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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회 창립사

Church history in Korea

저녁죽 먹으라는 북소리, 놀던 옛 동무 생각 ,-丁若鏞

글 :  천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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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若鏞 선생은 1827년 丁亥年 65세 되던 해 늦은 봄, 마지막으로 천진암을 찾아와서, 어릴 적 천진암에서 공부하던 時節을 추억하며, 현장에서 많은 詩를 읊었다. 그 중에 한 두 귀절을 소개한다-


저녁 죽 먹으라고 치던 북소리,
해질력 그 때 놀던 옛 동무 생각나네.<粥鼓斜陽念舊游>

지금 다시 그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가서,
그 때처럼 또다시 살아볼 수는 없네그려! <前?凄迷不可求>

禪房에서 瞑想하던 李檗, 李承薰, 모두가 세상을 떠났으니,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저 옛 親舊들을 구해올 수 있으리오!<禪房無處舊人求>

바위돌 사이 사이로 난 실같은 이 오솔길은<石徑細如線>
그 옛날 오르내리며 내가 어려서 놀던 곳이지 !<昔我童時遊>


* 漢文에서 [童]이라는 글자는, 10세미만을 뜻한다. 11세부터는 少年이라고 하며,
장가를 들기 시작한다. 정약용 선생이 15세에 장가를 들었는데, 형들이 3명이나 되어 한두해 지체된 편이다.


天眞菴 ! 이곳은 한국천주교회 창립주역 이벽 성조께서, 1770년부터 1784년까지 학업과 修道에 전념하던, [李檗 聖祖의 讀書處]와 講學堂, 天學道場이 있던 곳으로, 1777년경부터는 이승훈,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권상학, 김원성, 이총억, 등 젊은 선비들이 모여 함께 天學을 연구 실천하였으며, 1779년 겨울 강학 때는 권철신 같은 당시 저명한 학자들도 참석하는, 천주교 교리연구와 실천의 講學會도 종종 열어서, 학문적 수준에 있던 天學(天主敎)을 종교적 신앙차원으로 승화시켜, 천주교 기도와, 십계명 준수를 위해 음력으로 주일을 제정하고 지키는, 천주교 신앙수련의 道場이 있던 곳이다.

이벽 성조께서는 천진암 天學道場에서 젊은 선비들에게, 新敎之說, 즉 天主敎를 가르치고, 天文學, 地理學, 數學, 曆學, 幾何原本 같은 新學問도 가르쳐, 여기서 이벽 성조께 공부한 丁若鏞 선생은 훗날 正祖 임금을 도와 우리나라 문예부흥과 근대화를 위하여 크게 공헌하였으니, 이곳은 정약용 선생이 주로 10세 前後부터 20세 前後까지 자주 와서 머물고, 늙어서는 65세 때에도, 찾아와 며칠씩 머물던, [丁若鏞 선생의 母校]이기도 하다.

젊은 선비들이 모여서, 이벽 성조를 웃어른으로 모시자(爲上), 이벽 성조께서는 門下生들에게 聖敎要旨를 지어서 받아쓰게 하셨고, 선비들은 天學 총림(叢林), 즉 천주교 신앙단체를 결성하였으며, 1783년 말에는 새로 改宗하여 入敎한 선비들과 합심하여, 북경 천주교회로 이승훈 진사를 자신의 대리자로 파견하였으며, 1784년 봄 2월에 영세하고 귀국하자, 그 해 음력 4월 중순 즉시 서울 수표동 이벽 성조 자택으로 본부를 옮겨, 傳敎 集會所를 차렸으니, 천진암은 바로 한국천주교회 신앙운동의 發祥地이며, 本據地요, 한국천주교회의 誕生地였다.

1785년 乙巳年 봄에는 수표동에서 明禮坊 김범우 통역관의 집으로 옮겨, 더욱 더 천주교를 전파하자, 한국 최초의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어, 1885년 말까지 100년간의 잔혹한 박해 중에도, 천진암에서 갓 태어나 서울로 올라간 한국천주교회는 피를 뿌리며 자랐으며, 목숨을 바치며 살아 왔으니, 여기서 출발한 젊은 선비들의 신앙단체가 오늘의 한국천주교회로 성장하는 데 있어, 천진암은 敎會 創立의 터전이 되었다.

