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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 선조들의 피로 물든 순교지나 탄생지나 묘지, 등의 모든 성지가 전에는 흔히 전답이나 임야나 잡종지로 되어 있었으나,,,!

글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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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 선조들의 피로 물든 순교지나 탄생지나 묘지, 등의 모든 성지가 전에는 흔히 전답이나 임야나 잡종지로 되어 있었으나,,,!

250여 년 전 한국천주교회가 창립될 때 우리 나라에는 국법상 국토이용 관리법상 종교용지라는 지목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신앙 선조들의 순교지나 탄생지나 묘지, 등의 모든 성지가 지금의 법규를 따라 전답이나 임야나 잡종지 등으로 되어 있어서, 우리 종교 단체 교구청 사무원들이나 군,면의 담당 공무원들에게도 토지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들에게는 어려움이 많았다. 

 

1970년대 말부터 2020년대 초까지 필자 명의로 우선 매입하여 약 반세기에 걸쳐 교구명의로 이전 완료한 토지는, 천진암 성지를 비롯한 여러 성지들이 모두 300여 필지에 달하는 총 40여 만 여평으로, 송전 성당 터 1,400여 평을 시작으로, 도합 40여 만 여평이나 된다. 그 토지들은, 매입과 지목변경 등을 관리하는 담당 공무원들과의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성지 개척 업무에 있어서, 사제가 되기 전 일체 배우지 못한 분야의 업무는 그래서 주로 평신도들이 담당하여 처리하였다. 

 

특히, 퇴촌면의 우산리 천진암 성지 지역과, 중부면의 남한산성 성지 지역, 동부면의 구산 성지 등의, 토지 매입 관리는 다행히, 당시, 중부면장과 퇴촌면장을 역임하며, 농촌개발에 크게 기여한 구산 성지의 김성우 안당 순교 성인의 후손 요한 김학성 회장의 활약이 지대하였다는 사실을, 지금 성지를 지키고, 아끼고, 가꾸며, 활용하는 담당 성직자나, 일반 순례객들이 알고 있을 수는 없다.

 

1976년부터 2016년 경까지, 광주군의 동부면 신장본당 주임으로 9년 7개월 간, 수원교구청 주교 비서와, 사목국장, 교육원장, 등으로 교구청 근무를 2회나 하면서, 구산 성지와 남한산성 성지, 천진암 성지, 등에 기념비, 등을 처음 건립하던, 1975년 경부터 2016년 경까지, 정말 고달픈 업무를 늘 겸직하던 필자는 늘 힘에 겨운 일들을 피할 수가 없었다. 특히, 그 동안에 한국 주교회의에 불려가서, 한국천주교회 창립200주년 기념과 한국순교자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의 사무국장, 한국순교자 시복시성위원회 총무로 1975년~2000년 경까지 거의 25년 간, 특히, 한국 103위 순교복자 시성 추진 부장 등으로 한국 교회가 처음 해보는 일에 눈코 뜰 사이가 없던 시절에도, 해당 업무 수행에 근거 터전이 되는 관련 성지 확보는 가급적 피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필자가 책임지고 추진하였던 성지의 토지 지목 변경과 명의 이전 수속이 이제서야 얼마나 많았으며 애를 먹였는지, 그래도 가장 속을 많이 쎅이며 꾀까다로운 규정으로 애를 먹이던 도립공원 지역의 남한산성 산비탈 성지에 순례오는 신자들이 돌무더기 위에 앉는 자리 3백여평의 지목 변경이 반세기가 넘도록 허가되지 않다가 이제서야 마지막으로 교구로 명의이전이 모두 완결되었다니,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성지 토지 소유권의 명의 이전 행정수속보다 훨씬 더 힘들었던 것은 토지 매입재정이 전무한 늘 백지 상태에서 대금 마련 위해 서울 시골로 동분서주하면서 뛰어다니며 신자들의 성금을 모으며 주선하던 일이었다, 

 

