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들이 외치는 소리-Voice of Martyrs]라는 메뉴의 명칭을, [오늘의 無血 殉敎者들의 숨결 - Breathless Voices of the Bloodless Martyrs]로 곧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그대로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을 모두 [무혈의 순교자 군상]으로 들어 높히고 찬양하며, 그 숨결 소리를 여기에도 옮겨봅니다. 존경하옵는 우리 사부님, 김창렬 주교님의 심오하고 주옥같은 묵상록을 읽어가다 보면, 성령의 감도하심에(by the inspiration of the Holy Spirit) 의하여 쓰여지는, 거룩하며, 순수하고, 진솔하며, 소박하여, 뜨거운 영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순교자들의 모후이신 성모님처럼, 무혈의 순교 선조들의 숨막힌듯 애타는 숨결 소리를 여기에 게재하도록 우선 윤허를 받은 글들입니다.
주교님의 심오한 묵상의 주옥같은 문장은 일체 그대로, 절대로 아무런 첨삭이나 수정이 없이, 보내주시는 그대로, 반드시 '그대로 게재함'을 철칙으로 삼고, 준수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2023년 순교자 성월 9월 26일, 이제는 모두 성인반열에 오르신 103위 옛 순교복자 축일에 이곳 곡수리 공소 성당 하느님의 종 순교자 사우거사 권일신 기념서재에서, 오늘의 無血 殉敎者들의 숨결 -Breathless Voices of the Bloodless Martyrs>에 묻혀서, 변기영 몬시뇰 올림.
성령 쇄신이 내게 준 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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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에 ‘성직자·수도자 성령 묵상회’에 참석해 여러 가지 은혜를 받았다. 이 가운데 몇 가지를 회상해 본다.
나는 모태 신앙인으로 어머니의 젖과 함께 하느님에 대해 배운 사람이다. 판공 찰고 받을 의무가 없었던 나이에도 혼자서 귀로 듣고 배운 기도문과 교리를 잘 외운 덕분에 상까지 받은 적도 있다. 그 후 예수님을 더 배워 알게 됐고 신학 공부도 하게 됐다. 적지 않은 신학 서적을 읽었고 저명한 신학자들의 강의도 들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신학자로 인정받기까지 한 사람이다. 그야말로 그리스도인의 표본으로 인정할 만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령은 내가 하느님과 비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직업적 또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며 사제일 뿐이라고 하셨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그분의 선언에 큰 충격을 받아 스스로를 점검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까지 하느님은 저 멀리 계셔서 내가 매일 몇 차례씩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고 부르면서도 아버지로 느껴지지 않은 분이었고 예수님은 내가 입버릇처럼 늘 ‘주님’ 하고 부르면서도 주님으로 체험되지 않는 분이었다. 신학교에서 규칙으로 ‘오소서 성령이여’를 날마다, 그리고 하루에도 십여 번씩이나 바치게 한 이유를 성령은 내게 알려 주셨다. 그때까지 그 이유를 알려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성령이 그 이유를 알려 주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랬다. 은총이 가득하셨던 성모 마리아가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하셨던 것과 달리 나는 성령에게 문을 비교적 넓게 열기도 하고 좁게 열기도 하며 심지어는 아주 닫아 버리기도 하므로 당신께서 내 마음을 차지해 주시라고 거듭해서 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은 아버지와 주 예수님을 내가 체험하도록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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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 아버지를 소문으로만 듣고 지낼 수도 있다. 만일 누군가 부모님과의 혈연관계를 깨닫지 못하고 남남으로 지낸다면 너무도 애석한 일일 것이다. 또한 애타게 그리워하며 찾는 부모님을 만나거나 스쳐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애처롭고 슬픈 일이다. 그렇지만 그 혈연을 알아보고 만난다면 그 기쁨과 감격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나는 이산가족 찾기 운동 때 이런 점을 실감했다.
부모님과 나를 맺어 주는 것이 혈연이라면 하느님과 나를 맺어 주는 인연은 영연, 곧 성령의 인연이다. 혈연을 찾았을 때 상봉의 감격과 눈물이 있듯이 영연을 체험할 때 존재적 감격과 눈물이 있다. 출생 3일 만에 세례를 받은 이후 거의 50년 동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나는 영적인 성격의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 받은 견진성사에서는 물론, 수없이 받았던 고해성사나 성체성사에서도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린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성품성사를 받을 때에도 내 두 눈은 동료들과 달리 말라 있었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가졌던 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신앙이나 영적 세계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 좋게 평가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그랬던지 나는 그런 영적 감격이 없는 것을 오히려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 내가 성령 쇄신 묵상회에서 난생 처음으로 영적인 차원의 눈물을 흘렸다. 내게는 사적인 오순절인 셈이다. 2천 년 전 요란하게 사도들을 뒤집어 놓은 오순절과는 달리 이것은 조용하고 잔잔하게 나를 돌려놓은 작은 오순절이었다. 나는 오순절 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감격적인 눈물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을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기록이 있건 없건 간에 틀림없이 그들 모두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만일 어떤 그리스도인이 인간이나 세상일로는 곧잘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나 영적인 상황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면 아마도 그의 곁에 계신 하느님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분과 함께 지내면서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은 한 핏줄을 몰라보고 서로 덤덤하고 무심하게 스치며 살아가는 경우보다 나을 게 없다. 하느님 아버지와 자신, 그리고 주님이신 예수님과 자기와의 인연을 깨닫고 감정이 북받치거나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을 온전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눈물은 주로 ‘물의 눈물’을 말하는 것이지만 주님이 시에나의 가타리나에게 사적 계시로써 일러 주신 ‘불의 눈물’, 곧 건성乾性도 여기에 해당된다. 하느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 안에서 만나는데 감격과 눈물이 없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우리는 감정이 풍부한 민족이다. 다른 어떤 민족이나 국민보다도 강한 육신의 감정을 타고난 민족이니 영적인 감정 표출에 있어서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작은 오순절은 그때까지 말라 있던 내 눈물의 샘을 터주고 잠자던 흐느낌의 감정을 일깨워 주었다. 또한 다른 많은 것까지도 얻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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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쇄신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 믿음의 차원을 바꿔 주었다. 전통 신학은 믿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 왔다.
