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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의 이덕조 애도시(楚亭 朴齊家 作 李德操 蘖 哀悼詩)와 이벽 성조 시복시성.

글 :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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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의 이덕조 애도시(楚亭 朴齊家 作 李德操 蘖 哀悼詩)와 이벽 성조 시복시성.

-정약용의 [友人 李德操 輓詞]와 더불어 박제가의 [李德操 蘖 哀悼詩]는 이벽 성조 시성 후, 전 세계 미신자들의 자진 입교 위한 주보 선정의 유력한 Fama 공증 자료-
 
譯述 서론
 
[李德祖 檗]의 漢字가 '李德操 蘖', 등으로 종종 相異하게 쓰여지고 전해져 오고 있으나, 이벽성조시성위원회에서는 이벽 성조 자신의 친필로 기록된 자신의 이름,‘檗’과, 이벽 성조의 부모 형제들 생존시에 편집 발행된 목각본, 문중 족보의 李德祖 와, 이벽 성조 묘에서 발굴된 誌石에 새겨진 [李檗]으로 바로잡아 통일하여 쓰고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그러나 박제가와 정약용의 문헌에 나오는 문헌상 기록은 여기서 원문 그대로 쓰고자 하였읍니다.-
 
초정 박제가(朴齊家, 1750~1803)는 正祖 때 영의정 번암 채제공과 靑 나라를 몇차례 드나들며, 중국의 저명한 지성인들과도 교분을 나누던 北學派의 대표적인 학자다. 학술적 분야에서 당대 문예와 사상 전반에 걸쳐 北學派의 중심에서 지대한 공헌을 한, 조선의 대표적인 석학이었다. 박학다식한 초정 박제가는 同時代 不世出의 名臣 文度公 요한 정약용 선생에게도 사상과 학문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학자적인 문학가이기도 하다. 특히,박제가의 시문들 중에는 포천, 내촌면 奉先寺와 楊根 葛山에 들려서 머물며  지은 것들도 있는데, 봉선사는 이벽 성조의 아버지 집이 있는 포천, 화현리와 서울 자택과 향저가 있던 두미와 마재 누님 댁을 오고 가는 중간으로, 박제가가 어려서 독서하던 봉선사나, 권철신네 5형제의 생장향으로 서당이 있던 楊根 葛山에 와서 머물며 지은 詩文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연구과제를 주고 있다. 더욱이 이벽 성조께서 상천도를 지어 봉선사 춘파대에 기증하였다는 니벽전의 기록과 연결해볼 수도 없지 않다.
 
만사(輓詞)나 애도시(哀悼詩)는 주로 절친한 知人들 사이에서만 자연스레 짖게 되는 것이니, 광암 이벽 성조와 초정 박제가의 관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그의 李德祖 哀悼詩로 우리는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만사나 추도사나 애도시는 대부분 亡人의 장례식에 참석하거나 문상하면서 弔問 전후에 짖게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때로는 亡人의 訃告를 늦게 받거나 死亡과 장례 후 여러 날이나 여러 달이 지나서야 소식을 뒤늦게 접하여 짖는 경우도 없지 않다. 적어도 당대의 저명한 학자요 名人이었던 박제가 저작물의 많은 문헌 중에 겨우 4편밖에 없는 애도시 4편 중에 이벽 애도사를 詩로 남겼다는 것은, 이벽 성조의 出衆한 인격과 고매한 품위와 해박한 학식이 당대 조선을 대표하던 석학들로부터도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었으며, 당대 제일의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수준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매우 희귀한 시문이다.
 
