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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WIND BELL

天眞菴 講學과*李檗 讀書에 관한 丁若鏞 詩文集의 主要 文句

글 :  천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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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眞菴聖地와 李檗聖祖에 관한

茶山 丁若鏞 先生의 詩文 拔萃




2004. 7. 7. 天 眞 菴 聖 地



卞 基 榮 神 父








天眞菴聖地에 관한 茶山丁若鏞 先生의 詩文 拔萃

贈 李檗 (증 이벽)

<1777년 丁若鏞 17세, 李檗 24세 때 이벽 성조의 학덕을 기리며 정약용 선생이 지어 바친 헌시>

庶物無偏頗 (서물무편파) 모든 일에 있어 편파적이지 않으시니,
貴達安所羨 (귀달안소선) 부귀와 영달을 부러워하시랴.

賢豪氣相投 (현호기상투) 성현과 호걸 기백이 서로 투합하시니.
親篤欣情眄 (친독흔정면) 기쁘고 즐거운 정도 돈독히 하시며,.

令德勉早修 (령덕면조수) 덕행을 일찍부터 힘써 닦으시어

慷慨常見面 (강개상견면) 그 얼굴에서 강개하신 모습 늘 보옵니다.

友人 李德操 輓詞(우인 이덕조 만사)

<1785년 乙巳년 32세로 돌아가신 李檗성조의 장례식에서 정약용 선

생(당시 25세)이 지어올린 만사>

仙鶴下人間(선학하인간) 신선나라 학이 인간세계에 내려오시니

軒然見風神(헌연견풍신) 그 모습 신령한 풍채를 보았도다.

羽 皎如雪(우핵교여설) 날개와 깃털은 희기가 눈과 같았으니,

鷄鶩生嫌嗔(계목생혐진) 병아리 오리떼들이 샘을 내고 골을 부렸네.

鳴聲動九宵(명성동구소) 그 울음소리는 아홉하늘을 진동시켰고,

 亮出風塵(료량출풍진) 그 울부짖음은 풍진세상에 뛰어났네.

乘秋忽飛去(승추홀비거) 가을이 되어 문득 날아가버리시니,

  空勞人(초창공로인) 아무리 슬퍼하고 애통해한들 무슨 소용있으랴.

天眞菴 賞楓 (천진암 상풍)

<天眞菴賞楓 1786년 병오년 정약용 25세 때 作>

買酒花郞坊裏(매주화랑방리) 화랑방 동네에 들어가 술을 사가지고,
停車 子峰陰(정차앵자봉음) 앵자봉 그늘에서 수레를 멈추니,

一夜纖纖白雨(일야섬섬백우) 하룻밤 실 이슬비에

雨厓  紅林(우안섭섭홍림) 양쪽 산 더욱 붉고 싱싱하게 물들었네.


游天眞菴記(유천진암기)

<1797년 丁巳년 초여름 정약용 37세 때 作>

丁巳之夏余在明禮坊 정사년 여름 내가 명례방에 있을 때,

石榴草華小雨新霽 석류 첫 꽃이 피기 시작하고 이슬비가 내리다 개어,

意 川打魚其時也 고향에 가서 물고기 잡아 천렵할 생각이 났다.

取裁江網打魚大小五十餘枚 그물치고 때려잡은 크고작은 물고기는 50여마리.

蓋爲天眞之游 모두들 天眞에 가서 놀자고 하여,

於是 昆弟四人與宗人三四人 우리 4형제와 종친들 3,4명이 함께 나섰다.

共詣天眞,,,,旣入山草木 鬱, 天眞에 들어가니, 산의 나무와 풀이 벌써 무성하게 우거졌다.

凡得詩二十餘首. 이때 이십여수의 시를 얻었다.

端端午日陪二兄游天眞庵(단오일배이형유천진암기)

<端午日陪二兄游天眞庵 1797년 丁巳년 정약용 37세 때 作>

李檗讀書猶有處 이벽의 讀書處는 아직도 저기 그저 있는데

苑公棲跡杳難尋 苑公이 깃들이던 발자취는 아득하여 다시 찾기 어렵구나.

