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들이 외치는 소리-Voice of Martyrs]라는 메뉴의 명칭을, [오늘의 無血 殉敎者들의 숨결 - Breathless Voices of the Bloodless Martyrs]로 곧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그대로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을 모두 [무혈의 순교자 군상]으로 들어 높히고 찬양하며, 그 숨결 소리를 여기에도 옮겨봅니다. 존경하옵는 우리 사부님, 김창렬 주교님의 심오하고 주옥같은 묵상록을 읽어가다 보면, 성령의 감도하심에(by the inspiration of the Holy Spirit) 의하여 쓰여지는, 거룩하며, 순수하고, 진솔하며, 소박하여, 뜨거운 영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순교자들의 모후이신 성모님처럼, 무혈의 순교 선조들의 숨막힌듯 애타는 숨결 소리를 여기에 게재하도록 우선 윤허를 받은 글들입니다.
주교님의 심오한 묵상의 주옥같은 문장은 일체 그대로, 절대로 아무런 첨삭이나 수정이 없이, 보내주시는 그대로, 여기서는 세라피나 허관순 편집실장이 맡아서 반드시 '그대로 게재함'을 철칙으로 삼고, 준수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2023년 순교자 성월 9월 26일, 이제는 모두 성인반열에 오르신 103위 옛 순교복자 축일에 이곳 곡수리 공소 성당 하느님의 종 순교자 사우거사 권일신 기념서재에서, 오늘의 無血 殉敎者들의 숨결 -Breathless Voices of the Bloodless Martyrs>에 묻혀서, 변기영 몬시뇰 올림.
삼위일체 대축일에 붙혀
사랑은 정靜적인 것이 아니라 동動적인 것이다. 사랑은 그 본질상 끊임없이 자기 확장성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자기 확장력은 하느님으로 하여금 사람과 피를 나누게 하기에 이른다.
이 글은 그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느님이 창조 사업을 펴신 것은 아쉬움에서가 아니다. 하느님은 자만自滿 자족自足을 누리시는 존재이시다. 다함 없는 만족, 아쉬움이 없는, 심심풀이가 필요 없는 분, 무료함을 달랠 필요가 없는 분이시다.
그분이 창조 사업을 펴신 것은 사랑의 본성에 의한 것이다. 사랑은 가만히 있지 않고 쉴 새 없이 넓혀나가게 되어 있다. 그것은 사랑이 자기 확장적 본성을 지닌 탓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아무도 못 말린다. 그분 자신도 사랑 자체이기에 말리지 못하고 막지도 못하신다. 그리하여 우주가 생겼고 인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느님의 확장적 사랑은 인간 창조에 이르러 가장 크게 드러난다.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을 일시에 확장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해나가신다.
구약시대에는 하느님 사랑의 확장이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는 고랑이 가로놓여 있었는데 이것은 하느님이 인간과 거리를 두셨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는 유일신, 곧 하느님은 오직 한 분뿐임이 계시되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인간과 피를 나누시기로 함으로써 신약 시대가 열리게 된다. 피가 없는 순 영이신 하느님께서 인간과 피를 나누고 서로 피를 섞기 위해서는 불가분 사람의 피를 가지신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하느님이 그 일을 하신 것이다. 곧, 당신의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어 사람이 되게 하셨다. 이리하여 영원한 하느님이신 성자께서는 영원한 인간으로 존재하시며 동시에 인간으로 살아가시게 된 것이다. 우리와 함께 영원히 인간으로 계시게 되었다.
성자께서는 사람 가운데 하나로 태어나시는 순간부터 십자가 위에서 단말마 중에 숨을 거두실 때까지 당하신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의 인장으로 날인한 계약서를 만드신 것이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이 육화를 위해 계시가 된 것이다. 인간과 피를 나누려 하지 않으셨다면 하느님은 굳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계시하지 않으셨으리라.
위의 이야기는 제아무리 담대한 인간의 상상력일지라도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신비이다. 하느님이 인성을 취하심으로써 인간이 신성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나의 이성아, 입을 다물어라. 그리고 나의 신앙아, 이 신비 앞에 너도 숨을 죽이고 엎드려라.
