 지역 교회와 보편 교회의 관계를 가리킨다.―긴장에 대하여 시노드 과정의 역동성은 우리를 어떤 새로움 앞에 서게 하며, 그 새로움은 정확히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륙별 단계로 구성된다. 특정한 역사적 역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대륙별 단계에서 시노달리타스의 확고한 실천들은 부족하다. 시노드 과정 안에 특정 단계의 도입은 단순한 조직적 편의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육화의 역동성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어떤 결속과 문화적 동질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지역에 뿌리내려서 각각의 문화와 특성과 연결된 고유한 교회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세계화된 동시에 파편화된 세계의 상황에서 각 대륙은 공통의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사회문화적 공통성을 지향하며, 복음화 사명을 위한 동일한 도전을 제시한다는 사실 때문에, 교회들 사이의 연결을 강화하고, 경험의 공유와 선물들의 교환을 고무하며 새로운 사목적 선택을 상상하도록 도와 주는 시노달리타스의 역동성을 활성화하는 데에 있어 특권적 환경을 구성한다. 


    74. 더욱이 시노달리타스의 역동성은 교황청 자체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정규적으로 자문을 구하고 있는 교황청 다른 부서들과의 협력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 어쨌든 이러한 상황에서, 교황께서 새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Praedicate Evangelium)에서 원하셨던 것처럼, 교황청 안에서 실현하여야 할 더욱 강한 시노달리타스 정신과 실천을 성장시킬 수 있기 위하여 더 많은 도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교황청 국무원 외무부의 의견서). 


    75. 주교회의들도 시노달리타스가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질문한다. “주교들도 기도하였고 다음 질문을 마주하였다. “어떻게 주교회의가 더욱 강한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실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더욱 시노달리타스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주교회의가 활동할 수 있을까?”(파라과이 주교회의) 예를 들어, “주교회의들은 단체성, 그리고 결정에 있어 어떠한 압력도 받지 않는 자유를 유지하면서도, 시노달리타스의 이름으로 다양한 교구의 성직자와 평신도 대표들을 논쟁과 만남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국무원 외교인사부의 의견서).


    76. 대륙의 역동성 안에서 주교회의들은 자신들 안에서 친교의 증진과 관련된 새로운 역할뿐만 아니라, 지리적 문화적 인접성으로 연결된 교회들과의 대화 증진에 관련된 새로운 역할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대륙별 단계는 교회적 그리고 주교적 회합을 전개하도록 제안함으로써 교회적 시노달리타스와 주교적 단체성을 어떻게 연결할지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또한 주교 직무 수행의 통상적 방법과 충만하게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실현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 사이를 어떻게 더욱 잘 조화시킬지에 대하여 성찰할 기회를 제공할 것인데, 이 점에 대해서 몇몇 종합 의견서들이 어떤 어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대륙별 단계 동안 성숙된 경험을 다시 읽기 하는 것은 어떻게 더욱 유연하게 나아갈 것인지 식별하도록 도와 줄 것이다. 


    77. 라틴 교회와 매우 다르게 동방 교회는 매우 풍부한 시노달리타스 구조를 보여 주는데, 오늘날 이 구조들에 대한 쇄신이 요청된다. “시로-말라바르(프라티니디요감[Prathinidhiyogam], 팔리요감[Palliyogam], 데사요감[Desayogam]) 교회에 있는 고대의 시노달리타스 구조들과 교회적 절차들은 개별 교회, 지역 교회, 그리고 보편 교회 차원에서 시노달리타스의 본성을 표현하고 있고, 우리를 시노달리타스를 향하도록 양성하는 데에 유용하다. 이 구조들과 교회적 절차들은 본당과 공동체에 유용하고, 각 본당과 공동체는 여기에서 성령의 말씀을 들으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사목적 협력이 실행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더욱이 교회의 시노달리타스 구조를 강화하려는 새로운 기획과 시도들이 있다”(시로-말라바르 가톨릭 교회).


