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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천주교회창립기념일 제정 선포 행사
글쓴이 Msgr. Byon   / 등록일 : 2020-06-15    (조회 : 3155)

천진암성지 통권 월보 제20호



천진암성지 통권 월보 제20호



천진암성지 통권 월보 제20호



천진암성지 통권 월보 제20호



천진암성지 통권 월보 제20호



천진암성지 통권 월보 제20호



천진암성지 통권 월보 제20호



천진암성지 통권 월보 제20호



천진암성지 통권 월보 제20호



천진암성지 통권 월보 제20호



천진암성지 통권 월보 제20호



천진암성지 통권 월보 제20호



천진암성지 통권 월보 제20호



천진암성지 통권 월보 제20호



천진암성지 통권 월보 제20호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님 주례로, 이벽 성조 유해를 제단 앞에 모시고, 

1979년 6월 24일 주일, 오전 11시에 이장 대미사를 드리고나서 ! 

- 변기영 신부 -


집집마다 가족들의 생일을 기억하고,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기일을 잊지 않으며, 국가와 사회와 교회에 큰 일을 하신 분들은 기념일도 정하여 경축합니다. 금년은 文度公 요한 丁若鏞 承旨 탄생 제 250주년이 되는 해라 벌써부터 각종 기념제전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생일도 기일도, 그 어떤 기념일도 없이, 200여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무덤조차 아주 모두 잊혀지고, 잃어버렸던, 한국천주교회 창립성조들의 정신과 덕행과 교훈과 업적을 잊지 않고, 찬미하며 감사 하기 위하여, 천진암 성지에서는 오는 6월 24일에 제34회 한국 천주교회 창립기념제를 거행합니다.

100년밖에 지나지 않은 안중근 의사의 묘를 잊어버리고, 아주 잃어버렸으며, 聖 김대건 신부님의 아버지 聖김제준(이냐시오) 聖人의 묘 역시 150여년 밖에 안되었으나, 지금 失墓하고 말았는데, 230여년 전의 한국천주교회 창립 성현들의 묘와 업적과 덕행과 공덕이 지금 꽃피기 시작하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 역사를 잊어버리면, 아주 잃어버리게 되는데, 기념일이나 축일을 제정하고, 기념하는 것은 역사 전승의 길입니다.

1979년 6월 24일은 세례자 성 요한 대축일이며 주일이었습니다. 이 주일날 서울 명동 대성당의 오전 11시 주일 대미사는 이벽성조 이장 미사였습니다. 제단 앞에는 3일 전에 포천에서 발굴하여 모셔 온 한국천주교회 창립주역 이벽 선생 유해가 안치되어 있었고, 주례는 한국 최초의 추기경 김수환 서울대교구장님과, 한국 최초의 주교이며, 최초의 대주교로서 전 서울 대교구장 이셨던 노기남 대주교님의 공동주례로 韓國 天主敎會 創立主役 李檗 先生 이장미사가 대단히 정성껏 아주 경건하게 거행되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강론에서나 12차례나 개인적으로 천진암 성지를 순례하신 바 있는데, 한국천주교회 創立主役 이벽 선생이라는 호칭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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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6월 24일 주일, 낮 11시 명동대성당에서 한국인 최초의 주교(노기남 대주교)와 추기경(김수환 추기경) 공동 집전으로 거행된 광암 이벽 성조 이장 대미사(순교 후 195여년 만에 명례방을 다녀 가시는 이벽성조의 유해. 당시 천신만고 끝에 천상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이벽 성조의 묘를 찾고, 어렵게 이장을 주관한 변기영 신부는 공동미사 전 제단에서 제의실로 가서 제의를 벗고, 사진기를 가지고 성당 정문쪽으로 가서, 이 역사적인 이장미사 사진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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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6월 24일 주일, 낮 12시 명동대성당에서 한국인 최초의 주교(노기남 대주교)와 추기경(김수환 추기경) 공동 집전으로 거행된 광암 이벽 성조 이장미사 광경(순교 후 195년 만에 명례방을 다녀 가시는 이벽성조의 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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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6월 24일 주일, 낮 12시 명동대성당에서 한국인 최초의 주교(노기남 대주교)와 추기경(김수환 추기경) 공동 집전으로 거행된 광암 이벽 성조 이장미사(순교 후 195년 만에 명례방을 다녀 가시는 이벽성조의 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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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6월 24일 주일, 낮 12시 명동대성당에서 한국인 최초의 주교(노기남 대주교)와 추기경(김수환 추기경) 공동 집전으로 거행된 광암 이벽 성조 이장미사(순교 후 195년 만에 명례방을 다녀 가시는 이벽성조의 유해).
미사 후, 유해 운구 차는 한국 수녀회 장상연합회에서 꽃꽂이를 맡아, 운전석 앞 유리창 외에는, 차량의 지붕과 양 옆까지 모두 꽃으로 이불을 만들어 차를 덮었었고, 감격의 이슬비를 맞으며, 당일 오후 3시에 천진암에 도착하여, 천진암 관할 교구인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님의 주례로 하관예절을 마쳤습니다. 감격의 이슬비도 그쳐서, 하관 후, 감격에 젖어 있던 우리는, 해마다 이날을 기념키로 하였습니다. 

