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회의 창립자와 한국천주교회의 창립자들
1. 교황 프란치스코께서는 이번 부활절에 로마교회 창립자의 묘소를 방문하셨다.
2013. 4. 1일자 바티칸 통신에 의하면(Zenit.org); <오늘 오후에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친히 바티칸의 베드로 무덤 발굴 현장을 참배하셨다>며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베드로의 무덤은 중앙 제대와 중앙 돔 바로 밑 지하에 있다. 발굴이 시작된 동기는 비오 11세 교황이 돌아가셨을 때(1857 - 1939/82세) 할 수 있는 한 베드로 사도 곁에 묻히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다. 1939년 이후 2차 대전 중에도 계속된 10여 년 동안의 발굴결과를, 1950. 12. 23에 성년을 끝내면서 비오 12세가 발표하였다. <순교 후 묻힌 무덤에 붉은 벽에 새겨진 글자는 그리스어로 Petros eni = Pietro e‘ qui / 베드로가 여기에 있다.> 이 무덤은 사도가 순교한 네로 경기장 근처에 있는 것이다. 교회사가 에우세비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Gaio 신부가 이단의 두목 Proclo에게 보낸 글에서 <나는 이 로마교회를 창립한 사도들의 무덤이 바티칸과 Ostia가에 있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할 수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로마교회의 창립자들은 곧 베드로와 바오로라는 뜻이다.
“Io sono in grado di mostrare i trofei degli apostoli; andando infatti al Vaticano o lungo la via Ostiense, vi troverai i trofei di quelli che hanno fondato questa Chiesa”, sostenne secondo Eusebio il presbitero Gaio nella sua disputa con il capo di una setta, Proclo.
2. 조선 천주교회의 창립자는 광암 이벽이라고 성 다블뤼 주교는 기록하고 있다.
1845년에 김대건 신부의 안내로 입국하여 21년간 조선 천주교 순교사의 원본 자료집인 비망기를 비롯하여 많은 책을 집필한 성 다블뤼 주교는; <조선 천주교회의 진정한 역사는 이벽(1754-1785)의 저 위대한 강학회로부터 시작되었다. 조선 왕국에 처음으로 천주교를 시작하기 위하여 천주께서 간택하여 쓰신 도구는 이벽이라는 사람인데, 이름을 덕조라 하고, 호는 광암이었으며, 경주 이씨 가문이었다. 이벽은 조선에 천주교회를 창립하기 위하여 주초로 삼고자 대학자 권철신 암브로시오를 선택하였다. =다블뤼 주교의 비망기 참조> 고 밝히고 있다.
"Le fondateur de I'Eglise catholique en Coree est Kwang-Am.
"Kouen Ambroise, T'siel sini etait I 'aine de la famille des Kwon que Ni Pieki choisit pour en fa ire Ie fondateur de la religion dans ce pays."
3. 2012년 10월 20일에 심상태 몬시뇰의 안내로 천진암 성지를 방문하신, 발터 카스퍼 추기경님께서는 성지 내의 창립자 묘역에 참배하는 신자들에게 강복하시고, 박물관과 유물들을 확인하신 후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셨다. Fondatori della Chiesa cattolica in Corea preghino per noi ! : 한국 천주교회의 창립자들과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만시지탄이 없지 않으나, 반갑고,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옥에도 티가 있고 하듯, 보는 눈에 따라 한두가지 아쉬운 점이 있으나, 서울 대교구 순교자 현양위원회(위원장 최창화 몬시뇰)의 힘든 노력에 우리 모두 감사와 찬사를 드립니다.”(변기영 몬시뇰)
4. 로마 교황이 한국천주교회 창립에 관하여, 水洗를 받기 전 한국 천주교회 신앙의 선조들이 1779년부터 1835년까지 56년간이나 선교사없이 성직자없이 한국에 복음을 선포하고 실천한 역사를 격찬하시고 이들을, ”한국천주교회의 창립자들(Fondatori)”이라고 말씀하시므로써, 한국천주교회 창립에 대하여 로마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공식적으로 하신 강론은(LOsservatore Romano 15, Octtobre 1984), 천주교회의 敎義的으로나, 敎會法的으로나, 敎理的으로나, 敎父시대부터의 敎會歷史上으로나 매우 합당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5. 한국천주교회의 출발에 대한 표현을, 창립(創立)이라는 말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06년 경향잡지의 전신인 보감 제1권 대한셩교샤기에 연재된 교회사 기사에서부터였다. 제2장은 죠션교회의 비로삼과 몬져 귀화한 자를 의론함이라 에서 첫 머리에, 강생후 일천칠백팔십사년(正宗甲辰)에 바야흐로 죠선에 텬주셩교회 창립하니라. 이로부터 약 100여년간을 두고, 조선천주교회 창립 이라는 말을 경향잡지와 가톨릭청년 등 이른 바 교회 언론에서는사용하여 왔음을 참고할만하다.
