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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 기도지향,[교황님과함께 우리 모두 몽고 사목방문]! Con il Papa Francesco, tutti noi andiamo insieme à Ulanbator della Mongolia.

글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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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 천주교회 만세 ! 로마 교황님 만세 ! 만세 ! 만만세 ! 한번 더 만세 !!!

Viva, viva, viva il Papa, il nostro Grande Papa, Padre santo Francesco, Viva !!! 

 

8월 중 기도지향은, 

[교황님과 함께 우리 모두 몽고 천주교회 사목 후원 방문]을 위하여 ! 


8월 중 기도지향은, [Mong-Go를 사목방문] 하시는 교황님과 함께]! 

Con il Papa Francesco, noitutti andiamo insieme, visitando con il nostro Grande Papa à Ulanbator del MongoViva !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직도 설치는 시골 공소 곡수성당의 민군 합동 주일미사에 용맹한 국군 젊은 병사들이 주일미사 봉헌에 참석하러 부근 작은 파견 소부대에서 걸어서 왔읍니다 ! 반세기 전 논산 진흙탕 길 훈련소 생활 추억에 잠긴, 8순 고개를 훨씬 넘긴 감격한 몬시뇰은  미사 후, 전우애가 넘치는 부대에 있던 다른 젊은 병사 2명이 봉고를 가지고 데릴러 와서, 병사들 모두 7명이 교리설명과 묵주기도를 가르쳐 주는 허 세라피나,  병사들 교리 선생님과 함께, 젊은 병사들이 대단히 싫어하지 않는  더운 피자 2 판으로 간소한  오전 새참을 하였답니다 (2023.06.11)

 

   로마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23년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몽고 천주교회를 사목방문하십니다. 우리 모두 교황님과 함께 몽고 천주교회을 위하여 기도하며, 

마음으로나마, Ulan Bator 교구를 함께 방문합시다. 

 

  몽고의 천주교회는 중세를 전후하여 동방을 향하던 선교사들의 허다한 포교역사를 떠나서, 근대에 와서도 다시 시작하는 몽고 천주교회 선교 착수는 우리 한국 천주교회에서 시작하였음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주한 교황대사관에  젊은 참사관 사제로 봉직한 후, 또, 두 번째로는 대주교가 되어, 정식 교황대사로 근무한, 알바니아 출신의 John Bulaitis 대주교가 1991년 이후 정식 주한교황청 대사로 부임하여 온 후, 일찌기 한 때 천주교 서울 교구장 노기남 주교 비서로도 봉사한 바 있는 최서면 선생이 일본에서 천주교회 역사 자료 발굴에 관심을 가지고 활약하면서, 동남 아시아의 각국을 자주 순방하는 길에 몇차례 몽고를 다녀와서, 교회역사 자료 문제로 종종 필자를 찾아와 점심을 함께 한 적이 수차 있었다. 


  그런데 최서면 선생은 필자가 관심도 없던 몽고 이야기를 자주 하였다. 일찌기 유롭에 최초로 우리나라를 고려(Corea)라고 부르고,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을 고려인들(coreani)이라고 소개한, 중세기 이태리인 무역상 Marco Polo 부자 가족들의 20여년에 걸친 발자욱이 깃들어 있는 황막한 사막과 광활한 초원에 유라시아 양대륙의 동서 진영 천주교 신도들이 서로 만나고 함께 모여서 천주를 섬기며 찬미하는 넓직한 마당에 큼직한 대성당을 한두개 정도 지어야지, 그래, 천진암 이 좁은 산골에서 암소 눈알만한 불과 십여평 짜리 산골 논뺌이들이나 가지고 대물려가며 사고 팔고 떠들며 허송세월할께 아니라, 몽고 울란바토르 부근에 가면 1,2 백만평 사기도 쉽지만 얻거나 빌리기도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는데,,,! 하면서, 최서면 선생은 필자가 무슨 넓은 땅이나 커다란 집 짖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알고 은근히 유혹하였다.  

