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Leo XIV세, France 사목방문 중 Paris에서 세기적 대미사 봉헌 !
80 여만명 프랑스 신도들과 함께,2026년 9월 28일.
<역사적이며 세기적인 교황 LEO XIV 레오 14세의 PARIS 대미사에 모인 신도들은 80 여만명 이라고 일부 언론들은 보도하였고, 또 다른 기관에서는 사전에 참석 신청인 수가 70 여 만명이었다고도 보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84년 5월 6일,서울의 여의도 5.16 광장(10만여평)에서 교황청이 주최하고 ,한국주교회의가 주관하고, 서울대교구 행사위원회에서 실무를 거의 전담하다시피하여 준비하고 관리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주례, 집전한 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식 미사를, 필자도 당시에 참석하였으며 , 이 역사적인 103위 시성식 대미사를 기획하고 준비해야 하는 한국주교회의 실무담당 부서로서 1,2년 전부터 착수할 때부터 잔 심부름을 하였던 당시 사제들 중 한 사람으로서 , 이번 교황 레오 XlV세의 프랑스 사목방문 중 세기적인 파리 대미사를 겪는 필자의 소견으로는, 이번 Paris 대미사에 운집한 신도수는 적어도, 120 만여명~150 만여명으로 추산할 수 있다고 이하 아래와 같은 근거를 들어 PARIS 와 서울 대미사에 운집한 이 사진들 보도 끝에 참고삼아 후학들을 위하여 붙이고 싶다. 그래서 다음 사진은 1984년 5월 6일 서울,여의도 5.16광장에서의 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식 대미사 광경이다. 사실 2026년 금년 이번 France ,Paris에서 교황 Leo XLV 세 주례하신 대미사와 , 지나간 1984년 Seoul ,여의도 5.16 광장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식 대미사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있기 어려운 역사적이며, 세기적인 천주교회의 초교구적이며 세계적인 거룩한 행사였다>
교황 성요한바오로 2세, 대한민국 서울, 5.16 광장에서
한국천주교회 103위 순교성인들 시성식 미사 봉헌 !
65 만여명신도들과 함께, 1984년 5월 6일
Viva,viva,viva ! il Nostro Santo Padre, il Papa Leo XIV in Paris France !
La Santa Messa con i fedeli 800,000 ! nella Piazza Concorde Paris France !
Viva,viva,viva ! il Nostro Santo Padre, il Papa Leo XIV in Paris France !
La Santa Messa con i fedeli 800,000 ! nella Piazza Concorde Paris France
Viva,viva,viva ! il Nostro Santo Padre, il Papa Leo XIV in Paris France !
La Santa Messa con i fedeli 800,000 ! nella Piazza Concorde Paris France !
Paris의 Leo XIV세 교황님 집전 주례 미사에 80여 만명 운집 일부 보도에, 다른 보도는 70 만명 운집 보도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과거 서울 여의도의 516 광장에서 거행된 교황 성 요한바오로 2세 집전의 한국103위 순교 복자들의 시성식 미사도 참석하며 지켜봤던 필자의 견해로는, 이번 Paris 시내의 개선문과 화해(Concorde)의 광장을 중심 제단 구역으로 삼아 거행된 세기의 역사적인 대미사에는 거의 약 120 만명~150 여 만명의 신도들이 운집하였다고, 다음과 같은 근거로 필자는 추산하고 싶다.