우리 순교사를 보건대 교리나 신학지식을 갖춘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로 그것들이 없는 사람이 거의 전부였다. 그 가장 두드러진 예는 김업이 막달레나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분은 예수님밖에는 모르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무학문맹인 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을 당당히 증언한 증인이 된 것이다.
아, 하느님의 무궁무진하고 심오한 섭리여!
2024. 5. 25.
제주 새미 은총의 동산에서
김창렬 주교
성령
1
제2의 성령의 시대
12세기의 수도 선견자 피오레의 요아킴은 구원사를 성부의 시대, 성자의 시대, 성령의 시대의 세 가지 시대나 단계로 구분하였다. 즉 성부의 시대를 성자가 이어받으셨고 그 성자의 시대는 성령의 시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제3시대인 성령의 시대가 구원사의 클라이맥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아킴의 이런 의견에 동의한다면 제2의 성령 강림으로 알려진 지금의 시대를 제3의 성령의 시대, 즉 구원사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그런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성령 강림과도 같은 놀라운 일들을 우리 시대에 새로이 해 주시기를 하느님에게 간청하셨던 요한 23세 교황님이 떠오른다. 하느님은 교황님의 간청을 기꺼이 들어 허락하셨다. 교황님에게 그 묵시를 주신 분이 바로 하느님 자신이셨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으셨으리라. 이렇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령의 공의회가 됐다.
성령의 공의회를 치르고 난 교회는 가장 먼저 미사 통상문의 개혁을 시행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미사 전문典文’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기에 바꾸기 힘든 양식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그 미사 전문이 ‘감사 기도’라는 명칭으로 바뀌면서 거기에 세 가지 양식이 새롭게 더해졌다. 세 가지 감사 기도 양식이 더해졌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성령 청원(에피클레시스)’이 성체 축성 전과 후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성체 축성 전에 외우는 성령 청원은 사제가 빵과 포도주 위에 두 손을 얹으면서 바치는 기도, 즉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다. 동방 교회는 이 기도로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믿을 정도로 이 기도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성령은 말씀이신 제2위 성자가 사람의 몸을 취하실 때 개입하셨다. 이제는 빵과 포도주란 물질이 제2위 성자의 살과 피로 변화되는 일에 성령이 개입하신다. 이렇게 제대 위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오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이 아니면 미사성제가 봉헌되지도 못하고 성체성사가 이루어지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전례 개혁이야말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온 가장 위대한 쇄신이라고 단언한다.
제2의 성령 강림 시대의 또 다른 징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 성령이 교부들을 깨우쳐 주신 덕분에 교부들은 제12항에서 성령은 성사와 교직을 통해 일하실 뿐만 아니라 이례적인 은사를 포함한 여러 가지 은혜를 교회의 쇄신과 보다 폭넓은 건설을 위해 모든 계층의 신도들에게 나누어 주신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교회의 성장을 위해 그 은사들을 감사와 위안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과 특은의 진실성과 온당한 행사에 관한 판단은 교회를 다스리는 이들에게 속한다는 것, 사목자들은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좋은 것을 분간하여 보존할 책임을 진다는 것도 명백히 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제3항에서도 나타난다. 즉 성령은 각 사람에게 당신이 원하시는 은혜를 나누어 주심으로써 스스로 하느님이 베푸시는 여러 가지 은혜의 관리인이 되신다는 것과 이런 은사의 진실성과 정당한 행사에 대한 판단은 사목자의 의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사목자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성령의 불을 끄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는 것 또한 명시되어 있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령을 높이 받들어 빛나게 해 드린 공의회이며, 평신도들을 격상시킨 공의회였다. 여기서 격상됐다는 의미는 그 어떤 자격이나 지위 문제보다 평신도가 성령의 총애와 은총을 전에 없이 풍성히 받아 크고 작은 다양한 사명을 맡게 되었다는 뜻이다. 성령은 이 문헌들이 사문화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교회 사상 유례없이 평신도들에게 많은 은총과 은사를 직접 쏟아 주신다. 공의회를 계기로 제2의 성령 강림을 맞이한 교회 안에서는 묵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던 성령의 다양한 은사가 물꼬 터지듯이 신자들에게 밀려들었다.