 

   나중에서야 알아차렸지만 눈치가 없어서 바보처럼 순진한 필자는, 남자 수도회를 새로 시작하자는 지원자들이  하나씩 둘씩 내게 5,6명이나 자진해서 모여 와서 성지에 봉사하고 기도하면서 몇달씩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산골의 작은 일들은 어떤 수도회에 맡기고,,,!,' 하면서 거룩한 사업만 내세우며 그칠 줄 모르고 말이 길더니, 실제로 모 수도회 노인 신부가 갑자기 찾아와 나타나서, 로마와 이스라엘 순례가기로 준비하여 떠나기 2,3일 직전에 있는 우리 팀에 함께 가게 해 달라고, 갑자기 하루이틀 앞두고 강요하다싶이 요청하여, 유롭을 처음 가기로 동행하던 구산본당의 김진태 신부와 우리 팀 19명에 사제가 모두 3명이나 같이 가게 된 적이 있었다. 3주간의 여행 중 그 노인 사제가 필자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뜻밖에도 그 분들 나름의 생각과 계획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를 너무나 모르고 하는 이야기였으니, 내 코가 석자라는 말처럼, 당시 크나큰 파도처럼 거듭 새롭게 밀려오는 실로 엄청난 일거리 물결에 눈코뜰 사이가 없던 필자에게는 솔직히 귀 밖으로 지나가는 소리로, 내게는 마이동풍 격이었다.   

 

[,,,,수차 몽고를 다녀오던 최서면 선생의 말이, [몽고는 드넓은 영토에 비하여 인구는 불과 3백 여만명 뿐인데, 목축업을 하는 국민들이 많은 대 제국 몽고에 성당이 하나도 없다]면서, 지난 날 중세에는 유라시아에 걸쳐 징기스칸이 세계 최대의 제국을 세웠던 몽고 대국 터에 선교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역설하기가 일수였다. 종교를 떠나서, 국제정치면에서도, 당시 폴랜드 천주교회가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을 중심으로, 바웬사 등의 노동자 세력이 뭉쳐서 반공국가로 발전한 예를 자주 들면서, 몽고 왕래가 지금은 교통이 좀 불편한 편이지만 종교의 선교노력으로 뚫을 수 있고 넓힐 수 있다며, 몽고와의 국교수립과 선교사 파견을 식사 때마다 강조하였다. 그래서 당시 천진암 성지를 자주 찾아 오시던 John Bulaitis 대주교와도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사실 이야기 수준이었다. 

 

   거듭되던 선생의 끈질긴 권고와 제안과 협력과 주선으로, 당시로서는 매우 생소한  몽고 정부와 로마 교회와의 대사 관계 수립 거론까지 소문으로만 들리다가, 마침내 매우 힘들게나마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몽고 정부와 로마 교황청과의 국교 정상화와 동시에 초대 주 몽고 교황청 대사는 종교 차원의외교상 전혀 황무지 같은 Ulan Bator에 갑자기 대사관 설치도 그다지 필요치 않아서, 서울에 있는, 주 한국 교황대사관에서 우선 모든 일을 보게 되었고, 초대 주몽고 교황대사 역시, 불가피하게 서울의 John Bulaitis 대주교, 겸직하게 되었다. 사실상 [몽고 천주교회] 설립의 주인공은 황무지 같은 처지에서 착수한 John Bulaitis 대주교이며, 한국에서 1990년대 말 알바니아 교황대사로 가실 때까지 계속하였다. 그래도 매년 적어도 한번씩은 현장을 점검하러 다녀해야 했다.  

 