風流文采須靈境 풍류와 문채는 모름지기 神靈한 경지라야 하리니,

半日行 半日吟 그 시절 그리며 한나절내 술마시며 한나절내 시를 읊노라.
講學于天眞菴(강학우천진암)

< 1822년에 정약용 62세 때, 43년 전의 1779년 講學을 回想하며 作>

昔在己亥冬講學 于天眞菴 일찌기 기해년(1779) 겨울 천진암에서 강학할 때,

走魚寺 雪中 李檗夜至 주어사에는 눈이 깊히 쌓였는데도 눈 속을 뚫고 이벽이 밤에(앵자산을 한 밤중에 넘어 천진암에까지) 와서,

張燭談經 其後七年 촛불들을 켜들고 경서를 담론하고나서 7년이 지난 후부터는

而訪生此 所謂盛筵難再也 이 天眞菴 講學을 비방하는 소리가 일어나서 다시는 못하였으니, 성대한 잔치는 두 번다시 하기 어렵다는 말과 같다.


天眞消搖集(천진소요집)

(1827,丁亥, 정약용 66세 때 作)

<游天眞菴 玄谿 石泉翁 三家少年及 季林 聖九 規伯 亦從焉>
현계 령공을 만나 남쪽 천진암에 놀러 간다기에, 나도 따라 나서다. 석천옹도 같이 가게 되어, 우리 세 집안 아이들과 계림 성구 규백도 따라 나섰다. 남쪽 천진암에 이르러 몇 수의 시를 지었다.>

適莫非吾道 적막함은 우리의 도가 아니고,

從他不住心 남들따라 아무데나 마음을 두지는 않는다

倂騎貪佛日 그러나 말 타고 나란히 함께가는 석가탄일은 기다리고

隨意坐禪林 마음 내키면 참선하는 이들 사이에 앉기도 한다.

絶俗曾非性 세속을 끊는 것이 우리네 본성은 아니다.

耽幽卽底心 다만 고요함을 찾아 머물고자함이 밑바닥 마음일 뿐이다.

病懷宜水石 한 맺힌 회포에는 고요한 물과 큰 바위들 있는 곳이 제일이다.

閑界是雲林 그래서 하늘에 뜬 구름과 이런 심산궁곡이 고요하고 좋다.

神怡須信宿 심신을 쉬며 자게 되니,

歸馬亦芳陰 돌아갈제 타고 갈 말도 그늘 속에서 쉬고 있다.

偶因尋蔓草 심산의 고요한 덩굴 풀 속이 좋다고 찾아오다 보니

重覺入叢林 이미 도닦던이들의 세상에 다시 들어왔음을 알겠구나.

沼上煙霞秘 물 웅덩이 위에 피어오르는 안개와 노을은 신비롭구나.
丘中歲月深 언덕 위의 많은 변화는 세월이 흘렀음을 말하는도다.

 緣慙講德 새벽 일찍부터 우리는 덕 닦기를 위한 講學을 하였었고,
書帙見隨陰 산그늘 지는 저녁에도 경서들을 읽었었지.

紅葉題詩處 그 옛날 우리가 붉은 잎에 시를 쓰던 바로 이곳을

重來愴客心 다시 찾아온 이 나그네의 마음은 서글프기만 하네그려.

破 泉聲散 전에 방아찧던 돌절구는 다 깨지고 물만 흐르며 소리내네
荒寮草色深 문허져서 폐허가 된 황량한 숙소에는 잡풀만 무성하구나

入山非喜佛 우리가 산에 들어온 것은 부처님을 기쁘시게 하려함이 아니고,
佳處卽怡心 다만 경치좋은 이곳에 오면 마음이 그냥 기쁘겠기 때문일세.

樵斧稀喬木 나무꾼들의 도끼질에 경내의 큰 나무들은 거의 베어 못보겠고,
禪燈廢少林 참선하던 이들은 모두 사라져, 선방은 폐쇄되었구나.

壞墻花發晩 문허진 담에는 꽃들만이 뒤늦게 피고 있는데,

層 水來深 계단 별로 만들었던 홈통은 깊이 패어 물만 많이 흐르네.