    78. 공동 책임성의 역동성은 역할과 권력 할당의 조직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공동 사명이라는 관점에서 또 그것에 봉사하기 위하여 교회 삶의 모든 수준을 관통한다. 지역적 차원에서, 다양한 수준에서의 그리고 다양한 전례 예법의 고유한 특성을 가진 기존의 참여 기관들에 대하여, 그리고 시노달리타스 역동성을 강화하고자 설립하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는 기관들에 대하여 의문이 제기된다.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조와 조직이 필요하다는 논의를 하였다”(한국 주교회의). 무엇보다도 사목 평의회에 대하여 말하였는데, 사목 평의회는 더욱더 포용, 대화, 투명성, 식별, 모든 이에 대한 인정과 공동 책임성의 제도적 장이 되도록 요청된다. 우리 시대에 사목 평의회는 필수불가결하다. 그리고 여기에 본당과 교구의 재무 평의회가 덧붙여지고, 주교 주위의 주교 평의회와 사제 평의회 또한 언급되었다. 적지 않은 종합 의견서들에서 이 조직들이 단순히 자문의 특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정을 내리는 장이 되어야 되어야 하며, 이 결정은 민주적 통치에서 사용되는 다수결의 원리가 아니라 공동체적 식별 절차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청이 있었다. 


    79. 세계 여러 지역에서 투명성은 참으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한 본질적 요소로 여겨졌으며, 이 교회에서 우리는 여정을 걸어가며 성장하도록 초대되었다. “가톨릭 교회는 더욱 개방적이고 투명해져야 한다. 모든 것이 비밀리에 이루어진다. 본당 사목 평의회의 의제와 회의록은 결코 공개되지 않으며, 재무 평의회의 결정은 논의되지 않고, 재무 평가표는 공개되지 않는다”(영국인 개인 의견서). 투명성은 식별에 사용된 준거를 포함하여 모든 결정 과정에서의 참된 책임성을 향하여 나아가게 할 것이다. 시노달리타스 절차에 근거한 리더십은 신뢰와 신용을 만들어낼 것이다. “어떤 문제들에 대한 권위의 행사는 행정과 관리 그리고 사목적 활성화의 다양한 구조들에 있는 조직들의 자문을 통하여, 실제로 합의체적(collegiale)으로 이루어진다. …… 그러나 가톨릭 교회 안에 …… 매우 권위적인 주교, 신부, 교리 교사, 공동체 책임자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때로 슬픈 일이다. …… 어떤 이들은 공동체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 결정으로 자기 자신에 봉사하고, 이것은 우리의 시노달리타스 여정에 장애물이다”(차드 주교회의). 게다가 많은 종합 의견서가 재무와 협치 문제를 다루는 데에 적합한 전문 능력을 갖춘 이들이 관여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80. 참여 조직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모든 기구는 기존의 구조와 절차를 쇄신하거나 새롭게 도입함으로써 어떻게 시노달리타스를 향한 자극을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는 방식에 그리고 자신의 사명에 통합할 것인지 스스로 질문하도록 요청받는다. 대학과 교육기관이 특별한 예가 되는데, 이 기관들은 시노달리타스에 관련된 주제들을 연구하는 데에 헌신함으로써 자신들의 양성 프로그램을 쇄신할 수 있다. 특히 신학과는 시노달리타스 경험과 실천이 가져오는 교회론적, 그리스도론적, 그리고 성령론적 통찰을 심화할 수 있다.


    81. 참으로 시노달리타스다운 방식의 채택은, 축성 생활에도 구성원들이 속한 공동체의 삶에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실천들에서 시작해서 하나의 도전이 된다. “축성 생활에서 시노달리타스는 식별과 결정 과정에 대한 것이다. 우리 수도회들은 공동 식별을 실천하지만, 개선하여야 할 여지가 있다. 어떤 몸의 구성원이라는 것은 참여를 요구한다. …… 교회에서처럼 축성 생활에서도 순환적(참여적) 그리고 덜 위계적이고 덜 피라미드적인 협치 방식에 대한 바람이 퍼져 있다”(세계 남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세계 여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