그러니, 울란바토르 주 몽고 교황청 대사관에는, John Bulaitis 대주교의 그 흔한 흉상이라도 하나 쯤은 세워야 할만 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필자가 알기로도 죤 블라이티스 대주교서울과 울란바토르와 로마의 삼각 외교 업무로, 예산도 없던 주머니가 그나마 텅비어 있다는 말을 가끔 들었었다. 서울 살림도 그리 넉넉지 않던 시절, 울란바토르에 새 살림을 차리려는 데는 예상 외로 새 할 일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나 천주교 신도들이 전혀 없었고, 더구나 한동안 공산주의 치하에서 고생하던 몽고국민들은 위대한 지도자 엘벡도르지 대통령(차히야 엘벡도르지(Tsakhia ELBEGDORJ)과 함께, 매우 빈국이었지만 그래도 용감히 자발적으로 자유민주주의 민주국가로 가기 위하여, 공산주의가 남긴 가난을 물리치면서, 무혈 혁명으로 국정을 개혁하고, 국체를 혁신하는 민주화 기적의 순풍을 불러 일으켰고, 몽고의 자유선거에 의해 당선된 용감한 초대 민선 대통령은 평양 정권의 평양 방문 초청까지 받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외교가에서 들리던 일설에는, 중공과 소련이 몽고의 자유민주화가 주변 국가들에게 파급될까 걱정하여 북한의 지도자들에게 몽고 지도층이 다시 공산주의로 돌아오도록 회두시키라는 의도였으나, 평양시민의 열열한 환영을 받으며 평양에 온 민주화된 몽고 초대 대통령 엘벡도르지 대통령일행은 무서운 공산주의 국가의 수도 평양에 있는 김일성대학에까지 가서 초청자들의 희망이나 예상과는 전혀 달리,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로서는 유사이래 최초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공개강의를 하면서, [자유가 없이 극빈상태에서 신음하지 말고, 자유주의 민주사회 국가로 나아가도록] 하자는 진정한 민주화 강연에 힘주어, 용감하게 사자후를 토하였다는 뉴스가 당시 온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분단이후 북한에서 흘러나온 실로 천지를 진동시키는 최대의 강연이었으며, 하늘의 목소리로서, 귀국길에 예정보다 일찍 몽고로 돌아갈 때는 북한 방문 길에 평양으로 올 때와는 전혀 달리, 평양 비행장에 환송객도 없이 쓸쓸하고 외롭게 고국 몽고로, 그래도 무사히 귀국하였다는데, 현대 인류역사에, 몽고의 민주화 초대 대통령 엘벡도르지 대통령과 특히 현재 Ukraina의 젤렌스키 현 대통령故 성 요한-바오로 2세 로마 교황과 더불어 [이 시대의 인류 민주화에 가장 위대한 3대 영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 속담에, "개가 제 버릇 남 주는 것 봤어 ?", [개들은 제 버릇을 남들에게 주는 법이 없다네 !] 하는 말이 있는데, 지금 소련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깊고 짙게 몸에 밴 후속 정치인들이 스탈린 시대의 大國만을 꿈꾸듯이, 왕년에 이전투구하며 주변 약소국들을 총칼로 정복하고 황제로 군림하던 오늘의 日本과 中共이 자나 깨나 오매불망으로 부르짖으며 못 잊고, 못 버리는 中共의 大國夢日本의 大陸夢과는 달리, 세계 인류사의 최대 大國이었던 몽고 대제국로마 대제국강국 독일의 후예들天主 신앙과 인류의 양식(양심과 상식)에로 歸依하는 역사의 거룩한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오늘의 영국도, 프랑스도, 스페인도, 미국도, 독일도, 일본도, 과거 모든 강대국들의 후예들은 모두 점령과 정복으로 어제의 선조들이 큰 소리치던 大國으로 다시 되돌아가려는 바보같은 생각이나 천치같은 행동은 아예 버려야만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더 늦지 않도록 서둘러야만 할 것이다.

 

 이미 반만년 전 아시아의 동북부 大興安嶺 동쪽 드넓은 사방 수천리 벌판 중심을 흐르는 遼河의 동서, 즉, [요서]와 [요동]을 중심으로 고조선의 檀君이 세운 고조선은 3천여년 이상 대를 이어가며 아시아의 인류사에 인도주의 인성개발 문명의 개명을 이룩하게 하는 하늘이 내린 정신이오, 사상이었던 정치이념으로서, 弘益人間을, 오늘의 UN 憲章 大義로 삼아, 온 인류가 즉시 총칼과 [핵폭탄 신앙]을 버리고, 전쟁없는 시대를 열어 다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몽고에도 이제는 선교사 파견이 가능하게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대전교구의  혜안을 가진 경갑룡 주교의 과단성 있는 결정과, 김대건 신부를 닮아가려는 대전교구 젊은 신부들의 열성으로, 몽고 선교의 문을 열고 마침내 Ulan Bator 교구까지 설정되었다. 다만 초대 교구장은  당연히 대전교구 출신의 초대 선교 사제들 3인들 중에서 임명되기를 바랐는데, 뜻밖에도 필립핀 출신 성직자가 임명되어, 우리는 모두 좀 놀라며 의아하게 느꼈었다. 교회도 사목 현실과 사목 행정은 전혀 다를 수도 있으니까 ! 한국천주교회 창립사와  천진암 강학에 관하여 관심이 적지 않던 최서면 선생은 몽고를 다녀올적마다 종종 필자에게 와서 조선교구 설정사를 꼬지꼬지 캐묻기도 하면서, 비교적 사제성소가 많은 한국천주교회가 몽고 선교사 파견을 맡아야만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나, 당시에는 못난 우리 대부분의 한국 성직자들에게, 특히 필자처럼 심산궁곡에서 또랑이나 치고 가재나 잡아 구어 먹으며 사는 산골 민초들에게는 관심 밖의 불필요한 이야기로만 들렸었다.  