광암 이벽 성조(1754~1785)보다 8세 年下의 후배이며 제자인 文度公 요한 丁若鏞(1762~1836) 作 [友人李德操輓詞]와, 이벽 성조보다 4세 年上의 선배이며 學兄인 楚亭 朴齊家(1750~1803) 作의 [李德祖 檗 哀悼詩]는 그 내용과 체제와 성격, 등에 있어, 그 차원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러나 박제가와 정약용의 李檗 聖祖 輓詞와 哀悼詩에 쓰이고 있는 어휘(語彙)들을 보면, 뜻밖에도 一脈相通하는 부분이 면면이 적지 않음도 엿볼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벽 성조 만사나 애도시는 이 2편 뿐이며, 저자들의 인격과 지위로 보아, 앞으로 이벽 성조의 시복시성을 위한 존경과 명성(Fama) 방증 자료로 크게 기여할 것이다. 또한 한국천주교회 창립성조 하느님의 종 이벽, 권일신, 이승훈, 권철신과 복자 정약종, 5위 시성식은 로마에서 거행될 것으로 전망되며, 생각보다는 속히 이루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제가의 [李德操 蘖 哀悼詩]와 [정약용의 友人 李德操 輓詞]는 저자들의 인격과 지위와 당대나 현대나 그 名聲으로 보아서, 이벽 성조 시성의 Fama 방증 자료로, 또 세계 모든 미신자들의 자진 입교를 위한 주보와 모범으로 선정,선포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을 의심치 않는다.

다만 국내 일부 성직자들이 금년 방한하신교황님의 첫 강론, [기억 지킴이, Guardians of Memory]에 대한 말씀을 들었으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기억상실증에서 깨어나야 하겠지만, 전 세계 교회와 신도들이 천진암의 이벽성조와 그 동료 선조들을 향하여 존경과 찬미가 천지를 진동시키더라도, 영영 그 아둔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 종내에는 하늘의 섭리가 안배하실 것이며, 아직도 예수님을 거부하는 유태인들의 후손들이 이 땅에도 나타나지 않을까 염려된다. 후학들 중에 이 2편 만사와 애도시에 관한 집중 연구가 있기를 권고하며 기대하고 싶다.
 
박제가의 이벽 성조 애도시문은 주경야독하는 김학렬 신부가 홍대용 문헌을 뒤지다가 그 문하생이었던 박제가가 쓴 이벽성조 만사(애도시)를 보고 필자에게 알려주어, 정유각집에서 처음 대하게 되었으나, 옛 기억을 더듬어보니, 약 30 여년 전, 某 儒學人이 박제가도 이벽선생 만사, 즉 애도시를 썼다고 필자에게 알려준 생각이 난다. 그러나 그 때 필자는 정약용 선생의 友人李德操輓詞 만을 중요시하고, 박제가의 애도시문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몇차례 읽어보니, 비록 난해한 귀절이 적지 않지만, 그 추모시를 통하여, 박제가의 심중에 자리하고 있는 광암 이벽 성조의 위대한 다른 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독자에 따라, 이해와 소감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時代差와 언어문화의 실로 相異한 격차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아, 문학적인 정확한 번역은 전문 학자들의 번역문을 참고하도록 알리며 미루는 바이며, 우선은 대강의 뜻이라도 짐작해볼 수 있도록, 詩文으로라기 보다도,단순한 譯述文으로 옮겨보았다. 그런데 난해(難解)한 文句도 음미하며 표현하여 보느라고, 과도한 誤譯의 한계까지 넘나들지 않았나 우려된다. -譯述者-
 
楚亭 朴齊家 作 [李德操 蘖 哀悼詩] 의 原文
 
晉人尙名理。淸譚亂厥世。진인상명리, 청담난궐세
德操議六合。何嘗離實際。덕조의육합, 하상이실제
匹夫關時運。破屋志經濟。필부관시운, 파옥지경제
胸中大璣衡。四海一孤詣。흉중대기형, 사해일고예
物物喩性體。形形明比例。물물유성체, 형형명비례
鴻荒諒未開。名言孰相契。홍황양미개, 명언숙상계
天風吹鸚鵡。翻成出籠計。천풍취앵무, 번성출농계
遽廬罷殘夢。靑山葬靈慧。거려파잔몽, 청산장영혜
春秋不暫停。万化無非逝。춘추부잠정, 만화무비서
高嘯送飛鴻。乾坤暗雙涕。고소송비홍, 건곤암쌍체
 