<필자는 1984년 당시 한국 주교회의 순교자 시복시성 추진부장 겸 103위 순교복자시성식기획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고 있었는데, 중책에 재임중이었던 필자 변기영 몬시뇰은 금년 87세다.>
우선 1984년 당시 우리 주교회의 실무위원들의 최대 걱정거리는 103위 시성식 현장 시설준비였다. 그런데 이 큰 준비사항은 전두환 대통령의 승인과 지시에 따라, 고마운 국방부 육군 공병단의 장비와 많은 병력이 몇 개월 전부터, 마치 국군의 날 준비하듯, 장기간 동원 지원하였으니, 전 세계에서 대거 참석하는 추기경, 대주교들과 성직자들 3천5백여명의 제단석 좌석 마련과 더불어,거행과 운영 관리는 서울대교구 중심으로 거의 전담할 수 밖에 없어, 바티칸 교황청 교황 집전 전례팀의 지시와 권고를 따라, 사실 전담하다시피 하였다. 그런데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5.16광장은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10만 여 평으로 조성된 것으로 매년 주로 국군의 날 행사 때 군의 열병식으로 주로 사용되던 곳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거행된 국가적 큰 행사에 모였던 군중의 규모에 대하여 대강 몇 가지를 추려보면, 일찌기 3.1. 만세 운동 때와 그 후 고종황제 장례식 때, 그리고, 백범 김구선생 장례식 때를 들 수 있고, 그 다음으로는 8.15.해방을 맞아 이어진 각종 큼직 큼직한 모임, 등을 들 수 있으나, 당시에는 서울의 세종로 뿐 아니라 6조 거리를 비롯한 모든 길목들이 우마차가 한 줄로 빠듯이 겨우 교체하며 비좁았던 시대였고, 서울시의 인구도(지금은 서울시 인구가 1천만이 훨씬 넘고, 매일 유동적인 통과 인구만도 2백 여만명 남짓하다지만, 1950년 6.25 사변 때만 하여도 당시 서울 인구는 150 여만에 불과하였음을 감안하면),더우기 국민의식 수준과 정보화 사정이 지금에 비할 수 없이 미약하던 시절이고, 특히 왜정 때는 대부분 일제 통감부의 탄압과 통제가 심하여 행사별 참석 군중은 많아야 수천여명 혹은 1,2만이나 아주 예외적인 경우, 1,2십만 내외로 모이기도 힘들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 본다.
그래도, 고종황제 장례식과 백범 김구선생 장례 날에는 당시 교통이 불편하던 때라도 지방에서 올라오는 국민들이 지금과 비교가 안 될 정도였으나, 그래도, 백범 김구선생 장례식과 특히, 민주화 초기의 한국 역사상 최초의 야당 대통령 후보로 신익희 선생의 한강 인도교 북편 백사장 유세강연장에는 당시 자유당 정권에 반대하는, 이른 바, "못살겠다 ! 갈아보자!"를 외치며 천지를 진동하는 군중의 함성과 함께 25만 여명이 모였었다고 추산하는 당시 참석자들의 이야기도 없지 않았는데. 정치적인 거국적 행사에 운집한 군중의 참석인 수를 계산하는 법도 대개 군중이 점령한 광장 넓은 공간 넓이를 가지고 추산하기가 일 수였다. 그래서 1 평(2mx2m=1평) 당 앉은 사람들은 5명~7명으로 보고, 좀 총총히 서있는 사람들은 한 평에 10명~12명을 보는 것이 지금도 참고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래서, 서울 여의도 행사의 경우, 5.16 광장 10만여평을 교황님의 순회차량 도로 폭과, 수거식 화장실 50 m 나 100 m로 간격으로 행사장 내에 설치한 바를 감안하면서, 당시 행사위원회 전담한 서울대교구의 경갑룡 주교와 김옥균 신부, 총무 박신언 신부와 차장 박찬희, 회장, 등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실로 최대 초유의 큰 행사를 무사고로 준비하고 관리하며 아무 하자없이 진행케 한 역사를 창조하였다. 정말 수고들을 많이 하신 분들이다.
행사 직 후, 교황청 시성성성에서 공식으로 참석한 몬시뇰들(Msgr. Papa, Monsgr. Petti), 등이 필자에게 참석신자 수를 묻는 질문에,언론과 특히 T.V. 등에서는 거의 이구동성으로 100만 신도들이라고 거침없이 말하였고, 교황 요한바오로 2세께서도, 100여만명 이상의 신도들이 모인 것 같다고 김추기경에게 말씀하셨었다고 다음 날 추기경님은 밝혔으나, 행사위원회와 기획위원회의 우리 실무자들은, 당시 전국 신자 총수가 120만 내외 였고, 5.16 광장이 10만여평에 불과한 점, 또, 사전에 전국 각 본당과 교구별 참가인원 수 할당 조정, 등으로, 참가 신도 실제 수는 65만여명 내외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교황청 시성부 고위 몬시뇰들에게 필자는 약 60만명~ 65만여명으로 구두로 보고하였었는데, 그 당시 전국 신도 수는 200주년 준비 시작하던 1980년 현재 공식통계가 1백 14만여명이었고, 매년 대인영세자 5만여명이 증가하고 있었으며,"이웃전교의 해"부터는, 8,9만여명씩 증가하였어도,아직 전국 신도수가 200만이 되려면 몇년 더 걸려야 했었다. 그래도 전국 신도 수의 반 정도가 참석한다고 보기는 좀 어려웠다.
