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영 몬시뇰이 [사랑방]을 열었습니다. 사랑방 윗묵 구석 구석에 쳐박아두었던 보따리들을 이것저것 내다가 풀어서
교회와 사회에 혹시라도 도움이 될 것들은 죽기 전 알리려 합니다. [사랑방 출입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잃어버린 10월, 상달(上月), 上帝聖月의 意味를 찾아,
최초 애국가의 수난사를 되돌아보자 !
10월은 상ㅅ달(上月), 上帝의 달이었다. 개천절은 한가위나 설날처럼, 그리스도교의 예수부활 대축일이나 성신강림 대축일처럼, 역사적 전통을 따라, 음력으로 따져서 지내야만 한다!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5.16 광장에서 거행된 한국순교복자 103위의 시성식 광경.당시 언론과 보도기관에서는 100만여명으로 보도하였으나, 필자는 55만명~60여만명으로, 내한한 성청 인사들에게 보고 하였었다.>
주님께서 우리 편이시고,
성모님이 우리 손을 잡고 계시고,
하느님의 백성이 천상천하에서 이처럼 우리와 함께 하고 있으니,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고, 두려울 것 없으며, 무서울 것도 없네 !
(Sua Santità Giovanni Paolo II aveva concelebrato la messa per la canonizzazione dei 103 Beati martiri coreani, con molti Cardinali, Arcivescovi, Vescovi, sacerdoti e fedeli cattolici - circa 500.000 - a Seoul il 6 maggio 1984. Per quella canonizazione, il Rev. Byon, rettore di Chon Jin Am, il luogo natale della Chiesa, aveva servito per 5 anni (1980~1984) come segretario esecutivo generale della commissione episcopale per la canonizzazione dei 103 Beati Martiri coreani.(Photos by Baeck - Nam-Shick). |
***** 개천절에 다시 한번 되돌아 보는 갖 태어나서부터 수난의 길을 걸어온 애국가의 수난사 ! ******
탄생한지 7년만에 금지곡이 되어버린 노래, 대한제국 애국가!
탄생한지 7년만에 금지곡이 되어버린 노래, 대한제국 애국가!
大韓帝國 愛國歌
上帝保佑 <상제보우>
皇帝聖上 <황제성상>
聖壽無疆 <성수무강>
海屋籌山 <해옥주산>
威權瀛廣 <위권영광>
于千萬歲 <우천만세>
上帝保佑 <상제보우>
聖壽無疆 <성수무강>
海屋籌山 <해옥주산>
威權瀛廣 <위권영광>
于千萬歲 <우천만세>
上帝保佑 <상제보우>
皇帝聖上 <황제성상>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성수무강케 하시고
해옥주 산같이
위권이 널리 떨치시어
천만세에 이르게 하소서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성수무강케 하시고
해옥주 산같이
위권이 널리 떨치시어
천만세에 이르게 하소서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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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帝保佑, 皇帝聖上 <상제보우,황제성상>
聖壽無疆, 海屋籌山 <성수무강,해옥주산>
威權瀛廣, 于千萬歲 <위권영광,우천만세>
上帝保佑, 皇帝聖上 <상제보우,황제성상>
威權瀛廣, 于千萬歲 <위권영광,우천만세>
上帝保佑, 皇帝聖上 <상제보우,황제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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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한지 7년만에 금지곡이 되어버린 노래, 대한제국 애국가!
<궁금해! 보훈이야기/독립 이야기에서 <2011/09/22 14:00>
애국가는 말 그대로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를 뜻합니다.우리나라는 애국가에 달리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애국가라는 이름으로 노래말과 곡조가 붙여저 나타난 것은 조선 말 개화기 이후부터라고 합니다. 1896년 '독립신문' 창간을 계기로 여러 가지의 애국가 가사가 신문에 게재되기 시작했는데, 이 노래들은 어떤 곡조로 불렸는가가 명확하지 않답니다.그런데, 나라의 주요 행사에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한 애국가가 있는데요.이 노래가 바로 '대한제국 애국가' 입니다. 탄생한지 7년만에 금지곡이 되어버린 노래, 대한제국 애국가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 대한제국 애국가는 우리나라에서 작곡된 최초의 서양음악이었습니다.
고종황제의 초상화
다른 나라와의 공식행사에서 부를 '국가'가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 고종 황제가 직접 애국가를 만들 것을 지시하여, 1902년 7월 1일 독일의 작곡가 프란츠 폰 에케르트에 의해 완성되었지요! 그리고 1902년 8월 15일 '대한제국애국가'로 공식 제정 공포되었습니다.