이렇게 천진암 성지는 한국에서 천주교 신앙의 움이 트고, 천주교회 신앙생활의 싹이 돋은, 신앙의 고향이며, 사람과 장소와 思想에 있어, 儒 ? 佛 ? 天이 합류하여 새 宗敎史가 이루어진, 우리겨레 정신문화의 특징이고, 우리나라의 자랑이며, 한국천주교회의 뿌리요, 얼굴이다. <韓國天主敎會發祥地天眞菴聖地委員會>

참조 문헌 발췌

天眞菴記(端午日陪二兄游). 李檗讀書猶有處, 苑公棲跡杳難尋, 風流文采須靈境, 半日行杯半日吟(副護軍 丁若鏞, 1797년)

李檗之最先溺邪一世之也共知也(闢衛編, 李基慶, 1801)

被李檗者最是邪黨中巨魁 諸賊之招狼….若論邪黨之渠魁則李檗….(朝鮮王朝實錄, 1801)

昔在己亥冬, 講學于天眞菴, 走魚寺雪中, 李檗夜至, 張燭談經…. 權哲身 嘗於冬月, 寓居走魚寺, 講學會者 金源星, 權相學, 李寵億, 等 數人, 鹿菴自授規程, 令晨起?氷泉??, 誦夙夜箴, 日出誦敬齊箴, 正午誦四勿箴, 日入誦西銘, 莊嚴恪恭不失規度, 當此時, 李承薰亦?礪自强…. 嘗從李檗…. 李檗首宣西敎, 日身熱心從檗(墓誌銘, 丁若鏞, 1816)

天眞菴, 余蓋三十年重到也, 石徑細如線, 昔我童時游, 豪士昔講讀, 暗泉劣一線, 重來愴客心, 入山非喜佛, 寅緣慙講德, 書帙見隨陰, 禪燈廢少林, 尙書此燒鍊, 寺破無舊觀, 芬芳旣沈歇, 禪房無處舊人求, 前?凄迷不可求, 樓前寮舍半墟丘, 粥鼓斜陽念舊游, 三十年來重到客, 猶然苦海一孤舟, 我欲來此住, 無人示方便(天眞消搖集, 丁若鏞, 1827)

戊戌, 己亥, 曠菴 李檗周遊天下, 一到廣州, 鴛鴦山寺(天眞菴)隱居, 丁氏李氏 賢友賢士勉學, 天文, 地理, 醫學, 曆學, 數學, 幾何, 新敎之說, 等, 奇學多博, 道友衆徒如叢林, 聖敎要旨下筆(李檗傳, 丁學術, 1830)

天眞山 寺之遊….(丁學淵, 1850), 等.

Il embrassa la religion Chretinne et de concert avec quelques autres proselytes il envoya en 1783 a Peking un autre delegue egalemant nomme Y, mais d'une autre famille, pour prendre de plus amples informations sur cette religion sainte. Y s'adressa aux Missres. fraincais et en fevrier 1784 fut baptise, sous le nom de Pierre(P. Maubant, 1838)…."

C'etait en l'annee 1777(tieng iou). Le fameux docteur Kouen T'siel sin-i, accompagne de Tieng Jak Tsien-i et plusieurs autres nobles studieux et amateurs de la science, se rendit dans une pagode pour s'y livrer ensemble a des etudes profondes…. Une arrivee si etrange repandit la frayeur parmi les habitants de cet edifice isole et perdu dans le sein des montagnes…. “L'histoire proprement dite commence aux conferences de Ni Pieki. Les grandes conferences de Ni Pieki(A. Daveluy 1850).”

In illo tempore, non nulli Doctores Coreani secesseerant in solitudinem…. inter eos eminebant Ni-Tek-Tso, cognominatus Pieki, Kuen-Tsiel-Sin-i, Tieng-Jak-Tsien et Tieng Jak Iong….ut statim suos mores divinis praeceptis conformare decreverint (1770).
(Compend. Histr. Pulo-Pinang, 1881).

In 1720…. The Korean Ambassador in Peking…. For fifty years(1770) after their importation of the books…. Then they were studied and debated by a small coterie of noble Koreans…. For thirtheen years he pondered over them…. At last, in 1783, Pieki…. to go on in Peking…. to confer with the priests…. and learn the ceremonies of their religion(Joseph H. Longford, 1911)….
입력 : 2012.03.02 오후 5:5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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