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훠르그리물러(Herbert Vorgrimler) 교수는 각국어로 번역된 그의 [새 신학 사전]에서 背敎에 관하여 매우 간결하면서도 아주 깔끔하게 정의하고 있는데, 영어나 다른 언어보다도, 이태리어 번역판(Nuovo dizionario teologico)이 우리에겐 더 이해하기 쉽다고 보며, 한국교회의 어제와 오늘의 사목과 교회역사와 순교선조 존경 문제를 당하여, 몇 면 안되는 것을, 몇줄로 요약해서라도, 우리 사제들은 한번쯤 읽을거리가 되는 논거라고 본다.
칼 라너(Karl Rahner) 신부의 자리를 계승하여, 뮌스터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전에도 이미 박사과정 학위논문 지도교수였던 칼 라너신부의 신학방향을 전승하는, 현대의 세계적인 敎義神學 대석학으로, 허버트 훠르그리물러 신부는 널리 알려져 있다(1969년, 필자가 Karl Rahner 신부의 모든 저서 번역출판 전권을 무상으로 받고서, Natur und Gnade와 Der Mensch von Heute und Religion을 먼저 번역하여 발행할 때, 그 때만 해도, 사실상 배교 문제에 관한 논술은 방법논상 함축적인 부분에서뿐, 정식으로 터놓고 다룰 수는 없는 처지였다. 지금은 사전에서까지 대석학들들이 배교를 공개적으로 다음과 같이 논술하고 있다.
“교회적인 이해 차원에서, ‘背敎’(Apostasia)라는 표현은, 한 때 意識的이고도 아주 충만한 자세로 신앙에 결속되어 있던 사람이 후에 자신이 지니던 그리스도적인 신앙을 의식적이며 全的인 자세로 거부하는 것이다(Apostasia,,, nella comprensione ecclesiale e il cosciente e totale rifiuto della fede crsitiana da parte di una persona che un tempo era giunta alla fede in maniera cosciente e piena.)."라고 훠르그리물러 교수는 밝힌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민족과 정신문명에 따라, 배교는 꽤 상이한 해석이나 이해가 있었으며, 그 개념과 의미가 조금씩 첨삭되면서 변천되고 발전(?)되어 왔다. 유태계의 율법포기 의미 경우를 비롯하여 사도들과 교부들의 시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또 여러 공의회를 통하여, 여러 가지 의미로 대동소이하게 사용된 말이었다.
그 중에, Dizionario Critico di Teologia나, 뮌스터에서 카알 라너 신부 중심으로 편찬한, Sacramentum Mundi에서, 특히, G.B.Guzzetti 교수는, 배교자에 관하여 좀 상세히 논술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의 모든 紀綱 실천을 단순히 포기하는 자들도, 엄밀히 말해서, 배교자들이 아니다(,,,But those who simply give up all pratices of the Christian life are not, strictly speaking, apostates.)"라고 쓰고 있다. 자신은 비록, 안하고 못해도, 배교는 아닐 수 있다는 뜻인지?
거짓말을 하거나, 주일을 못 지키거나, 하는 윤리적인 결함이나, 사목 현장에서 우리가 자주 보는 교우들의 신앙생활 태만이나 포기, 이탈, 등이 들어나더라도, 아직 ‘배교자’라고 여기지는 말아야 하겠다. 교회의 離脫者나 공동체를 背信하는 者나, 교회법규의 犯法者들과 背敎者는 좀 구별해야 하겠다.
이 문제로 한국교회는 우리 신앙선조들의 시복시성 행정에 있어서, 아직까지도 적지 않은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형벌의 고통을 참지 못한 형제들”, “본심에 없는 거짓말을 하였던 형제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나!
위에서 아주 간략하게 소개한 신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하여, 1984년 5월, 103위 시성 후, 한국주교회의 시복시성추진부에서는, 이미 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를 비롯한 새 시복대상 후보자들 명단을 문서로 전국 본당과 기관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몇차례 멈췄어야 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한국교회의 일각에서는 중세기 신학의 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한국교회 신학 발전 과정의 한 단면이라고나 할까? 분명히, Karl Rahner을 비롯하여,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문신학자들(Periti Concilii)이 세계 교회, 특히 오늘과 미래교회의 신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헌으로 교회는 한걸음씩 더 진정한 [천주님 백성의 공동체]로 발전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래서 Karl Rahner 신부는 말년에, 信經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 에다가 et in Ecclesiam,,,"이라는 표현을 종종 덧붙여 가며 설명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그래서 Karl Rahner 신부는 말년에, 信經을 이야기할 때,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에다가 et in Ecclesiam,,,"이라는 표현을 종종 덧붙여 가며 설명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배교의 올바른 의미에 관한 훠르그리물러 교수의 이 몇 줄을 읽는 우리자신이 누구든지간에, 순교자 알렉시오 황사영 진사나 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 같은 우리 신앙의 선조들을, 냉담자니, 배교자니, 하며 재판하는 드높은 판정관으로 자처하기 보다는, 저 어른들한테서 물려받은 주님의 신앙, 주님 때문에 겪는 수난과 순교의 신앙후예 중에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고 싶다. Msgr. Byon
칼 라너 신부의 [오늘의 인간과 종교] 번역 출판과 동시에, 그의 모든 저서에 대한 무상번역, 출판 전권을 받은 문서 사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