작곡은 프란츠 폰 에케르트
대한제국 국가 선포(1902.8.15)
대한제국 애국가가 처음 쓰인 행사는 1901년 9월 7일 고종황제의 만수성절입니다.당시의 영문잡지는 대한제국 애국가가 신선하고 강렬했으며, 그 연주는 청중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대한제국 애국가는 1910년 경술국치로 일본의 국가 '기미가요'가 공식국가가 되면서, 대한제국 애국가는 금지곡이 되었습니다.부르지 못한 노래, 대한제국 애국가! 일본의 탄압으로 애국가를 부를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애국가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애국심과 민족혼을 고취시키는 노래로, 때로는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독립 노래로, 대한제국 애국가는 애국가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였답니다. 대한제국 애국가의 첫번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문 표기
上帝保佑, 皇帝聖上, 聖壽無疆, 海屋籌山, 威權瀛廣, 于千萬歲, 福祿無窮, 上帝保佑, 皇帝聖上
고전 한글 표기-
상뎨(上帝)는 우리 황뎨를 도으ᄉᆞ셩슈무강(聖壽無疆)ᄒᆞᄉᆞᄒᆡ옥듀(海屋籌)를 산(山)갓치 ᄡᆞ으시고
위권(威權)이 환영(環瀛)에 ᄯᅳᆯ치사오쳔만셰(於千萬歲)에 복녹(福祿)이일신(日新)케 ᄒᆞ소셔
상뎨(上帝)는 우리 황뎨(皇帝)를 도우소셔
현대 한글 표기
하느님은 우리 황제를 도우사. 만수무강하사 큰 수명의 수를 산같이 쌓으시고.위엄과 권세를 천하에 떨치사,
하느님은 우리 황제를 도우사. 만수무강하사 큰 수명의 수를 산같이 쌓으시고.위엄과 권세를 천하에 떨치사,
오천만세에 기쁨과 즐거움이날로 세롭게 하소서 하느님은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아래의 가사는 한일병합조약 이전에 하와이로 간 한국 사람들 중, 대한제국 애국가의 멜로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가사를 바꾸어 불렀던 대한제국 애국가의 가사입니다.
당시 한국어
상뎨(上帝)는 우리 나라를 도으소셔. 영원무궁토록 나라태평ᄒᆞ고, 인민(人民)은 안락ᄒᆞ야,
상뎨(上帝)는 우리 나라를 도으소셔. 영원무궁토록 나라태평ᄒᆞ고, 인민(人民)은 안락ᄒᆞ야,
위권(威權)이 셰샹에 떨치여, 독립자유 부강을 일신(一信)케ᄒᆞ소서
상뎨(上帝)는 우리 나라를 도으소셔.
현대 한국어
상제(하느님)은 우리나라를 도우소서, 영원 무궁토록나라 태평하고 인민은 안락하야,
위권(위엄 과 권세)이 세상에 떨치여, 독립자유부강 을(一信)일신 케 하소서
하느님은 우리 나라를 도우소서.
마지막으로 광복 60주년을 맞이하여, 팝페라 카스트라토 장세훈님이 불러주신 대한제국 애국가 독립군 버전의 가사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자주 독립 국가가 되기를 염원하며, 가사를 바꾸어 불렀기 때문에 처음의 대한제국 애국가 가사와 차이가 있습니다.
노래는 나라사랑 광장 홈페이지 → 보훈자료방 → 미디어자료에서 들으실 수 있으십니다.
(http://narasarang.mpva.go.kr/data/music2.asp)또 한번 버림받은 대한제국 애국가해방 이후, 1948년 대한민국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된 상황에서 대한제국의 국가는 또 다시 버림을 받게 됩니다. 대한제국 애국가를 작곡했던 프란츠 폰 에케르트가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도 작곡했다는 이유로 정식 국가로 채택되지 않은 것이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국가로 인정받았지만,,,! -<이상 퍼온 글>
Msgr. Byon
Msgr. Byon
- 이하는 개천절과 10월 상달의 용어와 의미와 교훈에 대한 이해와 묵상을
해마다 조금씩 달리한 표현들을 추가한 것입니다.
가) 5월은 성모성월, 9월은 순교자성월이듯이, 10월은 上帝聖月이었다. 먼 옛날, 약 1만년 전경부터 天山山脈 一帶에서부터 해가 떠오르는 해 돋는 나라, 해가 살고 있는 나라, 빛의 나라, 빛나는 나라, 빛 고을, 빛의 본 고을인 東으로, 동방으로 수천 년에 걸쳐 민족이동을 해온 우리 배달겨레는 본래 수렵과 목축을 위주로 하며 살다가, 오늘날 중국 영토로 되어 있는 요동 벌판과 목단강, 흑룡강, 송화강 유역과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한강, 낙동강 유역에 이르면서, 농경생활을 시작하며 정착하였다. 3국시대까지만 해도, 특히 고구려 지역에서는 수렵생활이 아직도 국민들의 本業 중 일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농경문화가 제 궤도에 오르면서 해마다 처음 익은 첫 곡식을 거두어 먹는 첫 보름달 밤에는 한가위를 경축하며 즐기었고, 농사한 대부분의 곡식을 거두는 때가 되면, 첫 얼음이 얼기 전이나 첫 눈이 내리기 전,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기 전,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장 온화한 때에 추수한 五穀百果로 음식을 만들어서, 농사를 짓도록 햇빛과 비를 내려주신 한울님, 곧 上帝님께 감사와 환호의 제사하며 경축하는 일을 최고최대의 부족 행사로 삼았고, 논밭을 일구워주고, 씨앗을 전해주며, 농경기술을 가르쳐준 祖上님들께 역시 감사의 예를 드리는 時祭를 올렸으며, 함께 농사일을 하던 이웃 사람들과 서로 음식을 나누어 돌리며 감사하였다.