‘교회를 통해서 믿을 도리로 제시된 모든 계시 진리에 대하여, 계시하는 하느님의 권위 때문에, 확고히 동의하게 하는, 하느님으로부터 주부된 대신덕이다.’ 이 정의는 신앙을 주로 지성에 결부시킨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배웠다. 신앙의 주체, 즉 신덕에 결부된 기능은 지성이라고 배웠다. 특히 어떤 진리를 신앙으로 받아들일 때 다른 기능의 작용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주로 이성과 지성의 대상으로 설명해 온 것이 사실이다. 다분히 객관적이고 이상적인 이 신앙의 개념에서는 어떤 아쉬움이 느껴진다. 중요한 무언가가 빠졌기 때문이다. 나는 경험으로 그 사실을 확인했다. 이미 말했듯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려서부터 믿어 왔다. 그 믿음은 위의 신앙 개념에 잘 부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기보다도 그분을 단지 관념적으로 알고 지냈을 뿐이었다.
믿기 위해서는 물론 교리 지식이나 신학이 필요하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도 이를 인정한 분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듣는 것만으로는, 즉 배우는 것만으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듣는 것은 고사하고 그보다 백 배나 낫다는 보는 것일지라도 반드시 믿음을 갖게 하지는 못한다. 예수님 시대에 살면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 모두가 그분을 믿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 대부분은 예수님을 배척했다. 보는 것과 믿는 것, 또는 지식과 신앙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나는 예수님을 아는 것과 그분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것을 구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끼게 됐다. 예수님의 차원과 그리스도의 차원의 구별이란 표현도 상관없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예수를 보고 그분의 가르침을 직접 들었으며, 그분이 행한 기적과 놀라운 일들을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그 덕까지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혹은 거의 전부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그토록 많은 표징을 일으키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요한 12,37)라고 요한은 전한다. 예수님도 이런 슬픈 사실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요한 6,36) 일반 대중은 고사하고 예수님이 특별히 간택하신 사도들까지도 예수님을 직접 보고 그분의 가르침을 듣는 것만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되지 못했다. 제자들이 예수를 배반한 사실은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지식만으로는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었다는 증거다.
만일 나의 신앙이 단순히 예수님을 아는 차원을 벗어나서 그리스도를 믿는 차원으로 들어서지 못한다면 그 신앙은 식어서 조만간 예수님을 배반하거나 그분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이는 예수님에 관해 많이 연구하고 해박한 신학 지식을 가진 사람이도 반드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여 믿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내가 예수님 시대에 살면서 그분을 따라다녔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듯이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졌느냐 갖지 못했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위대한 영성가 카를로 카레토 수사는 《오시는 주님》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하느님을 찾거나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책 속에서 공부하고 그분을 사유思惟의 대상으로 삼고 지적 호기심으로 그분에게 접근한다. 그 결과는 어떤가?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그만큼 관념에 혼란이 온다. 토론에 빠져들면 들수록 그만큼 그분에게서 멀어진다. 나는 오늘날 교회가 맞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카를로 카레토 이전에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샤를 뻬기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부를 포기하고서라도 전통 신심을 가지고 소박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의 편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사제들에 대해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교회를 강습소 수준까지 낮추고 축소시킨 장본인이 바로 사제라는 비판이었다. 뻬기에 의하면 현대의 탈그리스도화는 사제들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한 원천인 은총 작용의 신비를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구원이란 것은 지식으로써가 아니라 가난한 마음에 베풀어지는 참된 앎, 즉 믿음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하느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 가운데는 신학이나 성서학을 공부한 사람보다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러했고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늘 그랬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순교 성인 성녀들을 보더라도 신학이나 성서학을 깊이 알았던 사람보다 대부분 그렇지 못한 이들이 분명히 많았다. 그들 가운데에는 12단(주요 기도문)또는 주모경밖에 외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심지어는 김업이 막달레나 성녀와 같이 ‘예수 마리아’밖에 외우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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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학문적 또는 인간적 지식의 공해로 시들어버렸던 나의 신앙은 성령 쇄신 덕분에 해독되고 정화되어 그리스도 차원으로 승화됐다. 그럼으로써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중심이 되셨고 나와 실존적이며 인격적인 관계 안에 존재하시는 분이 되셨다. 나는 지나치게 이성과 지성을 중시하고 엄격했던 신앙의 풍토에서 자라나서 예수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채 너무나 오랜 세월을 흘려보냈다. 나는 예수님을 매우 어려운 분으로 알고 지냈다. 성체성사와 신심에 관한 그 당시의 전례 규정이나 규례 때문에 나와 예수님과의 거리는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나는 그분을 오해하기까지 했다. 그분에게 친근감보다는 거리감을, 그분에 대한 애정보다는 공포심을 가졌다. 합당한 준비 없이 영성체하거나 영성체 후에 마땅한 감사 생활을 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또는 존엄하신 성체에게 불경할까 봐 걱정되어 그런 엄격한 규제가 필요했겠지만 그런 식의 지나친 공경은 오히려 예의가 아니었던 것이다. 복음서에 나오는 다음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는 진리를 음미하게 된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마르10,13-14)
시대와 장소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우리 교회는 19세기 말까지 수 세기에 걸쳐 신자들의 영성체를 크게 제한하거나 억제했다. 일반 신자들이 성체에 손대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성작, 성합, 성반을 비롯하여 성체와 성혈이 닿았던 성작 수건과 성체포에 함부로 손대는 것까지도 신성 모독 죄로 금지했던 것이다. 게다가 공복재라는 어려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당시의 공복재는 오늘날과 아주 달랐다. 지금은 공복재에서 맹물이 제외됐지만 당시에는 맹물 한 방울이라도 삼킬 수 없었다. 만일 전날 자정 이후 한 방울의 물이라도 목으로 삼켰는데 이를 알고도 성체를 영하면 곧바로 모령성체가 됐다.