양성

    82. 대다수의 종합 의견서가 시노달리타스를 위한 양성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구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노달리타스 문화의 확산을 지원하는 지속적 양성 작업이 필요하며, 이 양성은 공동 사명의 더욱 효과적인 수행을 고려하여, 참여, 권위 그리고 리더십의 수행 방식에서 시노달리타스로의 회심을 촉진하기 위하여, 그 자체 지역 상황의 특성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기술적 또는 특별한 방법론적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노달리타스를 위한 양성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차원이 엮여 있는 것이고 “인격적, 영성적, 신학적, 사회적 그리고 실천적 차원을 포함한 통합적 양성”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준거 공동체(community of reference)가 필수적이다. ‘함께 걷기’의 원리는, 구체적인 지식들을 초월하고 삶 전체를 품어 안는 마음의 형성이기 때문이다.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기 위하여, 신앙에서 성숙하고 성장하기 위하여, 공적인 삶에 참여하기 위하여, 성체성사에 대한 신자들의 사랑과 참여를 증가시키기 위하여, 고정적인 직무를 맡기 위하여, 교회의 협치에 참된 공동 책임성을 행사하기 위하여, 형제애의 정신으로부터 멀어진 이들에게 다가가고자 다른 교회들 그리고 사회와 대화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에 지속적이고 영속적인 양성이 통합되는 것이 필요하다”(스페인 주교회의). 이러한 양성은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에 대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시노달리타스의 이 요소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역 교회에서 ‘함께 걸을’ 수 있기 위하여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공통 이해를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교육과 양성 프로그램이 시급하게 필요하다”(미얀마 주교회의). 이러한 방식으로 시노달리타스의 전망은 교리 교육과 사목을 관통하여 그러한 요소들이 사명의 전망에 정초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83. 그렇지만, 예를 들어 시노달리타스 증진을 위한 책임자나 책임 팀을 구성함으로써 경청과 대화를 위한 더욱 특별한 양성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강조되었다. 특히 많은 종합 의견서는 책임을 맡도록 부름받은 사람들, 특히 사제직에 부름받은 사람들에게 시노달리타스 양성을 확실하게 할 필요성을 지적한다. “비록 긴 기간이지만, 신학교에서의 양성은 사제적 삶의 방식을 준비하도록 정향되어 있되, 사목적 조정을 하도록 양성하지는 못하고 있다. 협력, 상호 경청, 그리고 사명에의 공동 참여에 대한 이론적 그리고 실천적 양성은 사제 양성에서 본질적이다”(스리랑카 주교회의).


영성

    84. 구조들과 제도들을 활력 있게 하기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될 시노달리타스의 문화는 적합한 양성을 요청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님과의 친밀성 그리고 성령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전략 기획과 결정 과정에 영적 식별이 동반되어야, 모든 계획이 받아들여지고 또 성령께서 동반될 수 있다”(그리스-멜키트 가톨릭 교회). 따라서 우리는 시노달리타스 영성을 길러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영성은 내면성과 양심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기초하여야 한다. “벌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기쁨이 개인적 영성에서 그리고 교회의 메시지에서 우세하여야 한다”(체코 공화국 주교회의).


    85. 이미 여러 차례 강조한 바와 같이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무엇보다도 다양성과 만나는 데에서 발생하는 많은 긴장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시노달리타스 영성은 다름을 환대하고 조화를 발전시키는 영성일 수밖에 없으며, 여정을 계속하기 위한 힘을 긴장들로부터 길어 올린다. 이것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차원 중심에서 단체적 차원 중심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곧 ‘우리’의 영성으로 가야 하며 이 영성은 각자의 기여도를 높일 수 있다. 


    86. 시노달리타스 여정의 첫해는 영적 회심의 방법을 제안함으로써 이미 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경험을 제공하였고, 이것은 하느님 백성이 하느님 말씀을 중심으로 그리고 각자의 마음에 일으켜진 다양한 울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인격적 만남을 맛볼 수 있게 하였다. 그것을 교회의 삶의 일상적 관행이 되게 하는 것 외에, 많은 곳에서 요청하였던 것처럼 특히 참여 조직들 안에서 공동체적 식별의 방향으로 그 방법을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식별을 의사 결정 과정에 연관 지음으로써, 영적 차원을 제도들과 그 협치 조직들의 기능과 통합하려는 더욱 큰 노력을 수반한다. 기도와 침묵은 마치 서문이나 부록인 것처럼 이러한 과정에 무관한 상태로 있을 수 없다. 


    87. 그리스도교 영성은 동방과 서방의 다양한 전통들과 관련해서든 또는 축성 생활과 교회 운동들의 다양한 은사와 관련해서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다양성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다양한 영적 전통들 사이의 만남은, 많은 교회가 체험하는 양극화를 극복하는 데에 기여함으로써 친교와 조화를 증진시킬 수 있기에 창조적 ‘훈련장’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3.5 시노달리타스의 삶과 전례

    88. 종합 의견서들은 시노달리타스와 전례 사이의 깊은 관계를 많은 방식으로 강조한다. “‘함께 걷기’에서 기도,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복음을 전하는 제자인 마리아에 대한 신심, 렉시오 디비나와 전례 거행은 소속감을 불러일으킨다”(콜롬비아 주교회의). 


