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암 성지에서 경축하는, [한국천주교회 창립] 기념행사 거행의 내력
기념일이 없으면 기념해야 할 인물과 그 업적과 功德도 잊어버리게 되기 쉽고, 아주 잃어버리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안중근 의사 묘도 잃어버렸고, 聖 김대건 신부 아버지 聖 김제준 묘도, 강완숙 골룸바 묘도 잃어버렸습니다. 묘까지 잃게 되면 그 분들의 정신과 덕행도 잊어버리게 되며, 소홀히 하거나, 역사가 잘못 와전되기도 하며, 이름 석자조차도 우리 기억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돈이나 명예나 세력을 잃은 것보다 훨씬 더 큰 손실입니다. 광암 이벽성조의 묘도 잃어버렸었습니다.
200여 년간 한국교회가 잊어버리고, 잃어버렸던, 한국천주교회 창립의 主役 광암 이벽성조(1754~1785)의 묘를 기적적으로 찾아서, 교계와 학계와 문중의 종손들과 함께 확인, 발굴하여, 1979년 6월 24일(주일) 오전 11시에, 서울 명동 대성당에서, 한국인 최초의 주교요, 최초의 대주교인 노기남 대주교와, 역시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인 김수환 추기경과 사제들의 공동 집전으로, 성대한 이장미사를 바치고 나서, 한국천주교회 발상지 천진암 터에,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 집전으로 하관예절을 마치던 날, 우리 참가자들은 모두 감격한 나머지, 생일도 선종일도 밝혀지지 않아, 아무런 기억하는 날이 없었던 이벽성조의 본명축일(세자 요한)이며, 이장일이기도 한 이날을 우선 임시 기념일로 정하여, 매년 모여서, 작은 정성이나마 두 손 합장하고 기도하며 祭酒 한잔이라도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계속하여 이승훈, 정약종, 권철신, 권일신, 등 한국천주교회 창립성조들의 묘역시 너무나 부끄러운 상태로 방치되어, 失墓 위기에 처하였으므로, 종친들의 확인과 주선으로, 천진암 터 이벽 성조 묘 옆에 자리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생일이나 기일 같은, 기억하는 날 조차 없어서, 모두 함께 기념하는 날을 정하기로 한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천주교회 창립의 기초와 기둥 역할을 하신 분들이므로, [한국천주교회 창립기념일] 제정, 경축을 시도하게 되었고, 이렇게라도 한국교회 뿌리를 살리고, 올바로 정립하고 잊지 않기 위하여, 기념일 제정 경축을 위하여, 당시 분야별 사계의 전문 석학들이 나섰으니, 교회법상 문제 검토는, 유영도 신부(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에서 신학, 철학, 교회법, 3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신학교에서 교회법 교수)가 맡고, 역사학적인 문제는 서울대학교의 유홍렬 교수가 맡고, 갖가지 용어 문제는 국어학자인 서울대학교의 이숭녕 교수가 맡았고, 천주교회 내부 사목행정상 문제검토는 관할교구장 김남수 주교가 맡았습니다.
마침내, 1981년 6월 24일, 천진암 성지의 우리 신앙 선조들 묘 앞에서, 당시 교황대사 Luciano Angeloni 대주교, 노기남 대주교, 사계의 학자들과 원로사제들이 함께하는 미사 중에, 우선 수원교구 관할인 천진암 성지에서만이라도 잊지 않고, 우선 한국교회 창립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6월 24일을, 임시, [한국천주교회창립기념일]로 경축하도록, 교구장 김남수 주교 집전의 제정 선포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 날, 역사적인 행사 주례자 교황대사의 예절담당 보좌임무는 당시 이용훈 신부(현재 수원교구장 주교)가 맡았습니다.