한국교회 창립주역으로 최초의 순교자 이벽 성조께서 순교하신 후 195년 만에, 失墓 직전의 위기에서 기적적으로 묘를 찾아, 마침 본명성인이신 세자 요한 축일 주일에,또 역사성을 지닌 한국교회 최초의 주교, 대주교, 추기경의 주례로, 명례방 그 옛 터에 세워진 서울대교구 주교좌 대성당에서 한국교회 창립성조의 이장미사를 올린 후, 그 옛날 소년시절부터 15년간이나 은거하시며 정약용 등 소년 제자들과 함께 천주교를 연구하며 신앙을 실천하던 천진암 옛터에 다시 오시어 안장되시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라고 당시 우리 실무자들은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해마다 6월 24일은 날씨가 무덥고, 장마철이 시작되기도 하지만, 이 날을 임시 기념일로 정하여 매년 우리 몇몇이라도 모이자고 다짐하였는데, 계속하여 1년 동안에, 이벽성조와 함께 한국 교회를 세우신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정약종 성현들의 묘가 모두 천진암에 모셔지게 되었고, 한국천주교회창립기념일 행사도 금년(2013년)으로 제34년 째가 되었습니다.

교회 땅이 1평도 없던 이곳에는 이미 200여필지가 넘는 조각 땅들을 계속 모아서, 40만평에 달하는 세계적인 성지가 조성되었으며, 신도들이 가장 많이 모일 때는 5만여명이 넘었었고, 연 평균 5천명~1만여명 신도들이 모여서, 우리 신앙 선조들을 기념하며, 그 공덕에 감사드리며 찬미하면서 우리나라 천주교회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979년의 첫 기념행사는 그해 5월 3일(이 날이 그해에는 석가탄일)에, 남한산성 중심부에서 거행하였는데, 이벽 성조의 묘를 찾아 확인만 하고, 아직 발굴과 이장은 하기 전이었으며, 천진암은 토지도 3천여평 산골 논 다랑이를 매입해놓은 상태로, 15 km 정도 진입도로가 마차 길 뿐이어서, 불가피하게 남한산성에서 한국천주교회 창립을 기념하며, 순교정신을 되새기는 첫 기념제를 올리게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17,000여명의 신도들이 모였습니다.