寺破猶寄絶 절은 문허져 폐허가 되었지만, 경관은 아직도 빼어났구나.
淸閑卽素心 맑고 고요함에 이 마음 잠기고자 함이 내 본심일 뿐일세.

碧落鐘聲斷 그 옛날 하늘에까지 퍼지던 종소리는 이미 멈춘지 오랜가보다.

黃昏畵壁深 황혼이 되니 벽화도 더욱 컴컴하고 흐리게 보이는구나

<夜宿天眞寺 寺破無舊觀 余蓋三十年重到也>

前 凄迷不可求 지나간 발자취는 서글프게도 다시 딛고 가볼 수가 없는데.

黃 啼斷綠陰幽 옛날처럼 꾀고리 울음만이 이 깊은 산중 녹음을 깨는구나.

朽筒引滴涓涓水 다 낡고 썪은 홈통은 물이 줄줄 새어서 흘러내리고,

破瓦耕 疊疊丘 깨진 개왓장들은 밭을 일구느라 여기저기 모아 쌓았구나.

禪房無處舊人求 저 선방의 그 옛날 친구들을 다시는 찾을 곳이 없구나

客到虛堂地自幽 나그네로 찾아온 이 집은 텅 비어, 마당조차 적막하네.

藤底 聲餘澗水 등나무 밑에 방아찧던 소리는 사라지고 물소리뿐인데,

樓前寮舍半虛丘 누각 앞의 기숙사들은 반이상 문허져 텅빈 언덕뿐일세.


古寺重恢同普濟 헌 절을 다시 보수하는 것도 중생을 제도함과 같으나,

 工那乏發慈舟 사랑의 배를 따시 띄우게 할 뱃사공이 없구나.

鞍馬渾忘半日倦 안장을 얹은 채로 한나절내 말은 쉬고 있는데,

樽 且共一宵游 동이 술로 다같이 이 한 밤을 지새우고 되네.

密樹陰邊聆細瀑 울창한 나무사이 작은 폭포들 소리는 쉼없이 울리는데,

古藤圓處識高丘 오래 묵은 등넝쿨은 높은 언덕마다 뒤엉켜 무성하구나.

三十年來重到客 삼십여년만에 이곳을 다시 찾아온 이 나그네는

猶然苦海一孤舟 아직도 괴로운 바다에 뜬 외로운 배 한척일뿐이로


* 폐허가 다 된 천진암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禪樓啞古鐘 이 절간에서 그 옛날에 듣던 종소리는 이제 온데간데 없고,

불쟁양패견 부처그림 낡은 명주는 찢어지고 해어져 펄럭일 뿐이로세.
石徑細如線 바윗돌 사이사이로 가늘고 좁게 뚫린 산길은

昔我童時游 일찍이 내가 어려서 놀러 오던 곳들이지

蒼翠鬱采絢 녹음이 우거진 무성한 빛 아름답고

全山夏木糾 산마다 초여름 나무들이 울창하게 피어오르네.

滿谷古藤  계곡마다 그들먹하게 오래 묵어 굵어진 등넝쿨들을 보니,

日月今幾何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갔는가?

桑海驚轉眄 뽕나무밭이 바다가 된다더니, 실로 이렇다시 바뀌었구나.

春山一蕭瑟 늦봄의 산 기운이 무심한 세월 속에 쓸쓸하게 느껴지네.

漏湲不可聞 그 옛날 듣던 홈통의 물소리도 안에서는 들을 수 없어,

暗泉劣一線 겨우 실낱같은 샘물 하나 남았구나.






* 천진암에서 독서하며 강학하던 옛터를 돌아보며

豪士昔講讀 호걸과 名士들이 그 옛날 講學하고 讀書하던 이곳이지.

尙書此燒鍊 우리는 여기서 經書를 외우고 익힌 후 불에 태워 먹었었지.

芬芳旣沈  그시절 道場의 향기는 이제 갈아앉듯 끊어져 사라졌구나.

寮院無逾  본부로 쓰던 집조차 넝쿨 풀이 우거져 들어갈 수 없네그려.

* 천진암에서 떠나 하산하려고 마음먹으니,

一宿有餘戀 하룻밤 묵었는데도 옛정 되살아나고 미련이 남아,

我欲來此住 내 이 곳에 또다시 와서 좀 머물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無人示方便 다시 와서 머물 방도와 편의를 제공해줄 사람 아무도 없네.