 

  이제 90 세를 바라보시는 연세에 불편한 몸을 휠체어로 이끄시고, 몽고 천주교회를 방문하시는 위대한 프란치스코 현 우리 교황님과 몽고 우리 형제 국가의 천주교회를 위하여, 우리 곡수공소의 몇명 안되는 늙은 교우 민초들은 적어도 8월 한 달을 교황 성하의 몽고 천주교회 방문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는 달로 정하고, 하루도 잊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 신자 수가 적고 또 늙고 가난한 시골 민초들의 모임이라고 해서, 그 의미와 가치도 적고 작고 무력하며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다. 공소성당에서의 매일 미사 때는 물론이려니와, 직원들이 서울과 양평, 용문, 여주, 등으로 출타시에도, 왕복 차 속에서도, 묵주의 기도 15 단 내외씩 거의 매번 봉헌하고 있다. 

 

   교황 성하의 실로 어려운 여행에, 교회 연륜이 어린 몽고 교회의 살림꾼들을 위하여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교황님을 본받아서 몽고 천주교회도 같은 나라에 있는 이웃 작은 형제 교구임을 깨닫고, 모든 교구에서는 이미 지난 날 프랑스의 전국 교구와 본당에서처럼 교황성하 다녀가시는 이번 휠체어 방문 길에, 십시일반으로 불편이 없으시도록, 불과 1 천여명의 몽고 천주교회 교구민들과 함께 마음과 힘을 모아 정성껏 해 드려야 할텐데! 

 

  지난번 한국에서 103위 순교선조들 시성식 때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장면들이 아직도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당시 심부름꾼들 속에 끼어서 아쉬움이 많아도 인내와 희생을 낙으로 즐기며 우왕좌왕하던 40대 초반의 젊은 날을 잊지 못하는 우리는, 이제 벌써 팔순을 넘긴 늙고 낡은 가난한 집의 며느리가, 과부의 서름은 과부가 되어 봐야 안다는 마음으로, 이번 교황 성하를 모시는 몽고 천주교회의 교우 형제들에게 성모님의 손길이 함께 하시길 빌며 기도를 바칩니다.  !!- Msgr. Peter Byon-

 

Mong-Go 천주교회 만세 ! 로마 교황님 만세 ! 만세 ! 만만세 ! 한번 더 만세 !!!

Viva, viva, viva il Papa, il nostro Grande Papa, Padre santo Francesco, Viva !!!  

   
시골 공소 곡수성당,아직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설치는 소리에 겁에 질려, 7,8 십대 노인들이 대부분인 시골 공소 교우들은 멀리서 성당을 바라볼 뿐 용기가 나지 않는데, 그래도 젊은 병사들은 용감하답니다. 성령강림대축일 미사(2023.05.28. 오후 2시)

시골 공소 곡수성당,아직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설치는 소리에 겁에 질려, 7,8 십대 노인들이 대부분인 시골 공소 교우들은 멀리서 성당을 바라볼 뿐 용기가 나지 않는데, 그래도 젊은 병사들은 용감하답니다. 성령강림대축일 미사(2023.05.28. 오후 2시) 곡수성당, 성령강림대축일 미사  입력 : 2023.07.27 오후 8:58:41 <계속>

 

입력 : 2023.07.27 오후 8: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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