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15세, 993년에 역사상 최초로 諡聖式을 거행 천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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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諡福式과 諡聖式 구별이나 차별이 없어서, 福者나 聖人의 칭호도 함께 混用하였으며, 993년에 로마 라테란 대성당에서 주교회의 도중에 요한 15세 교황이 독일 Augsburg의 Ulrich 주교를 聖人으로 선언한 것이 천주교회 역사상 최초의 시성식이었다. 그 때까지 천년 동안 천주교회에는 시복식이나 시성식이 없었다. 성모 마리아도, 사도 베드로와 주님의 제자들도, 아우구스띠노와 암브로시오 대주교도, 위대한 학자 敎父들도 시성식을 하지 않았으나, 온 교회가 모두 聖人들로 추대하고 공경하였다.
1512년에 와서야 Julius II세 교황이 비로서 시복식과 시성식을 차별하기 시작하였고, 1600년대 들어오면서 Urbanus VIII세 교황은 시복과 시성을 교황령으로 구분하여 확정하였는데, 1750년대에 Benedictus XIV세 교황이 오늘날과 같은, 天主의 종(Servus Dei), 可敬者(Venerabilis), 福者(Beatus), 聖者(Sanctus), 등의 차별과 시복 시성 절차와 규정도 아주 법제화하였다. 앞으로도 천주교회는 시복 시성에 있어서 대상이나 절차나 범위, 등에 다소간의 보완적인 개정이 있을 수 있다. 마치, 교회법의 규정이 부분적으로 종종 일부 조항의 새로운 制定이나 改定이나 廢止나 寬免, 등이 있는 것과 같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신도들 司牧에 있어서, 시복 시성 제도를 통하여 거룩히 살다가 거룩히 죽은 순교자들이나 신앙 證據者들을, 모든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공경하며 본받게 하기 위하여 시복 시성 제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시복이나 시성에 있어, 때로는 時代的 先後가 맞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컨대, 754년에 순교한 Bonifacius 대주교는 로마와 독일에서 모두, 수세기 동안, ‘독일의 使徒(Apostolus Germaniae)'로 존경하여 왔는 데도, 死後 1,200여년이 지난 후, 1820년대에 와서야 시복, 시성되었고, 프랑스의 Jeanne d'Arc은 1431년에 魔女로 몰려 19세에 火刑을 당하였으나, 1900년대에 들어와서 시복시성 되었는데, 훗날 교황 비오 XII에 의하여 프랑스의 主保 聖女로 추대되었다.
오늘 한국 103위 순교 성인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 신자들은, 103위를 시성하여 주신 大敎皇 요한바오로 2세의 聖恩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시성 이전보다 훨씬 더 뜨거운 열성으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을 공경해야만 하겠다. 동시에 비록 아직 시복이나 시성의 절차를 마치지 않은 우리 선조들에 대한 존경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925년 79위 순교자들의 시복식 그 이전에도, 우리 선조들은 김대건 신부와 정하상 회장, 등을 존경하였듯이, 또, 한국의 모든 가정에서 온 국민들은 시복 시성하지 않은 조상들을 공경하며, 설날이나 추석날이면 省墓하듯이, 한국천주교회 신앙의 선조들에 대한 예의와 공경심을 가일층 배가해야 할 것이다.
선교사나 성직자 없이, 자발적으로 천주교 진리를 탐구하고 실천하며, 복음을 선포한 李檗, 李承薰, 權哲身, 權日身, 丁若鍾, 등, 한국천주교회 創立聖祖들은 분명히 그리 멀지 않은 앞날에 시복 시성되실 뿐 아니라, 로마교회는 전 세계 非信者들의 入敎를 위한 주보와 모범으로, 또 전 세계 평신도들의 活動을 위한 주보와 모범으로 이 거룩하고 영웅적인 우리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을 추대하고 공경하게 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확신하며 기도하고 있다,<한국103위 순교성인 대축일에, 前 주교회의 103위 諡聖推進部長, 卞基榮 몬시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