寂寞唯佛像 고요한 적막 속에 있는 것은 오직 불상 뿐이고,

零落但經卷 몇권 책들만이 바닥에 떨어져 딩굴어 썰렁하기만 하이.

他年可重來 훗날 또다시 이 곳을 오게 된다하더라도,

歎息恒沙變 그나마 더 폐허가 되어 탄식만 더하게 되리.

* 천진암 계곡을 떠나 下山하면서

每下山樓意 然 번번히 下山할 때면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하구나.

不知中到定何年 어느 해나 다시 한번 더 올 수있을지 막연하네그려.

愛玆  雲溪水 구름을 피우며 흐르는 溪谷水는 늘 다정하게 느껴지니,

十里相隨到野田 십여리까지 우리를 따라와서 논밭으로 들어가네. 끝




*李檗傳 중에서
<1837년 경 丁學術 作>

戊戌年二十五歲 1778년 25세 때
隨時李星湖從學徒 성호이익선생 따르던 학도들인
賢友賢師李氏丁氏勉學 어진 벗들과 스승들 정씨 이씨네들과 면학
赴燕使洪軍士天學典函曾受 부연사 홍대용이 가져온 천학서적을 받아
沒讀晝夜沈想思盡無疑 주야로 숙독, 명상하여 생각마다 의심이 없어지자,
山水間逍遙自放 산수간을 다니며 스스로 자유로이 여행하시더라
一到廣州鴛鴦山寺隱居 광주 땅에 이르러 앵자산사에 은거하시매
道友衆徒聖敎要旨下筆 도를 닦겠다는 벗들이 제자단을 이루자 교과서로
聖敎要旨를 불러 받아쓰게 하시었다.

己亥是歲二十六歲時 1779년 26세 때
賢友勉學爲上 어진 벗들과 면학하는 제자들이 웃어른으로 모시니
衆集山寺 군중이 산사에 모였었는데
公奇學多博 공은 기묘한 학문을 아주 넓고 깊은 학식으로
天文地理醫學卜術性命之術 천문학과 지리학 의학과 점술 성리철학에
無不達通註答如流水 도무지 달통하시어 모든 질문에 유수처럼 답하시자
其門和如叢林 그 문하에 모이는 선비들이 공동체를 이루게 되어,
巷間名聲傳誦 세간에 그 명성이 자자하였다.

*天眞菴에는 講學堂, 李檗讀書處, 禪房, 寮舍(선비들의 寄宿舍), 寮院, 굄물방아간, 등이 있었고, 賢者니, 豪傑이니, 賢師, 從學徒니, 하는 젊은 선비들이 자주 모이는 단체가 있었으니, 曠菴 李檗聖祖를 중심으로 하는 天學道人들이었으며, 한국천주교회 창립의 주역들이었다*
*앞으로 천진암 관계 다산의 시문 전체는 책자로 별도 편찬된다.*




茶山 丁若鏞 先生의 詩文集에 나오는
天眞菴에서의 講學과 讀書에 관한 主要 文句

天眞消搖集 중에서

< <1827년 늦봄에 옛 친구들과 천진암 현장에 와서 읊은 시>

破0泉聲散 부서진 물방아에서는 물방울만 흩어지며 떨어지고

荒寮草色深 문허져서 황량한 기숙사에는 잡풀만 무성하구나.

芬芳旣沈헐 그윽한 향기는 이제 다시 맡을 수가 없구나.

寮院無逾연 기숙사 본 건물은 넝쿨풀이 우거져 드러갈 수 없으니.

豪士昔講讀 豪傑과 名士들이 일찌기 講學하고 讀書하던 이곳이지.

尙書此燒鍊 尙書를 여기서 외우고 외운 것은 불사르며 익혔었지.

破대泉聲散 부서진 물방아에서는 물방울만 흩어지며 떨어지고

인緣慙講德 새벽 일찍 일어나 우리는 덕 닦으며 講學을 하였었고,

書帙見隨陰 저녁이면 산그늘 따르며 經書를 읽었었지.