6. 서울교구에서는, 수표교 부근 이벽 성조의 집터에도 한국천주교회 창립지라고 적고 있다.
서울 청계천 李檗 聖祖의 집터가 있던 水標橋 부근 도로변에 세워진 表石.
7.한 종교단체의 출발에는 창립이라는 말이 創設이라는 말보다 더 합당하다고 본다. 30 여 년 전, 천진암성지위원회에서는 당시 위원장 이숭녕 교수, 등, 국어 전문 학자들이 선정한 단어로서, 한국천주교회 창립, 創立先祖,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創設, 創設先祖, 등의 표현은 되도록 피하여 왔다. 創立이란 말은 대부분의 사회단체들이 쓰고 있는 말로서, 전 세계 교회 역사상 유례가 없는 한국천주교회 출발의 특수한 고유성을 드러내는 데 더 합당한 표현이라고, 대부분의 용어 자문 전문학자들과 많은 일반 지성인들이 공감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創立이라는 말은 오늘날 실제로 우리 사회의 많은 단체들이 새로 생겨날 때 創立總會를 거행하며, 모든 수도회의 출발을 창립이라 하고, 창립자 성인, 이라고 부르는 데서도 볼 수 있듯이, 개인이나 단체가 자신을 주체로 들어내어 정식으로 출발함을 뜻하는데 쓰이고 있다.
* 한동안 우리 한국천주교회에는 聖地가 없고 史蹟地만이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 있어, 000 사적지라고 불러왔었다. 아직도 사적지라고 부르는 곳이 몇 군데 있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천진암 성지를 따라 모두 성지라는 말을 쓰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의 창립자들이라고 표현하는데 있어, 참고할만한 우리 교회의 경험이다. 이상과 같이 한국천주교회의 창립이라는 말은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고, 어학적인 문제로서 이제 그 의미를 바로 알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8. 천진암 성지 구역 내에는 묘역이 세 곳에 조성되어 있다.
5위 창립선조들의 묘역과 조선교구설립자 성인들의 묘역, 그리고 한국천주교회창립자 가족들의 묘역이다. 조선교구를 설립하고 프랑스 선교사를 영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시다가 1839 기해년 박해에 순교하신 분들은 성인이 되어 계시고, 60년 전의 똑같은 기해년 1779 에 한국천주교회를 창립하신 분들은 아직도 시복이 되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주교회의를 통해 조선조 순교자와 근 · 현대 신앙 증인 214위를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로 선정하는 가운데 한국천주교회 창립주역들도 포함되었다. 시복시성주교특위, 3월 주교회의 총회서 확정된 내용은; 조선왕조 치하 순교자와 증거자들 가운데 133위, 한국 교회 근ㆍ현대 신앙의 증인으로 81위 등 214위가 제2차 시복 추진 대상자로 선정됐다. 조선왕조 치하 순교자 및 증거자는 서울대교구 47위를 비롯해 수원교구 45위, 대전교구 12위, 청주교구 9위 등 12개 교구에서 선정됐다. 1차 시복 추진 당시 순교 여부에 대한 논란과 함께 충분한 연구 부족과 자료 미비로 누락됐던 이벽(요한 세례자)과 이승훈(베드로), 김범우(토마스), 권철신(암브로시오)ㆍ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형제,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황사영(알렉시오) 등 한국천주교회 창립 주역과 1866년 병인박해 순교자들이 대거 포함됐다. [평화신문, 2013년 2월 24일, 오세택 기자]
* 김대건 부제가 1845년 3월에 서울에서 보낸 보고서 가운데, <그중에서도 가장 특출한 분은 이벽이었습니다. Inter eos celebrior fuit vir nomine I Pieki, nomen baptismi Joannes Baptista.>고 표현하고 있다. 김대건 신부님의 경우로 치자면, 증조할아버지 뻘의 창립성현들이 아직도 시복이 안 된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하루 빨리 이 성업이 성취될 수 있기를 바라며, 마음을 모아 열심히 기도하여야겠다.
2013. 4. 24. 천진암 성지 주임 김 학렬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