이 첫 기념행사는 당시 주한교황대사 Luciano Angeloni 대주교님과 노기남 대주교님과 김남수 주교님이 서울과 수원의 많은 사제들과 함께 미사를 드렸고, 서울 소신학교 마지막 반 학생들도 참석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천진암의 한국천주교회 창립기념행사는 매년 주한 교황대사 대주교님들과 역대 수원교구장 주교님들이 빠지지 않고 주례를 맡는 전통이 수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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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순교자 현양대회 행사현장입구인 산성리 초등학교 정문앞과 오른쪽이 연무대이며, 이 아치 정면으로 약 100미터 지점이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의 목을 잘라 장대에 매달았던 사형장이다. 순교자들이여 기뻐하소서!<1979.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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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주례단의 입장, 안법고등학교(교장 신원식 신부) 밴드부의 우렁찬 성가 연주 소리에 산성리 온갖 초목도 몇 아람드리 고목들도 그 옛날을 회상하는 듯 숙연한 분위기 속에 교황대사와 방인최초의 주교, 노기남대주교와 김남수 수원교구장이 거룩히 입장한다.<197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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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이 골짜기에 최초로 봉헌되는 그리스도의 성혈!(루치아노 교황대사와 노기남 대주교, 김남수 주교 공동 주례)<197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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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사를 하는 변기영 신부, 온갖 모진 형벌과 굶주림을 이기고 칼아래 목을 느려 피를 쁘리고 쓰러져가면서도 진리를 증언하던 순교자들에게 영광을 드리자!<197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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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연무대 광장과 초등학교 운동장에까지 가득 메우고 있는 신자들(아래 가운데 검은 머리의 사진은 소신학생들)<1979.5.3.> 
 
필자가 신장성당 주임으로 근무하면서, 순교 선조들의 묘를 찾으러 다닐 때부터 신장성당에 오셔서 격려해주시며 본당미사도 함께 드리셨던, 당시 주한 교황대사 Luigi Dossena 대주교님과, 최초의 한국교회 창립 기념 순교자 미사를 드리고, 매년 계속하였던  Luciano Angeloni 대주교님, 또  Francesco Monterisi 대주교님, Ivan Dias 대주교님, Giovanni Balitis 대주교님, Giovanni Battista Morandini 대주교님, Osvaldo Padilla 대주교님, 그리고,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님과 최덕기 주교님, 이용훈 주교님, 이렇게 역대 관할교구장 주교님들과 교황대사 대주교님들이 30여년을 빠짐없이 매년 창립선조 후손들과 함께 경축하며 기념하는 한국천주교회 창립기념일 행사는 이제 뿌리가 내렸고, 전통이 수립되었습니다. 그동안 사회적으로도, 국무총리를 역임한 분들과 여러 장관 출신 교우들과 군 장성 출신 교우들, 서울대 학장을 역임한 석학들이 시골 할머니들과 어린들의 손을 잡고 함께 정성을 다하며 경축하였습니다.

오는 6월 24일에도, 되도록 많은 교우들이 모여서, 주한 교황대사 Osvaldo Padilla 대주교님과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님과 함께 거룩한 신심의 전통을 다져나가면서, 교회 행정순서를 밟고 있는 우리 신앙선조들의 시복과 시성이 조속히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100계획천진암대성당 건립에 온 교회 모두가 함께하는 일치의 꽃이 만발하게 합시다. 
Msgr. Byon

한국천주교회창립기념일 제정 선포문: [한국천주교회의 창립 200주년을 맞이하여, 200년 전 창립성현들의 정신과 위업을 본받아, 오늘의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이를 되살리며, 내일의 우리 후손들에게영원히 전승시키기 위하여, 한국천주교회 창립기념일을, 임시 6월 24일로 제정하며, 해마다 경축하기로 선포합니다].<1981년 6월 24일,한국천주교발상지 천진암성역화위원회 총재 김남수 주교> 

한국천주교회창립기념일 제정 선포식 개회사: 
200년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배달겨레 스스로 싹티운 교회가, 피를 뿌리며 자랐습니다. 목숨을 바치며 살아왔습니다. 죽음을 안고서 박해를 견디며, 달려 왔습니다. 돌아보면 발자욱마다 피로 물든 200년 지나온 길이, 이제사 경축의 기념일을 내게 되었습니다. 옷깃을 여밉시다. 마음을 가다듬읍시다. 뜻을 모아 함께하며, 자손만대에 길이 전승시킬 자랑스러운 기념일, 한국천주교회창립기념일 제정과 선포와 경축을, 환호하며 시작합시다. <1981년 6월 24일, 한국천주교발상지 천진암성역화위원회 위원장 이숭녕 박사> 교회법 학자 유영도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창립기념일 제정사]는 다음 기회에 소개합니다. 2011년 5월 15일, Msgr. Byon 

[한국천주교회창립기념일] 제정, 선포식 개회사를 하기 직전 존경과 감격 속에 묵념하는, 이숭녕 박사(국어학 전문학자, 서울대학교 문과대학장을 거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역임)1981. 6. 24. 천진암 성지 5위 성현들 묘역에서.

