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단체의 범인은익과 범법자 보호의 성격과 한계는 ?
- 김수환 추기경의 간첩 불고지죄는,,,?
종교단체의 범인은익(犯人隱匿)이나 범죄인 보호(弱者 保護)의 성격과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 전쟁 중에 我軍의 총에 맞아 부상한 적군이 살기 위하여 聖堂이나 佛堂이나 禮拜堂, 修女院 같은 종교기관으로 찾아들어와 救助를 요청하는 경우, 부상한 적군을 받아들여 감추어주고, 치료해주며, 돌보아주는 것을 범인은익이라고까지 볼 수는 없으며, 또 이적행위(利敵行爲)라고 보지도 않는 것이 성직자들 편에서의 상식이라고 할 것이다. 적십자 정신으로도 이해되고 설명이 되는, 종교단체의 慈悲 이전의 당연한 직무수행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빵 사먹을 돈이 전혀 없어서 며칠을 굶은 쟝발쟝이 성당 제단의 금빛 촛대를 훔쳐서 도망가다가 경찰한테 붙잡혀서, 도둑질하고 나온 그 성당으로 다시 끌려왔을 때, 사제는 경찰에게, ‘쟝 발장이 도둑질 한 것이 아니고, 사제인 내가 그에게 준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여, 그를 풀어주게 하였는데, 빅돌 위고의 이 대목을 많은 이들은, ‘그 사제는 천당 가는 거짓말을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이 경찰한테 쫒기다가 김수환 추기경을 찾아가 숨겨주기를 청한 적이 있었다. 추기경은 그에게, 자수할 것을 권고하였으나, 자수하지 않고, 나가서 다니다가 다른데서 체포되어, 그 간첩을 수사하던 기관에서는 며칠 후 뒤늦게서야 이를 알고, 추기경이 범인은익까지는 하지 않았다 치더라도, 적어도 간첩을 알고도 관계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不告之罪만은 범하였다고 보고, 처벌해야만 한다는 입장과, 보호를 청하러 찾아온 弱者를 성직자가 차마 어떻게 고발하느냐는 입장으로 당시 사제들 사이에서도, 또 일부 언론에서까지 거론된 적이 있었다.
프랑스를 여행하다가, 잘 아는 노인 사제와의 식사 중에, 성직자의 범인은익이나 범인보호에 대한 말이 나왔는데, 중세 이후 잦은 전란을 겪은 유롭에서는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성당을 찾아와 보호를 요청하는 범죄인들을 보호하고 도와주지만, 살인범이나 폭력사범이나 간첩같은 반국가사범이나 방화범 같은, 이른 바, 公安事犯들은 여기서 제외하는 것이 일반 통례이며, 특히, 전쟁 중에 反國家的인 무장한 적군이나 간첩이 성당으로 잠입하여, 항복도 귀순도 거부하며, 은신처 제공과 보호를 요청하는 경우, 그의 면전에서는 친절히 응하면서도,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뒤로 我軍에게 알려주는 것이 국민의 상식이고, 본분이라고, 자연스럽게 하는 말을 들었다.
청와대 습격을 위해 북한에서 파견되었던, 이른 바, 1968년 김신조 부대의 '1·21 사태' 때, 양주군의 법원리 초리골 산속에서 30여명의 공비들한테 5시간이상 억류되었던 4명의 나무꾼들이, 경찰에 알리지 않기로 거짓 약속을 하고, 밤늦게서야 풀려서 마을로 내려와 밥을 해다 주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마을 이장을 통하여 관계기관에 신고하였던 행동이 유사한 예라고나 할까?
2차대전 때, 독일군에게 점령된 프랑스의 어느 산골 수도 공동체에서, 부대장과 장교들 몇 명의 강요에 의해, 준비한 저녁식사를 함께하자고 하며, 의심많은 독일군 대장이 그 수도공동체 임원들보고, "포도주를 먼저 마셔보라"고 한 후, 안심하고 독일군 장교들도 함께 마시어, 모두 함께 죽은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전투요원인이었던 저들은 이미 많은 프랑스 국민들을 살해하고 가옥을 파괴하면서 쳐들어온 점령군들이 살인과 파괴를 다음 읍내로 계속할텐데, 총검으로 무장한 적군들과 맨 손으로 극한적인 抗獨 투쟁에 총검대신 독극물로 참여하는 일면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전시에도 군종신부들은 총을 가지고 적군을 사살하지 않게 되어 있지만,,,! 임진왜란 때 7년간, 또, 몽고족이 세운 元 나라의 침략으로 고려 점령 반세기동안, 고려에서 살생을 피하는 스님들이 僧兵으로서 보여준 용맹한 전투와 戰功은 우리 국민들에게 護國佛敎의 교과서이기도 하다. 20세 초반의 김윤후 스님은 몽고군 사령관 살례탑을 용인 처인성에서 활로 사살하여, 포악하였던 몽고군의 후퇴와 철수의 시작이 되게 하였다.
결국, 종교기관의 성직자들이 범죄인 은익이나 범죄인 보호를 요청받는 경우에도, 그 범죄인이 범한 범법행위에 대한 共感이나 同意나 同助나 默認이나 同參이나 後援이나 共犯의 성격을 共有하는 同僚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왜정 때, 일본 형사한테 쫒기는 우리 독립군을 감추어주고, 보호하는 것을, 일본 총독부 편에서는 반일범죄행위로 여겼지만, 우리 편에서는 독립투쟁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될 뿐이었듯이,,!
또한, 전국 모든 교회와 사찰과 성당이 범인들의 은익처나 보호소가 된다면,,,?
-Msgr. By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