내 탓이 크기도 했지만 성체에 대한 나의 지난날의 신심은 어쨌든 일종의 공포 신심 아니면 눈치 신심이었다. 성체를 생각하거나 성체 앞에 나아가거나 특히 영성체를 할 때면 마음이 묵직하고 이상야릇한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다. 예수님은 무서운 분, 마치 내가 당신을 옳게 대하는지 안 하는지 또는 당신의 성체를 합당하게 모시는지 아닌지를 감시하시는 분으로 느껴져 모령성체가 되지 않는 영성체를 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가 되다시피 했다. 사랑의 성사란 것은 말뿐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양치질을 할 때도 지나치게 조심하는 버릇이 생겼고 물방울이 목으로 넘어갔는지 아닌지를 고민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영성체하는 것이 영생 아니면 영멸을 건 일종의 모험이요 투기 행위로까지 생각됐다. 그러니 당시 내 신앙생활은 사랑의 친교와는 매우 거리가 먼 것이었다.
나는 예수님이 나의 이런 가엾은 사정을 잘 아셨고 깊이 동정하셨음을 뒤늦게나마 성령 쇄신 묵상회 때 깨달았다. 성령은 황송하게도 내가 하느님의 일가며 그분의 식구라는 사실을 실존적으로 확신하게 해 주셨다. 그때까지 나는 하느님의 일가며 식구가 된다는 성경의 말씀을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요한 1,12; 마태 12,50; 마르 3,35; 루카 8,21; 히브 2,14; 3,6; 에페 2,19; 1요한 3,1-2 참조).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서 하느님의 완전한 일가로 살기 위해 지금 이곳에서부터 나의 신분을 깨닫고 하느님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게 해 주신 성령님에게 감사드린다. 지금은 시간과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성체를 찾아가서 주님과 다정한 시간을 보내며 지낸다. 언젠가 주님은 내게 다음과 같은 요청을 하셨다.
“얘야, 내게 올 때 네가 쓰고 사는 가면을 벗어 버리고 오너라. 나는 가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네 얼굴을, 네 그대로의 얼굴을 보고 싶다. 가면이나 화장을 한 얼굴은 내가 보고 싶어 하는 네 얼굴이 아니지 않느냐? 네가 만일 가면을 쓰고 온다면 네 얼굴을 마주 보면서 이야기하고 싶은 내 뜻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부득이 얼굴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 앞에 나타날 때만이라도 좋으니 그때는 네가 쓰고 있는 모든 가면을 벗어 던지도록 하여라. 네가 내 앞에서 감히 존경받으려 하고 위풍을 드러내려 하겠느냐? 네 머리에 쓰고 있는 관, 네 몸에 걸쳐지는 복장들, 네 손에 들려지는 지팡이, 네 손가락에 끼여지는 반지, 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나서 맨 얼굴과 알몸으로 오너라. 내 앞에서 점잖은 척, 스승인 척하는 꼴은 차마 볼 수가 없다.”