 

 

1981. 6. 24. 천진암 성지 5위 성현들 묘역에서, [한국천주교회창립기념일]을 비록, 천진암 성지에서 만이라도 제정, 선포하는 것은 관할교구장 직권이므로, 미사 주례자 교황대사가 하지 않고,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님이 하셨다. 


교황대사 Luciano Angeloni 대주교와 김남수 주교(1981.06.24)


 


유영도 신부


유홍렬 박사

 

 

천진암성지 통권 월보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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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변기영몬시뇰사랑방.kr  또는  www.msgr-byon.org     www.msgrpeterbyon.org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2880

    103위 시성을 되새기며, 오늘의 국내외 난관을 극복하며,
    103위 성인들의 순교정신으로,  
     
    오늘의 이 난국을 이겨 나가자 ! 
     

    韓民族의 集團 自爆 같은 바보 짓으로,

    또다시 남북전쟁으로, 서울은 불바다가 되고, 평양은 잿터미가 된다치더라도,

    통일은 더더욱 멀어지고, 아무도 막지 못할 더욱 심한 분열 만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지금 우리가 이러고만 있을 때가 아닌데 !

    본당마다, 수도원마다, 가정마다 날마다는 어렵더라도,

    토요일과 주일마다라도, 다함께 다 같이는 못하더라도,

    한마디 기도조차 혼자서도 바칠 수 없단 말인가 ?!  

    [불바다]니. [잿더미]니, 하고 남북의 동족들이 싸우며 난투극을 벌여도,

    그래봐야, 삼천리 강산을 강대국들의 [신무기 시험장]으로 만들 뿐이고,

    강대국들의 초현대적 [신무기 대목장]이 열리는,

    강대국들의 [신무기 상설 장마당]이 되게 하는 것뿐이 아니랴 ? 

    그래도, 무력에 의한 남북 점령통일은 마음먹은대로 그리 쉽지 않고,

    이조차 그나마도 더욱 멀어지고, 또 다시 [동족상잔의 유혈사태 홍수]그치고 나면,

    결국은, [휴전선의 이동]으로 끝나는, [제2의 6.25.사변 再版]이 될 뿐일 텐데 ! 

     

    남는 것은 동족들끼리 원한으로 끓고 타는 복수심과,
    전혀 예상 외의 결말에 단말마(斷末魔)의 처절한 비명 속에서,
    "죽음을 견디며 참아나가는 것이 "목숨의 연장", 즉, "인사연생(忍死延生)"이었던,
    [순교자 황사영 시국] 의 정치와 사상과 세도와 재산을 대신하는 처지처럼 되지 않을까?! 
    무신론 공산주의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 <黃嗣永 帛書의 末尾>,,,!  
                        
                                       ************************************************************ 
     
    韓民族의 集團自爆 ! 서울은 불바다 ! 평양은 잿터미 ! [파리 평화협정]과 월남 패망사와 지금의 한반도 정국은 쌍방의 핵무기 보유와 사용으로, 불가피하게 제3차 세계대전으로의 연결 위험 선상에서, 지난 월남전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될 위험이 불가피하다 ! 
     Msgr. Byon

    힘을 내자 ! 달리자 ! 한국 천주교회여 !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우리 모두가 용감히, 다같이 굳세게, 전처럼 함께 뛰어야 한다. 우리를 뒤돌아보시며 기다리시는 주님만을 향하여, 103위 순교 성인 선조들의 손을 잡고 나아가자 ! 영원한 103위 한국 순교선조들의 시성식을 다시 회상하며,,,!  오늘의 국내외 온갖 난관을 극복하며, 오늘의 난국을 이겨 나가자 ! 
     

    韓民族의 集團 自爆 같은 바보 짓으로,

    또다시 남북전쟁으로, 서울은 불바다가 되고, 평양은 잿터미가 된다치더라도,

    통일은 더더욱 멀어지고, 아무도 막지 못할 더욱 심한 분열 만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지금 우리가 이러고만 있을 때가 아닌데 !

