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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WIND BELL

朝鮮聖敎 최초의 복음선포가-天主恭敬歌 주해

글 :  천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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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主恭敬歌는 우리나라 최초의 聖歌다. 그러나 단순한 성가라기보다, 천주교회를 창립하던 젊은 우리 선조들이 부르던 朝鮮聖敎會 最初의 福音宣布歌, 혹은 우리 創立聖祖들의 信仰歌라고 하는 것이 합당하다. 護敎論的 의미와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원문을 읽어보자.
 
古文                                        現代文
 
어와셰상벗님네야 이네말쌈드러보쇼 - 어와 세상 벗님네야, 이 내 말씀 들어보소
지반에난어른있고 나라에난임군있네 - 집안에는 어른 있고, 나라에는 임금있네.
네몸에난령혼있고 날에텬쥬있네 - 네 몸에는 영혼있고, 하늘에는 천주 있네.
부모에게효도하고 임군에난충성네 - 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는 충성하네.
삼강오륜지켜가쟈 텬쥬공경읏듬일셰 - 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공경 으뜸일세.
이네 몸은죽어저도 령혼남어무궁리 - 이 내 몸은 죽어져도, 영혼 남아 무궁하리.
인륜도덕텬쥬공경 령혼불멸모르며는 - 인륜도덕 첮주공경, 영혼불멸 모르며는
사라셔난목석이요 주거서난듸옥이라 - 살아서는 목석이오, 죽어서는 지옥이라.
텬쥬잇다알고서도 불사공경지마쇼 - 천주 있다 알고서도, 불사 공경하지 마소.
알고서도아니면 죄만졈졈싸인다네 - 알고서도 아니하면 죄만 점점 쌓인다네.
죄짓고서두러운자 텬쥬업다시비마쇼 - 죄짖고서 두려운자, 천주 없다 시비마소.
아비업난자식밧나 양듸업난음듸잇나 - 아비없는 자식 봤나, 양지없는 음지 있나.
임군용안못봬았다 나라백성아니런가 - 임금용안 못뵈었다, 나라 백성 아니런가.
텬당지옥가보왓나 셰상사람시비마쇼 - 천당지옥 가 보았나, 세상 사람 시비마소.
잇난텬당모른션비 텬당업다어이아노 - 있는 천당 모른 선비, 천당 없다, 어이 아노.
시비마쇼텬쥬공경 미더보고깨달아면 - 시비마소, 천주공경, 믿어보고 깨달으면,
영원무궁영광일셰 영원무궁영광일셰 - 영원무궁 영광일세. 영원무궁 영광일세.
 
천주공경가는 천진암 소년 선비들이 校歌처럼 불렀나?
 
천주공경가는 1777년 경부터 천진암에서 젊은 선비들이 불렀던 護敎論的인 信仰歌, 혹은 福音宣布歌 !
 
정권 투쟁 현장의 혁명군이나, 독립군들에게는 고유한 노래가 있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하던 전봉준의 東學軍歌나, 아리랑 곡에 맞추어 부르던, “우등불”, 獨立軍歌나, 경제활동의 생업 현장에 있는 농부들이나 어부들에게도 그들이 부르는 農夫歌나 漁夫歌가 있는 것처럼,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종교도 그 출발에는 힘을 발휘하는 노래가 있었다. 東學 초기에 부르던, "시천지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나, "시호 시호, 이내 시호,, 5만년래 이내 시호"처럼.
 
한국천주교회가 태동하던 시절, 성령의 감도로 열정이 끓고 타던 우리 젊은 선비들도 분명 노래가 있었으리라. 그런데, 이벽 성조의 聖敎要旨 같은 장문의 敍事詩보다는, 天主恭敬歌가 더 교회 창립 초기의 聖歌였다고 확신하게 하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어와 세상 벗님네야, 이 내 말씀 들어보소,”로 시작하는 천주공경가는
 
제목의 명칭과 내용의 구조 자체가 성가이면서도 호교론적인 강론이나 강령선포식으로 되어 있으며, 노래 운율이나 가락에 맞추기 위하여, 토막 말로라도 만들어, 맞추어가며, 4 글자, 4 글자씩으로 말을 만들고, “영원무궁 영광일세! 영원무궁 영광일세!”로 끝나는 형식이 우선 당시 부르던 노래였음을 밝혀준다. 다만 보통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복음과 신앙을 선포하는 강론식의 호교론적 성가다.
 
가사와 곡을 지어 가르친 작사 작곡가는 광암 이벽 성조 자신이었음도 확실하며, 이에 대안있는 반대를 하는 이도 없다. 다만 천주공경가의 저작연대와 저작 장소에 관하여는, 당시 여러 가지 사정을 다각도로 고찰하여볼 때, 늦어도 1777년이나 1778년 경, 천진암의 이벽독서처에서 지어서 불렀던 노래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다.
 
蔓川遺稿 寫本에 실려있는 天主恭敬歌의 제목 아래 附記한 己亥年臘月於走魚寺李曠菴作 이라는 문귀는, 筆體와 먹물 强度와, 표현 자체로 보와, 原文에 없는 것을 後代의 필생이 添加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필자 뿐 아니라, 故 崔奭祐 신부님도 그 분의 論考에서, 이 대목을, 필자의 견해를 거론하시면서, 동감하신다고 밝힌바 있다. 또, 李德祖 曠菴公(1754~1785)이 당시 문화 관습으로, 아버지 벌(18세 年上)이 되는 權哲身 大學者 鹿菴 先生(1736~1801) 어른 앞에서, “어와, 세상 벗님들아, 이 내 말씀 좀 들어보소,,,”하는 식의 詩歌를 즉흥적으로 읊었다고 보는 것은 좀 너무나 당돌하고, 기고만장한 無禮(?)한 처신일 수 있다. 曠菴公은 禮儀가 바른 선비로 기록한, 丁若鏞 承旨의 假稱, 朝鮮聖敎史記(?)를 근거로 Daveluy 주교는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시기는 曠菴 李檗聖祖의 누님이 丁若鉉과 결혼하하던 해(1768년)를 전후하여, 당시 아버지 집은 맡형이 부모를 모시고 살게 되고, 새曠菴公 자신도, 둘째 아들로서, 새 살림을 날 때, 누님 댁이 있는 馬峴에서 강 건너 斗尾에 자리잡았든가, 혹은 某 학자의 견해대로, 斗尾에 별장을 정한 후, 天眞菴 讀書處를 정하여 왕래하면서, 修學할 때, 지어서 젊은 선비들에게 가르쳐, 마치, 새로 시작하는 학교나 학원의 校歌나, 團體歌 처럼, 天眞菴 天學叢林의 선비들이 부르던 당시 朝鮮 聖敎會의 信仰歌요, 福音宣布歌요, 天學叢林歌요, 天學堂歌의 성격을 띤 노래였음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당시 표현으로, 朝鮮聖敎會 福音宣布歌 혹은, 韓國天主敎會 創立聖祖들의 信仰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Msgr. Byon
입력 : 2012.07.28 오전 11: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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