깊이 뿌리내림

    89. 성체성사는 그 자체로 이미 교회의 시노달리타스 역동성의 ‘원천이요 정점’이다. “전례 거행과 기도는 일치와 인간적 영적 활력을 결합하고 동원하는 힘으로 경험된다. 기도는 하나의 준거점, 힘의 장소, 그리고 평화의 오아시스로 여겨지기에, 삶의 기쁨과 공동체 감각을 촉진한다는 것이 많은 이의 의견이다. …… 종합 의견서들은 시노달리타스 여정과 관련하여 두 가지 양식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공동체의 일치와 삶의 기쁨이다. 이 여정은 전례적으로 큰 모임(순례 등)을 통하여 나아가게 될 것인데, 대중 신심을 키우고 신앙을 쇄신하며 소속감을 강화하기 위하여, 그래서 더욱 가시적이며 공격적으로 되어가는 공산주의 그리고 ‘정체성 철회’(identity withdrawal)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의 복음을 증언할 수 있도록 이들을 더욱 잘 동반하기 위하여 그렇다”(부르키나파소와 니제르 주교회의).


    90.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교회와 세례 받은 이들의 유대는 무엇보다도 대중적 종교성 현상을 통하여 생겨난다. …… 많은 사람은 이 대중적 종교성을 교회에 속한 표징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교적 삶에서 더욱 강한 참여와 의식적 통합을 위하여 그 종교성을 증진시키고 복음화하여야 한다”(파나마 주교회의). 


긴장들을 다스리기: 쇄신과 화해 

    91. 많은 종합 의견서가 모든 직무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모든 은사를 인정하는 가운데, 모든 차이를 수용하면서 모든 신자의 능동적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시노달리타스 방식의 전례 거행 실현을 강력하게 권장하였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들이 경청한 내용에는, 지나치게 집전자 중심의 전례를 재고하는 것에서부터, 평신도의 능동적 참여 방식, 그리고 직무적 역할에 대한 여성의 허용에 이르기까지 이 방향에서 마주하여야 할 많은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전통과 그 독창성, 고대성과 통일성에 충실하면서도, 우리는 전례 거행을 더욱 활기 있게, 그리고 사제, 평신도, 젊은이와 노인 등 신자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것으로 만들 방법을 찾는다. 이들은 모두 견고한 식별로 시대의 징표를 읽는다. 젊은이들은 전례에서 노래로 자신들의 자리를 확보하려 하고 있으며, 그것은 긍정적이다”(에티오피아 주교회의).


    92. 이에 관하여 교회의 경험에는 충돌에서 비롯된 매듭들도 있으며, 이 매듭들은 공의회 이전 전례 예법들과의 관계를 식별하는 것처럼 시노달리타스의 방식으로 마주하여야 한다. “시노드 자문 과정에서 전례 거행에서의 분열을 성찰하였다. ‘안타깝게도 성찬례 거행이 교회 내 분열의 동기로 경험되고 있다. 전례의 영역에서, 가장 공통적 문제는 공의회 이전 미사 양식을 거행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1962년 미사 경본의 사용을 제한하는 것에 대하여 애석해하였으며, 많은 이가 전례를 거행하는 방식에서의 차이가 ‘종종 적대감의 수준에까지 도달한다고 느낀다. 양쪽 모두,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판단 받는다고 느낀다고 말한다’”(미국 주교회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일치의 성사인 성체성사는 갈등, 이데올로기, 균열 또는 분열의 동기가 될 수 없다. 게다가 성체성사의 공유와 같이 교회 일치적 환경에 특별한 긴장 요소들이 존재하는데, 많은 교회에서 직접적으로 교회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신앙 그리고 종교간 대화의 토착화 방식과 관련된 문제들이 있는데, 그 방식들은 전례 거행과 기도의 양식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93. 종합 의견서는 시노달리타스의 효과를 흐리게 하는 전례 거행 관행의 주요 한계들을 강조한 것이 없지 않다. 특히 사제의 전례적 주인공주의와 참여자들의 수동성, 신앙의 아름다움 그리고 구체적인 삶과는 동떨어진 강론, 회중의 전례 생활과 공동체의 가족 관계망 사이의 분리 등이 강조되었다. 강론의 질은 거의 만장일치로 문제라고 지적되었는데, “정치에 기반하지 않고, 복음과 그날의 독서들에 집중하는 더욱 깊이 있는 강론, 다가갈 수 있고 마음을 끄는 언어를 사용하며 신자들의 삶과 관련 있는 강론”을 원하였다(마로니트 교회).


