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民族의 聖山, 白頭山 天文峰을 순례하는 天眞菴 聖地 직원들(2014. 8. 20. 오후 3시 경, 왼편부터 박희찬 국장, 고옥자 실장, 변기영 몬시뇰, 허관순 실장). 해발 2,700 여 미터의 천문봉을 오르며 허덕이는 75세의 卞基榮 몬시뇰! 쓰러질 듯, 너머질 듯, 미끄러질 듯, 주저앉을 듯 하면서, 그래도, “올라가는 용기를! 돌아가는 지혜를! 내려가는 겸손을!” 되새기며... 韓民族의 聖山, 白頭山과 天池를 드디어, 마침내,,,! Deo Gratias ! |
백두산 天池의 水面은 해발 2,190m, 면적은 9,165㎢, 둘레는 14.4㎞, 평균 너비 1,975㎞, 최대 너비 3.55㎞, 평균수심은 213.3m, 최대깊이 384m/ 해발 2,700 여 미터의 천문봉을 오르며 허덕이는 75세의 卞基榮 몬시뇰! 쓰러질 듯, 너머질 듯, 미끄러질 듯, 주저앉을 듯 하면서, 그래도, “올라가는 용기를! 돌아가는 지혜를! 내려가는 겸손을!” 되새기며... 韓民族의 聖山, 白頭山과 天池를 드디어, 마침내 ,,,! 단군 聖祖와 반만년 전 우리 선조들에 대한 기억 속으로 되돌아가며,,,기도하며,,,! |
12인승 봉고차만이 해발 2,000 미터 지점부터 오르내리는데, 약 30분정도 아주 위험한 비탈길을 시속 40km로 오르면서 위험한 길이다. 안전 벨트가 전혀없는 차량들이다. 해발 2,500m 지점에 있는 최종 주차장과 휴게소. 여기서부터는 250여 미터를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
백두산 입구 들어가는 산문 |
해발 2,700 여 미터의 천문봉을 오르며 허덕이는 75세의 卞基榮 몬시뇰! 쓰러질 듯, 너머질 듯, 미끄러질 듯, 주저앉을 듯 하면서, 그래도, “올라가는 용기를! 돌아가는 지혜를! 내려가는 겸손을!” 되새기며... 韓民族의 聖山, 白頭山과 天池에,,, 드디어, 마침내,,, ! |
해발 2,700 여 미터의 천문봉을 오르며 허덕이는 75세의 卞基榮 몬시뇰! 쓰러질 듯, 너머질 듯, 미끄러질 듯, 주저앉을 듯 하면서, 그래도, “올라가는 용기를! 돌아가는 지혜를! 내려가는 겸손을!” 되새기며... 韓民族의 聖山, 白頭山과 天池를 드디어, 마침내 ! |
해발 2,500m 차도 종점 주차장과 휴계소에 중국에서 설치한 목조 안내판. |
저멀리 보이는 장백폭포, 장백폭포는 한겨울에도 얼지 않음, 68M 높이의 폭포로 흘러내리는 물의 낙차가 용이 하늘도 나는 것 같다하여 비룡폭포라 불린다. |
백두산 天池의 水面은 해발 2,190m, 면적은 9,165㎢, 둘레는 14.4㎞, 평균 너비 1,975㎞, 최대 너비 3.55㎞, 평균수심은 213.3m, 최대깊이 384m. 중국, 鄧小平의 답사 친필 기념비.