내 마음에 일러 주신 이 말씀을 명심하면서 그분을 찾아갔더니 매우 흐뭇한 집안 식구끼리의 만남이 됐다. 나는 이제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살고 믿음과 애정을 가지고 수시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산다. 나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그 이름을 부를 때 정말 기쁘다. ‘예수’라는 이름에는 능력이 있고 치유가 있다는 것을 나는 종종 체험하며 지냈다. 내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을 이용하기를 바라신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사목 생활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 그분의 이름을 사용했다. 미신이 행해지는 곳, 다툼이 있는 곳, 미움이나 악습에 묶여 있는 곳 어디서나 그분의 이름을 불러 내쫓고 혹은 가라앉히고 혹은 풀어 주곤 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언제나 성모님을 옆에 모시고 성령 안에서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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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쇄신 운동이 내 신앙생활에 불러온 또 다른 매우 중요한 변화가 있다. 바로 성령에게 내 자신을 맡기면 맡길수록 그분은 내게서 힘을 빼 주신다는 점이다. 전에는 나도 모르게 계명을 지키고 덕을 닦느라 꽤나 힘을 들였다. 그런데 성령으로 충만해 있지 않는 한 아무도 계명을 제대로 지킬 수도, 덕을 닦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성령이 깨우쳐 주셨다.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계명과 법규는 얼마나 많으며 또 닦아야 할 덕은 얼마나 어려운가? 계명이나 규정을 지켜 옳게 살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계명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요한 8,51; 14,15.21-24; 15,10.14; 마태 28,20; 1요한 2,3-4 참조). 이렇게 중요한 계명을 과연 누가 쉽게 지킬 수 있을까? 주님은 매우 어려운 것을 요구하신다. 그분은 내게 율법의 모든 것 하나하나를 다 지키라고 하신다. 만일 내가 예수님 시대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보다 더 옳게 살지 않는다면 절대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신다(마태 5,17-20 참조). 주로 외적 준수만이 요구되었던 구약 시대의 율법도 당시에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는데 외적뿐만 아니라 내적인 준수까지도 요구되는 신약의 계명을 내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교회의 계명은 또 얼마나 많으며 사제가 지켜야 할 규칙은 또 얼마나 짐스러운가. 그런데 내가 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벅찬 계명과 법규와 규칙들을 모두 지킨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한편 우리 교회는 전통적으로 선행과 공로를 상당히 강조해 왔다. 물론 틀린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강조가 일의 순서를 헷갈리게 할 정도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믿음을 우선하고 또한 성령의 지도와 도움에 비중을 두어야 하는데 가톨릭 신학은 은총의 우위성을 내세우면서도 마치 선행과 공로가 하느님의 은총 위에 자리한다는 식의 수계와 수덕 생활을 가르쳤다는 인상을 준다. 나는 그 가르침을 따르려 무척 애썼다. 애쓰면 되고 또 그렇다고 믿었다. 만약 내가 그동안 수계하고 수덕하는데 기울인 노력에 비례해 무엇이 된다면 성인까지는 몰라도 아마 그와 비슷한 무언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숱한 결단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변하지 않았고 영적으로 성장하지도 못했다. 엉뚱하게 몹쓸 것들만 성장했다. 그래서 허탈감에 빠졌다. 나중에는 노력조차 하기 싫어졌다. 고해성사를 봐도 자신이 없었다. 얼마나 많이 고해성사를 형식적으로 또는 기계적으로 봤는지 모른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한 믿음과 성령의 도우심 없이 일을 이루어 보려는 몸부림은 그야말로 시시포스와 탄탈로스의 그리스 신화를 나 자신 안에서 현실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행이다. 성령 세례를 통하여 그러한 신세를 면하게 됐으니 말이다. “하느님의 은총은 불과 한 시간 만에 우리가 일생 동안 한 모든 선행 이상으로 부유하게 해 준다.”라는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말은 진실이다.
성령 세례라고 할 때의 세례는 본래 어떤 것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간주한다는 표현이다. 그야말로 완전히 다른 차원이 된다는 말이다. 나는 성령이 사람을 순전히 다른 차원으로 올려 모든 계명을 지킬 능력을 주시는 분임을 알게 됐다. 다시 말해 성령이 율법을 초월해서 율법을 이루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로마 8,4; 에제 36,27; 갈라 5,18 참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해 열성은 있었지만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은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고 나름의 방법을 추구하면서 하느님의 방법을 끝내 거부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로마 10,1-3 참조)그들은 믿음을 통해서 찾지 않고 공로를 쌓음으로써 그것을 얻으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 걸림돌에 넘어지고 만 것이다(로마 9,30-32 참조). 바오로 사도는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특히 하느님의 계시에 의하여 하느님 자비의 절대성, 인간 의지와 유한성을 주장한다(로마 9,20-29 참조). 그렇다고 그가 인간의 선행이나 노력을 중요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콜로 1,10; 1코린 15,10; 2티모 1,9 참조). 어디까지나 은총의 절대성을 전제로 해서 한 말이다.
계명뿐만이 아니다. 가톨릭의 전통적인 덕행에서도 스토아적 덕 이론을 받아들여서인지 인간적 노력을 과대평가해 왔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수덕 방법을 잘못 배워서 선행을 하고 공로를 세워 그 힘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마구 끌어내리려는 방식으로 생활했다. 그러나 훌륭한 신앙생활과 수덕 생활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성령이 충만한 결과지 그것을 가져오는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까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바꿔 생각하며 거의 인생의 반을 산 것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 자비의 무한성, 인간 의지와 노력의 유한성을 절감하고 주님에게 이런 기도를 바쳤다. “이제 내 바라는 것 당신의 크신 자비뿐이오니 명하시는 바를 주시옵소서. 원하시는 바를 명하소서. 당신은 우리에게 자제自制를 명하십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하느님께서 주지 않으시면 달리 얻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지혜가 누구의 선물인지 아는 것부터가 예지의 덕분이다.’(지혜 8,21)…… 오! 사랑이여, 언제나 타며 꺼지지 않는 사랑 내 하느님이시여, 나를 태워 주소서. 자제를 명하시니 명하시는 바를 주소서. 원하시는 바를 명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으며 그 선물로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쉬워진다는 이치도 나는 깨달았다. 