그러다가 약 4천년 전후부터 이집트, 바빌로니아, 중국, 등의 太陰曆이 극동에 산재하여 살던 우리겨레에게도 전해지면서, 8월의 滿月이 되는 한가위와, 三神 할머니를 연상하며 음력 10월 3일을 전후하여 한 달가량 거행되던 上帝 공경의 행사가 절정을 이루게 되었다.
1900년대 초에 大倧敎에서 10월 3일을 開天節로 기념하며 경축하는 것을 상해 임시정부가 받아들여 國慶日로 삼았고, 1949년에 와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를 현재의 太陽曆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농경생활 문화와는 좀 맞지 않는 계절이 되었다. 그러나 “하늘이 열린 날”, 혹은, “하늘이 열어 준 날”, 곧 천지개벽과 萬物造化의 起源과 함께 우리 배달겨레의 起元을 되새기는 [開天節]은 다른 민족들이나 특히 현대의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날이다. 대부분 독립기념일이나 건국선포 기념일 혹은 점령 기념일 등이 큰 국경일로 되어 있다.
지금은 10월이 주로 관광다니는데만 치중하는 달로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上帝님을 기억하고 그 恩德을 감사하며 기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달의 그 의미와 가치를 온 겨레가 다시 되찾아 살게 할 수는 없을지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지금은 上帝라는 말 대신 天主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중국과 조선에서는 1590년대 경부터 쓰기 시작한 낱말이며 그 전에는 대부분 上帝라고 표현하였다. 통속적으로 사용하던 하느님이라는 단어는 원래 [한울님]으로 온 겨레가 일상생활에서 써오던 것을 1960년대 중반부터, 즉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부터, 천주교회에서도 쓰기 시작하였다. 국민 일반 대중이 쓰는 말로 上帝님이나 天主님을 표현하여 大衆言語文化로 天主敎의 韓國土着化를 시도한 것이었다. 사실 우리가 대신학생 때, 주교회의에서 천주교 공용어의 대혁명을 한 것이다. 당시 傳統 保守的이며 天才的인 大學者였던 朱在用 신부님의 극구반대에도 불고하고, [天主]라는 말과 [하느님]이라는 말을 함께 쓰도록 하였다.
그러나, 좀 따져보면, 上帝란 정치적인 통치 개념 차원에서 표현한 말이고, 하느님은 자연현상을 따라 쓰던 자연 종교적인 말인데, 天主라는 단어는 인도와 중국을 거쳐 종교적인 면에서의 표현일 뿐더러, 100여년간의 박해(1785~1885)를 통하여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칼 아래 목을 느리고,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소리없이 외치던, 실로 우리 순교선조들의 피로 물든 낱말이기도 하다. 출처야 어떻든 150여년을 두고 사용하므로써 이미 충분히 토착화한 단어, [天主님]이라는 단어가 무당집이나 서낭당에서도 흔히 쓰는 [하느님]이라는 말에 밀려서 이제는 우리 선조들의 殉敎信仰 精神도 , 한국천주교회에서, 우리에게서 아예 사라져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제는 옛 先人들의 [上帝와 祖上의 달]이 세월 속에서 흐르고 흘러, 그 의미도 가치도, 역사도, 낱말도 모두 함께 저 멀리 사라져가듯, 天主信仰과 殉敎信仰역시 시대와 함께 흐르며 퇴색하여, 祈福信仰에 밀려 사라져 가지 못하도록, 聖地巡禮니, 殉敎者 顯揚大會니 하며, 오늘의 우리 한국천주교회는 몸부림치고 있다 !
등록일 : 2008-10-12 (14:53)
5월은 성모성월, 9월은 순교자성월이듯이, 10월은 上帝聖月이었다. 먼 옛날, 약 1만년 전 경부터 天山山脈 一帶에서부터 해가 떠오르는 해 돋는 나라, 해가 살고 있는 나라, 빛의 나라, 빛나는 나라, 빛 고을, 빛의 본 고을인 東으로, 동방으로 수천 년에 걸쳐 민족이동을 해온 우리 배달겨레는 본래 수렵과 목축을 위주로 하며 살다가, 오늘날 중국 영토로 되어 있는 요동 벌판과 목단강, 흑룡강, 송화강 유역과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한강, 낙동강 유역에 이르면서, 농경생활을 시작하며 정착하였다. 3국시대까지만 해도, 특히 고구려 지역에서는 수렵생활이 아직도 국민들의 本業 중 일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농경문화가 제 궤도에 오르면서 해마다 처음 익은 첫 곡식을 거두어 먹는 첫 보름달 밤에는 한가위를 경축하며 즐기었고, 농사한 대부분의 곡식을 거두는 때가 되면, 첫 얼음이 얼기 전이나 첫 눈이 내리기 전,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기 전,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장 온화한 때에 추수한 五穀百果로 음식을 만들어서, 농사를 짓도록 햇빛과 비를 내려주신 한울님, 곧 上帝님께 감사와 환호의 제사를 올리며 경축하는 일을 최고최대의 달포에 걸친 부족 행사로 삼았고, 논밭을 일구워주고, 씨앗을 전해주며, 농경기술을 가르쳐준 祖上님들께, 그 묘소들을 찾아 이 산과 저 산으로, 사시던 이 마을과 저 고장으로 다니며, 역시 감사의 예를 드리는 時祭를 올렸으며, 함께 농사일을 하던 이웃 사람들과 서로 음식을 나누어 돌리며 서로서로 그 수고에 감사하였다.
