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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따라 한 평생을 !] -1996년 늦 가을, Pbc(평화방송)에서 제작 방영한 VHS를 최근 CD로 재생하여, 20년만에 다시 보며,,,.

글 :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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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따라 한 평생을 !]

1996년 늦 가을, Pbc(평화방송)에서 제작 방영한 것을, 20년만에 다시 보며,,,.   

  VlDEO,[님따라 한평생] 신앙의 뿌리 만들며 (변기영 신부).www.변기영몬시뇰사랑방.kr/
 
1996년 늦 가을, Pbc(평화방송)에서 제작 방영한, [님따라  한  평생을 !], 20년만에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사제서품 우리 동창생 신부들은 모두 37명인데, 벌써 8명이 저 세상으로 갔읍니다. 
 
 1971년도에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 제 21회 졸업생들입니다. 37명을 출신별로 보면, 각 교구별로 소신학교(동성학교) 출신들과 별과 출신(사회 고등학교 졸업 후 입학한 학생들) 들과 수도회 출신들, 또, 대신학교 입교 후, 철학과 2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여 군복무 3년을 마친 학생들과 입교전 사회에서 먼저 군복무를 마치고 입교한 학생들이 있어서, 흔히 연합군 같았읍니다. 가장 나이 많은 학생들(故 길신부와 現 박신부)과 가장 나이 어린 학생들(최신부 이신부, 등)은 나이 차이가 21년이나 되어서, 아버지와 아들 벌이었읍니다.
 
서품 후, 매년 1회씩 동창회를 갖기로 정하고, 동창회장은 매년 교대로 하기로 하였는데, 사제서품 25주년을 1년 앞두고, 1995년 여름에 왜관 분도수도원에서 동창회를 하면서, 나 보고 내년도 동창회장을 하라고 정하였고, 서품 25주년을 맞으며, 우리 동창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까 여러가지 의견을 나누었읍니다.
 
그런데, 당시 이야기 중에, 근래에 우리 선배들 중에는 서품 25주년 은경축 기념행사가 평신도들이 볼 때 좀 과하다고 느낄만큼, 일부 본당에서 경쟁하다싶이 교우님들이 너무나 성대하게 준비하는 본당도 있어서, 우리 동창들은, 내년에, 아예 은경축 행사를 사양하고 하지 않도록 하기로 하였읍니다.
 
그러면, 교우님들과 회장님들이 가많히 있지 않을테니, 태극기 걸어 놓고, 애국가 봉창하며, 꽃다발 증정, 축사, 기념품 증정, 등,,, 요란하게는 준비하지 못하게 하고, 그저 조촐하고 소박하게, 본당 회장님들 몇분과 직원들하고, 소주 한잔에 보신탕 한 그릇 정도 함께 하도록 하기로 하였읍니다.
 
그리고, 먼저 세상을 떠나신 은사 교수 신부님들 묘를 단체로 참배하면서, 먼저 저 세상으로 앞서서 이사간 동창신부들 묘도 단체로 찾아보기로 하였읍니다. 교수 신부님으로 대부분의 사제생활을 보내시고 돌아가신 은사 신부님들은 본당을 맡지 않아서, 세례준 신도들도 거의 없고, 또 사제들은 평생 독신이라 자녀도 없어서, 돌아가시면, 묘를 돌보거나 찾는 이들의 발길이 너무나 드물어, 잡풀이 수북한 채로 한 여름을 나기도 하니, 제자 신부들마저 찾지 않으면, 정말 쓸쓸하게 풀벌레 소리만을 벗삼으실 테니,,,.!
 
그런데, 1996년 은경축을 맞는 우리 동창들 이야기가 어떻게 새어 나갔는지, 몇몇 교회 내 기자들이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은경축 행사를 하지 않기로 하셨다니, 참 잘 하시는 것이라고, 추켜주는 것도 부담이 되었읍니다.  
 
1996년, 우리들의 서품 25주년이 되자, 뜻밖에도, 우리 동창신부들이 주임신부로 있는 몇몇 본당에서 총회장님 명의로, [은경축 참석 초청장]이 하나 둘씩 날아오기 시작하였읍니다. 전화를 해보니, 교우님들과 회장님들이 슬그머니 준비하고, 일을 벌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망갈 수도 없고, 대부분의 동창신부들도 마음이 너무 착하고 약하여, 너무 사양하는 것도 좀 거식한 면이 있어서, 못이기는 척하며, 은경축 현수막 앞에서  검소하게 싸구려 잔치 국수 정도 삶아서 은경축 기념으로,지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래부터 성격이 좀 괴팍한 필자는, 생일잔치, 본명축일 행사, 은경축 행사, 부임행사, 송별식, 안식년, 또 매주의 휴무날조차 한번도 쉬어보지 못하고, 정말 바보스럽게 살아오다 보니, 또 별 관심도 없어서, 필자는 괴벽으로 그 해 은경축 행사도 사양하고, 파티마 성지순례로 대신하고 귀국하였는데, 평화방송 편집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다른 동창신부님들은 교우님들과 회장님들의 정성과 작전계획(?)에 굴복하여, 안 하기로 한 은경축 행사를 하였는데, 변신부님 혼자서만 빠졌으니, 그 벌로서, 서품 25주년 기념 기자 인터뷰에나 응해 달라는 것이었읍니다. 대담은 원종배 아나운서 맡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작된 것이,[님따라 한평생을!] 프로그램 속에 끼어, 만들어,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가도, 한줄기 혜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를 주제가로 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20 여년 만에 최근 직원들이 자료 정리하다가 끄집어내어 먼지를 털어, VHS를 CD로 고쳐서 재생하여 보니, 내게도 저렇게 젊은 날이 있었나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러나, 몸은 늙어 아주 달라졌어도, 끝에 가서 물음에 답한, 박물과 건립과 평신도신학 대학 설립의지는 지금도, 아직도, 변함없이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읍니다.
 
사제양성하는 대신학교 하나를 세워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인력과 재력 그 이상으로,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평신도 신학대학]설립과 운영에, 교회는, 특히 각 교구는 최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여, 하느님의 종 이벽, 이승훈, 권철신, 권일신, 복자 정약종, 김범우, 황사영, 강완숙, 같은, 한국천주교회 창립 초기의 우리 신앙의 성조들 같은 평신도들을 무제한 계속하여 배출하여야, 아시아의 복음화가 힘차게 진척될 것이며, 나아가 세계 교회 부흥(Rehabilitation)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프로테스탄의 모든 대신학교는 우리 가톨릭 편에서 보면, 모두 [평신도신학대학]이라고 할 수도 있읍니다.
 
그제나 이제나 변함없는 생각은,적어도 평신도신학대학 수가 사제양성소의 신학대학 수보다 훨씬 더 많아야만 정상적인 튼튼한 천주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자주 생각해보는 것이,그제나 이제나 필자의 변함없는 일념입니다.

1971년 가톨릭대학 신학부 제21회 졸업사진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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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4
입력 : 2016.12.05 오전 12: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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