中國 現代化의 大人, 鄧小平의 이 기념비문 친필 휘호만을 보더라도, 이 호수를 중국인들도 마땅히, '天池'라고 부르고, 쓰는 것이, 장백산맥 5천년 역사를 지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長白湖'라는, 단순히 山高水長 長白山,長白湖 !? 라는 산 이름을 따르는 장백호(長白湖)보다는, '하늘 못' , 즉, '천지(天池)'라는 명칭은 先史 시대부터 아시아 민족의 정신문화를 전승하는 명칭이니, 韓.中이 함께, '하늘 못' , 즉, '천지(天池)'라고 써야 한다. |
백두산 天池의 水面은 해발 2,190m, 면적은 9,165㎢, 둘레는 14.4㎞, 평균 너비 1,975㎞, 최대 너비 3.55㎞, 평균수심은 213.3m, 최대깊이 384m . |
백두산 天池의 水面은 해발 2,190m, 면적은 9,165㎢, 둘레는 14.4㎞, 평균 너비 1,975㎞, 최대 너비 3.55㎞, 평균수심은 213.3m, 최대깊이 384m - 반만년 배달겨레 신앙정신의 구심점이오, 대상이오, 제단이었던 韓民族 배달겨레의 영원한 聖山, 백두산 상산봉에 있는 하늘 못, 거룩한 이름의 天池 ! |
백두산 天池의 水面은 해발 2,190m, 면적은 9,165㎢, 둘레는 14.4㎞, 평균 너비 1,975㎞, 최대 너비 3.55㎞, 평균수심은 213.3m, 최대깊이 384m |
백두산 天池의 水面은 해발 2,190m, 면적은 9,165㎢, 둘레는 14.4㎞, 평균 너비 1,975㎞, 최대 너비 3.55㎞, 평균수심은 213.3m, 최대깊이 384m./ 2014. 8. 20. 오후 3시. 변기영 촬영. |
장백폭포(장백폭포 가는 길에 자연온천지대 안내판과 온천이 있다. 온천지대를 지나면 장백폭포의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장백폭포를 볼 수 있다. 장백폭포는 한겨울에도 얼지 않음, 68M 높이의 폭포로 흘러내리는 물의 낙차가 용이 하늘로 나는 것 같다하여 비룡폭포라 불린다.)과다한 등산객들로 여기도 오염은 불가피한 현실! |
저멀리 보이는 장백폭포, 장백폭포는 한겨울에도 얼지 않음, 68M 높이의 폭포로 흘러내리는 물의 낙차가 용이 하늘로 나는 것 같다하여 비룡폭포라 불린다. |
북한과 중국 국경 도문시, 강건너 뒤로 보이는 북한지역 산. 울창한 수목이 보이지 않는 산들이 임진강 건너의 산들과 같다. 산에 수목이 빈약하면 장마철 산사태가 불가피하다. 이상복 원장이 북녘 땅에 나무심기 운동을 펴서, 묘목 밭도 개설해 주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남북이 북한의 임야 조성에 정책적 힘을 기울여야! 산림이 헐벗고 황폐하면, 백성들이 헐벗고 주리며 남루해진다.
열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도 필요하지만, 심은 나무 한 그루의 묘목을 잘 가꾸는 것은 더 중요하다는 것인데, 열 그루의 나무를 심기도 어려운데다가 백 그루 천 그루의 나무를 베어서 땔감으로 불살라버리면 어떻게 하랴? 그러나, 추운 겨울 배고프고 얼어서 죽지 못해 산에 나무를 베어다가 아궁이에 불을 때야 하는 그 사정은 오죽하랴? 마음이 아프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는 말처럼, 남한 동포들도 지난 1945년 해방 후와 1951년 1.4,후퇴 이후, 지금의 북한보다 훨씬 더 산의 나무를 베어 불을 때며 살았다. 그나마 구멍탄을 생산하며 산의 나무를 키웠다. 이제, 북한의 민둥산들을 울창한 숲으로 덮도록, 북한의 산림녹화에 남한 정부와 남한 국민들은 힘을 보태어, 삼천리 푸른 강산을 만들도록 관심과 성의를 다해야 하겠다. 이것은 정권차원을 넘어서 적어도 향후 반세기 이상 힘써야 할 것이다. 북한의 산림녹화는 북한의 힘만으로는 어렵게 생각된다. - Msgr. Byon |
장백폭포 가는 길에 자연온천지대 안내판과 온천이 있다. 온천지대를 지나면 장백폭포의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장백폭포를 볼 수 있다. 장백폭포는 한겨울에도 얼지 않음, 68M 높이의 폭포로 흘러내리는 물의 낙차가 용이 하늘도 나는 것 같다하여 비룡폭포라 불린다. |
백두산 天池의 水面은 해발 2,190m, 면적은 9,165㎢, 둘레는 14.4㎞, 평균 너비 1,975㎞, 최대 너비 3.55㎞, 평균수심은 213.3m, 최대깊이 384m /2014. 8. 20. 오후 3시 허관순 촬영- |
백두산 天池의 水面은 해발 2,190m, 면적은 9,165㎢, 둘레는 14.4㎞, 평균 너비 1,975㎞, 최대 너비 3.55㎞, 평균수심은 213.3m, 최대깊이 384m. 초가을 황홀한 단풍치마를 둘러 입고, 하늘과 땅과 인간들을 하느님께 바치고 맡기며, 감사와 찬미를 드리게 하는 백두산 천지!
