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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WIND BELL

平信徒의 神學硏究가 활발한 시대를 앞당겨야 한다

글 :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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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들에게도 神學을 배우고, 연구하고, 실천하며, 활용하며 가르칠 의무가 있고,평신도들에게도 神學을 배우고, 연구하고, 실천하며, 활용하며 가르칠 권리가 있고,평신도들에게도 神學을 배우고, 연구하고, 실천하며, 활용하며 가르칠 능력이 있다.평신도들뿐이 아니다. 未信者들에게도 神學을 배우고, 연구하고, 실천하게 하며, 활용하며, 가르치게 할 의무와 권리와 능력이 없지 않다.

神學은 우리 성직자들만의 전용물이 될 수 없다. 神學硏究를 평신도들에게 일반화하고, 비가톨릭 신자들에게도 대중화해야 하며, 그 방안을 적극 모색홰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교회가 명실 공히 보편교회의 역할을 보다 더 폭넓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의 천주교회를 위하여, 평신도 신학자 양성은 최우선의 과제로 시급한 실정이다. 특히, 아시아 지역, 중국의 복음화를 위하여, 평신도 신학자들이 대거 양성되어야 한다. 신학자들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유롭 교회 성직자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음을 중시해야만 한다. 신학자 洞空時代를 대비하기 위해서보다도, 神에 관한 학업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직무이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는 이를 주님의 至上命令과도 같이 느껴야 한다. 교회는 사제양성을 위한 대신학교를 신설하고 운영하는 그 이상의 재력과 인력을 평신도 神學人 양성과 배출에 투입해야 한다.

중세기에는 주로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만이 神學을 연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비록 좀 나아졌다고는 하나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트렌트 공의회나 제1차 바티칸 공의회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평신도 신학자들의 직접적인 참여와 평신도 신학자들이 직접 내는 목소리는 없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평신도에 관한 문헌이 나올 때도, 여기에 참여한 평신도는 사무실의 타이피스트 한 명뿐이었다는 뒷말이 들리고 있을 정도다. 어제의 교회가 오늘의 교회의 씨앗이듯. 오늘의 교회는 내일의 교회의 씨앗이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추수할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천주교회를 창립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공식 교회 입장에서 보면(Ecclesia Officialis) 사실상 평신도도 아닌, 단순한 미신자 상태에서 진리를 찾던 분들이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1980년도에 수립된, 한국천주교회 발상지 天眞菴 성지 성역화계획에는, 天眞菴 聖地에 神學硏究所 設立이 들어 있고, 지금까지 발행되고 있는 천진암 성지 순례책자 첫 페이지에 지난 33년간 계속 32판 째 그대로 발표되고 있다. 天眞菴 성지의 의미와 가치와 교훈을 현대화하고, 미래화하기 위해서다. 뜻있는 교우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천진암 성지 계획 중에, 성지 터전 확보도, 선조들의 묘 찾아 안장하는 일도, 유물수집도, 주변 토지 확보도, 성역 내 수자원 30만톤 확보와 도로 개설, 광장 공사도, 창립사 연구소도, 박물관도, 선조들 시복추진도, 모두 어느 정도 본 궤도에 오르고 있다고 느껴지나, 韓國神學硏究所만은 아직 미흡하나, 박물관 1,500평 중, 3층의 수장고 500평이 앞으로 韓國神學硏究所로 될 것이다. 필요한 신학서적 확보를 비롯한 내용물이 적잖이 준비가 되고 있으니, 이제는 平信徒 神學人들의 참여가 요망되는 순서다.

이러한 계획의 필요성과 당위성의 가치를 위하여, 이미 한국천주교회 창립성조들의 정신과 덕행과 업적에 관하여 쓰여진 좋은 박사학위 연구논문들이 해외에서 이미 5종이 있어, 여기 소개한다. 국내에서 연구할만한 곳이 없으니, 모두 해외에 나가서 연구하고 돌아온 분들의 고생과 노력이 후학들의 터전이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한마디로, 한국천주교회 창립성조들은 이미 평신도 신학자들이었다. 평신도 신학자들이 한국 천주교회를 세운 것이다. 이 전통을 계승하며, 발전시켜야 한다.

[Le ròle de Yi Byok dans L'introduction et La Diffusion du Catholicisme en Corée], in francese, par Sr. Anne Kim Ok Hee(김옥희 수녀), Université de Paris-Sorbonne, 1977;

[Les Principes confucéens de la première théologie chrétienne en Corée, d'près l'oeuvre de Yi Byok (1754~1785)], in francese, par Rev. Jean Songbae Ri(이성배 신부), Institut Catholique de Paris, 1977;

L’experience religieuse coreenne dans la première annonce du message chrétien(1779-1839)
in francese, del Rev. Kim Ung-Tai(김웅태 신부), presso Institut Catholique de Paris,1989;

Jesuit and Seonbi(士) in East Asia and the Production of the First Korean Supplemental Teaching by Yi Byeok - The Idea of God in the Essence of Sage Teaching as an Exercise in Self-Cultivation(Sudeok) and Self-Expenditure( Jeonghan),in English, by Moon Tahn II, New College, The Mound - The University of Edinburgh, England, July 2001. (* 猶太人 교수)

La Spiritualità dei laici Fondatori della primitiva comunità della Chiesa Cattolica in Corea,
< 初期韓國天主敎會平信徒的信仰與靈修 - 金東園 神父>
 
in cinese, del Rev. Kim Dong-Won, presso Fu Jen Università di Taipei China, 2003,

2012/7/2. 순교자 강완숙 골룸바 여회장 기념일에, Msgr. Byon

입력 : 2012.07.03 오전 1:2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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