2
성령의 시대는 사적 계시의 시대
성령이 모든 신자에게 보편적으로 나누어 주신 은사 가운데 특별히 한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다름 아닌 예언의 은사다. 먼 옛날 하느님은 요엘에게 다음과 같이 예언하도록 하셨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 그리하여 너희 아들딸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 그날에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내 영을 부어 주리라.”(요엘 3,1-2)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전개되는 제2의 성령 강림 시대의 특징이 바로 그렇다. 공의회 이전에 신자들은 주로 지도와 지시만 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꿈도 꾸고 환상도 보고 예언도 하게 됐다. 즉 영감을 받아 묵상하고 기도하며, 묵시를 받아 말하고 가르치며, 자신이나 공동체를 위해서 사적 계시를 받게 됐다.
오늘날은 사적 계시의 시대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 교회 내에서 사적 계시에 대한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들린다. 특히 대부분의 사목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이는 사적 계시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불필요한 걱정이다. 사적 계시 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 결코 할 수 없다.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영감이나 묵시 없이 살 수는 없다. 공의회가 교회의 교역자나 신학자에게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지시해 주었음에도 사적 계시가 문제가 된 것은 사적 계시가 풍성해짐에 따른 부작용으로 사이비 계시들이 사적 계시에 섞여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위조지폐가 있다고 지폐를 버려야 하는가? 사이비 사적 계시가 있다고 사적 계시나 묵시나 영감 자체를 괄시하거나 모른척할 수 있을까? 모든 신심 운동(M.E, 꾸르실료, 마리아 사업회, 레지오 마리애, 빈첸시오회 등)의 시작은 사적 계시에 의한 것이다. 사적 계시가 없었다면 성체 신심, 예수 성심 신심, 성모 성심 신심, 첫 목요·첫 금요·첫 토요 신심, 십자가의 길, 묵주 기도, 9일 기도 신심은 우리 교회 안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도회도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 주님의 계시 없이 감히 수도회를 설립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공의회는 요한 23세 교황님의 묵시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뿐만 아니라, 그 어느 공의회도 성령의 묵시가 없었다면 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사적 계시가 없었다면 나는 사목자로서 들려줄 말이 없었을 것이다. 신학 논문을 쓸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사목 서한다운 서한은 쓰지 못했을 것이다. 공적 계시만으로는 도저히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신앙생활은 하느님과의 생명의 친분을 쌓는 길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성사와 교직을 사용하심과 동시에 묵시와 영감으로써 신자 하나하나를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셔야만 교회는 활기찬 생명체가 된다. 이런 이유로 교회는 끊임없는 가짜 사적 계시의 출몰과 그 해악에도 초창기부터 오늘날까지 사적 계시의 필요성과 그 중대한 역할을 꾸준히 이론과 실천으로 옹호해 왔다.
사도 바오로는 예언, 즉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을 은사 서열에서 둘째 자리에 놓았다(에페 2,20; 4,11 참조). 또한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은사, 특히 예언할 수 있는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1코린 14,1)라고 말했다. 예언의 은사, 곧 하느님의 뜻을 묵시로 받아 전하는 것은 우리 교회의 생명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성인 성녀들은 모두 사적 계시를 받은 분들이자 그 표본이다. 그들이 받은 사적 계시들은 하늘의 지혜의 산물로서 심오한 학문과 학식을 능가한다. 십여 년 전에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독일 출신 평신도였던 안나 쉐퍼가 시복되는 장엄 예식이 있었다. 자매는 신체적 장애 때문에 겪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초인적 인내로 감수하는 한편, 그를 찾아오는 어려운 처지의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어질고 넓은 마음과 천상 지혜의 말로써 영적 위로와 힘을 주며 43년의 거룩한 생애를 보낼 수 있었다. 그것은 자매가 들었던 예수님의 말씀과 환시들(그는 그것을 ‘꿈’이라고 했다.) 덕분이었다. 나는 여기서 솔직한 고백 하나를 하려고 한다. 바로 내가 안타깝게도 성직자들의 글보다 평신도들의 신앙 체험담이라든가 생활 수기에서 오히려 더 큰 감명을 받는다는 고백이다. 성직자들은 학리와 사리에는 맞지만 보통 형식과 틀에 맞춘 글을 쓰는 반면, 평신도들은 주로 그들의 묵시적 체험담을 쓴다. 둘의 차이는 결국 영감과 은총과 생명력의 차이다. 나는 이 차이를 통해 성령이 이 시대의 남녀 종들에게까지 차별 없이 당신의 선물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3
사적 계시 시대의 한 가지 증거
이 시대가 사적 계시의 시대라는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불과 30년 사이에 교회 역사상 유례없이 여성이 세 분 씩이나 교회 학자(박사)의 칭호를 받으신 사실에서 증명된다. 제2 성령 강림 시대의 개막을 알리기라도 하듯 1970년에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가 일주일 간격으로 남성만 있던 30명의 교회 학자(박사) 반열에 들었고, 1997년에는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가 새로이 교회 학자로 모셔졌다.