    94. 성체성사와 다른 성사들에 대한 접근이 다양한 이유로 막히거나 방해를 받는 상황은 신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특별한 근원이다. 성사를 받을 수 없게 하는 다음과 같은 형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것이 강하게 요구되었다. 예를 들어, 공동체가 너무 먼 지역에 있거나, 또는 성사 거행에 참여하기 위하여 정해진 요금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가장 가난한 이들을 차별한다. 많은 종합 의견서가 이혼하고 나서 재혼한 이들과 일부다처제 혼인을 한 이들이 성사를 받을 수 없어서 겪는 고통에 대하여 전한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어떻게 마주하여야 할지에 대해서는 일치된 의견이 없었다. “이혼하고 나서 재혼한 이들의 영성체 가능성이 부정되었고, 이들은 이러한 배제로 느끼는 고통을 호소한다. 어떤 이들은 교회가 더욱 유연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지금의 시행 방식이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말레이시아 주교회의).


시노달리타스의 방식으로 전례 거행하기 

    95. 동시에, 시노드 과정은 기도와 전례 거행의 형태 안에서 다양성을 새롭게 체험하는 기회가 되어, 공동체의 일상생활에서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바람을 증가시켰다. 프랑스 종합 의견서는 세 가지 열망을 표현한다. “첫 번째는 …… 말씀 전례를 잘 거행하기 위하여 전례들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곧 성경 본문에 대한 묵상을 중심에 두는 기도 시간들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덜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순례와 대중 신심의 중요성을 기억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많은 종합 의견서가 말하는 문제, 곧 교회가 보통 사용하는 언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례 형태의 쇄신을 바란다는 것이다”(프랑스 주교회의). 어떤 지역들에서는, 그리고 전례가 교회의 정체성과 깊이 연관된 동방 교회에서도 전례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우리 교회에서 전례를 개혁하는 것이 타당한데, 그렇게 해서 우리 시대에 하느님 백성의 활동과 하느님 활동에 대한 그들의 참여를 다시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그리스-멜키트 교회). 


    96. 많은 교회가 참되고 고유한 전례 거행을 다양한 대화 나눔과 형제적인 향연에 연결시키는 것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향연과 형제애는 언제나 [시노드 만남의] 경험을 구성한다. 본당과 사목 구조 안에서 자문이 시작되는 모든 만남에서 살루살로(salu-salo), 곧 음식의 나눔이 있었다. 많은 이가 [시노드] 만남이 어떻게 전례 거행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를 강조하였다”(필리핀 주교회의). 


    97. 전례 기도의 다양한 전통 예식서들은, 다양한 문화가 자신을 표현하는 상징적 형태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이에게 하나의 풍요로움으로 여겨진다. 영성을 위하여 새로워진 사랑, 그리고 아름다움과 전례 거행의 시노달리타스 방식을 돌보는 일은 모두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를 빛나게 하였다. “모든 종합 의견서가 전례 거행을 영감을 제공할 수 있는 장으로, 그리고 개인, 가족, 직장의 생활 안에서, 이웃들 안에서 그리고 공동체 자체 안에서 신앙을 살아내도록 돕는 장이라고 말한다”(우루과이 주교회의). 



4. 다음 단계들

    98. 시노달리타스 과정의 미래를 내다볼 때에 매우 다른 두 개의 지평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오랜 기간을 필요로 하는 지평으로서, 시노달리타스는 개인적 회심과 교회의 개혁을 지속적으로 요청하는 형태를 취한다. 두 번째는 첫 번째 지평에 분명하게 필요한 것으로,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대륙별 단계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다.



4.1 회심과 개혁의 여정 

    99. 종합 의견서들에서 하느님 백성은 교회가 현상 유지와 보존의 교회이기보다는 사명에서 나아가는 교회이기를 바라고 있다. 참여를 통한 친교의 심화와 사명을 위한 임무의 강화는 연결되어 있다. 곧 시노달리타스는 사명에서의 쇄신으로 이끈다. 스페인 주교회의 종합 의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친교가 우리를 지속적 사명의 상태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남, 상호 경청, 대화, 성찰, 공동 식별은 그 자체 긍정적 효과가 있는 행위이지만, 교회인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우리의 준거 공동체들로부터 나가게 할 목적이 아니라면 그것은 이해될 수 없다”(스페인 주교회의).