전국 교회가 동시에 함께 하기 위해서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리라고 믿고, 우선 어디선가 누군가가 시작해야만 한다고 의견을 모았으며, 다른 교구나, 본당이나 교회 기관에서는 그들 나름대로 사정에 따라서, 적당한 날을 택하여, 우리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공덕을 기리며, 업적을 찬미하는 날을 마련해보도록 제안하면서, 우선 우리부터 천진암에서 먼저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교회언론들(가톨릭신문 사설, 등)에서도 긍정적으로 지지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해마다 잊지 않고 계속하여, 금년으로 33년째 기념하며 경축하고 있습니다. 전국 교회가 함께 다 같이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그리 짧지 않은 세월이 흘러야만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성탄절이 12월 25일로 확정되어, 온 세계가 함께 하기까지는 수세기가 걸렸지만 아직도 날짜의 통일이 덜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우리들 만이라도], [우선 우리 시대에서 만이라도}, 우선 교구장 주교의 인준과 선언이 가능한, [수원교구 천진암 성지에서 만이라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한국천주교회 창립기념일 경축은, [乙巳年(1785) 박해기념일], [辛亥年(1791) 박해기념일], [乙卯年(1795) 박해기념일], [辛酉年(1801) 박해기념일], [乙亥年(1815) 박해기념일], [丁亥年(1827) 박해기념일], [己亥年(1839) 박해기념일], [丙寅年(1866) 박해기념일], 또 아직 시복?시성되지 않은, [황사영 기념일], [강완숙 기념일], [김범우 기념일], 등의 제정으로 이어져, 우리 선조들의 피로 물든 역사와 성덕이 조금이라도 덜 잊혀지고, 더 기억되어 전승되도록 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일반 사회의 가정마다 시복?시성되지 않은 조상들을 기억하는 기일이 있어서, 묘 참배나 제사도 매년 바치는데, 언제 될지 모르는 시복 시성만 기다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프랑스의 쟌 다크는 1450년대 死刑 후, 1920년대에 와서 시복?시성되기까지, 500여 년 동안, 또 독일 게르만 민족의 사도, 보니파시오 대주교도 754년경 순교한 후 1820년대 와서 시복?시성되기까지, 1000 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념경축은 물론, 기념성당, 기념물 건립 등은 활발히, 꾸준히 계속되어 왔습니다.
한국천주교회 창립성조들을 위한 별도의 기념 경축 계획이 아직 없는 교구나 본당이나 교회기관에서는 천진암 성지에서, 초교구적으로 거행되고 있는, [한국천주교회 창립기념행사]라도 오시어, 자리를 함께 하며, 함께 경축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신앙선조들, 특히, 자발적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피를 뿌려가며 우리나라 천주교회를 세워주신 창립성조들의 공덕에 감사드리며, 그 정신과 덕행과 업적을 오늘에 되살리고, 내일에 전승하는, 오늘의 이 기념행사에 함께하는, 새 역사의 주역이 되어 주시기를 청하는 바입니다.
한국천주교회창립기념일 제정 선포문: [한국천주교회의 창립 200주년을 맞이하여, 200년 전 창립성현들의 정신과 위업을 본받아, 오늘의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이를 되살리며, 내일의 우리 후손들에게영원히 전승시키기 위하여, 한국천주교회 창립기념일을, 임시 6월 24일로 제정하며, 해마다 경축하기로 선포합니다]. <1981년 6월 24일. 한국천주교발상지 천진암성역화위원회 총재 김남수 주교>
한국천주교회창립기념일 제정 선포식 개회사: [200년 세월이 흘러갔습니다./배달겨레 스스로 싹티운 교회가,/ 피를 뿌리며 자랐습니다./ 목숨을 바치며 살아왔습니다./ 죽음을 안고서 박해를 견디며, 달려 왔습니다./ 돌아보면 발자욱마다 피로 물든 200년 지나온 길이,/ 이제사 경축의 기념일을 내게 되었습니다./ 옷깃을 여밉시다./ 마음을 가다듬읍시다./ 뜻을 모아 함께하며,/ 자손만대에 길이 전승시킬 자랑스러운 기념일,/한국천주교회창립기념일 제정과 선포와 경축을,/ 환호하며 시작합시다.] <1981년 6월 24일. 한국천주교발상지 천진암성역화위원회 위원장 이숭녕 박사> <교회법 학자 유영도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창립기념일 제정사]는 다음 기회에 소개합니다. 2011년 5월 15일, Msgr. By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