간결히 시도해본 의역문(意譯文)
 
진(晉) 나라 사람들은 名理를 찾고, 춘추전국 난세에 淸風名言 외쳤었지!
德操는 上下,先後,左右, 萬人과 대화하고, 어찌 이렇듯 일찍 현세를 떠나오?
필부(匹夫)로 만나는 時運에 매여서도, 집안일 뒤로하고, 濟民 經世에 뜻을 심었지!
天上天下 온 宇宙 가슴에 품고, 온 누리에 그대 홀로 드높이 오르더니,
萬有와 萬物의 바탕과 類別따라 서로 모두 견주며 풀어 밝혔었지!
넓고 험한 거친 벌은 아직 未開拓인데, 이제 누가 무슨 말로 매어 묶어 모으랴?
하늘 바람이 앵무새들 깃털 흔들면, 장을 빠져나가려고 꾀 내어 누어서 매달리며 나가듯 ,
머물던 움막에서 못 다 이룬 꿈마저 깨고서, 미련없이 떠나 버리며,
그 영특한 지혜마저 靑山에 파묻고 가버리네 그려 !
봄가을 세월은 잠시도 쉬거나 머물지도 않고 흐르니,
만물의 造化에는 죽어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 없다네!
드높이 나르며 울며 가는 저 기러기, 휘파람 소리같은 울음 속에 보내노니.
하늘과 땅도 한쌍 되어, 소리없이 哭하며 속으로 참 눈물 흘리고 있네.
 
이해를 돕기 위해 풀어서 시도한 역술문(譯述文)
 
진(晉) 나라 사람들은 언제나 유명한 道理를 앞세우고 나가면서, - 晉人尙名理, 진인상명리
淸明한 道理를 밝히어 春秋戰國의 亂世를 비추고자 하였었지, - 淸譚亂厥世 청담난궐세
 
德操는 上下 左右 先後 모든이와 差別없이 對話하였었는데, - 德操議六合, 덕조의육합
어찌 이처럼 일찍 實存의 現世를 버리고 떠나간단 말인가? - 何嘗離實際 하상이실제
 
필부(匹夫)로서 으레 맞이하는 運數에 매여 있으면서도, - 匹夫關時運 필부관시운
집안 일 파하여 뒤로 하고, 濟民 經世에 뜻을 두웠었지! - 破屋志經濟 파옥지경제
 
온 宇宙, 天上天下 가슴 속에 모두 품고 함께보던 眼目은, -胸中大璣衡 흉중대기형
東西南北 온 누리에 혼자서 외로이 드높은 境地에까지 올랐었도다.- 四海一孤詣 사해일고예
 
萬物의 本性과 實體를 直觀하여 말하며, - 物物喩性體 물물유성체
萬有의 類別까지도 서로 견주며 그 의미와 가치를 밝혔었도다. - 形形明比例 형형명비례
 
광활한 거친 벌은 아직도 거의 다가 손도 못 댄 未開拓인데,- 鴻荒諒未開 홍황양미개
뉘 있어 그 어떤 유명한 말로라도 모두를 서로 묶어 모으리오? -名言孰相契 명언숙상계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앵무새들에게 닥치면, 天風吹鸚鵡 천풍취앵무
새들은 거꾸로 몸을 뒤집어 새 장을 빠져나갈 꾀를 내어 나가듯이.- 飜成出籠計 번성출농계
 
머물던 움막에서 못 다 이룬 남은 꿈마져 깨버리며 미련없이 떠나, - 遽廬罷殘夢 거려파잔몽,
그대는 그 神靈한 智慧를 靑山에 파묻고 가는도다.! - 靑山葬靈慧。청산장영혜
 
봄 가을 오고 가는 세월은 잠시도 쉬지도 머물지도 않으니, - 春秋不暫停 춘추부잠정,
萬物의 造化에는 죽어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 없다네. - 万化無非逝 만화무비서,
 
드높이 나르며 울며 가는 저 기러기를, 휘파람 소리에 보내노니, - 高嘯送飛鴻 고소송비홍,
하늘과 땅도 한 쌍 되어, 소리없이 哭하며 속으로 눈물 흘리도다! - 乾坤暗雙涕 건곤암쌍체.
 