성인들의 생을 들여다보면 그 이치를 발견할 수 있다. 어렵고 모진 환경에서 훌륭하게 산 분이나 초인적인 덕을 지녔던 분은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을 기쁘게 해냈다. 성령은 당신의 변화 능력으로 사람을 강하게도 만들고 세상의 눈에 미치게도 만들고 바보가 되게도 하신다. 인간적으로 도저히 되지 않을 일일지라도 성령의 능력으로는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갈 수도 있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도 있고, 남자를 모르는 처녀가 아기를 가질 수도 있다. 질그릇 같은 내가 보배를 간직할 수도 있고, 나처럼 부족한 사람이 사제직을 수행할 수도 있고, 나 같은 죄인이 구원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수호성인인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 의해 믿음과 은총의 절대적인 필요성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영명 축일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부끄러웠다. 나의 수호성인과 나 자신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주님에 대한 충성과 사랑에 있어서 멀게 느꼈다. 신자들과 교회에 대한 애정과 선교에 대한 열정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또한 사목자적 정신과 자세에 있어서도 그러했으며 신, 망, 애 삼덕을 비롯한 여러 가지 덕에 있어서 또한 그러했다. 바오로 사도와 나의 이러한 차이는 그와 나와의 시간적 차이인 2천 년에 견줄 수 있을 만큼의 큰 차이였다. 그래서 나는 사제가 되고 나서 여러 해를 보낸 다음에도 바오로 성인이 내게 맞지 않은 수호성인이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모시기에 벅찬 인물로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은 내 수호성인으로 바오로 성인이 정해진 것은 당신의 뜻이었음을 깨닫게 해 주셨다. 또한 수호성인은 반드시 기질이나 성품이 같아서, 또는 그의 덕을 본받기 위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일러 주셨다. 내 생활을 보호하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수호성인의 더 큰 역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그래서 나는 오직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편안하게 바오로 사도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따르며 그의 보호와 전구를 매일 구한다. ‘믿음과 은총으로’라는 내 주교직의 모토는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서 얻은 것이다. 이 표어의 설명은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장 8절에 나와 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에 대한 매우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이 사상은 사도 바오로의 모든 서간, 특히 로마서 도처에 살아 숨 쉰다.
6
성령은 내가 어릴 적에 지녔던 경이감을 되찾아 주셨다. 경이감은 하느님의 큰 선물이다. 그것을 되찾고 나니 인생이 기쁨과 보람으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자연계에서 경이의 대상을 큰 것에서만 찾지 않게 되었다. 가령 우주, 지구, 높고 넓은 산, 망망대해 같은 것만 생각하지 않게 됐다. 살펴보니 주위에 있는 것 모두가 경이로웠다. 너무 흔해서 스쳐 지나가거나 무심히 보아 넘기거나 밟고 지나가기 일쑤인 것들이었다. 초자연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큼직한 계시 진리만이 경이로운 것이 아니라 주변에 흔한 것도 경이롭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언제 어디서든지 은총과 축복을 만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은총으로 감싸여 있음을 깨닫자 단지 주님을 만나 뵙는데 그치지 않고 그분과 하나 되어 있음을 체험하게 됐다. 그리고 마음이 편해지면서 주님에게 거리감을 느끼지 않게 됐다. 지존하신 분이니 ‘님’자를 붙여서 불러야 한다든가, ‘나’ 또는 ‘우리’는 안 되고 반드시 ‘저’나 ‘저희’라고 해야 된다는 것, ‘주여’ 또는 ‘주는’이라고 하면 안 되고 반드시 ‘주님’이나 ‘주님께서는’이라고 해야 된다는 등 법석을 떨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됐다. 감히 그분을 합당한 칭호로 부를 수 있고 그분에게 어울리는 말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가장 존귀한 것은 가장 천한 것을 허락하고 극존칭은 극비칭과 통한다며 하느님을 거리낌 없이 ‘너’로 부른 때도 있었다.
나는 미국에 사는 어떤 한국인 가정에서 이 극비칭의 의미를 터득한 적이 있다. 그 집의 서너 살 된 아이가 날아든 파리를 가리키며 나에게 “너 fly(파리)좋아해?” 하고 물었다. 그때 나는 그 ‘너’라는 말이 싫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반말이 우리 둘의 사이를 더욱 친근하게 만드는 구실을 한다고 느꼈다. 내가 그 어린아이에게 “지극히 존경하올 주교님, 주교님께서는 혹시 파리를 좋아하시는지요?”라고 들어야 속이 편했겠는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도리어 그 아이가 친근하게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하느님을 버릇없이 아무렇게나 대하고 그분에게 무례하게 말씀드려도 좋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전례 때 그래서는 더욱 안 된다. 전례에는 그 나름의 격식과 표현이 따로 있는 법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예의를 갖추고 하느님 대전 앞에 설 때보다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부담 없이 그분 앞에 있을 때 그분의 현존을 더 쉽게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창조와 구원 사업에 나타난 그분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고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다.
지금도 자주 불리는 성가 <예수 마음> 1절에는 “내 마음을 열절케 하사 네 성심과 네 성심과 같게 하소서”, 2절에는 “내 마음을 잡아 당기사 네 성심에 네 성심에 결합하소서”, 3절에는 “내 마음을 차지하시와 네 성심에 네 성심에 보존하소서” 그리고 4절에는 “내 마음을 변화케 하사 네 성심과 네 성심과 바꿔 주소서”라는 말이 들어 있다. 성가 <사제의 마음>에는 “네 사제 되게 하소서”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성가들을 좋아한다. 예수님을 ‘너’라는 비칭으로 부른다고 결코 그분에 대한 불경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분에게 친근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은수잡록 中에서-
성령
1
제2의 성령의 시대
12세기의 수도 선견자 피오레의 요아킴은 구원사를 성부의 시대, 성자의 시대, 성령의 시대의 세 가지 시대나 단계로 구분하였다. 즉 성부의 시대를 성자가 이어받으셨고 그 성자의 시대는 성령의 시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제3시대인 성령의 시대가 구원사의 클라이맥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아킴의 이런 의견에 동의한다면 제2의 성령 강림으로 알려진 지금의 시대를 제3의 성령의 시대, 즉 구원사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그런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성령 강림과도 같은 놀라운 일들을 우리 시대에 새로이 해 주시기를 하느님에게 간청하셨던 요한 23세 교황님이 떠오른다. 하느님은 교황님의 간청을 기꺼이 들어 허락하셨다. 교황님에게 그 묵시를 주신 분이 바로 하느님 자신이셨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으셨으리라. 이렇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령의 공의회가 됐다.