시성식 참석에는 행사위원회에서 시성식기획위원회에 보내오는 사전 문서에 전국 각 교구의 본당별 단체별 참석 예정 신청인 수를 사전에 조정하여 알리는 세밀한 노력까지 하고 있어서, 우리 위원회는 재점검시에 몇차례나 격찬을 하였었다.<당시 103위 시성식기획위원회 위원들 중에는 유홍렬 교수,이숭녕 교수,오기선 신부,박희봉 신부, 유영도 신부, 김창석 신부, 등이 수고하였다.
다만 103위 시성식 기획위원회 위원장직은 시성추진위원회 김남수 주교님이 위원들 중에 가장 나이가 젊은 필자에게 맡겼는데, 불가피하였기 때문이었고, 행사 중 우리 기획위원회가 마련한 초안에는, 미사 전 교황님께 대한 Welcome Speech 환영사는 김수환 주기경이 하고, Canonization Petition 103위 시성청원문 봉독은 시성주진위원장 김남수 주교가 하며, 미사 마친 후, 교황님과 국가와 국내외 관공서 모든 인사들에게 하는, Thanks-Giving Speech, 감사의 말씀은 주교특위 위원장 윤공희 대주교가 하도롤 하였었다.
그러나, 행사 3일(?) 전, 김추기경님의 호출을 받아 간 필자에게, 김 추기경님은 김남수 주교의 시성청원문 봉독과, 행사 끝에 윤공희 대주교의 감사의 말씀도 김추기경 자신이 하도록(장익 신부의 안 ? )하고, 다만 미사 제 1 독서는 이벽 성조의 종손 이상국 회장이, 또, 제2독서는 권철신 대학자의 종손 권혁면 교수가 맡도록 하며, 예물 봉헌과 신자들의 기도, 등. 평신도들이 하는 모든 역할들은 모두 우리 기획위원회의 원안대로 하자는 차분한 말씀대로 하기로 최종 결정되었다.
그런데 이번 Paris 대회 참석자 수를 계산함에 있어서, La Place Concorde 광장과 개선문을 중심으로 사면 팔방으로 뻗어나간 시내 드넓은 각 지구의 구역 도로 좌우에 서서 자리했던 군중들이 점유한 공간들을 종합하여 충분히 계산한다면 적어도 150 여만명이상이 모였었다고 추산할 수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닐 상 싶다. 그 많은 도로의 양편에 배치한 행사진행 제단 주례진 영사막들과 고해소들과, 영성체 분배소들의 본부들을 종합해 볼 때 이번 파리 대미사에 필자는 150 여만명 그 이상이 모였었다는 공간 추산이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 속담에, 큰집 잔치에 작은 집 돼지만 죽는다는 말도 있지만, 좀 큰 일을 하고나면, 으례히, 일하는 사람들이 다르고, 이름이나 내고, 얼굴이나 내는 출연 전문 배우같은 사람들이 따로 있고, 더우기 말만 하는 사람들은 또 따로 있게 마련이다. 참여하는 분야와 몫이 다 따로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종합적으로 큰일을 성공적으로 무사고로 마치고나면, 일할 때는 최대의 비협조를 아끼지 않고 베풀던 사람들도, 대부분이, 마치, 조국의 운명을 한 어깨에 홀로 짊어지고 주야로 고심초사한 듯하는 영웅열사 같은 분들이 쏟아져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교황이 계시고, 교황청이 있는 천주교회만큼 잡음을 쉽게 소화시키고 사라지게 하는 인류사회의 역사 현장도 드물다. 천주께, 천주교회에 감사를 올리자. Msgr. Peter Byon Ki-Yeoung Corea. 2026, 30, Sept.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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