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진암 성지 개발에 헌신한 변기영 몬시뇰
“이벽 성조 묘 찾은 것이 사제 생활 중 가장 큰 보람”
평생을 창립선조와 천진암 성지 위해 투신
성지 건축보다 성지 정신 살리는데 힘쏟아
평생을 창립선조와 천진암 성지 위해 투신
성지 건축보다 성지 정신 살리는데 힘쏟아
▲ 변기영 몬시뇰
70년대. 아직 ‘성지’란 말이 쓰이지도 않았고 천진암 터에는 교회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던 때다. 그런 시절에 천진암 성지 개발을 위해 투신한 이가 바로 수원교구 변기영 몬시뇰이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30여 년. 변 몬시뇰이 천진암 성지를 개발하고 전담해온 이 세월은 단순하게 한 성지가 개발된 시기가 아니었다. 한국천주교회 발상지인 천진암 성지를 개발해온 시간은 곧 한국천주교회 창립사가 우리 손으로 다시 쓰인 시간을 의미했다. 변 몬시뇰은 28일 자로 원로사목자로서 천진암 성지 전담을 떠난다.
“제가 서품을 받던 당시에는 우리 손으로 연구된 우리 교회의 역사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외국 선교사인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를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이것을 바로잡아나가기 시작한 것이 창립선조의 묘를 찾고 천진암을 성역화해가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벽 성조의 묘를 찾아내고 천진암으로 이장한 것을 시작으로 정약종, 이승훈, 권일신, 권철신 등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 5위를 천진암 성지에 이장하고 끊임없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왔다. 그렇게 변 몬시뇰은 창립선조의 후손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창립선조의 묘를 찾고 자료를 수집했다. 그렇게 모은 자료 중 교회사적 가치가 있는 것만 해도 2000여 점이 넘었다. 그동안 한국천주교회 창립사에 대해 오해해왔던 많은 부분들도 이런 자료 발굴과 연구에서 해소돼왔다.
“이벽 성조의 묘를 찾은 것은 사제 생활 중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 중 하나입니다. 창립선조의 묘를 찾아 절이라도 해야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되지도 않는 일을 시작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옳은 일이고 사제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에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변 몬시뇰이 처음부터 창립선조와 천진암 성지를 위해 투신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변 몬시뇰은 신학생 때부터 책을 번역하는 일을 해왔고 30대 중반까지도 신비신학분야를 즐겨 공부했다. 성지 개발이나 토목공사 등은 취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관심조차 없는 분야였다. 다만 변 몬시뇰의 눈앞에 교회에 반드시 필요한 일들이 있었기에 사제로서 해나갈 따름이었다. 그렇게 30여 년 동안 천진암 성지를 개발해왔지만, 천진암 성지는 그 중요성과 큰 규모와는 달리 겉보기에는 특별히 개발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변 몬시뇰의 성지개발관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건물을 건축하는 게 성지개발이 아닙니다. 성지의 정신을 개발해야 합니다. 천진암 성지는 지금까지 어떤 수익사업을 해오지도 않았고 오직 신자들의 헌금 만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또 건축보다는 성지와 창립사적 자료·유물을 매입, 연구해 성지의 정신을 살리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변 몬시뇰이 해온 일은 천진암 성지 개발만이 아니었다. 1980년에는 주교회의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위원회 사무국장으로서 103위 성인 시성 추진과 교황 초청에도 앞장섰다. 또 한국천주교회창립사연구소를 설립해 많은 자료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사람들이었다.
“한 달 사이에 진정서를 36건이나 받아본 일도 있고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을 2차례나 겪어봤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는 반대도 받아봤고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중에 가톨릭신문을 비롯해서 바른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윤리적 지원을 많이 해줬습니다.”
변 몬시뇰은 일선에서 물러서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형태상으로는 원로사목자로 은퇴한 듯 보이지만 변 몬시뇰에게는 오히려 그동안 성지 관리 및 사목 업무로 해오지 못한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다. 변 몬시뇰은 현재 이벽 성조 이전에 우리 역사와 천주교가 접촉한 일들을 고문서들을 통해 연구하고 있다. 또 지금까지 수집해온 자료들을 연구하고 분석해 박물관에 전시할 작업에도 몰두하고 있다.
“아직도 한국천주교회사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많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많습니다. 우리 신앙선조들이 남긴 문헌들을 글 자체로만 읽으려하지 말고 주변 상황이나 시대상 등을 파악해 이해한다면 이런 오해를 많이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변 몬시뇰의 연구는 단순히 개인의 교회사 연구가 아니다. 후학들이 보다 정밀하게 한국천주교회사를 바르게 알고 연구해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디딤돌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를 위해 수많은 자료와 유물을 모아왔다. 박물관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한국천주교회창립사 유물과 자료를 모으고도 “아직 반도 못 모았다”고 이야기하는 변 몬시뇰에게 은퇴란 먼 나라 이야기인 듯하다.