성령의 공의회를 치르고 난 교회는 가장 먼저 미사 통상문의 개혁을 시행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미사 전문典文’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기에 바꾸기 힘든 양식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그 미사 전문이 ‘감사 기도’라는 명칭으로 바뀌면서 거기에 세 가지 양식이 새롭게 더해졌다. 세 가지 감사 기도 양식이 더해졌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성령 청원(에피클레시스)’이 성체 축성 전과 후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성체 축성 전에 외우는 성령 청원은 사제가 빵과 포도주 위에 두 손을 얹으면서 바치는 기도, 즉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다. 동방 교회는 이 기도로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믿을 정도로 이 기도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성령은 말씀이신 제2위 성자가 사람의 몸을 취하실 때 개입하셨다. 이제는 빵과 포도주란 물질이 제2위 성자의 살과 피로 변화되는 일에 성령이 개입하신다. 이렇게 제대 위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오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이 아니면 미사성제가 봉헌되지도 못하고 성체성사가 이루어지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전례 개혁이야말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온 가장 위대한 쇄신이라고 단언한다.
제2의 성령 강림 시대의 또 다른 징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 성령이 교부들을 깨우쳐 주신 덕분에 교부들은 제12항에서 성령은 성사와 교직을 통해 일하실 뿐만 아니라 이례적인 은사를 포함한 여러 가지 은혜를 교회의 쇄신과 보다 폭넓은 건설을 위해 모든 계층의 신도들에게 나누어 주신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교회의 성장을 위해 그 은사들을 감사와 위안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과 특은의 진실성과 온당한 행사에 관한 판단은 교회를 다스리는 이들에게 속한다는 것, 사목자들은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좋은 것을 분간하여 보존할 책임을 진다는 것도 명백히 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제3항에서도 나타난다. 즉 성령은 각 사람에게 당신이 원하시는 은혜를 나누어 주심으로서 스스로 하느님이 베푸시는 여러 가지 은혜의 관리인이 되신다는 것과 이런 은사의 진실성과 정당한 행사에 대한 판단은 사목자의 의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사목자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성령의 불을 끄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는 것 또한 명시되어 있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령을 높이 받들어 빛나게 해 드린 공의회이며, 평신도들을 격상시킨 공의회였다. 여기서 격상됐다는 의미는 그 어떤 자격이나 지위 문제보다 평신도가 성령의 총애와 은총을 전에 없이 풍성히 받아 크고 작은 다양한 사명을 맡게 되었다는 뜻이다. 성령은 이 문헌들이 사문화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교회 사상 유례없이 평신도들에게 많은 은총과 은사를 직접 쏟아 주신다. 공의회를 계기로 제2의 성령 강림을 맞이한 교회 안에서는 묵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던 성령의 다양한 은사가 물꼬 터지듯이 신자들에게 밀려들었다.
2
성령의 시대는 사적 계시의 시대
성령이 모든 신자에게 보편적으로 나누어 주신 은사 가운데 특별히 한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다름 아닌 예언의 은사다. 먼 옛날 하느님은 요엘에게 다음과 같이 예언하도록 하셨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 그리하여 너희 아들딸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 그날에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내 영을 부어 주리라.”(요엘 3,1-2)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전개되는 제2의 성령 강림 시대의 특징이 바로 그렇다. 공의회 이전에 신자들은 주로 지도와 지시만 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꿈도 꾸고 환상도 보고 예언도 하게 됐다. 즉 영감을 받아 묵상하고 기도하며, 묵시를 받아 말하고 가르치며, 자신이나 공동체를 위해서 사적 계시를 받게 됐다.
오늘날은 사적 계시의 시대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 교회 내에서 사적 계시에 대한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들린다. 특히 대부분의 사목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이는 사적 계시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불필요한 걱정이다. 사적 계시 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 결코 할 수 없다.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영감이나 묵시 없이 살 수는 없다. 공의회가 교회의 교역자나 신학자에게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지시해 주었음에도 사적 계시가 문제가 된 것은 사적 계시가 풍성해짐에 따른 부작용으로 사이비 계시들이 사적 계시에 섞여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위조지폐가 있다고 지폐를 버려야 하는가? 사이비 사적 계시가 있다고 사적 계시나 묵시나 영감 자체를 괄시하거나 모른척할 수 있을까? 모든 신심 운동(M.E, 꾸르실료, 마리아 사업회, 레지오 마리애, 빈첸시오회 등)의 시작은 사적 계시에 의한 것이다. 사적 계시가 없었다면 성체 신심, 예수 성심 신심, 성모 성심 신심, 첫 목요·첫 금요·첫 토요 신심, 십자가의 길, 묵주 기도, 9일 기도 신심은 우리 교회 안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도회도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 주님의 계시 없이 감히 수도회를 설립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공의회는 요한 23세 교황님의 묵시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뿐만 아니라,
그 어느 공의회도 성령의 묵시가 없었다면 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사적 계시가 없었다면 나는 사목자로서 들려줄 말이 없었을 것이다. 신학 논문을 쓸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사목 서한다운 서한은 쓰지 못했을 것이다. 공적 계시만으로는 도저히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신앙생활은 하느님과의 생명의 친분을 쌓는 길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성사와 교직을 사용하심과 동시에 묵시와 영감으로써 신자 하나하나를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셔야만 교회는 활기찬 생명체가 된다. 이런 이유로 교회는 끊임없는 가짜 사적 계시의 출몰과 그 해악에도 초창기부터 오늘날까지 사적 계시의 필요성과 그 중대한 역할을 꾸준히 이론과 실천으로 옹호해 왔다.