    100. 하느님 백성은 함께 걷는 기쁨과 그것을 계속하고자 하는 바람을 체험하였다. 참으로 세계적인 가톨릭 공동체가 되는 방법은 아직도 완전히 발견할 필요가 있는 그 무엇이다.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사명에 참여하며 대화를 나누면서 시노달리타스의 방식으로 걷는다는 것은 아마도 ‘이미 그리고 아직’의 차원을 가질 것이다. 곧, 지금 존재하지만 아직은 해야 할 것이 더 많다. 평신도들은 능력이 있고 재능이 가득하며,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기만 한다면 언제나 더욱 기꺼이 기여하려 한다. 본당 차원에서 이루어진 최근의 조사와 연구는 평신도들의 기여가 엄청날 수 있고 그 결과는 교회를 더욱 활기차게 하고 피어나게 하는 다른 길들을 열 수 있고, 이것이 시노달리타스의 목적이다”(나미비아 주교회의). 우리는 배우는 교회로서, 이를 위하여 하느님 말씀과 시대의 표징들을 함께 읽어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지속적 식별이 필요하다.  


    101. 동시에 하느님 백성으로서 함께 걷는다는 것은 개인적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지속적 회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것을 요청한다. 제도적 그리고 사목적 차원에서 이 회심은 교회와 그 구조와 방식을, 개막 60주년을 맞아 우리의 시선이 향하였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귀중한 유산인 지속적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의 방향으로 끊임없이 개혁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102. 회심과 개혁의 여정에서 시노드 과정 첫해 동안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보여 주신 것들에 대한 묵상을 시작으로 우리가 받았던 선물들이 우리를 뒷받침한다. 그 선물들은 다른 이를 향한 무상의 그리고 자유로운 관심으로서, 경청의 기초이고, 노심초사하면서 지켜야 할 한정된 자원이 아니라 우리가 길어 올리면 올릴수록 더욱 커지는, 결코 마르지 않고 흘러넘치는 샘이다. 경청과 대화는 오직 하나인 교회가 갖는 여러 형태의 다양성을 통하여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들, 곧 은사, 부르심, 재능, 능력, 언어와 문화, 영적 신학적 전통들, 다양한 형태의 감사와 전례 거행에 다가가기 위한 길이다. 종합 의견서들은 획일성이 아니라, 진실한 조화 안에서 성장하는 법을 배울 것을 요청하는 것이며, 이러한 조화는 신자들이 기쁘게 함께 걷는 데에 필요한 유대를 형성하면서 세상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103. 시노드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곧 우리는 함께 걷는 법 그리고 하나의 빵을 쪼개기 위하여 함께 앉는 법을 배우고 있으며, 그렇게 하여 각자가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이 여정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으며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다. 모든 백성에게 주님의 복음을 믿을 만한 것으로 선포할 수 있기 위하여 우리는 이것에 부름받았다. 이것이 우리가 대륙별 단계에서도 계속해서 가고자 하는 길이다. 


4.2 대륙별 단계를 위한 방법론  

    104. 이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의 이 영적 여정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도록 초대하며, 그 기준점이 된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경험이 그들의 새로운 사명의 시작에 불과하였던 것처럼, 우리의 시노드 과정도 단지 첫걸음일 뿐이다”(러시아 연방 주교회의). 대륙별 단계는 시노달리타스를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기회이며, 우리는 여전히 시노달리타스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고, 또 이제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초대되었다.


    105.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는 온 세계 하느님 백성이 시노드 첫해에 말하였던 것을 모으고 지역 교회에 되돌려 주는 것으로서, 전체 과정을 활기차게 하는 깊이 있는 질문을 제시하면서, 식별을 안내하고 심화하도록 도우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교회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따라 복음을 선포하게 하는 ‘함께 걷기”가 오늘날 다양한 차원에서(지역 차원부터 보편 차원까지) 어떻게 실현되는가? 그리고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는 교회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가 어떤 순서를 밟아가도록 초대하시는가?”(「예비 문서」, 2항)


    106.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는 대륙별 단계에서 지역 교회들 사이의 대화 그리고 지역 교회와 보편 교회 사이의 대화를 실현할 수 있게 하는 특권적 도구이다. 경청, 대화, 식별의 이 과정을 진행하기 위하여 다음 세 가지 질문에 초점을 맞추어 성찰할 것이다.

 

    ― “기도의 분위기 안에서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를 읽은 뒤, 여러분 대륙에서 교회의 체험과 구체적인 현실에 가장 강하게 반향을 일으킨 통찰은 무엇인가? 어떠한 체험들이 여러분에게 새로운 것이거나 빛을 비추어 주는가?” 