교회 학자(박사)의 칭호를 받으려면 위대한 성덕과 탁월한 학식이라는 두 가지 기본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세 분의 성녀도 그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한다고 인정되어 교회 학자가 되셨다. 사실 이들이 위대한 성덕은 갖추었지만 신학을 공부하거나 학식이 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교리 지식을 아는 정도의 교육만 받았을 뿐이고 시에나의 카타리나는 배운 적도, 글을 알지도 못했으나 하느님이 당신의 계시를 전하는 도구로 쓰시기 위해 특수한 방법으로 글을 깨쳐 주셨다. 그리고 열네 살에 봉쇄 수도원에 들어가 스물네 살에 세상을 떠난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에게서 교리 지식 외에 다른 신학 지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세 분의 탁월한 학식은 오직 사적 계시를 통해 얻어진 것이다. 성녀들의 사적 계시를 바탕으로 교회는 그분들을 교회 박사로 모셨다. 그들에게 교회 학자 칭호를 수여함으로써 학식의 개념이 바뀌었고 또한 사적 계시는 힘을 얻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신학이나 심오한 학식이 아니라 사적 계시에 의한 저서로 교회 박사의 칭호를 받았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는 자신의 자서전인 《한 영혼의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가 작고 약하기에 그분은 제게 몸을 굽히시고 당신 사랑의 비밀을 가만히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아! 만일 예수님을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친 학자들이, 고작 열네 살 된 아이가 그들의 학문으로도 알아내지 못했던 그분 사랑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을 봤다면 틀림없이 놀랐을 것입니다. 그 비밀을 알려면 영혼이 가난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사적 계시를 금기시한다면 구원사의 정점인 성령 시대의 은총을 외면하는 것이다. 교회사를 볼 때 사적 계시를 금기시한 시대는 성령 망각의 시대며 암흑시대였다. 잔 다르크의 시대와 예수의 데레사의 시대가 좋은 예다. 잔 다르크는 여덟 살 때 들었던 ‘소리(사적 계시)’를 가슴에 간직해 오다 열세 살 때 이를 발표하고 조국과 교회를 위해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결국 자신이 들은 그 소리 때문에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3개월간 감옥에 갇혔다. 그동안 갖은 회유와 협박을 당하고 허위 자백서에 서명을 강요당했다. 결국 그녀는 미리 계획된 파문과 화형 선고를 받았다. 판결을 내린 재판장은 놀랍게도 파리대학교 총장을 지낸 바 있는 보베의 교구장 삐에르 꼬숑이라는 주교였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잔 다르크는 처형된 지 18년 만에 재심을 받았다. 7년간의 엄정한 조사 끝에 잔 다르크는 마침내 오명을 벗고 복권했다.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1920년에는 성인 반열에 오르는 영광을 받고, 조국 프랑스의 수호성인으로 추대됐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성녀가 위대한 천재 성인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친구였던 러시아 정교 사상가 메레즈코프스키는 ‘예수님과 우리 사이’, 즉 2천 년 교회사 동안 다섯 분의 위대한 천재 성인들이 있었다고 꼽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잔 다르크다. 다른 네 분은 바오로 사도, 아우구스티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아기 예수의 데레사다.