사도 바오로는 예언, 즉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을 은사 서열에서 둘째 자리에 놓았다(에페 2,20; 4,11 참조). 또한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은사, 특히 예언할 수 있는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1코린 14,1)라고 말했다. 예언의 은사, 곧 하느님의 뜻을 묵시로 받아 전하는 것은 우리 교회의 생명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성인 성녀들은 모두 사적 계시를 받은 분들이자 그 표본이다. 그들이 받은 사적 계시들은 하늘의 지혜의 산물로서 심오한 학문과 학식을 능가한다. 십여 년 전에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독일 출신 평신도였던 안나 쉐퍼가 시복되는 장엄 예식이 있었다. 자매는 신체적 장애 때문에 겪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초인적 인내로 감수하는 한편, 그를 찾아오는 어려운 처지의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어질고 넓은 마음과 천상 지혜의 말로써 영적 위로와 힘을 주며 43년의 거룩한 생애를 보낼 수 있었다. 그것은 자매가 들었던 예수님의 말씀과 환시들(그는 그것을 ‘꿈’이라고 했다.)덕분이었다. 나는 여기서 솔직한 고백 하나를 하려고 한다. 바로 내가 안타깝게도 성직자들의 글보다 평신도들의 신앙 체험담이라든가 생활 수기에서 오히려 더 큰 감명을 받는다는 고백이다. 성직자들은 학리와 사리에는 맞지만 보통 형식과 틀에 맞춘 글을 쓰는 반면, 평신도들은 주로 그들의 묵시적 체험담을 쓴다. 둘의 차이는 결국 영감과 은총과 생명력의 차이다. 나는 이 차이를 통해 성령이 이 시대의 남녀 종들에게까지 차별 없이 당신의 선물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3
사적 계시 시대의 한 가지 증거
이 시대가 사적 계시의 시대라는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불과 30년 사이에 교회 역사상 유례없이 여성이 세 분씩이나 교회 학자(박사)의 칭호를 받으신 사실에서 증명된다. 제2 성령 강림 시대의 개막을 알리기라도 하듯 1970년에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시에나의 카타리나 성녀가 일주일 간격으로 남성만 있던 30명의 교회 학자(박사)반열에 들었고, 1997년에는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가 새로이 교회 학자로 모셔졌다.
교회 학자(박사)의 칭호를 받으려면 위대한 성덕과 탁월한 학식이라는 두 가지 기본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세 분의 성녀도 그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한다고 인정되어 교회 학자가 되셨다. 사실 이들이 위대한 성덕은 갖추었지만, 신학을 공부하거나 학식이 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교리 지식을 아는 정도의 교육만 받았을 뿐이고 시에나의 카타리나는 배운 적도, 글을 알지도 못했으나 하느님이 당신의 계시를 전하는 도구로 쓰시기 위해 특수한 방법으로 글을 깨쳐 주셨다. 그리고 열네 살에 봉쇄 수도원에 들어가 스물네 살에 세상을 떠난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에게서 교리 지식 외에 다른 신학 지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세 분의 탁월한 학식은 오직 사적 계시를 통해 얻어진 것이다. 성녀들의 사적 계시를 바탕으로 교회는 그분들을 교회 박사로 모셨다. 그들에게 교회 학자 칭호를 수여함으로써 학식의 개념이 바뀌었고 또한 사적 계시는 힘을 얻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신학이나 심오한 학식이 아니라 사적 계시에 의한 저서로 교회 박사의 칭호를 받았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는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가 작고 약하기에 그분은 제게 몸을 굽히시고 당신 사랑의 비밀을 가만히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아! 만일 예수님을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친 학자들이, 고작 열네 살 된 아이가 그들의 학문으로도 알아내지 못했던 그분 사랑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을 봤다면 틀림없이 놀랐을 것입니다. 그 비밀을 알려면 영혼이 가난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사적 계시를 금기시한다면 구원사의 정점인 성령 시대의 은총을 외면하는 것이다. 교회사를 볼 때 사적 계시를 금기시한 시대는 성령 망각의 시대며 암흑시대였다. 잔 다르크의 시대와 예수의 데레사의 시대가 좋은 예다. 잔 다르크는 여덟 살 때 들었던 ‘소리(사적 계시)’를 가슴에 간직해 오다 열세 살 때 이를 발표하고 조국과 교회를 위해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결국 자신이 들은 그 소리 때문에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3개월간 감옥에 갇혔다. 그동안 갖은 회유와 협박을 당하고 허위 자백서에 서명을 강요당했다. 결국 그녀는 미리 계획된 파문과 화형 선고를 받았다. 판결을 내린 재판장은 놀랍게도 파리대학교 총장을 지낸 바 있는 보베의 교구장 삐에르 꼬숑이라는 주교였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잔 다르크는 처형된 지 18년 만에 재심을 받았다. 7년간의 엄정한 조사 끝에 잔 다르크는 마침내 오명을 벗고 복권했다.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1920년에는 성인 반열에 오르는 영광을 받고, 조국 프랑스의 수호성인으로 추대됐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성녀가 위대한 천재 성인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친구였던 러시아 정교 사상가 메레즈코프스키는 ‘예수님과 우리 사이’, 즉 2천 년 교회사 동안 다섯 분의 위대한 천재 성인들이 있었다고 꼽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잔 다르크다. 다른 네 분은 바오로 사도, 아우구스티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아기 예수의 데레사다.
