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viva,viva ! il Nostro Santo Padre, il Papa Leo XIV ! in Paris France, Deo Gratias !
<w.w.w. Servant Hall of Msgr. Peter Byon Ki -Yeong, Corea -2026, 28, S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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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성경(聖經)’이라는 용어의 기원 참고.
<前聖經天立極之道莫大於禮/後聖垂世立敎之書亦莫先於禮/禮儀三百威儀三千>
성경직해, 성경광익, 등의 합성어로까지 지금 우리 말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성경(聖經)’이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어디서, 중국이나 조선, 등에서 어떻게 쓰여지기 시작하였는지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으나, 소홀히 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를 숭상하는 우리나라 사학도들에게는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역사를 캐내어 따져서 올라가며 참고삼아 확인해볼 필요는 있다.
‘성경(聖經)’이라는 낱말이 처음 보이는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문헌으로는 고려 말, 조선조 초기(13세기 전후)에 많이 읽히던 禮에 관한 대작 서적들 중에, ‘禮記集設大全’16권의 제1권 첫 序文을 들 수 있다.
그런데,다만, 현재 우리가 접하여 다루고 있는 ‘禮記集設大全’ 원본 16권은 지질이 13세기 말의 것으로 언급하는 이들도 있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선포 훨씬 이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것으로서,종종 페이지 상단에 목각 도장으로 추가한 구독 보조문들은 한글 창제 선포 이후에 별도 붙임 각인으로 보더라도, 전체 문장과 전혀 다른 추가 문자로 볼 수 밖에 없으며,독자들을 위하여 구두점도 이두문 뿐이 아닌, 다른 표지문자들이 섞여있어, 본문 전체가 서문 첫머리의 극소수 일부에서도 들어나듯이, 한마디로, 우리 현대인들이 흔히 지금 접하고 있는 조선시대 중기 이후의 한문 문법(?)이 아닌, 고려 말기(?)와 조선 조 초기(?)의 문체(?)와 어투(?)가 지금과 전혀 생소하게 되어 있어서, 해독에 어려움과 주의가 요청되는 도서라고 아니할 수 없다<Msgr. Peter Byon Ki-Yeoung>
예기집설 서문초 첫머리에;
前聖經天立極之道莫大於禮 (전성경천립극지도 막대어례),
전에 성(상)께서 내리신 글에 이르기를 하늘이 세우신 최상의 道는 禮보다 더 큰 것이 없다 하였고,
後聖垂世立敎之書亦莫先於禮 (후성수세립교지서역막선어례),
후에 성(상)께서 세자를 정하시고 세우신 가르침의 도서 중에는 禮書보다 더 먼저 앞에 둔 도서도 없었으니,
禮儀三百威儀三千,,,(례의삼백위의삼천,,,)
그러므로 례의(禮儀) 3백 조목은, 3천가지 벌의 위의(威儀)로 다스리게 하니라.
* 참고문헌 ; 孝經集註 第八障 (효경집주 제팔장)
子曰 五刑之屬三千 而罪 莫大於不孝.(자왈 오형지속이 삼천이로대 이죄이 막대어불효이니라.),
공자 가로사대, 5가지 형에 속한 벌이 3천가지나 되지만, 그 중에 불효에 관한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느니라, 하였고,
* 맹자는 無後爲大 (무후위대)라 하였느니.
<맹자는 이르기를, 후손을 끊어 없게 함이 가장 큰 벌이니라. 하였다.>
<의역> , '聖'이라는 글자로만 표현하는 왕이나 임금, 또는 황제를 일컫는 말로서, 聖經은 성상(聖上)의 글을 말함이다. 여기서는 태조나 태상왕을 뜻하는 표현이다. 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등,,,.
"전에 성경은 하늘이 세운 가장 높은 道로서, 禮보다 더 높은 것이 없으며, 그 후 다음으로는 성상이 세자를 세우고 그에게 가르치는 책으로서도, 禮에 관한 도서보다 먼저 앞에 놓는 책은 없었으니, 禮儀삼백은 바로 威儀삼천으로 다스려 지키게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성경이라는 단어는 임금이 세자나 백성들을 가르치는 임금님 자신의 말씀이나 글, 문서, 책 같은 것을 존중하여 높혀 말하는 데에만 주로 사용되던 표현이다. 그래서 서양에서 주로 많이 사용하기 시작하던 13세기초를 전후하여, BIBLIO 나, BIBLE 이나, 또는 BIBIA, 등,의 본래 뜻과는 강조하는 바가 좀 다르다고 하겠다.
특히,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禮記에 관하여, 특히, 태종 이방원이 왕위에 오른 후로는, 학문적으로나 정부를 대표하는 대석학으로서도, 더우기 북경의 명나라 조정에도 서너 차례 왕래하면서 북경의 학자들과도 교분을 두터이 하며, 크고 많은 업적을 남긴 權近(권철신 형제들의 직계 선조)의 역할은, 비록, 한 때 유배 형을 겪기도 했지만, 실로, 지대하다고 아니할 수 없으므로, 禮記 같은 서적 편찬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잔존하는, 그 박학다식한 위업을 틈틈히 찾아 둘러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禮記나 이에 관한 기록물들이 고려와 이조 시대의 국가와 국민들의 윤리 도덕과 인격도야의 구심점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교 교리와 사상과 정신을 수용하는 힘든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 용어 해설 참고문헌; ‘禮記集設大全’ 16권 원본, 및, 불어판,원본 TRESOR DE LA LANGUE FRANCAISE. 제 4 권의 해당 단어의 etimologie 참조.
<原本複寫, 一部拔萃, 編輯은 許寬順, 高玉子, 2026년 3월 3일, 沙右居士權日身紀念書齋>
<추후 계속>
Viva,viva,viva ! il Nostro Santo Padre, il Papa Leo XIV ! in Paris France, Deo Gratias ! <w.w.w. Servant Hall of Msgr. Peter Byon Ki -Yeong, Corea -2026, 28, S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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