天風吹鸚鵡。翻成出籠計 (천풍취앵무, 번성출농계). 이 문장에서, 出籠計는, 이벽 성조께서 운명 전, 집안에 감금되어 있었음을 박제가도 알고 있었다는 의미로 풀이하고 싶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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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
 
晉人尙名理와 淸譚亂厥世의 名과 亂은 현대문법 용어로, 형용사로 보고, 名詞나 動詞로 보지 않았다. 名山, 名所, 名唱,등에서나, 人名, 國名, 曲名, 등에서처럼, 또, 亂世, 亂場, 亂賊에서나, 民亂, 倭亂, 胡亂,등에서처럼, 名이나 亂이란 글자가 앞에 붙으면, 꾸미는 말로, 뒤에 붙으면 꾸며지는 名詞로 읽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때가 종종 있다.
 
진(晉)나라가 春秋戰國, 五胡十六國, 등 中原 천지가 부족마다 지역마다, 君雄들이 일어나서, '天下統一'이니, '救國濟民'이니, 하며, 혼란하고 어지럽던 시절, 설득력있는 유명한 논리나 주장이나 표어는 차고 넘쳤다. 그래도 선량하고 정직한 백성들은 진솔한 도리를 따르고자 하였었다.
 
靑山葬靈慧에서 靑山을 단순히 묘소 자리나 무덤을 뜻하는 文學的이며 道家的 차원에서 보기보다도, 靈慧를 펴지 못하고, 매장해두는 處所를 聯想하며 읽었다. 즉, 이벽 성조의 葬地(墓所) 표현의 靑山은 포천군 內村面 花峴里 新基洞에 있는, 父親의 집, 生家터 앞의 둘레가 논밭으로 된 낮은 언덕 같은 마을이 聯想되지 않고, 경기도 광주산맥 主峰, 鶯子山 아래 天眞菴 菴子 곁에 있던 李檗 讀書處를 쉽게 聯想하였으니, 이벽성조의 소년시절, 약 10여년 이상 隱居하며(1770~1784) 講學을 하던 山中 讀書處가 아주 자연스레 생각되었다. 丁若鏞도 天眞消搖集에서 몇차례 현장에 와서 머물며 지은 詩文에서 靑山이란 표현을 썼다.
 
특히, 이벽 성조 순교(1785) 후, 12년이 지난 丁巳年(1797년)에 정약용 승지가 천진암에 와서 묵으며 지은 詩에서는, '아직도 李檗의 讀書處가 저기 그대로 있네(李檗讀書猶有處), 풍류와 문채는 모름지기 신령한 경지(靈境)에 들어가서 해야지(風流文采須靈境), 그 시절 추억하며 한나절 내내 술 마시며 시를 읊어보네(半日行杯半日吟)' 하였다.
 
특히, 遽廬罷殘夢의 ‘오두막집에서의 남은 꿈마저 깨버리고’文句는, 이벽 성조의 天學思想과 天主敎 傳播 활동이, 한양 수표동에 있던 자택이나 부친의 개와지붕 큰 집보다는, 심산궁곡 靑山의 天眞菴 곁에 있던 李檗 성조의 隱居地, 讀書處에서나 가능할 뿐, 당시 온 누리 유림사회에서는 수용 불가능함을 염두에 두고 읊은 듯 느끼게 한다.
 
마지막 맺는 高嘯送飛鴻 乾坤暗雙涕에서, 기러기 날아가며 우는 소리에 하늘과 땅도 한 쌍이 되어 마음속으로(暗) 눈물 흘린다는 文句는 정약용의 友人李德操 輓詞 에서, 乘秋忽飛去 怊悵空勞人,(가을이 되어 문득 날아가시니, 애닲아 탄식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보다도, 하늘과 땅(乾坤)이 소리없이 속으로 함께 울며 눈물흘린다고 표현하고 있어서, 이벽 성조의 죽음을 하늘과 땅이 슬퍼함을 표하고 있다.
 