平和의 聖母像이 白頭山 자락에 세워지면, 잠에서 깨려는 休火山, 白頭山에 地振이나, 大小 火山爆發이나, 장백산맥의 큰 기침이나 재채기라도 聖母님께서는 預防해 주시지 않을까? 무력증강에 경쟁하듯 집중하는 日本과 中國과 蘇聯과 北韓과 南韓을 포함하는, 東北亞와 全 世界에 성모님께서는 戰雲이 사라지게 하시고, 戰爭을 豫防해주시지 않을까? 적어도 신도들은 물론, 만민이 모두 평화의 성모님께 기도라도 한번 더 바치게 될텐데,,! 나아가 옥수수 재배가 주요 산업이 되고 있는 이 地域民들에게 白頭山 聖母像 巡禮團은 큰 觀光資源이 되어, 주민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텐데,,,!
세계적인 성모 성지 프랑스 Lourdes는 매년 평균 600만명의 순례단이 전 세계에서 다녀가는데, 여러날씩 묵어가며 이들이 쓰는 돈은 1인당 평균 5천불로서 연간 30억불의 관광수익을 올리며, 프랑스 중앙정부는 돈벌이 겸 국제 순례자들을 위하여 20여년 전 피레네 산맥 골짜기에 TGV 철도는 물론, Tarbres의 좀 길게 퍼진 가까운 Peu에 아주 작은 국제공항까지 개설하였다(필자도 마드리드에서 한번 이 공항을 이용하였다). 폴투갈 파티마 불모지의 성모 성지도 매년 500만명 내외의 순례자들 덕택으로 연간 25억불 이상의 관광수입을 얻는다며, 경제불황시기에 폴투갈을 먹여 살리는 수단이 되었다.
백두산 자락에 세계 평화의 성모상을 세우고, 백두산 부근의 드넓은 연길이나 白山이나 이도하 지역에 공항을 건설하면, 옥수수 밭들이 용도변경으로 산업지역화 하게 되고, 동경이나 상해보다 나은 신규 세계적인 산업도시들이 될 것이다. 관광수입은 원료수입비,가공비, 선전비, 운반비, 등이 필요없는, 알찬 수입이 아닌가? 인구 불과 몇 천명에 불과하던 Lourdes가 20만이 넘는다는데, 저 세상에 사는 성모 마리아와 성녀 벨라뎃따, 2명의 처녀들이 먹여살린다고, 주민들이 농담삼아 진담하는 소리는 일리가 있었다.
우리 남한의 천주교 성지들, 예컨데, 미리내, 솔뫼, 천진암, 배론, 같은 산골 성지들역시, 성지 순례자들을 통한 관광수입이 산골지역 주민들의 農外收入과 경제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데도, 이러한 성지 성역화를 위한 법적인 비영리 교회사업에, 책임있는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하고, 할 수 있는 것을 미루고, 아니하며, 最大의 非協助를 아낌없이 베풀어주고 있는 일부 지자체나 지역 사람들을 종종 볼 때마다 슬픔을 금치 못하며, 思想과 國籍을 의심하게까지 되는 것이 현실이다.
- Msgr. Byon
백두산 뻗어나려 반도 삼천리, 무궁화 이 강산에 역사 반만년,
대대로 이어오는 우리 삼천만, 장하도다 그 이름 [대한]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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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국제연합의 綱領보다 앞선,
반만년 전 단군성조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치이념을,
오늘날 이 狂亂의 시대에 !