    ―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를 읽고 기도 안에 머무른 뒤, 여러분 대륙의 전망에서 볼 때에 특별히 중요하게 부각되는 본질적인 긴장 또는 차이는 무엇인가? 이에 따라 과정의 다음 단계에서 직면하고 고려해야 하는 사안들이나 질문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 “앞의 두 질문에서 나온 답변을 살펴보면서, 2023년 10월에 열릴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1차 회기에서 전 세계의 다른 개별 교회와 공유할 수 있는, 그리고 논의할 수 있는 우선 사항들, 반복되어 나타나는 주제들, 그리고 행동이 요청되는 것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과정의 핵심 단계들

    107. 각 대륙별 회의는 각 지역 고유의 상황에 적합한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에 관한 식별 과정을 갖고 그것을 설명하는 최종 문서를 작성하도록 초대되었다. 7개 대륙별 회의 최종 문서들은 2023년 6월까지 작성될 「의안집」(Instrumentum Laboris) 작성을 위한 기초로 사용될 것이다.


    108.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에서 자문을 구한 대다수의 주교회의들은, 하느님 백성 전체의 대표자들이 대륙별 단계에 관여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대륙별 회의는 교회적인 방식으로, 그래서 주교만이 아니라 주교, 신부, 부제, 남녀 축성 생활자, 남녀 평신도 등 하느님 백성의 다양성에 적합한 방식으로 대표자들로 구성하도록 요청된다. 대륙별 회의 참가자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적절하게 포함되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들과 젊은인들(남녀 평신도들, 양성 중인 남녀 축성 생활자들, 신학생들), 가난하게 또는 소외되어 사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사람들, 다른 그리스도 교파의 대표자들, 타종교와 다른 신앙 전통의 대표자들, 그리고 종교적 소속이 없는 사람들. 또한 주교들은 대륙별 회의가 끝날 때에 서로 만나, 자신의 특별한 은사와 역할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시노달리타스 체험을 단체적으로 다시 읽기를 요청한다. 특히, 주교들은 최종 문서를 평가하고 승인하는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적합한 양식을 식별하도록, 그 양식이 각 대륙에서 펼쳐지는 과정을 존중하고 하느님 백성의 다양한 목소리에 충실한 시노달리타스 과정의 참된 열매가 되게 하도록 초대되었다. 


    109.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의 발행부터 「의안집」의 작성까지의 과정은 다음 단계로 이루어질 것이다. 


    1)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는 모든 교구 주교에게 보내질 것이다. 각 주교는 첫 번째 단계를 이끌었던 교구 시노드 팀과 함께 106항에서 제시한 세 가지 질문에서 시작해서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에 대한 식별의 교회적 과정을 조직하도록 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각 지역 교회는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에 모인 다른 교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 그것에 응답할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2) 각 주교회의는 자신의 시노드 팀과 함께 자신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세 가지 질문에 대한 각 교구의 성찰을 모아 종합하는 일을 한다.


    3) 그 다음 각 주교회의 성찰과 식별은 대륙별 태스크 포스(TF) 팀이 식별한 양식에 따라 대륙별 회의에서 공유하게 될 것이다. 


    4) 각 대륙별 회의의 진행을 계획할 때, 널리 알려지고 매우 좋은 평가를 받는 ‘영성적 대화’의 방법을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하여 숙고하는 것이 유용할 수 있을 것이다(「편람」, <부록 나>, 8항 참조). 이 방법은 모든 이가 식별에 참여하는 것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그 세 가지 단계가 유용하다. 각 참여자의 말을 듣는 것, 다른 이의 경청의 반향, 그리고 그룹에서 열매들의 식별.


    5) 각 대륙별 회의는 자신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출발해서 세 가지 질문을 마주하면서 약 20쪽 분량으로 최종 문서를 작성한다. 최종 문서들은 각 대륙별 태스크 포스 팀이 2023년 3월 31일까지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로 보낼 것이다. 대륙별 회의 최종 문서들에 기초하여 2023년 6월 안에 「의안집」이 작성될 것이다.


