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2월 8일, 2번째로 교구청에 불려가서, 수원 교구청 사목국장 겸 교육원장으로 있던 필자가 1975년 11월 21일, 신장본당(현재 하남시) 김정원 동창 신부의 안내로, 故 선종완 신부님을 모시고, 수녀 2명과 함께 신진 반트럭을 타고 천진암 터를 처음 답사하였는데, 천주교회 소유 토지가 1평도 없는데다가 신장 본당도, 수원교구도, 돈이 너무 없어서, 토지 매입이 막연하고 불가능하여, 선종완 신부님이 세운 과천 수녀원의 수련소 자리 후보지로 매입하시도록 말씀드려서 답사한 것이었으나, 천진암 터가 있는 마을 진입로도 없고, 특히 15 필지의 계단식 논밭으로 되어 있는 천진암 터는 지게 지는 나무꾼들 다니는 오솔길 뿐이라서, 수련소 건축이 불가능하여 선신부님은 포기하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필자는 50평이나 100평 정도만이라도 사서, 한 조각 돌을 세워, 後學들을 위하여 기념 標石이라도 세우고 싶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1978년 9월 말에 가서야 천진암 터의 장마철 土砂로 덮혀 있던 현재의 빙천 터 논다랑이 405평과 녹두와 동부를 심던 현재의 강학당 터 비탈 밭 700여평, 및 계단식 논으로 있던 천진암 터 15필지 2천 여평, 모두 3천여 평을, 퇴촌면장을 지낸 구산 김안당 복자 형제분들의 8대 후손 김학성 면장의 소개로 매입하였다.
이 때(9월 26일?) 로마에서는 폴랜드 공산국가 출신의 젊은 보이티야 추기경이 새 교황으로 당선되어, 10월 14일에 요한바오로 2세로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빈 손으로 시작한 천진암 터 3천 여평 매입 잔금도 10월 중순까지 완불하여, 필자는 감사와 기쁨으로 혼자서만 뛸 뜻이 기뻤으며, 우선 해를 넘기기 전에, 장기수 느티나무를 심기로 마음 먹었지만, 당시는 묘목 값이 비쌌고, 또 어느덧 늦가을은 빨리 가버리고 이미 초겨울이 되었다. 그러나 기념식수를 기다리는지 그 해는 성탄 때까지도 아직 눈이 내리지 않고 있었다.
1978년 12월 21일, 성탄을 앞둔 겨울 날씨에 겉만 약간 얼어 붙은 천진암 터에 식수하도록, 구산 공소의 복자 김안당 순교자 형제분들의 후손 김정태 회장 부부가 기증하는 5년생 느티나무 묘목 200여주를, 구산 공소 김완식 회장(현재 성지 주임 김학렬 신부님 아버지)과 박용만 씨가 가지고 와서 지금의 강학당 터에 식수하였다. 산골이라 날씨는 춥고, 해는 지는데 200여주를 모두 식목하려면 밤을 새야 할 지경이었는데, 천사들처럼, 산속에서 훈련 중이던 중사와 하사 2명의 특전사 요원들이 나타나 잠깐 동안에 심어주었다.
다음 해 봄 1979년에는 염보현 경기도 도지사가 잦나무와 은행나무 500여주를 비롯하여, 이숭녕 박사(천진암 성지 초대 위원장)가 무궁화 100여주를, 또 김진용 회장이 연산홍과 호도나무 묘목, 등 적지 않은 독지가들이 묘목을 기증하여, 해마다, 식목일에는 교구장 김남수 주교님과 성지 위원들이 교우들과 함께 매년 수천주씩 심었고, 천진암 우산리에서 번천리에 이르는 은행나무 가로수는 故 이재전 장군과 토지공사 직원들이 심어 주었으며, 1990년대 들어오면서, 서울 여자천진회원들이(김복희 막달레나 회장, 이부옥 데레사 회장, 임용옥 데레사 회장, 등) 수차에 걸쳐 전나무 3만5천여주와 3차에 걸쳐 무궁화 3만여주 등, 지난 2012년봄까지 모두 16만 5천여주를 심었다. 재작년 가을부터는 김학렬 신부가 주임으로 오면서, 식수에 관심을 기울여, 금년에도 느틔나무와 산수유, 등, 모두 수천여주를 식수하여, 지난 36년간 교회는 그동안 거의 17만여주를 식수하였다.
지난 36년간 계속된 270여필지의 토지매입과 각종 토목공사와 건축공사로 인하여, 묘목들은 뿌리가 내려 자라나면서, 불가피한 移植을 면치 못하여 수난을 당하였고, 수원교구내 다른 성지와 신설 본당의 건물 완공 후, 조경으로 수 백주씩(죽산성지, 권선동 성당, 남양, 양성, 및 대성당 터 7차 대규모 토목공사를 중장비로 무상 봉사해준 최무웅 사장의 대산개발 석산 등에,)천진암에서 솎아서 이사를 가는 묘목들도 수천주씩 몇 차례 되었다. 천진암에서 시집간 묘목들이 모두들 잘 자라야 할 텐데!!!
봄마다 산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날이 4월 5일 식목일로 해마다 발표되는데, 열 그루의 나무를 새로 심는 것도 좋지만, 한 그루의 심은 나무라도 잘 가꾸는 정성이 아쉽다. 앞으로 남북통일 시대를 내다보면서, 좀 넓찍하게 성지를 개척하여 가꾸느라고 이 시대 우리는 항상 시달리고, 쪼들리고, 들볶이면서, [천진암 성지의 어린 시절, 유년기] 관리를 책임진 이 시대 우리 교우들은 몇 명 안되는 사제들과 직원들만을 믿지 않고, 특히 전국 천진회 회원들은 천주님의 섭리와 안배의 손길로 되어가는 천진암 성지를, 지키고, 아끼고, 가꾸는 일에 자자손손이 함께함을 일생의 한가지 거룩한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항상 천주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우리가 후대를 위하여 천진암 성지에 한 그루의 나무라도 심고 가꾸어 남겨 주고 갈 수 있다면!!!
지금 토목공사 중인 대성당 터 1만평 확장, 빙천담 아래 수평 매립지,[眞理探究의 廣場]에는 土深이 30 여 m 이상이므로, 여기에 植樹되는 土種 赤松들은 마음껏 곧은 뿌리를 내려, 소나무 둘레 직경이 5m~7m 이상까지도 충분히 자라서, 폴투갈과 스페인의 태서양 도로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海松들처럼, 100년, 500년 후, 100년계획 천진암 대성당 건물 못지 않는, 1,000년 계획의 자랑거리 名物 聖樹가 될 수 있을텐데 !!! 2014년 4월 5일, 식목일을 앞두고, 卞基榮 몬시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