그러다가 약 4천년 전후부터 이집트, 바빌로니아, 중국, 등의 太陰曆이 극동에 산재하여 살던 우리겨레에게도 전해지면서, 8월의 滿月이 되는 한가위와, 三神 할머니를 연상하며 음력 10월 3일을 전후하여 한 달가량 거행되던 上帝 공경의 행사가 절정을 이루게 되었다.
1900년대 초에 大倧敎에서 10월 3일을 開天節로 기념하며 경축하는 것을 상해 임시정부가 받아들여 國慶日로 삼았고, 1949년에 와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를 현재의 太陽曆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농경생활 문화와는 좀 맞지 않는 계절이 되었다. 그러나 “하늘이 열린 날”, 혹은, “하늘이 열어 준 날”, 곧 천지개벽과 萬物造化의 起源과 함께 우리 배달겨레의 紀元을 되새기는 [開天節]은 다른 민족들이나 특히 현대의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날이다. 대부분 독립기념일이나 건국선포 기념일 혹은 점령 기념일 등이 큰 국경일로 되어 있다. 사실 천주공경심은 단군성조의 [弘益人間]이나,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하는 애국가에까지 깃들어 있고 서려있는, 民族精神의 中心이오 基礎이기도 하다.
지금은 10월이 주로 관광다니는데만 치중하는 달로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上帝님을 기억하고 그 恩德을 감사하며 기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며 조상을 위하는 달의 그 의미와 가치를 온 겨레가 다시 되찾아 살게 할 수는 없을지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지금은 上帝라는 말 대신 天主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중국과 조선에서는 1590년대 경부터 쓰기 시작한 낱말이며 그 전에는 대부분 上帝라고 표현하였다. 통속적으로 사용하던 하느님이라는 단어는 원래 [한울님]으로 온 겨레가 일상생활에서 써오던 것을 1960년대 중반부터, 즉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부터, 천주교회에서도 쓰기 시작하였다. 국민 일반 대중이 쓰는 말로 上帝님이나 天主님을 표현하여 大衆言語文化로 天主敎의 韓國土着化를 시도한 것이었다. 사실 우리 대신학생 때, 주교회의에서 천주교 공용어의 대혁명을 한 것이다. 당시 傳統 保守的이며 天才的인 大學者였던 朱在用 신부님의 극구반대에도 불고하고, [天主]라는 말과 [하느님]이라는 말을 함께 쓰도록 하였다.
그러나, 좀 따져보면, 上帝란 정치적인 통치 개념 차원에서 표현한 말이고, 하느님은 자연현상을 따라 쓰던 자연 종교적인 말인데, 天主라는 단어는 인도와 중국을 거쳐 종교적인 면에서의 표현일뿐더러, 100여년간의 박해(1785~1885)를 통하여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칼 아래 목을 느리고,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소리없이 외치던, 실로 우리 순교선조들의 피로 물든 낱말이기도 하다. 출처야 어떻든 150여년을 두고 사용하므로써 이미 충분히 토착화한 단어, [天主님]이라는 단어가 무당집이나 서낭당에서도 흔히 쓰는 [하느님]이라는 말에 밀려서 이제는 우리 선조들의 殉敎信仰 精神도 , 한국천주교회에서, 우리에게서 아예 사라져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제는 옛 先人들의 [上帝와 祖上의 달]이 세월 속에서 흐르고 흘러, 그 의미도 가치도, 역사도, 낱말도 모두 함께 저 멀리 사라져가듯, 天主信仰도 殉敎信仰역시 시대와 함께 흐르며 퇴색하여 祈福信仰에 밀려 사라져 가지 못하도록, 성지순례니, 순교자 현양대회니 하며 오늘의 우리 교회는 몸부림치고 있다 !
등록일 : 2008-10-12 (14:53) 천진암, [이번주 풍경소리]
나) 10월은 우리 배달겨레의 聖月 ! 上帝님께 祭祀하고, 祖上님을 공경하던 달 !
먼 옛날 우리 겨레가 농경생활을 시작한 때부터, 매년 음력 10월 초순에는 가을 추수가 끝나는 대로 마을마다 大洞會를 열어, 한 해 농사를 잘 짖도록 햇빛을 비추어 주시고, 비를 내려 주신, 上帝님, 곧 하느님께 마을의 큰 제사를 올렸습니다. 소나 돼지를 잡고, 떡을 하고, 술을 빚어, 정성껏 감사의 제사를 올렸습니다.
또한 가정마다 제물을 준비하여 가지고 조상님들의 묘를 찾아 참배하였습니다. 그래서, 각설이들의 타령에도, “10월이라 상ㅅ달이니, 上帝님께 祭祀하고, 조상님께 時祭하세” 라는 대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10월을 ‘상딸(上月)’이라고 불렀으니, 지금 우리가 지내는, 성모성월이나 순교자 성월처럼, 아직 천주교회가 없던 적어도 3천5백여년 전 달력이 전해지던 시대의 10월은 우리 겨레, 韓民族의 聖月이었습니다. 조상님들의 묘소가 아무리 멀어도, 민족 移動의 경로를 따라, 며칠씩 걸어서, 이사왔던 길을 되짚어서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습관을 ‘비단 길’, 즉, ‘실크 로드’의 출발로 보는 것은 無理가 아닙니다.