<원문 Secreteria Generale del Sinodo, Documento di Lavoro per la Tappa Continentale “Allarge lo spazio della tua tenda”(Is 54,2), 2022,10.24., 영어와 이탈리아어>


영어:

https://www.synod.va/content/dam/synod/common/phases/continental-stage/dcs/Documento-Tappa-Continentale-EN.pdf


이탈리아어:

https://www.synod.va/content/dam/synod/common/phases/continental-stage/dcs/Documento-Tappa-Continentale-IT.pdf


[내용출처 - https://cbck.or.kr/Notice/20221130?gb=K1200 ]

[해당 부분을 어문 저작물, 음향·영상물, 컴퓨터 데이터, 기타 저작물 등에 인용할 때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저작권 사용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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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5.16 광장에서 거행된 한국순교복자 103위의 시성식>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5.16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집전으로 거행된   

 

 

       한국 천주교회 순교복자 103위의 시성식 거행 미사 봉헌 광경

 

   

    

 <당일 일반 언론과 대부분의 홍보 매체에서는 약 100만여명 내외의 신도들 운집을 보도하였으나, 당시 한국주교회의 103위 순교복자시성추진부의 [시성식기획위원회(위원장 변기영 신부)]에서는 로마 교황청에서 내한한 고위 성직자들에게, 55만여명 ~ 60 여만여명의 신도들이 참석하였다고 보고하였는데, 그 근거는 주교회의 [행사위원회(위원장 경갑룡 주교, 부위원장 김옥균 신부, 총무 박신언 신부)]에서 이미 수 주일 전에 우리 시성식기획위원회에 보내온 매우 치밀하게 잘 작성된 세부계획서 공문에서, 전국 각 본당과 각 교구에 참가 신도 수를 미리 배정하여 각 교구별로 어느 정도 정확하게 계산한 근사치를 알 수 있었고, 특히, 10만 여평에 불과한 여의도 5.16 광장의 수용인원 수를 대조하며 감안한 것이었다. 이러한 행사는 한국천주교회로서는 비록 정부의 기술 지원을 염두에 두고서라도, 두번 다시 하기 어렵고 보기 어려운 전국 차원의 거룩하고 깨끗하고 평화로운 무사고 대규모 집회였다. 천주님께 감사를! 우리 신앙의 순교 선조들 103위 성인들께 감사를 !

     

 

103위 우리 한국 순교 선조들의 역사적인 시성식,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늘 되새기며 온 교회가 다 함께 힘을 내자 ! - Msgr. Byon -     

         

 
<Sua Santità Giovanni Paolo II aveva concelebrato la messa per la canonizzazione dei 103 Beati martiri coreani, con molti Cardinali, Arcivescovi, Vescovi, sacerdoti e fedeli cattolici - circa 500.000 ~600,000- a' Seoul il 6 maggio 1984. Per quella canonizazione, il Rev. Byon, rettore di Chon Jin Am, il luogo natale della Chiesa, aveva servito per 5 anni (1980~1984) come segretario esecutivo generale della commissione episcopale per la canonizzazione dei 103 Beati Martiri core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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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 by Baeck Nam Shick).
  
 한국 천주교회 순교복자 103위의 시성식 거행 미사 봉헌 광경-교황 聖 요한 바오로 2세 집전                                                                                                               

 <당일 일반 언론과 대부분의 홍보 매체에서는 약 100만여명 내외의 신도들 운집을 보도하였으나, 당시 주교회의103위 순교복자시성추진부의 [시성식기획위원회(위원장 변기영 신부)]에서는 로마 교황청에서 내한한 고위 성직자들에게, 55만여명 ~ 60 여만여명의 신도들이 참석하였다고 보고하였는데, 그 근거는 주교회의 [행사위원회(위원장 경갑룡 주교, 부위원장 김옥균 신부, 총무 박신언 신부)]에서 이미 수 주일 전에 우리 시성식기획위원회에 보내온 매우 치밀하게 잘 작성된 세부계획서 공문에서, 전국 각 본당과 각 교구에 참가 신도 수를 미리 배정하여 각 교구별로 어느 정도 정확하게 계산한 근사치를 알 수 있었고, 특히, 10만 여평에 불과한 여의도 5.16 광장의 수용인원 수를 대조하며 감안한 것이었다. 이러한 행사는 한국천주교회로서는 비록 정부의 기술 지원을 염두에 두고서라도, 두번 다시 하기 어렵고 보기 어려운 전국 차원의 거룩하고 깨끗하고 평화로운 무사고 대규모 집회였다.>  

                    
103위 우리 한국 순교 선조들의 역사적인 시성식 
마음 속에 늘 간직하고 되새기며 온 교회가 힘을 내자! Msgr. Peter Byon -
Ecumenical Prayer Day for the Reunification of the two Koreas on 15 August !-
입력 : 2022.12.07 오후 10: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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