한편 예수의 데레사의 영적 수기들은 사적 계시를 이해하지 못했던 당시의 종교 재판소 관계자들의 압수 수색에 걸릴 뻔했지만 그때마다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로 위기를 모면해 교회의 위대하고도 소중한 영적 유산으로 전수됐다. 또한 성녀 자신도 종교 재판을 면했다. 내가 왜 우리 교회사의 부끄러운 부분을 굳이 들출까? 성령을 망각하면 사적 계시들은 저절로 푸대접을 받는다는 사실과 일부 교회들의 그러한 잘못이 비록 똑같이 재현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다시 범해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경고하기 위해서다.
2024. 5. 19.
제주 새미 은총의 동산에서
김창렬 주교
놀라운 일
80여 년 전 소학교 6년생이 되었을 무렵 나는 본당 신부님에게 신학교 가겠다고 품달해 보았다. 이에 대해 그분은 안 된다고 하였다. 나는 신부 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서 무심히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분은 나를 불러 귀중한 추천서를 써 주셨다. 이리하여 나는 그 추천서를 입학원서와 함께 소신 학교에 제출하게 되었다. 동급생 친구도 입시에 함께 응시하였다.
훗날 알게 된 일이지만 처음 추천서를 받지 못했던 것은 내 신체에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함은 사시 곧 사팔눈이었다. 그 문제의 눈은 신경마비로 실명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대로 그것을 깨닫지 못했고 한편 다른 이는 그 누구도 그것을 몰랐으므로 나는 자연히 아무 것도 모른 채 나의 십 대를 보내게 되었다.
여하간에 응시 결과 이목이 수려한 그 친구는 낙방하고 병신인 나는 합격하였다. 그리고 나는 일생 동안 신체결함으로 인한 차별 대우는 받은 일이 없다. 나의 긴 학창 생활 동안에도 거의 모든 스승님들의 굄을 받고 칭찬을 들으면서 지냈으니 그저 놀라운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훗날 내가 사제 지망자들의 성소를 심사하는 책임자 자리에 있게 되었는데, 만일 나와 같은 사람이 지원을 했다면 사제직에 합당치 않다는 판결을 내렸을 것이다. 한데 주님께서는 신부가 되기에도 만부당한 나를, 두 번이나 겸허히 고사했음에도 내 자유의지를 묵살하시고 기어이 주교직에 떠밀어 올려놓으신 것이다. 그때 내 눈앞에는 주님께서 나를 주교로 만들지 못해 애태우신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나의 일생은 하나의 특례가 될 지도 모르겠다. 흠과 티로 누벼놓은 인생에 대하여 추궁당하지 않는 것만도 천만다행한 일인데, 주님은 되려 끊임없이 좋게만 해주시어 몸둘 바를 모르게 만드시니 이것이 어찌 예사로운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오, 실로 놀라운 일이로다!
오, 정녕 나의 인생은 하나의 신비요 불가사의로다!
슬며시 해 주시는 하느님(1)
나는 주님께 버릇없이 또는 염치없이 많은 것을 청한다. 물론 청한다고 다 들어주시는 것은 아니다. 청하는 즉시 해 주시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런데 청한 다음에 무심히 살다 보면 어느새 청한 일이 해결된 경우가 적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주님을 생각하지 않고 지내거나 주님을 떠나서 다른 일에 몰두할 때 주님이 소리 없이 오셔서 슬며시 선물을 놓고 가신 것을 깨달았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께 청하고 싶은 것을 마음에 담아 놓고 산다. 주님은 그것들을 당신 마음에 그대로 담아 두시면서 원하시는 때에 그것들을 내게 주신다. 내 인생은 그러한 일로 가득 차 있다. 그중에 몇 가지 선물이 특히 생각난다.