10월이 되면, 첫 날부터 제일 먼저 上帝님을 공경하고, 祖上님들을 숭배하는 제사 준비에 바쳐서, 3일 째 되는 날에는 마을마다, 고을마다, 상제님께 모두가 모여 제사를 드리면서, 이 날, 음력 10월 3일, 초 사흗날을, ‘하늘이 열린 날’, 또는, 사당 祭室의 휘장을 걷듯이, ‘하늘을 여는 날’이라고 하여, ‘開天節’이라고도 하였습니다. 훗날 불교가 전해진 후, 4월 8일, 부처님 탄생을 기념하는 초파일 경축의 성대한 관습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것은 일리가 있습니다.
最近世에 들어오면서, 朝鮮 말기에 倭賊들한테 나라를 빼앗긴 후, 民族魂을 되살리려는 우리 선각자들은 1901년 天道敎의 羅喆 道師를 중심으로, 中原 땅에서, 10월 3일을 開天節로 정하여 국경일로 지내도록 선포하였고, 해마다 경축하였으며, 1919년 3.1. 운동 이후, 상해에 모인 민족 지도자들은 이듬 해, 상해임시 정부를 수립하고, 음력 10월 3일, 개천절을 한민족 건국 기념일로 하였으며, 1948년 大韓民國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를 그대로 전승하였는데, 다만 전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음력 10월 3일을 태양력을 따라, 같은 날의 양력 10월 3일을 오늘의 開天節로 확정하게 되었습니다.
10월은 날씨가 좋고, 추수철이라서, 음식도 풍요로우며, 사람들이 모이는 기회가 많고, 10월 1일은 傳敎者들을 위하여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바치던 小花 데레사 聖女의 축일이며, 전교자들의 주보가 되어, 모든 신자들이 전교를 위하여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바치도록, 10월을 ‘전교의 달’로, ‘묵주 기도의 달’로 한국교회가 정한 것은 매우 적절한 사목시책이라고 하겠습니다.
10월에 교우들이 모임을 따라, 이리저리 놀러 다니며 단풍구경이나 하고 즐기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온 가족이 다함께 성지 순례에 하루를 바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우리 선조들이 자발적인 진리탐구로 세운, '한국천주교회 創立史의 의미와 가치와 교훈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본받고 실천하라'고, 금년 교황님께서는 방한 첫날 주교님들에게 하신 첫 강론에서만 10여차례 이상, '기억 지킴이'를 강조하셨으니, 한국천주교회 신도들은 10월 중에 온 가족이 다함께 한국천주교회 발상지 천진암 성지를 찾아, 우리나라 천주교회 創立聖祖 5位, '하느님의 종 이벽, 이승훈, 권일신, 권철신, 복자 정약종', 우리 신앙선조들의 묘 참배를 잊지 않도록 합시다 ! 자녀들을 위하여 교육적으로도 단풍 관광보다 더 거룩한 일이니, 각 가정에서도 家門의 信心을 수립하여 전승시키는 일에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도록 해야 하겠읍니다.! Msgr. Byon
다) 10월은 상달(上月), 上帝의 달 !
10월은 상달(上月), 上帝의 달이다.
5월은 聖母聖月, 9월은 殉敎者聖月이듯이, 10월은 上帝聖月이다. 먼 옛날, 天山山脈 一帶에서 해돋는 나라 東方으로 수천년에 걸쳐 민족이동을 해온 우리 배달겨레는 본래 狩獵과 牧畜을 위주로 하며 살다가, 오늘날 중국 영토로 되어 있는 요동 벌판과 목단강, 흑룡강, 송화강 유역과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한강, 낙동강 유역에 이르면서, 農耕 생활과 문화를 이루기 시작하였다.
해마다 처음 익은 첫 곳식을 거두어 먹는 첫 보름달 밤에는 한가위를 경축하며 즐기었고, 농사한 대부분의 곡식을 거두는 때가 되면, 첫 눈이 내리기 직전에 추수한 五穀百果로 음식을 마들어, 농사를 짖도록 햇빛과 비를 내려주신 한울님, 上帝님께 제사하고, 논밭을 일구워주고, 씨앗을 전해주며, 농경기술을 가르쳐준 祖上님들께 時祭를 올렸으며, 함께 농사 일을 하던 이웃 사람들과 서로 음식을 나누어 돌리며 감사하였다.
그러다가 陰曆이 전해지면서, 8월의 滿月이 되는 한가위와, 三神 할머니를 연상하며 음력 10월 3일을 전후하여 上帝 공경의 행사가 한달가량 거행되었다. 1900년대초에 大倧敎에서 10월 3일을 開天節로 기념하는 것을 상해 임시정부가 받아들여 國慶日로 삼았고, 1949년에 와서 양력으로 바뀌었다.