 '하늘과 땅도 내색하지 않고 함께 속으로 울며 눈물짖는다(乾坤暗雙涕)'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임금이나 혹은 비슷한 수준의 위인의 죽음에 대해서나 주로 사용하는 표현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天地 라는 말과 건곤(乾坤)이라는 용어의 차이를 감안해야 하고, 하늘과 땅이 함께 소리없이 내색을 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운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임금이나 혹은 임금에 준하는 위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데 주로 쓰이는 단어로서, 凡夫들이나 웬만한 인물의 서거(逝去)에는 쓰지 않는다. 기껏해야 하늘의 많은 별들 중 하나인 큰 별이 떨어졌다든가, 땅의 일부인 큰 산이 무너졌다고 할 정도다. 예컨데, '天地 를 진동하는 독립의 함성'이란 표현은 한문의 뉴앙스에 잘 맞지만, '乾坤을 진동하는 대포 소리'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주자의 性理書에, 건칭부곤칭모(乾稱父坤稱母,,,同胞也), 등에서 잘 알 수 있다.
 
- 이상 卞基榮 譯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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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若鏞의 友人李德操 輓詞 -1785년 乙巳年, 李檗 聖祖 葬禮에서, 丁若鏞 당시 23세-
 
仙鶴下人間 軒然見風神 선학하인간 헌연견풍신
羽翮皎如雪 鷄鶩生嫌嗔 우핵교여설 계목생혐진
鳴聲動九霄 嘹亮出風塵 명성동구소 료량출풍진
乘秋忽飛去 怊悵空勞人 승추홀비거 초창공로인
 
神仙 나라 학(鶴)이 인간세상에 내려오사, 우리가 神의 풍채를 보았었네.
희고 흰 날개와 깃털, 눈같이도 하얗더니,
닭과 오리 떼들 샘내며 골부리고 미워했었지.
울음소리 九重天을 진동시키고, 외침소리는 풍진 세상에 출중하셨었지.
어느덧 가을되어 문득 날아가시니, 애닲아 탄식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 이상은 卞基榮 譯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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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 박제가(楚亭 朴齊家) 저작, 李德操 蘖 哀悼詩
 
<퍼온 글>
진인(晉人)은 명리를 숭상하여서, 晉人尙名理
청담으로 그 시대 어지럽혔지, 淸譚亂厥世
덕조는 천지사방 논의했으니, 德操議六合
어찌 실제에서 벗어났으리. 何嘗離實際
필부로 시운(時運)에 관심을 두고, 匹夫關時運
파옥(破屋)에서 경제에 뜻을 두었지, 破屋志經濟
가슴 속에 기형(璣衡)을 크게 품으니, 胸中大璣衡
사해에 그대 홀로 조예 깊었네. 四海一孤詣
사물의 본성을 깨우쳐주고, 物物喩性體
형상의 비례를 밝히었다네, 形形明比例
몽매함이 진실로 열리지 않아, 鴻荒諒未開
이름난 말 그 누가 알아들으랴, 名言孰相契
하늘바람 앵무새에 불어오더니, 天風吹鸚鵡
번드쳐 새장 나갈 계획 세웠지, 翻成出籠計
오두막집 남은 꿈을 접어두고서, 遽廬罷殘夢
푸른 산에 그 지혜를 파묻었구려, 靑山葬靈慧
세월은 잠시도 쉬지 않으니, 春秋不暫停
만물은 떠나가지 않음이 없네,萬化無非逝
긴 휘파람 기러기 전송하면서, 高嘯送飛鴻
천지간에 남몰래 눈물 흘리오, 乾坤暗雙涕
 
⑲번부터 이상의 초정 박제가 저의 [李德操 蘖 哀悼詩] 번역문은, 정유각집 상권-박제가 지음, 정민 외 6인 옮김( 2010년 '돌베개' 펴냄)에서 퍼온 것입니다.>
입력 : 2014.09.17 오후 11: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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