1940년, 일본 정부는 전시 체제에 산수가 그다지 필요치 않다고 여겨 산수를 중학교 입학시험 과목에서 제외시켰다. 그랬다가 즉시 그 결정을 번복하여 그 다음 해부터 산수 과목을 입학시험의 필수 과목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그런데 내가 중학 입학시험에 응시한 해가 바로 1940년이다. 나는 산수 과목이 매우 약해서 근심하던 나를 입학시키시려고 주님이 일본문부성으로 하여금 그러한 조치를 취하게 하셨다고 해석한다. 그 후 나는 주님이 나를 당신의 사제로 만드시려고 나 모르게 슬며시 그렇게 해 주셨음을 깨달았다.
다른 한 가지는 전임 강사 자격도 없는 내가 재단으로부터 교수 자격이 요구되는 직책을 임명받았을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문교부의 요청에 따라 로마 유학 당시 받은 성적표를 첨부하여 교수 자격 인정 신청서를 서둘러 제출했다. 며칠 뒤 문교부의 승인서를 받았는데 이는 단계적 승급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번에 교수가 된 예외적인 일이었다. 이 역시 주님이 슬며시 해 주신 것이며 그때 내가 맡은 직책이 그분의 뜻에 의한 것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슬며시 해 주시는 하느님(2)
주님은 드러나게도 일을 하시고 슬며시 하시기도 한다. 그러나그분은 거의 모든 일을 슬며시 계획하신다. 창조 사업과 구원 사업을 홀로 슬며시 계획하셨다. 나의 창조와 구원도 나 모르게 슬며시 계획하신 것이다.
신학교 시절 학칙에 따라 나는 하루의 일과를 끝낸 시간에 양심 성찰을 하였다. 그런데 그 성찰은 그날이 그날 같고 밤낮 같은 자리에서 맴돌았을 뿐이었다. 뒤돌아보니 그 성찰을 다른 식으로 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곧, 주님께서 슬며시 내게 해 주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성찰하는 것이다. 내가 겪은 일, 한 일, 대인 관계, 어려웠던 일, 기뻤던 일들에서 하느님이 슬며시 해 주신 일을 마음에 비추어 생각해 보는 것이다. 만일 매일 그렇게 했었더라면 내 안에 경이감이 자라났을 것이고 내 생활은 퍽 재미있었을 것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슬며시 계획하신 일, 슬며시 해 주신 일들을 떠올려 본다. 헤아릴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새겨 보련다.
지금으로부터 8, 90년 전, 내 유년 시절에 배운 교리에 따르면 우리 교회의 으뜸이 두 분인데 한 분은 볼 수 없는 으뜸인 예수 그리스도이고, 다른 한 분은 볼 수 있는 으뜸인 교황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당시 교황님은 볼 수 없는 으뜸과 같은 분, 그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분이었다. 천상 예루살렘의 모상인 도성 로마라든가, 하늘나라 성전의 모상인 베드로 대성전 역시 아시아의 한구석에 사는 나에게는 꿈의 도성이요, 꿈의 성전일 뿐이었고 그 사정은 청소년 시기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 뒤 세월이 흘러 영상을 통해 움직이는 교황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지구촌도 차츰차츰 좁아지면서 많은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 변화 속에서 나는 나를 위해 슬며시 계획하시어 작성해 놓으신 하느님의 각본에 따라, 나의 능동적 관여 없이,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되는 것을 느꼈다.
아, 이 어인 일인가!
천상 예루살렘의 모상이던 꿈의 도성 로마에 가 보았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살면서 공부까지 하였으니!
꿈의 하늘나라 성전의 모상이던 베드로 대성전을 구경하고 무시로 드나들었으니!
교회의 볼 수 있는 으뜸이로되 볼 수는 없었던 교황을 만나보았으니!
어찌 그뿐이랴!
그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회의 으뜸이신 교황으로부터 주교품을 받고 중앙 제대에서 그 으뜸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으니!
내 영혼아, 놀라지 마라!
이 모두가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슬며시 계획하신 일들이었느니라.
나 이제 무엇을 더 바라며 무엇을 더 기대하랴! 이제 남은 일은 삶과 죽음, 그리고 그 뒤에 생길 일들에 대해서 마음 쓰지 말고 오직 그분께서 나를 위해 슬며시 계획해 놓으신 일들이 이루어지기만을 바라며 사는 일이 아니겠는가!?
<Bloodless Martyrs' Breathless Voic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