구산성지만 하더라도 필자가 신장본당 주임 신부로 부임할 때는 당시, [산소갓]이라고 부르던 마을 입구로 들어오던 길목에 도로부지 포함 270평 뿐이었다. 그나마 농업용 배수로 복개지를 포함해서다. 그래서 구산공소 신자들을 1 주일간 특별 피정을 하게 한 후, 현금봉헌이 불가능한 가난한 농촌 교우들에게 농사짓는 전답 일부분씩이라도 조금씩 농지 조각 땅을 조금씩 떼어 봉헌해 주기를 호소하면서도, 나도 가난한 시골 농촌 빈농 출신으로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순교자 후손들이 주축이 되어 신앙을 지켜온 구산 공소 교우들이 봉헌한 농지 조각들을 등기도 넘기지 않고, 입으로만, 말로만 논 밭의 귀퉁이 일부분씩 봉헌 약속 밭은 땅 조각들을 모두 합하니, 6천 여평에 달했다. 그러나 몇몇 교우들, 특히, 논 밭에 나가서 일하는 매일 구산 마을 신자들이 삼종을 바치도록 시종품 받은 성직자 못지 않게, 새벽 6시, 낮 12시, 저녁 6시에, 정확하게 한 평생 종을 쳐주시던 박회장님(박건순 신부님 부친)님과 자제 형제분들과 김성우 순교자 형제분들의 후손, 김학렬 신부님 집안 형제분들 집안에서는 100여 평씩, 200여 평씩을 봉헌한다고 공개하며 약속하고 실행하여 마음이 뭉클하였다. 

 

이러한 봉헌을 받아 오늘의 구산 성지 터전을 마련하기 전, 김 안당 순교복자 기념 비석을, 당시엔 물론 지금도 국내에서 천주교회 계통에서는 가장 크게 세우면서 구산과 천진암과 남한산성에 깃들어 묻혀 있던 성지 확보와 개척이 시작되었다. 구산 마을은 보릿고개 넘기려면 더우개나 돌자개 타동에까지 가서 장리쌀(봄에 1가마 쌀을 받아 먹고, 가을에 1가마 반으로 갚는 이자 쌀)을 얻어와야 여름을 날 수 있었던, 집들이 적지 않을 정도로, 주로 천수답이 대부분이던 마을에서, 김학성 요한 등 젊은 교우들이 처음, 한 겨울 비닐 하우스 상추 재배법을 개발하여 숨을 돌리며 살아오던 마을이다. 

 

구산 성지 마을은 그래도, 부촌 신자들이 못하던, 국내외 사제들과 신학생 후보자들이 출국 전 안전하게 머물게 하던 김안당 회장의 신심으로, 중국인 주문모 신부, 여항덕 신부, 프랑스 선교사 피에르 모방 신부, 그리고 김대건, 최양업, 최과출 등 신학생 후보들 3명을 잠시라도 서울 시내 교우 집에서보다는 좀 더 안전하게 은신시키던 안전처였다. 그래서 필자는 서울 동서로 구산과 절두산을 것점으로 명동대성당만한 500여 평짜리 순교자 대성당 건립 외에는 옛 모습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떠들어댔지만, 사람이 바뀌면 계획도 바뀌고, 사업도 백지화하며, 무계획적으로 파괴하고 바꾸어, 역사를 지우는 원시사회화 하는 시대 교회를 우려하며, 이루지 못하는 꿈을 안고 있던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떠나고 있다!

 

특히 6.25 사변 때는 공산당의 북한 인민군들을 미쳐 피하지 못해서, 도림동 성당에서는 젊은 신부가 성당 건물 대문 앞에서 총살당하는 순교하던 터에, 이런 난을 피하기 위하여 명동의 장금구 신부, 혜화동 신학교 최민순 신부, 명동 성당 윤공희 신부, 김창린 신부, 이계항 신부를 비롯한 전주 교구, 원주교구 일부 신학생들 몇명도 구산 마을 교우들집으로 함께 와서 피신하는 등, 명동 서울 교구 일부 성직자들도 피신하여 내려와서, 낮에는 콩밭 고랑에 피신하여 깡보리밥을 날라다 주는 교우들에게서 엎드려 숨어서 얻어먹고, 밤에는 이불로 들창문들을 가리고 모여 앉아서 미사를 올리던 공소였다. 그래서 훗날 신학생 성소도 가장 많은 공소가 되었다.<계속> 

 

그런데 지금도, 성지개척에는 천상에 계신 순교선조들이 돌보시는듯, 예컨데, 금년 지난 추석 직전에 포천 화현 성지에서 알려온 기적같은 기쁜 소식이 있었으니,한국천주교회 창립성조, [하느님의 종] 세자요한 광암 이벽 성조의 생가 터 포천 화현성지의 1천여평이 넘는 대지, 이부만 공의 집터(이벽 성조 생가터)가 마침내 매입되었다는 실로 역사적인 소식이다. 최근 싯가 9억 이상을 홋가한다더니, 마침내 실제는 포천 시청 직원들의 주선으로, 8(?) 여원에 매입이 완결되었다니, 포천시와 화현 이벽성지 관계인들에게 축하와 감사를 드려야 할 쾌사다! 