10월 상달은 관광다니는데만 정신을 파는 달이 아니라, 上帝를 위하는 일을 최우선으로하는 달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사실 天主라는 단어는 1590년대부터 중국과 조선에서 쓰기 시작하였지, 그 전에는 上帝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하느님이라는 단어는 원래 한울님으로 온 겨레가 써오던 것을 1960년대 중반부터, 즉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부터, 천주교회에서 쓰기 시작하였다. 上帝란 정치적인 통치 개념상 부르던 것이고, 하느님은 통속적으로 쓰던 말인데, 天主라는 단어는 종 종교적인 표현일뿐더러, 100년박해(1785~1885)를 통하여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칼아래 목을 느리고,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소리없이 외치던 피로 물든 낱말이다.
우리겨레의 유구한 역사와 거룩한 전통이 서려있고 깃들어 있는 상달에 구세주 천주 성자의 모친 성모께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많이 바치도록 하자.
라) 10월은 상달(上月), 上帝의 달 !
이제 음력 10월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묵상해보자.
「10월이라 ‘上달’이니, 上帝님께 祭祀하고, 祖上님께 時祭하세!」
오늘날 우리 천주교회의 ‘聖母聖月’이나, ‘殉敎者聖月’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 조상님들은 부족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었지만, 음력이 전해진 아주 먼 옛날부터, 적어도 삼국시대 그 이전부터, 음력 10월을 가장 높은 「上달」로 삼아, 온 겨레가 한 달 동안 아주 경건하고 매우 성대하게 축제를 지내었다. 10월 상달의 우리겨레 종교문화를 조금이라도 되돌아보기 위해서는, 간결하게라도 우리겨레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겨레는 먼 옛날 天山 山脈一帶에서 수렵을 주요 生業으로 하였으나, 사냥하다가 산 채로 잡게 되는 山羊이나 야생 염소 같은 동물들을 키우면서, 부업삼아 牧畜業을 발전시켰다.
先史時代 우리 조상님들은 두려운 밤의 무서운 어두움을 없이하는 햇님이 아침마다 떠오르는 동쪽을 향하여 절을 하고, 인사를 드리며 햇님을 맞이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하늘과 땅 사이로 아침마다 햇님이 찾아 오시는 「샛녘」, 즉, 東쪽으로 계속 가다보면, ‘햇님이 사시는 나라’,‘햇님의 나라’,‘밝은 나라’, ‘빛의 나라’,‘빛 고을’이 있고, 그‘빛의 나라’에는 햇님을 날마다 보내주시는 한울님이 계시며, 자기네 조상님들의 혼령이 거기서 햇님과 한울님과 함께 살고 계시리라 믿었기에, 동으로, 동으로 수 천 년에 걸쳐 민족이동을 하였다.
따라서 빛을 숭상하며, 빛을 따라서 민족이동을 하여 온 우리 선조들은, 흰옷을 즐겨 입었으니, 족장이 죽거나, 부족의 큰 행사날이나, 부모가 죽으면 흰옷을 입었으며, 고종황제가 돌아가셨을 때는 온 나라가 흰옷을 입었으며, 중국의 역사서에서도 우리를 白衣民族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빛을 숭상하는 겨레라는 뜻이다. 또 자기네가 자리 잡고 사는 마을이나 큰 의지가 되는 뒷동산은 백두산처럼 꼭 만년설이 없어도, 소백산, 태백산, 백악산, 하며 이름 지어 올라가서 산제사를 드렸는데, 산에게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산에서 하늘님께 올리는 제사로 출발하였으며, 마을 이름도 빛고을(光州), 밝은 고을(明州), 별고을(星州), 흰고을(白城), 볕고을(陽城), 등으로 부르기를 즐겼다<六堂 崔南善의 兒時朝鮮, 1926년 4월, 朝鮮日報 연재 참조>.
요동 벌판과 송화강, 흑룡강, 압록강, 두만강, 대동강, 한강, 낙동강, 유역, 등, 극동 지역에 와서는, 수렵생활에서 농경문화로 생업이 바뀌고 발전하게 되었으며, 추수하는 계절이 되면 秋夕을 시작으로 하여, 음력 10월에 절정을 이루었으니, 농사를 짓도록 비를 내려주시고, 햇빛을 비추어 주신, 玉皇上帝 하느님께 마을마다 地域마다 部族마다 門中마다 모여서 성대하게 제사를 올리었으며, 집집마다 祖上님들께, 특히 논밭을 일구어주시고, 농기구를 발명하여 주시고, 농사 기술을 익혀 주시며, 씨앗을 물려주시고 돌아가신, 대대로 묻혀 계신 할아버지들 묘에 가서 時享을 올렸고, 농사일을 함께한 이웃들과 떡과 술을 나누며 서로 기뻐하고 축하하며 즐겼다. 한마디로, 10월 上달은 하느님과 조상님들과 이웃들이 함께하는 축제의 달이었다.