紅葉題詩處 붉은 잎에 시를 쓰던 바로 이곳을

重來愴客心 다시 찾아온 객의 마음 한없이 서글프기만 하여라.


禪房無處舊人求 저 선방에서 그 옛날 참선하던 옛 사람들은
모두 죽어서 다시 구해올 곳이 없고,

客到虛堂地自幽 객이 되어 찾아온 법당은 텅 비어, 마당조차 적막하구나.

藤底대聲餘澗水 등나무 밑에 방아찧던 소리는 사라지고 물소리만 남았네

樓前寮舍半虛丘 누각 앞에 있던 기숙사들은 반이나 문허져 푹 갈 아 앉아 빈 언덕뿐일세.

詩文集 중에서

<1797년 승지로 재직시 형들과함께 천진암에 와서 지은 시>

李檗讀書猶有處 이벽의 독서처는 아직도 저기 그저 있는데

風流文采須靈境 풍류와 문채는 모름지기 신령한 경지라야 하리니,

墓地銘 중에서

<강진 귀양살이에서 돌아온 후 1822년에 쓴 글>

昔在己亥冬 일찌기 기해년(1779년) 겨울에 있었던

講學于天眞菴 천진암에서의 강학 때

走魚寺雪中 주어사는 눈에 묻혀 있었는데

李檗夜至 이벽은 한 밤중에 천진암에까지 왔었지.

張燭談經 그리고 우리 모두 촛불들을 켜들고 경서를 담론하였다


贈詩 중에서

<1777년 다산이 17세때 24세의 이벽선생에게 써서 바친 시>

賢豪氣相投 (현호기상투) 성현과 호걸 기백이 서로 투합하시어.

親篤欣情眄 (친독흔정면) 기쁘고 즐거운 정도 돈독히 하시니,

令德勉早修 (령덕면조수) 덕행은 이렇게 일찍부터 힘써 닦으셨으니,

慷慨常見面 (강개상견면) 그 얼굴에서 강개하신 모습 늘 보옵니다.


輓詞 중에서

<1785년 이벽성조의 장례식에 와서 28세의 다산 쓴 만사>


仙鶴下人間(선학하인간) 신선나라 학이 인간세계에 내려오시니

軒然見風神(헌연견풍신) 그 모습에서 신의 풍채를 보았도다.


*李檗傳 중에서


<1837년 경 丁學術이 기록한 이벽전(李檗傳) 중에서>


戊戌年二十五歲 이벽 광암공께서는 1778년 25세 때

隨時李星湖從學徒 성호이익선생 따르던 학도들과 하께

賢友賢師李氏丁氏勉學 당대의 賢友賢師들이었던 정씨 이씨네들과 함께 학문에 힘쓰셨고,

赴燕使洪軍士天學典函曾受 부연사 홍대용이 가져온 천학서적을 받으시어,

沒讀晝夜沈想思盡無疑 주야로 숙독하며 명상하여 생각마다 의심이 없어지자,

山水間逍遙自放 산수간을 다니시며 스스로 자유로이 여행하시더라

一到廣州鴛鴦山寺隱居 광주 땅에 이르러 앵자산사에 은거하시매

道友衆徒聖敎要旨下筆 도를 닦겠다는 벗들이 제자단을 이루자
교과서로 聖敎要旨를 불러 받아쓰게 하시었다.

己亥是歲二十六歲時 광암공께서 1779년 26세 때

賢友勉學爲上 어진 벗들과 면학하는 제자들이 웃어른으로 모시니

衆集山寺 제자들이 군중이 되어 산사에 모였었는데

公奇學多博 광암공께서는 기묘한 학문에 아주 넓고 깊은 학식으로

天文地理醫學卜術性命之術 천문학과 지리학 의학과 점술 성리철학에

無不達通註答如流水 도무지 달통하시어 모든 질문에 유수처럼 답하시자

其門和如叢林 그 문하에 모이는 선비들은 마치 스님들이 모여 승단(僧團)을 이루듯 많게 되었다.

巷間名聲傳誦 그리하여 세간에 그 명성이 널리 퍼져 자자하였다.

입력 : 2004.07.10 오전 1: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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