     

    본당마다, 수도원마다, 가정마다 날마다는 어렵더라도,

    토요일과 주일마다라도, 다함께 다 같이는 못하더라도,

    한마디 기도조차 혼자서도 바칠 수 없단 말인가 ?!  

     

    [불바다]니. [잿더미]니 하고 남북의 동족들이 싸우며 난투극을 벌여도,

    그래봐야, 삼천리 강산을 강대국들의 [신무기 시험장]으로 만들 뿐이고,

    강대국들의 초현대적 [신무기 대목장]이 열리는,

    강대국들의 [신무기 상설 장마당]이 서게 하는 것뿐이 아니랴 ? 

    그래도, 무력에 의한 남북 점령통일은 마음먹은대로 그리 쉽지 않고,

    이조차 그나마도 더욱 멀어지고, 또 다시 동족상잔의 유혈사태 홍수그치고 나면,

    결국은, 이번에도 또 [휴전선의 이동]으로 끝나는, [제2의 6.25.사변 再版]이 될 뿐일 텐데 ! 

    남는 것은 동족들끼리 원한으로 끓고 타는 복수심과
    전혀 예상 외의 결말에 단말마(斷末魔)의 처절한 비명 속에서,
    "죽음을 참아나가는 것이 "목숨의 연장", 즉, "인사연생(忍死延生)"이었던,
    순교자 황사영 시국의 정치와 사상과 세도와 재산을 대신하는 처지처럼 되지 않을까?! 
    오늘의 무신론 공산주의 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 <黃嗣永 帛書의 末尾>,,,!  
                          
                                       ************************************************************ 
     
    韓民族의 集團自爆 ! 서울은 불바다 ! 평양은 잿터미 ! [파리 평화협정]과 월남 패망사와 지금의 한반도 정국은 핵무기와 제3차 세계대전으로의 연결 위험 선상에서, 지난 월남전과 전혀 다르다 ! 글 : Msgr. Byon
     
    Dedit illi Deus Sapientiam et prudentiam multam nimis 
    et latitudinem cordis quasi arrenam, quae est in tilttore maris dedit illi, 
    corona justitiae circumfulsit eum, Dominus noster !!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5.16 광장에서 거행된 한국순교복자 103위의 시성식 광경. 당시 언론과 보도기관에서는 100만여명으로 보도하였으나, 필자는 55만명~60여만명으로, 내한한 성청 인사들에게 보고 하였었다.>

    <Sua Santita Giovanni Paolo II aveva concelebrato la messa per la canonizzazione dei 103 Beati martiri coreani, con molti Cardinali, Arcivescovi, Vescovi, sacerdoti e fedeli cattolici - circa 500.000 - a Seoul il 6 maggio 1984. Per quella canonizazione, il Rev. Byon, rettore di Chon Jin Am, il luogo natale della Chiesa, aveva servito per 5 anni(1980~1984) come segretario esecutivo generale della commissione episcopale per la canonizzazione dei 103 Beati Martiri core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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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s by Baeck - Nam-Shick).

    이듬 해, 1984년 12월 초, 한국천주교회 역사상 전무후무한 103위 시성식과 교황 방한, 등, 모든 일이 끝나서, 주교회의 위원회 해산 후, 주교회의 사무총장, 정은규 신부한테서 전화가 왔다. 사무실에서 만나서 직접 본인에게 주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 의장 김수환 추기경과 주교회의 200주년 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윤공희 대주교의 공동명의로, 한국주교회의 순교자 시복시성추진부장 변기영 신부에게 주는, 돌에 새긴, "감사패"였다. "여기 지대한 공헌을 하였기에" 라는 말은 정신부가 추가하자고 하여 만들었노라고 하였다.

     
    수원교구 시골 촌놈이, 서울 주교회의에 불려가서, 주교님들 심부름하느라고, 서울과 로마와 국내 전국 교구에까지 동분서주하며, 일부 선후배 사제들한테, 5년간 정신 못차리게 들볶이며, 시달리며, 혼이 나면서 잔 심부름 한 품값이었다.
     