한편 예수의 데레사의 영적 수기들은 사적 계시를 이해하지 못했던 당시의 종교 재판소 관계자들의 압수 수색에 걸릴 뻔했지만, 그때마다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로 위기를 모면해 교회의 위대하고도 소중한 영적 유산으로 전수됐다. 또한 성녀 자신도 종교 재판을 면했다. 내가 왜 우리 교회사의 부끄러운 부분을 굳이 들출까? 성령을 망각하면 사적 계시들은 저절로 푸대접을 받는다는 사실과 일부 교회들의 그러한 잘못이 비록 똑같이 재현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다시 범해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경고하기 위해서다.
4
성령 쇄신 운동체의 경계를 넘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막을 내리자마자 교회 안에는 성령 쇄신 운동이 있었다. 교황님이 1998년 4월 4일 이탈리아 성령 쇄신 지도자들에게 주신 담화에 이 운동에 대한 평가가 반영됐다. “가톨릭 성령 쇄신 운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낳은 많은 산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공의회는 마치 새로운 성령 강림과도 같이 교회의 생명 안에 특별히 성령의 활동을 감지하는 단체나 운동을 크게 활성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교회의 생명 안에서, 또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의 생활 안에서 성령 쇄신이 맺어 준 소중한 영적 열매들에 대해 우리가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남녀노소 구별 없이 얼마나 많은 평신도들이 자신들의 생활 안에서 성령의 놀라운 능력과 그분의 은사들을 체험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기도의 기쁨을, 하느님 말씀의 힘과 아름다움을 체험하면서 이 모든 것을 교회의 사명 수행을 위한 관대한 봉사에 이용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인생들 안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나는 여러분과 더불어 천주 성령에게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교황님은 성령 쇄신 운동에 관여된 사람들에게 이러한 권유도 하셨다. “신앙이 습관이나 순수한 감정적인 체험으로 전락한다면 그것은 죽는 것입니다. 신앙은 개인과 공동체 차원에서 늘 새로이 가꾸어지고 계속 성장해야만 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쇄신 운동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요청에 부응할 수 있는 형태와 방식을 찾으려 모든 힘을 기울인다는 것을 압니다.”
교황님의 말씀처럼 성령 쇄신 운동이 늘 새로이 가꾸어지고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 그 운동에 참여하는 형제자매들에게 이렇게 권고하고 싶다.
“오늘의 기도 모임들을 30~40년 전과 비교해 보십시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과 발전이 있었습니까? 성령 쇄신이 더 넓게 보급되고 대중화되지 않은 것이 여러분 탓은 아닌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성령에게 열어 드리기를 꺼려 하는 형제자매들의 마음이 더욱 굳게 닫히도록 만든 것이 여러분 자신은 아닌지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취하는 신심 형태가 낯설고 싫게 느껴진다면 어떻게 그 은혜가 모든 계층의 하느님 백성에게 두루 나누어질 수 있겠습니까? 적지 않은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여러분의 분별없는 행태를 싫어해서 급기야 성령을 멀리하고 심지어는 그분을 함부로 대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운동체가 이질적인 집단으로 인식되는데 어떻게 여러분이 마음 편히 하느님과 교회에 봉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앞으로는 성령이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과 모든 일과 모든 사건에 개입하게 해 드리십시오. 성령은 여러분 개인이나 가정이나 공동체의 기도에 개입하셔야 하고 여러분의 모든 가정적, 시민적, 사회적, 교회적 사업과 활동에 개입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나의 간절한 바람이며 권고입니다.”
사실 성령 쇄신자들은 많은 신자들에게 자신들이 이질적인 그리스도인 집단이라는 인식을 새겨 놓았다. 성령 쇄신 운동권 밖에 있는 이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한 미국인 신부님는 이렇게 한탄했다. “오늘날 가톨릭 신자들은 큰 혼동 속에 빠졌다. 한편으로는 현대주의자들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마치 성령의 은총을 자기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듯이 날뛰는 성령 쇄신 운동자들 때문이다.” 이와 같은 비판이 무지나 오해나 편견, 심지어 악의에 의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운동자들의 처신이나 행동에 대해 반성케 하는 말임에는 틀림없다.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직분이 흠 잡히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2코린 6,3)나 역시 성령 쇄신 운동이 비난을 받지 않도록 그들이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일을 조금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전통적인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도 일부 광신적인 성향의 집단을 제외하고는 집회에서 상식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것 같다.
성령 쇄신이 일부 신자들로 구성된 운동체로 알려졌지만 성령 쇄신 자체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것이다. 이를 운동이라고 한다면 전체 교회의 운동, 모든 하느님 백성의 운동이어야 한다. 그 누가 인정하든 말든 우리가 지금 구원사의 클라이맥스인 제2성령 강림 시대에 들어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시대는 세상 끝날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은수잡록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