 

특히, 15년 전 필자가 2, 3차례 강의 초청을 받아 포천시에 가서 모 대학 대학원 인문 연구소에서, 비교회적이며, 비종교적인 차원에서, 또 초종교적인 입장에서, 역사상 포천시를 빛낸 인물들에 대하여 강의하던 15년 전만해도, 성지라는 땅이 전무하던 그 마을에 역대 포천시장님들과 시청 직원들, 시 의회 의장님과 시의회 의원님들이 아직 입교 영세도 하기 전인 비가톨릭인데도, 처음에는 50억에 달하는 예산 마련을 계획한다더니 하여, 당시 총 60억~70억에 달하는 예산을 확보하여, 성지 대로변에 수천 여평에 이르는 성지를 확보하고, 기념관을 건립하고, 대형 주차장을 조성하는 등, 전 세계 교회가 격찬하며 감사하는 소식에 우리는 더 더욱 놀라며 깊이 감사하였다. 

 

그런데, 한국천주교회 안에서는 경제적으로 비교적 매우 빈약한 강원도 산악지역의 춘천교구 역시, 여기에 2천 여평의 성지 용 토지를 매입하여 성당을 건립하고 교구장 주교의 축성과함께 사제를 파견하여, 전국에서 특히, 해외에서 찾아오는 순례객들을 맞아 미사를 봉헌한다고 하니 기적같은 성령의 거룩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 여름 카나다 토론토 명문대에 유학 중인 한인 교포 가족들이 포천시 화현면의 옛 이름 꽃마루 화현의 광암 이벽성조 탄생지며 순교성지를 순례하던 날은 부산 지역의 성지순례자들까지 수 백여명이 몰려 와서, 벌써 성지가 붐비는 화현 이벽성지를 순례하며 김승한 회장의 감격적인 안내 설명과 강론을 들었다고 우리에게 소식을 전파하는 거룩한 목소리가 태평양을 건너왔다.

 

그러나, 이제 겨우 시작하는 포천시의 화현면 오늘의 [화현 광암 이벽성조 성지]는 앞으로 머지 않아, 한국을 대표하는 수도권의 천주교회 최대 성지 중의 하나로서, 국내외 성지순례자들에게, 또, 전 세계 인류문화사를 빛내는 위대한 대한민국의 지극히 거룩한 성지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따라서, 포천시의 화현 이벽성조 탄생 순교 성지는 포천시와 경기도의 수준과 차원을 넘어서, 천주교회의 전 세계적인 성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포천시와 천주교 춘천교구에만 맡기고 수수방관할 것이 아니라, 전국 차원의 중앙정부와 경기도는 물론, 한국 천주교회도, 춘천교구에만 맡기고, 소가 닭쳐다보듯 수수방관할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특히 한국 천주교회 전체가 온 국민들에 앞서서, 더욱이 내 교구, 네 교구, 따지지 말고, 다 같이 함게 포천시민들을 본받아, 이 분들과 함께, 모두 정성과 힘을 합쳐서 대한민국을 빛내는 포천시 화현면의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없는 [광암 이벽 성조의 탄생 순교 성지]를 지키고, 아끼고, 가꾸고, 빛내는 거룩한 일에 우리 모두 힘과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전국의 모교구인 서울대교구와 인천, 수원교구 신도들도, 모든 본당에서 단체 순례단을 춘천교구의 새 성지로, 꾸준히 파견해야 할 것이다. 광암 이벽 성조께서 없으셨다면, 오늘의 서울대교구도, 수원교구와 전국 대신학교들과 저 많은 수도회와 수도원과 수도자들도 있었을까!? 아마도 없었을 것이며, 오늘의 우리 신부, 수녀, 주교님들도, 오늘처럼 있을 수 있으랴!? Msgr. Peter Byon. - 

입력 : 2025.11.01 오후 6: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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