    미리내 본당에서 1957년 9월 27일 토요일 저녁에 혼자서 영세한 나는 그 후 해마다 9월 27일이 되면, 교황성하의 103위 한국순교복자 시성확정 발표를 되새기게 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103위 한국순교복자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 관면을 확정 발표하신 것은 1983년 6월 11일(로마시간)이지만, 교황청 여러 관련 부서에서 여러 절차를 마치고, 최종적으로 확정 교서(BULLA)를 발표하신 날은, 공교롭게도, 그 해, 1983년 9월 27일, 나의 영세 기념일이었다. 
    Msgr. Byon


     

     
    1983년 02월 26일 103위 순교복자 시성추진을 위하여 처음 교황청을 방문하여, 교황 요한바오로 2세를 
    뵙던 성하의 접견실을 이번에도 30년만에 다시 둘러볼 수가 있었다!!!


    1983년 02월 26일 103위 순교복자 시성추진을 위하여 처음 교황청을 방문하여, 교황 요한바오로 2세 성하를 알현

     
    1983년 02월 26일 103 시성추진을 위하여 처음 방문하여, 교황 요한바오로 2세를 뵙던 성하의 접견실을 
    30년 만에 다시 이번에는 교황궁 장관의 안내로 둘러보았다!!!

     
     
    <30년 전의 유사 업무 사진> L`Osservatore Romano의 Photos 관리 보전에 경탄이,,,!
    1983년 02월 26일 103 시성추진을 위하여 처음 로마를 방문, 교황 요한바오로 2세를 뵙고, 대법관들과 기념 
    촬영한 사진<사진을 보면서 교황님 좌편 앞에서 둘째 줄 두번째가 변기영 신부와 쥴리오 단떼 변호사> 


    1983년 6월 11일, 오전11시부터,교황궁에서 요한바오로2세 성하께서 친히 임석하시는 가운데, 개최된, 
    한국순교복자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을 위한, 대법관(Romana Rotta Concistori)들과 시성부 
    위원 대주교들 및 관계 추기경들의 최종 연석 합동회의. 사진은 시성부장관 팔라찌니 추기경의 보고 및 
    기적심사관면 건의 장면.


    1983년 6월 11일, 오전11시부터,교황궁에서 요한바오로2세 성하께서 친히 임석하시는 가운데, 개최된 
    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을 위한, 대법관(Romana Rotta dei Concistori)들과 
    시성부 위원 대주교들 및 관계 추기경들의 최종 합동 연석회의에서 기적심사관면 건의에 적극 찬성하는 
    위원 대주교들의 발언 장면


    1983년 6월 11일, 오전11시부터, 교황궁에서 요한바오로2세 성하께서 친히 임석하시는 가운데, 개최된 
    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을 위한, 대법관(Romana Rotta Concistori)들과 시성부 
    위원 대주교들 및 관계 추기경들의 최종 합동 연석회의 중에 시성부장관 추기경의 건의와 위원 대주교의 
    찬동에 이어 변론을 시작하는 단테변호사(Giulio Dante)의 발언 장면(당일 단테변호사는 3차까지 발언하였다.


    1983년 6월 11일, 오전11시부터, 교황궁에서 요한바오로2세 성하께서 친히 임석하시는 가운데, 개최된, 
    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을 위한, 대법관(Romana Rotta Concistori)들과 시성부 
    위원 대주교들 및 관계 추기경들의 최종 연석회의 중에 시성부장관 추기경의 건의와 위원 대주교들의 
    찬동 발언에 강력히 반대발언을 하는 몬시뇰. 이 몬시뇰을 흔히, "마귀의 옹호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1983년 6월 11일, 오전11시부터, 교황궁에서 요한바오로2세 성하께서 친히 임석하시는 가운데, 개최된, 
    한국순교복자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을 위한, 대법관(Romana Rotta Concistori)들과 시성부 
    위원 대주교들 및 관계 추기경들의 최종 합동 연석회의에서 기적심사관면 건의에 적극 찬성하는 위원 
    대주교들의 재발언 장면


    1984년 10월 14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약 2만 7천여명 전 세계 각국에서 모인 신도들이 103위 성인 첫 축일 대미사를 거행하였다.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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