“성직자에는 은퇴가 없습니다. 지금도 은퇴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해야 할 일은 제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 못하고 끝날 것입니다. 후대 학도들이 이 일을 보완해 나가길 바랍니다.”
“제가 서품을 받던 당시에는 우리 손으로 연구된 우리 교회의 역사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외국 선교사인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를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이것을 바로잡아나가기 시작한 것이 창립선조의 묘를 찾고 천진암을 성역화해가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벽 성조의 묘를 찾아내고 천진암으로 이장한 것을 시작으로 정약종, 이승훈, 권일신, 권철신 등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 5위를 천진암 성지에 이장하고 끊임없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왔다. 그렇게 변 몬시뇰은 창립선조의 후손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창립선조의 묘를 찾고 자료를 수집했다. 그렇게 모은 자료 중 교회사적 가치가 있는 것만 해도 2000여 점이 넘었다. 그동안 한국천주교회 창립사에 대해 오해해왔던 많은 부분들도 이런 자료 발굴과 연구에서 해소돼왔다.
“이벽 성조의 묘를 찾은 것은 사제 생활 중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 중 하나입니다. 창립선조의 묘를 찾아 절이라도 해야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되지도 않는 일을 시작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옳은 일이고 사제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에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변 몬시뇰이 처음부터 창립선조와 천진암 성지를 위해 투신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변 몬시뇰은 신학생 때부터 책을 번역하는 일을 해왔고 30대 중반까지도 신비신학분야를 즐겨 공부했다. 성지 개발이나 토목공사 등은 취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관심조차 없는 분야였다. 다만 변 몬시뇰의 눈앞에 교회에 반드시 필요한 일들이 있었기에 사제로서 해나갈 따름이었다. 그렇게 30여 년 동안 천진암 성지를 개발해왔지만, 천진암 성지는 그 중요성과 큰 규모와는 달리 겉보기에는 특별히 개발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변 몬시뇰의 성지개발관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건물을 건축하는 게 성지개발이 아닙니다. 성지의 정신을 개발해야 합니다. 천진암 성지는 지금까지 어떤 수익사업을 해오지도 않았고 오직 신자들의 헌금 만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또 건축보다는 성지와 창립사적 자료·유물을 매입, 연구해 성지의 정신을 살리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변 몬시뇰이 해온 일은 천진암 성지 개발만이 아니었다. 1980년에는 주교회의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위원회 사무국장으로서 103위 성인 시성 추진과 교황 초청에도 앞장섰다. 또 한국천주교회창립사연구소를 설립해 많은 자료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사람들이었다.
“한 달 사이에 진정서를 36건이나 받아본 일도 있고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을 2차례나 겪어봤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는 반대도 받아봤고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중에 가톨릭신문을 비롯해서 바른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윤리적 지원을 많이 해줬습니다.”
변 몬시뇰은 일선에서 물러서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형태상으로는 원로사목자로 은퇴한 듯 보이지만 변 몬시뇰에게는 오히려 그동안 성지 관리 및 사목 업무로 해오지 못한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다. 변 몬시뇰은 현재 이벽 성조 이전에 우리 역사와 천주교가 접촉한 일들을 고문서들을 통해 연구하고 있다. 또 지금까지 수집해온 자료들을 연구하고 분석해 박물관에 전시할 작업에도 몰두하고 있다.
“아직도 한국천주교회사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많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많습니다. 우리 신앙선조들이 남긴 문헌들을 글 자체로만 읽으려하지 말고 주변 상황이나 시대상 등을 파악해 이해한다면 이런 오해를 많이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변 몬시뇰의 연구는 단순히 개인의 교회사 연구가 아니다. 후학들이 보다 정밀하게 한국천주교회사를 바르게 알고 연구해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디딤돌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를 위해 수많은 자료와 유물을 모아왔다. 박물관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한국천주교회창립사 유물과 자료를 모으고도 “아직 반도 못 모았다”고 이야기하는 변 몬시뇰에게 은퇴란 먼 나라 이야기인 듯하다.
“성직자에는 은퇴가 없습니다. 지금도 은퇴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해야 할 일은 제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 못하고 끝날 것입니다. 후대 학도들이 이 일을 보완해 나가길 바랍니다.”
발행일 : 2012-08-26 [제2809호, 14면], 가톨릭 신문 수원교구 판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