韓民族의 해 돋는 나라, 東方으로의 民族移動과, 고향산천 天山山脈 歸鄕訪問 발걸음은 이른 바, 비단 길, 즉 Silk Road 東邦通路의 최초 개척이었다. 천산산맥 일대에서 주로 수렵생활과 부업으로 목축업을 하던 한민족이 동으로, 동으로 민족이동을 하면서, 극동지방과 한반도에 이르러, 농경문화를 발전시키며, 이 지역에 자리를 잡아 나라를 세우면서, 타민족들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으면서도 우리 선조들은 찬란한 문화를 이룩하였으며, 자기가 출발한 故鄕山川 天山山脈 지역을 가끔씩 다녀오는 일을, 마치 오늘날 정월 명절이나 추석 때 온 국민이 고향을 찾고, 부모와 조상의 묘를 찾아, 자신의 뿌리로 되돌아가는 관습처럼 여겼으니, 오늘날의 거룩한 우리 이 관습은 옛날부터의 저 관습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렇게 햇님의 나라, 동쪽으로의 민족이동과, 과거 역사를 되돌아보는 우리 겨레의 발걸음은 이른 바 「비단 길」이라고 부르는 동서통로의 최초 개척이었다. 비단 장사를 위해서 사람들이 처음 낸 길이 아니고, 한민족이 종교적인 이유로 민족이동의 발자국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弘益人間, 즉 우리겨레의 建國理念은 國際聯合, 즉 U.N. 大憲章이다.
先史時代부터 모든 민족들이 弱肉强食의 동물적 차원에서 통치하고, 점령하고, 탈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우리겨레는 建國理念이 弘益人間 이었으니, 전쟁에서 승리한 부족이나 패배한 부족이나, 모두가 동등하고 평등하게 쌍방 모두에게 利益이 되게 하는 정신이었으니, 부패한 인류가 오늘날 정치제도로 채택하고 있는 民主主義나, 또는, 사라져가고 있는 共産主義나, 全體主義 그 이상으로, 훌륭하고 위대한 敬天愛人의 人本主義 思想에 근거한 弘益人間 정신은 오늘날 國際聯合이라는 U.N.의 大憲章 출발이오, 完成形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이 열린 날」, 開天節 국경일의 정신은, 우리나라 건국의 근거를 하느님께 연결시키는 의미가 있으니,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도 구름없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하는 애국가 속의 민족적 合誦祈禱역시, 다른 나라의 국경일이나 다른 나라의 애국가에서 보기 어려운 上帝 天主 공경 정신과, 또한 부모와 조상님들을 위하는 교과서와도 같은, 「孝子門」이나 「孝子閣」역시, 중국 일본을 포함하여 다른 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문화유산은 宗敎的이며, 信仰的이며, 神學的인 所懷를 切感케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10월 생활」에서, 上帝 하느님과 조상님과 이웃의 자리가 점점 사라져 가고, 명승지 관광과 각종 경기관람과 오락과 유흥과 사치와 향락으로 차고 넘치는 느낌이다.
천주교회의 「묵주기도의 달」이며, 「전교의 달」인 「10월 신앙생활」은, 우리겨레의 오랜 전통적인 「上달」을 나름대로 지키고, 아끼고, 가꾸며, 補完하고 성장시켜 꽃피우게 하는 계기로 삼는 사명도 없지 않음을 묵상해보고 싶다.
해마다 10월 「전교주일」에, 서울 가락동성당 하상회와 명동성당 하상회 회원들이, 천진암 성지의 「조선교구 설립자 묘역」에 모신 성 정하상 바오로 회장과 유진길 회장의 묘를 참배하면서, 미사를 봉헌하고 시제도 지내며, 천주공경과 조상에 감사하는 예를 올리는 것을 보면서, 옛 것과 새 것을, 좋은 것은 모두 함께 지키고 아끼고 가꾸고 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Msgr. Byon.
작성일 : 2009-11-02 10:52
라)「10월이라 ‘上달’이니, 上帝님께 祭祀하고, 祖上님께 時祭하세!」
오늘날 우리 천주교회의 ‘聖母聖月’이나, ‘殉敎者聖月’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 조상님들은 부족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었지만, 음력이 전해진 아주 먼 옛날부터, 적어도 삼국시대 그 이전부터, 음력 10월을 가장 높은 「上달」로 삼아, 온 겨레가 한 달 동안 아주 경건하고 매우 성대하게 축제를 지내었다.
10월 상달의 우리겨레 종교문화를 조금이라도 되돌아보기 위해서는, 간결하게라도 우리겨레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겨레는 먼 옛날 天山 山脈一帶에서 수렵을 주요 生業으로 하였으나, 사냥하다가 산 채로 잡게 되는 山羊이나 야생 염소 같은 동물들을 키우면서, 부업삼아 牧畜業을 발전시켰다.
先史時代 우리 조상님들은 두려운 밤의 무서운 어두움을 없이하는 햇님이 아침마다 떠오르는 동쪽을 향하여 절을 하고, 인사를 드리며 햇님을 맞이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하늘과 땅 사이로 아침마다 햇님이 찾아오시는 「샛녘」, 즉, 東쪽으로 계속 가다보면,‘햇님이 사시는 나라’,‘햇님의 나라’,‘밝은 나라’, ‘빛의 나라’,‘빛 고을’이 있고, 그‘빛의 나라’에는 햇님을 날마다 보내주시는 한울님이 계시며, 자기네 조상님들의 혼령이 거기서 햇님과 한울님과 함께 살고 계시리라 믿었기에, 동으로, 동으로 수 천 년에 걸쳐 민족이동을 하였다.
