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자 글이오, 글이자 맘인데,,,,!-서창제 교수 론-.
우리가 대신학생 철학과 때(1966년), 매주 2시간씩 배우는 국어 과목은 그 당시 저명하신 서창제 교수님이 맡아하셨다. 서 교수님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우리 가톨릭대 신학부의 국어 전문 강사였으며, 한글학회 회원으로서 국어학에는 아주 박학하신 분이었고, 예배당 장로님으로서 천주교로 改宗하신 분이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 옛날 신자들의 성교 공과(聖敎工課, 즉, 요즘 신자들의 기도서를, 오늘의 가톨릭기도서로 대폭 개편,혁신하는데도 참여하여 一助를 하셨다.
강의시간에는 종종, “말이자 글이오, 글이자 마음인데,,,!”라는 말씀을 매우 자주 하셨다. 사람이 하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의 글을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글을 읽어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용인본당 신부로 12년간 농촌개발에도 주력하시면서, 우리말 古語와 말 뿌리(語根) 형성 과정 연구에 취미를 가지셨던 김효신 신부님은, ‘말’이란 ‘모아 얼’에서 ‘마아 얼’이 되고, ‘말’이 되어 온 것이고, ‘글’이란 ‘그리 얼’에서, ‘그려 얼’이 되어, ‘글’이 되어 왔다고, 先史時代의 悠久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겨레의 언어형성 과정에 대하여, 본당 신학생 우리들에게 매우 자주 말씀하셨다.
즉, 사람들의 얼(精神)을 모아놓은 소리가 ‘말’이며, 사람들의 얼을 그려놓은 것이 ‘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글을 읽어보면 그 사람의 정신을 알 수 있고,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사실이 그렇다. 말과 글은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들어내는 소리이며 글씨다
오늘날, TV와 인터넽, 사람들의 대화와 저서들을 보면, 이 시대 우리 사회 구성원들 중에 얼마나 못된 마음과 고약한 정신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오늘날 우리들의 말과 글에서 아주 밝히 들어나고 있다. '어떻게 차마 그런 말을 할 수 있으며, 그런 글을 어떻게 쓸 수 있단 말인가?', '그 사람이야 그런 말을 하고도 남지 !, 원래가 그런 사람이 아닌가?'. 더구나 너무 잔인하고 끔찍하며 기가 막히는 현장까지 연거퍼 重複 관람 교육의 효과를 내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우리 말을 망치고, 우리 글을 못쓰게 만드는 것은 바로 저 몇몇 함량미달의 사람들 패거리에서 선전과 선동과 교육과 조직화로 나날이 확장하고 있는 低質 惡心의 發露라고 직감하게 된다.
정신적인 중증 전염병을 앓고 있는 이 시대 우리의 말과 글, 지성인들의 言語와 文章을 淨化해야, 사회와 가정과 우리들 자신이 淨化하고 聖化할 것이다. 良心과 常識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良識있는 국민들의 얼과 말과 글은 法律書들의 근본 바탕을 이루고 있어서, 법 규정을 보완하며, 그러한 良識人들은 立法人들과 司法人들 못지 않게, 또한, 企業人들이나 國家守護에 전념하는 將兵들의 국방의무 수행에도 의지가 되고 원동력이 되는 根幹이라 아니할 수 없다. 美 .英.을 비롯한 이른 바 선진대국의 國力은 軍事力이나 경제력 그 이상으로 국민들의 意識과 良識 수준에 있는 것이다.
Msgr. By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