반만년 전,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 성조의 弘益人間 政治理念은 오늘날 국제연합(U.N.)의 綱領보다 앞선 정치 철학이었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널리 이익을 준다”는 홍익인간의 政綱政策으로, 예를 들어, 부족들간의 전쟁에서도 승리한 宗族이 패배한 部族들을 노예로 삼거나 모든 재산과 남녀를 빼앗아가던 그 시대의 단군은 패배한 부족에게나 승리한 부족에게나 다같이 똑같이 평등하게 차별없이 골고루 이익을 받게하는 정책이었으므로, 여러 부족들과의 대통합이 쉽게 이루어졌고, 점차 전쟁없이도 자발적으로 귀순하며 승복하는 부족들이 앞을 다투어 모이면서 극동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큰 나라를 세우게 되었고, 가장 오랜 시대를 다스리는 국가를 이룩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강대국들이 타민족들을 점령하여, 점령지의 백성들을 노예처럼 극심한 차별로 불만과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마치 개가 제 버릇을 남에게 주는 법이 없다는 말처럼, 로마 대제국이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들을 점령하여 노예로 삼은 일이나, 일본이 조선 점령으로 자행한 조선인 차별과 학살, 등은 현대 세계 도처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음으로 인하여 분쟁과 전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祭政一致로 政敎가 분리되어 있지 않던 시대에, 上帝 하느님을 섬기고 조상님들을 위하며, 서로서로 사람들을 아끼고 지키며 가꾸는 홍익인간 정신은 일찍 문명사회를 만들어 나갔으며, 이러한 정신은 韓民族의 先天的(a priori)인 민족정신을 이루게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국제연합(U.N.) 창설의 주역이었던, 미국 역사상 유일의 4選 대통령 루즈벨트나 그와 一心同體처럼 절친했던 스펠만 대주교, 등의 철학을 바탕으로, 현대 세계의 오늘을 위하여 각 국가들과 민족들의 단합과 공동번영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국제연합의 헌장이, 이미 韓民族 단군 성조에 의하여 ‘홍익인간’이라는 요약된 정치철학으로 태어나 구현되어, 반만년 전에 이미 꽃피게 된 것이다. 단군 성조의 弘益人間 政治理念은,10월 상달(上月)을 맞아, 이 시대에 우리 모두가 적어도 한번쯤은 되새겨보아야 할 한민족의 家訓이다. 특히, 立法人들이나 政治人들이나 企業人들, 더욱이 모든 종교인들은 반드시 자신들의 人格陶冶 成熟과 完成을 위하여, 弘益人間의 의미와 가치와 교훈을 座右銘으로 삼고, 狂亂의 이 시대를 살아야 하겠다.
음력 10월은 우리 배달겨레, 韓民族이 한달 내내 上帝님께 祭祀하고, 祖上님을 공경하던 달이었으니, 10월, 上月은 우리 배달겨레, 韓民族의 聖月이었다. 비록 양력화하였지만, 이 상달이 다 가기 전에, 단군성조의 홍익인간 思想을 몸받기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야 하겠다.
먼 옛날 우리 겨레가 농경생활을 시작한 때부터, 매년 음력 10월 한달 동안, 되도록 초순에는 가을 추수가 끝나는 대로 마을마다 大洞會를 열어, 한 해 농사를 잘 짖도록 햇빛을 비추어 주시고, 비를 내려 주신, 上帝님, 곧 하느님께 마을의 큰 제사를 올렸다. 소나 돼지를 잡고, 떡을 하고, 술을 빚어, 정성껏 감사의 제사를 올렸다. 또한 집집마다 제물을 준비하여 가지고 조상님들의 묘를 찾아 참배하였다. 그래서, 각설이들의 타령에도, “10월이라 상달이니, 上帝님께 祭祀하고, 조상님께 時祭하세” 라는 대목을 해방 후까지도 들을 수 있었다. 따라서 10월을 ‘상딸(上月)’이라고 불렀다. 마치 지금 천주교회에서 우리가 지내는, 성모성월이나 순교자 성월처럼 ! 아직 천주교회가 없던 그 시절, 적어도 3천 5백 여년을 전후하여, 영농 절기를 알리는 음력이 전해지던 시대의 10월은 우리 겨레, 韓民族의 聖月이었다.
10월이 되면, 첫 날부터 제일 먼저 上帝님을 공경하고, 祖上님들을 숭배하는 제사 준비에 바쳐서, 3일 째 되는 날에는 마을마다, 고을마다, 상제님께 모두가 모여 제사를 드리면서, 이 날, 음력 10월 3일, 초 사흗날을, ‘하늘이 열린 날’, 또는, 마치 사당 祭室의 휘장을 걷고 조상님들의 位牌를 들어내 보면서 경의를 표하듯이, ‘하늘님을 뵙기 위하여 하늘을 여는 날’이라고 하여, ‘開天節’이라 하였다. 지금의 요동과 길림, 연길, 등 북만주 지역에서 농경문화를 발전시키며 나라를 세우고 살던 고조선을 비롯한 예맥, 북부여, 고구려, 발해, 등 배달겨레의 여러 부족 국가들이 함께 경축하던 한민족의 聖月, 10월, 상달(上月)에, 우리는 남북 관계나 각 단체마다 겪고 있는 亂局打開를 위하여, 弘益人間 정신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 Msgr. By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