따라서 빛을 숭상하며, 빛을 따라서 민족이동을 하여 온 우리 선조들은, 흰옷을 즐겨 입었으니, 족장이 죽거나, 부족의 큰 행사 날이나, 부모가 죽으면 흰옷을 입었으며, 고종황제가 돌아가셨을 때는 온 나라가 흰옷을 입었고, 또 자기네가 자리 잡고 사는 마을이나 큰 의지가 되는 뒷동산은 백두산처럼 꼭 만년설이 없어도, 소백산, 태백산, 백악산, 하며 이름 지어 올라가서 산제사를 드렸는데, 산에게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산에서 하늘님께 올리는 제사로 출발하였으며, 마을 이름도 빛고을(光州), 밝은 고을(明州), 별고을(星州), 흰 고을(白城), 볕고을(陽城) 등으로 부르기를 즐겼다<六堂 崔南善의 兒時朝鮮, 1926년 4월, 朝鮮日報 연재 참조>.
요동 벌판과 송화강, 흑룡강, 압록강, 두만강, 대동강, 한강, 낙동강 유역 등 극동 지역에 와서는, 수렵생활에서 농경문화로 생업이 바뀌고 발전하게 되었으며, 추수하는 계절이 되면 秋夕을 시작으로 하여, 음력 10월에 절정을 이루었으니, 농사를 짓도록 비를 내려주시고, 햇빛을 비추어 주신, 玉皇上帝 하느님께 마을마다 地域마다 部族마다 門中마다 모여서 성대하게 제사를 올리었으며, 집집마다 祖上님들께, 특히 논밭을 일구어주시고, 농기구를 발명하여 주시고, 농사 기술을 익혀 주시며, 씨앗을 물려주시고 돌아가신, 대대로 묻혀 계신 할아버지들 묘에 가서 時享을 올렸고, 농사일을 함께한 이웃들과 떡과 술을 나누며 서로 기뻐하고 축하하며 즐겼다. 한마디로, 10월 上달은 하느님과 조상님들과 이웃들이 함께하는 축제의 달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10월 생활」에서, 上帝 하느님과 조상님과 이웃의 자리가 점점 사라져 가고, 명승지 관광과 각종 경기관람과 오락과 유흥과 사치와 향락으로 차고 넘치는 느낌이다.
「하늘이 열린 날」, 開天節 국경일의 정신은, 우리나라 건국의 근거를 하느님께 연결시키는 의미가 있으니,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하는 애국가 속의 민족적 合誦祈禱역시, 다른 나라의 국경일이나 다른 나라의 애국가에서 보기 어려운 上帝 天主 공경 정신과, 또한 부모와 조상님들을 위하는 교과서와도 같은, 「孝子門」이나 「孝子閣」역시, 중국 일본을 포함하여 다른 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문화유산은 宗敎的이며, 信仰的이며, 神學的인 所懷를 切感케 한다.
천주교회의 「묵주기도의 달」이며, 「전교의 달」인 「10월 신앙생활」은, 우리겨레의 오랜 전통적인 「上달」을 나름대로 지키고, 아끼고, 가꾸며, 補完하고 성장시켜 꽃피우게 하는 계기로 삼는 사명도 없지 않음을 묵상해보고 싶다.
해마다 10월 「전교주일」에, 서울 가락동성당 하상회와 명동성당 하상회 회원들이, 천진암 성지의 「조선교구 설립자 묘역」에 모신 성 정하상 바오로 회장과 유진길 회장의 묘를 참배하면서, 미사를 봉헌하고 시제도 지내며, 천주공경과 조상에 감사하는 예를 올리는 것을 보면서, 옛 것과 새 것을, 좋은 것은 모두 함께 지키고 아끼고 가꾸고 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 Msgr. Byon
작성일 : 2009-10-18 21:07
고종황제가 비록 천주교회에 입교한 천주교 신자는 아니었으나, 당대의
조선백성들처럼, 천주신앙이 충만하고 철저한, [천주 신앙인]이었다.
고종황제 초상화
첫 애국가 작곡가 후란즈 폰 에케르트 (Franz Eckert)
당시 독일어로 표제를 만든 애국가 인쇄물
애국심은 내버리고, 이기심과 욕심이 가득찬, 감투병 환자들의 발광으로, 단결하지 못하는 오늘의 건달패 일부 종교인들, 억론인들, 정치인들, 사법인들, 사업인들, 허위를 꾸밀 권리가 있고, 허위조작을 모를 수 없는 識者들이, 그 거짓을 따르며 선전할 의무가 있는 이들로 병아리떼처럼 범람하는 이 시국에, 우리 모두가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가다듬어, 우리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들을 미워하고, 제거하고, 앞에 나서려는 민족 비극의 예방을 위하여 최대의 비협조를 아끼지 않고 들어내는 뻔돌이와 뻔순이들이 제정신으로 돌아오도록, 눈물보다 더 진한 피를 흘리는데 주저하지 맙시다!!-순교정신으로! 끝.-Msgr. Byon-
변기영 몬시뇰이 [사랑방]을 열었습니다.
사랑방 윗묵 구석 구석에 쳐박아두었던 보따리들을 이것저것 내다가 풀어서
교회와 사회에 혹시라도 도움이 될 것들은 죽기 전 알리려 합니다. [사랑방 출입문]은 아래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